28화(10,769자)
나는 원하면 달라질 수 있는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프랑크푸르트에 자리 잡고 다섯 해가 지난 1838년, 쉰 살의 쇼펜하우어는 멀리 북쪽에서 온 물음 하나에 답을 쓰고 있었다. 노르웨이 중부의 옛 도시 드론트하임, 오늘의 트론헤임에 있는 노르웨이 왕립 학술협회가 현상 공모를 내걸었다. 현상 공모는 학술협회가 물음을 하나 내놓고 가장 좋은 답 논문에 상을 주는 제도였다. 물음은 라틴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의 자유의지는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의식만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주 28-01]
뒷날 그는 한 대학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 이력을 적으며 1838년과 1839년에 두 스칸디나비아 학술원의 현상 물음에 답했다고 썼다.[주 28-02] 노르웨이의 물음이 먼저였다. 1839년 1월 26일, 국왕의 생일을 기리는 학술협회의 축하 모임에서 그의 논문에 첫째 상의 메달이 돌아갔다.[주 28-03] 그는 이 소식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들었다.
*
그해 9월 27일 그는 드론트하임으로 라틴어 편지를 보냈다. 국왕의 얼굴을 새긴 메달은 친구들까지 기뻐했으니 평생 간직하겠다고 썼다. 학술협회가 논문을 학술지에 실어 서른 부를 보내 주기로 한 것에도 감사했다. 그다음에 그는 부탁을 꺼냈다. 이듬해에 이 논문을 독일에서 다시 찍게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까닭은 여럿이었다. 노르웨이 학술지는 독일까지 거의 오지 않는다. 노르웨이에서는 외국어로 쓴 논문이라 교양 있는 몇 사람만 읽는다. 쓴 사람의 나라 말로 된 책을 그 나라 사람이 못 읽는다면 딱한 일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이것도 알아 주십시오. 저는 벌써 쉰두 번째 해를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제가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명성을 저는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얻을 해가 제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주 28-04]
그는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말을 빌려 왔다. 하루 종일 달린 사람이 저녁에라도 닿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출간을 한 해 넘게 미루라고는 하지 말아 달라고 그는 청했다. 일곱 달 전 수상 소식이 프랑크푸르트의 신문에 실린 일도 적었다. 그는 몇몇 가까운 사람에게만 말했는데 그것이 신문에 났고, 자기가 시킨 일이 아니라고 신들에게 맹세한다고 썼다.[주 28-04]
학술협회의 생각은 달랐다. 1840년 드론트하임 학술지에 그의 논문이 실렸을 때, 학술협회는 짧은 머리말을 붙여 왜 노르웨이어로 옮기지 않고 그가 쓴 독일어 그대로 싣는지를 밝혔다. 학문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번역이 필요 없다고 했고, 지은이에게 줄 책이 노르웨이어로 찍히면 그에게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셋째 까닭은 이랬다.
“내용이 아는 사람만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어서, 되도록이면 이 논문이 철저한 교양을 갖춘 사람에게만 닿기를 바랐다. 그런 사람이라야 오해를 피하고, 이 논문의 값어치를 전체로도 부분으로도 바르게 잴 수 있다.”[주 28-05]
같은 논문을 두고 두 쪽이 맞섰다. 지은이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기를 원했고, 상을 준 쪽은 되도록 적은 사람이 읽기를 원했다.
학술협회의 걱정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 논문은 사람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믿음을 하나하나 허물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성격과 그 앞에 놓인 동기에서 반드시 나온다고 했다. 그 결론만 떼어 들은 사람은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차피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애써 봐야 소용없다. 내가 한 일은 내 탓이 아니다. 학문의 교양이 없는 사람에게 그 논문은 손을 놓을 핑계가 될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논리도 옳았다. 그는 편지에서 그 논문을 오래 품어 온 생각을 담아 정성껏 쓴 쓸모 있는 책이라고 불렀다. 진리가 오해받을까 두려워 숨기면 그 진리가 누구에게 쓸모가 있는가? 학술원이 있는 까닭은 배움의 빛을 되도록 넓게 퍼뜨리는 데 있다고 그는 썼다.[주 28-04] 오해를 막는 길은 덜 읽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히게 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은 그가 바란 대로 되었다. 1841년, 그는 이 논문을 이듬해 덴마크에 낸 도덕 논문과 묶어 프랑크푸르트에서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라는 책으로 펴냈다.[주 28-06] 그 책은 누구나 살 수 있었다. 학술협회가 걱정한 오해를 막아 줄 것은 이제 그 논문 자체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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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하면 달라질 수 있는가? 원하는 것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아는지가 달라지면, 같은 사람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논문의 셋째 부분에서 이 물음에 답한다. 논문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고, 셋째 부분에서 그는 의지를 자기 안이 아니라 바깥 세계와 함께 놓고 본다.
그는 먼저 성격이 무엇인지 정한다. 같은 동기가 와도 사람마다 다르게 움직이는데, 그 다름을 만드는 그 사람 의지의 고유한 바탕이 성격이다. 그는 성격에 네 가지 성질을 붙인다.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다. 성격은 경험으로만 알려진다. 성격은 평생 같다. 성격은 타고난다. 첫째 성질을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비유한다. 햇빛은 밀랍을 하얗게 바래게 하지만 염화은은 검게 물들인다. 열은 밀랍을 무르게 하지만 진흙은 굳힌다. 그러니 동기만 알아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 말할 수 없고, 성격을 함께 알아야 한다.[주 28-07]
둘째 성질에서 그는 사람이 자기 성격을 남의 성격처럼 경험으로 배운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에게 정의감이나 용기가 있다고 믿다가, 막상 그 일을 당하고 나서 그만큼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자기에게 실망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이 앞에 놓이면, 우리 자신의 결심조차 남의 결심처럼 그것이 정해질 때까지 우리에게 수수께끼로 남는다.”[주 28-08]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남에 대해서도, 자기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리고 여러 번 시험을 치르고 나면 사람은 자기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알게 된다. 그는 그 앎을 ‘획득된 성격’이라고 부른다. 획득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무엇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면 안 되는지 안다. 그는 자기 배역을 이제는 솜씨 있게 연기한다.[주 28-09]
셋째 성질에서 그는 가장 단호해진다.
“사람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일에서 한 번 그렇게 행동한 사람은 아주 같은 사정이 오면 언제나 다시 그렇게 행동한다. 다만 그 사정을 제대로 아는 것도 그 ‘같은 사정’ 안에 들어 있다.”[주 28-09]
괄호 안에 넣은 마지막 단서가 그 단호함의 출구다. 그는 바로 뒤에서 그 출구를 연다. 사람이 가장 또렷이 알고 진심으로 고치겠다고 다짐하고도, 다시 기회가 오면 스스로도 놀랄 만큼 옛길을 그대로 걷는다고 그는 먼저 인정한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앎뿐이다. 그는 자기가 쓰던 수단이 목적에 닿지 못하거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그러면 목적은 그대로 두고 수단을 바꾼다.
그는 미국식 감옥 제도를 예로 든다. 그 제도는 죄수의 마음을 고치려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머리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 사람이 성격 때문에 끝내 좇을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에 닿는 길은 속임수보다 정직과 노동과 절제 쪽이 훨씬 덜 힘들고 덜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맺는다.
“무릇 사람이 고쳐지고 나아질 수 있는 자리는 오직 앎 안에 있다.”[주 28-10]
같은 사정이 두 번째에는 전혀 다른 사정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사정을 다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이 두 번째에는 알아듣게 되면 그렇다. 중세의 스콜라 학자들은 목적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목적이 실제로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알아서라고 말했고, 그는 그 말이 옳다고 했다. 동기는 앎을 거쳐서만 의지에 닿는다. 앎이 넓어지면 전에는 닿지 않던 동기가 닿는다. 다만 그는 한계도 분명히 긋는다. 말로 타이르고 도덕을 가르쳐 그 사람의 성격 자체를 바꾸려는 일은 바깥에서 힘을 가해 납을 금으로 바꾸려 하거나, 정성껏 가꾸어 떡갈나무에 살구가 열리게 하려는 일과 같다고 했다.[주 28-10]
그러니 그의 결론은 손을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숙명론은 내가 무엇을 하든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반대로 말한다. 결과는 내가 하는 일에서 나오고, 내가 하는 일은 내 성격에 닿는 동기에서 나오며, 그 동기는 내가 아는 것을 거쳐 들어온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그 사슬 안에 들어간다.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유를 행동 하나하나에서 찾지 말고 그 사람의 존재 전체에서 찾으라고 하며 이렇게 쓴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본다.”[주 28-11]
행동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행동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이 결론은 드론트하임의 걱정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었다.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손을 놓는 사람은 한 가지를 빠뜨린다. 손을 놓는 것도 그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일 또한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성격을 핑계로 삼는 순간 그는 자기 성격을 하나 더 증언한다. 그의 이론 안에서 ‘나는 원래 이렇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자백이 된다.
이 생각은 스무 해 전 첫 주저에 이미 있었다. 1819년에 나온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은 네 권으로 나뉘고 각 권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로 나뉘는데, 서른 살의 그는 그 55번째 절에서 사람이 경험을 거쳐 자기 성격을 알아 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 가운데 그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라틴어 그대로 적어 넣었다. 원하는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남의 처지를 부러워하지만, 그 처지는 그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남의 성격에 맞는 처지여서 막상 그 자리에 서면 불행해진다고 썼다. 그다음 문장이 이렇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새는 공중에서만, 두더지는 땅속에서만 편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공기 속에서만 편하다.”[주 28-12]
달라지는 길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어떤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인지 알고, 그 물을 고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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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에는 반대편이 있다. 드론트하임 학술협회가 걱정한 오해는 그의 논문을 다 읽은 사람에게도 남는다. 성격이 평생 같다는 문장은 고치려는 사람에게는 출구를 가르쳐 주지만, 고치기 싫은 사람에게는 문을 닫아 준다. 앎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도 쉽게 시험할 수 없다. 사람이 진심으로 다짐하고도 스스로 놀랄 만큼 옛길로 돌아간다고 쓴 사람이 바로 그였다. 앎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면, 앎은 무엇이 바꾸는가? 그는 경험이라고 답했고, 바깥에서 오는 거친 충격이라고 답했다. 다치기 전에 배우는 길은 그의 체계 안에서 좁다.
그 자신의 편지가 그 반대편을 보여 준다. 1839년 9월, 쉰한 살의 그는 학술협회에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명성을 아직 얻지 못했다고 썼다. 첫 주저를 낸 지 스무 해가 지난 뒤였다. 그는 그 바람을 고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바람이 이루어질 만한 자리를 골랐다. 노르웨이의 학술지 대신 독일의 서점을 고르고, 몇 사람의 교양인 대신 독일의 독자를 골랐다. 그 선택은 그의 이론과 어긋나지 않았다. 목적은 그대로 두고 수단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그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는 그의 이론이 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물음은 이렇게 바뀐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지난번에 무엇을 했고, 그것으로 나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나는 지금 내가 놓인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물을 고를 것인가?
그는 편지 끝에서 페트라르카를 빌려 저녁을 말했다. 하루 종일 달린 사람에게는 저녁에 닿는 것으로 충분하다. 쉰한 살의 그가 달려온 길은 스무 해 동안 같은 길이었다.
후주
[주 28-01] 노르웨이 왕립 학술협회의 물음 「Num liberum hominum arbitrium e sui ipsius conscientia demonstrari potest?」와 그 독일어 옮김(Läßt die Freiheit des menschlichen Willens sich aus dem Selbstbewußtseyn beweisen?)은 쇼펜하우어, 「의지의 자유에 관한 현상 논문」 첫머리. 전집 제4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전집 제4권), 인쇄 3쪽, PDF 22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1833년 프랑크푸르트 정착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33년 항목과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32~1833년 항목. 물음이 처음 공고된 해는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다(재확인).
[주 28-02] 쇼펜하우어가 할레의 철학 교수 요한 에두아르트 에르트만에게 보낸 1851년의 편지(쉐만 편 『쇼펜하우어 서간집』,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인쇄 332~333쪽, PDF 392~393쪽). 「Sodann beantwortete ich 1838 & 39 die beiden skandinavischen Preisfragen」. 332쪽은 스캔으로 대조했고, 333쪽 첫 줄은 OCR로 읽었다. 편지의 날짜는 1851년이며 날짜는 재확인. 「한 대학 교수에게」는 이 편지를 가리킨다.
[주 28-03] 상을 받은 날(1839년 1월 26일)은 같은 논문의 표제지(gekrönt von der Königlich Norwegischen Societät der Wissenschaften, zu Drontheim, am 26. Januar 1839), 전집 제4권 PDF 227쪽, 스캔 대조. 국왕의 생일 축하 모임에서 첫째 상의 메달이 주어졌다는 것은 [주 28-05]의 학술협회 머리말(bei der letzten zum Geburtstag Sr. Maj. des Königs abgehaltenen Festlichkeit … die erste Preismedaille). 소식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들었다는 것은 9월 27일 편지(주 28-04)가 수상 통지를 받은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쓰였다는 데 따른 것이다.
[주 28-04] 쇼펜하우어가 드론트하임의 노르웨이 왕립 학술협회에 보낸 1839년 9월 27일의 라틴어 편지. 쉐만 편 『쇼펜하우어 서간집』 인쇄 210~213쪽. 인용한 대목은 인쇄 211쪽, PDF 271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Sciatis insuper, me jam quinquagesimum secundum agere annum: neque adhuc eam adeptus sum celebritatem, qua, quod ingenue fateor, dignum me esse credo: pauci igitur ad eam assequendam mihi supersunt anni. 페트라르카는 si quis, toto die currens, pervenit ad vesperam, satis est. 메달·서른 부·재출간의 까닭(sinite doctrinae lucem quam latissime diffundi; libellum utilem; con amore elaboratam)도 같은 쪽의 취지를 옮겼다. 일곱 달 전 신문 기사와 맹세는 212쪽(ante hos septem menses … in Diurna politica hujus civitatis … Deos Deasque omnes dejero)이며 OCR로 읽었다(재확인). 쉐만의 주석(인쇄 432쪽)에 따르면 이 본문은 드론트하임 학술협회 문서고에 있는 원본 편지를 따른 것이다.
[주 28-05] 1840년 드론트하임 학술협회 학술지(Det Kongelige Norske Videnskabers Selskabs Skrifter 제3권 2책)에 실린 논문의 머리말. 쉐만이 같은 서간집 인쇄 432쪽 주석에 독일어로 옮겨 실었다. PDF 49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노르웨이어이고 이 소설은 쉐만의 독일어 옮김(weil die esoterische Natur des Inhalts es erwünscht zu machen schien, daß die Abhandlung, soweit möglich, nicht für Andere zugänglich werde, als Solche, welche eine einigermaaßen gründliche Bildung in den Stand setzt, sowohl Mißverständnissen zu entgehen als den Werth der Abhandlung … richtig zu würdigen)을 바탕으로 했다. 쇼펜하우어가 이 머리말을 언제 읽었는지는 자료에 없다. 학술협회가 왜 오해를 걱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손을 놓을 핑계)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주 28-06] 1841년 두 현상 논문을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로 함께 펴낸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41년 항목,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38~1841년 항목, 스탠퍼드 철학 백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사에서 냈다는 것은 1891년판 전집 제4권의 표제 구성에 따른 정리이며 출판사 이름은 적지 않았다.
[주 28-07] 「의지의 자유에 관한 현상 논문」 제3부 「다른 사물에 대한 의식 앞의 의지」. 전집 제4권 인쇄 48쪽, PDF 27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네 성질 가운데 「타고난다」(angeboren)는 인쇄 53~54쪽에서 다루며 OCR로 위치만 확인했다. 밀랍·염화은·진흙의 비유(wie das Sonnenlicht Wachs weiß, aber Chlorsilber schwarz färbt, die Wärme Wachs erweicht, aber Thon verhärtet)와 「동기만 알아서는 행동을 말할 수 없다」는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8-08] 같은 부분, 인쇄 49쪽, PDF 275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Daher auch bleibt, bei einer vorliegenden schweren Wahl, unser eigener Entschluß, gleich einem fremden, uns selber so lange ein Geheimniß, bis jener entschieden ist. 정의감·용기에 대한 실망은 같은 쪽 첫머리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8-09] 같은 부분, 인쇄 50쪽, PDF 276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획득된 성격(erworbener Charakter)과 「배역을 솜씨 있게 연기한다」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r Mensch ändert sich nie: wie er in einem Falle gehandelt hat, so wird er, unter völlig gleichen Umständen (zu denen jedoch auch die richtige Kenntniß dieser Umstände gehört) stets wieder handeln.
[주 28-10] 같은 부분, 인쇄 51~52쪽, PDF 277~27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다짐하고도 옛길로 돌아간다는 대목(doch eigentlich sich nicht bessert, sondern … zu seiner eigenen Ueberraschung, betreffen läßt), 수단과 목적, 미국식 감옥 제도(das Amerikanische Pönitenziarsystem … nicht, den Charakter, das Herz des Menschen zu bessern, wohl aber ihm den Kopf zurechtzusetzen), 두 번째의 사정, 스콜라 학자의 말(causa finalis movet non secundum suum esse reale, sed secundum esse cognitum), 납과 금·떡갈나무와 살구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Ueberhaupt liegt allein in der Erkenntniß die Sphäre und der Bereich aller Besserung und Veredelung.
[주 28-11] 같은 논문 제5부 「맺음과 더 높은 견해」. 전집 제4권 인쇄 97쪽, PDF 32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an dem was wir thun, erkennen wir was wir sind. 자유를 존재 전체에서 찾으라는 대목(im ganzen Seyn und Wesen … des Menschen selbst zu suchen)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8-12]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4권 §55. 전집 제2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인쇄 359쪽, PDF 40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nn wie dem Fische nur im Wasser, dem Vogel nur in der Luft, dem Maulwurf nur unter der Erde wohl ist, so jedem Menschen nur in der ihm angemessenen Atmosphäre. 세네카의 말(Velle non discitur)과 남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대목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초판은 1818년 말에 나왔고 표제 연도는 1819년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노르웨이 왕립 학술협회의 물음, 1838년의 답, 1839년 1월 26일 국왕 생일 모임의 첫째 상, 1839년 9월 27일의 라틴어 편지와 그 안의 명성 고백·재출간 부탁·신문 기사, 1840년 드론트하임 판의 머리말, 1841년의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다. 창작 대사는 없다. 학술협회 머리말과 쇼펜하우어 편지를 「맞섬」으로 엮은 것, 학술협회가 걱정한 오해의 내용, 「나는 원래 이렇다」를 자백으로 읽은 것, 그의 재출간을 「목적은 두고 수단을 바꾼 것」으로 읽은 것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1819년의 주저는 1839년 논문보다 앞선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