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10,505자)
내 시간을 빼앗는 것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43년, 쉰다섯 살의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지막 집으로 옮겼다. 마인강을 따라 난 강변 거리,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의 쇠네 아우스지히트 17번지였다. 그는 그 집에서 열여섯 해를 살았고, 그사이 주저의 제2권을 마쳤고, 노년의 글 모음 『소품과 부록』을 썼다.[주 27-01]
그 시절 그는 하루에서 아침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그는 뒷날 그 생각을 준칙으로 적었다. 아침은 하루의 젊은 때이고, 모든 것이 맑고 싱싱하고 가벼우며 사람은 자기 능력을 모두 쓸 수 있다. 그러니 늦잠으로 아침을 줄이거나 쓸데없는 일과 잡담에 흘려보내서는 안 되고, 삶의 정수로 여겨 어느 정도 신성하게 지켜야 한다. 저녁은 하루의 늙은 때여서, 사람은 저녁이면 지치고 말이 많아지고 경솔해진다고 했다.[주 27-02]
그의 아침을 깨뜨리는 것은 사람보다 소리였다.
*
강변 거리와 그 뒤의 좁은 골목으로는 날마다 짐마차가 지나갔다. 마부들은 말을 몰며 채찍을 휘둘렀고, 채찍 끝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돌벽 사이에 울렸다. 그는 그 소리를 견디지 못했다. 1851년, 예순세 살의 그는 『소품과 부록』 제2권에 「소음과 잡음에 관하여」라는 장을 넣었다.
그는 그 장에서 먼저 자기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때로는 적당하고 고른 소음이 한동안 자기를 괴롭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저 생각이 계속 무거워지는 것을, 발에 나무토막을 매단 것처럼 느끼다가 그제야 그 까닭을 깨닫는다고 했다.[주 27-03] 그리고 그는 망치 소리와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 우는 소리가 끔찍하다고 하면서도, 진짜로 생각을 죽이는 것은 채찍 소리 하나라고 썼다. 그 소리는 머릿속에 생각 비슷한 것이라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프게 느낀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소리가 명상 한가운데를 사형 집행인의 칼처럼 가르고 지나간다.[주 27-03]
그의 논리는 이렇다. 뛰어난 정신은 오목거울이 빛을 모으듯 모든 힘을 한 점에 모아야 일을 한다. 소음은 그 모으는 일을 깨뜨린다. 다른 방해는 우리가 하는 일을 끊지만, 소음은 우리 생각 자체를 끊고, 아예 부수어 버린다.[주 27-03] 그는 영국 사람들이 ‘절대로 말을 끊지 마라’를 열한 번째 계명이라 부른다고 적으며, 유럽에서 가장 분별 있는 나라가 그것을 안다고 했다.[주 27-03] 그러니 생각하는 사람에게 소음은 귀찮음이 아니라 일을 빼앗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가 없는 사람은 소음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끊길 것이 없는 곳에서는 끊는 소리도 대수롭지 않다.
*
그러나 채찍을 휘두르는 쪽에도 삶이 있었다. 마부는 그 거리에서 짐을 옮겨 먹고살았다. 무거운 짐을 실은 말을 비탈과 좁은 골목으로 몰아야 했고, 채찍 소리는 그가 배운 대로, 그의 아버지가 하던 대로 말을 부리는 방법이었다. 마부의 아침도 그의 하루에서 가장 귀한 때였다. 늦게 나서면 일감을 놓쳤다. 철학자가 아침을 지키려는 것과 마부가 아침을 서두르는 것은 같은 거리에서 부딪쳤다.
그도 그 쓸모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거룩하기까지 한 쓸모를 존중한다고 먼저 말해 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물었다. 흙이나 짐을 한 수레 옮기는 사람이 그 일 때문에, 시내를 반 시간 지나가는 동안 잇달아 만 명의 머릿속에서 막 떠오르는 생각을 싹부터 짓밟을 특권을 얻는가? 그에게는 짐 한 수레와 만 명의 생각이 저울에 올라 있었다. 마부에게는 그 저울이 보이지 않았다. 마부의 저울에는 오늘 나를 짐과 오늘 받을 품삯이 올라 있었다.[주 27-04]
그는 그 맞섬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채찍 소리가 말을 모는 데 쓸모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말은 늘 듣는 소리에 무뎌져서 채찍 소리에 걸음을 빨리하지 않는다. 빈 마차를 몰며 손님을 찾는 마부가 느린 걸음으로 쉴 새 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채찍이 살짝 닿는 것이 소리보다 더 듣는다. 그래서 그는 채찍 끈 끝마다 매듭을 달게 하는 경찰 규칙 하나면 그 소음을 쉽게 없앨 수 있다고 했다.[주 27-04]
여기까지는 설득이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도시의 좁은 골목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며 한 발 길이의 채찍을 힘껏 쉬지 않고 휘두르는 녀석은 당장 말에서 내려 진심을 담은 몽둥이 다섯 대를 맞아야 마땅하다고 썼다. 세상의 모든 박애주의자와 체벌을 없애는 입법 의회가 뭐라 해도 그 생각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주 27-04] 그리고 다음 쪽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부, 짐꾼, 길모퉁이의 품팔이 같은 사람들은 인간 사회의 짐을 지는 짐승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사람답게, 정의롭게, 너그럽고 공평하게, 앞날까지 보살피며 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제멋대로 내는 소음으로 인류의 더 높은 노력을 가로막는 것은 허락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채찍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크고 아름다운 생각을 쳐서 날려 보냈는지 알고 싶다.”[주 27-05]
같은 문장 안에서 그는 사람답게 대하라고 하면서 그들을 짐승이라고 불렀다. 그는 같은 장에서 이 소음을 팔로 일하는 쪽이 머리로 일하는 쪽에게 퍼붓는 뻔뻔한 조롱이라고 불렀다.[주 27-04] 마부는 그를 조롱하려고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다. 마부는 그가 그 창문 뒤에 있는 줄도 몰랐다. 자기 시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을 일부러 자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
하루 종일 반응하며 살다 보면 내 삶은 언제 하는가? 반응하는 삶은 밖에서 오는 것을 막아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에 내 주의를 줄지를 안에서 먼저 정해야 끝난다.
소음에 관한 장과 한 해에 나온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은 바로 그 문제를 다룬다. 다섯째 장은 ‘자기 자신을 대하는 준칙’을 따로 모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작은 물건도 눈에 바짝 대면 시야를 막아 세상을 가린다. 그처럼 우리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사물은, 아무리 하찮고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도, 우리의 주의와 생각을 지나치게 차지하고, 그것도 불쾌하게 차지하며, 중요한 생각과 일을 밀어낸다. 이에 맞서야 한다.”[주 27-06]
그가 말하는 것은 차례로 셋이다. 첫째, 주의를 끄는 힘은 그 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일과의 거리에서 나온다.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 작은 일이 큰일을 가린다. 둘째, 그렇게 차지된 주의는 대개 즐거운 쪽이 아니라 불쾌한 쪽으로 쓰인다. 셋째, 그래서 가까운 것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맞서는 노력이 따로 필요하다. 저절로 되지 않는다.
그는 그 노력의 방법도 적는다. 우리 일은 서로 아무 상관 없이 뒤죽박죽으로 닥쳐온다. 그러니 생각도 그만큼 칸을 나누어야 한다. 서랍장처럼 한 칸을 열 때는 다른 칸을 모두 닫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무거운 걱정 하나가 지금의 작은 즐거움을 모두 망치지 않고, 한 가지 궁리가 다른 궁리를 밀어내지 않는다.[주 27-07]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그렇게 자기를 이끄는 데는 자기를 다잡는 힘이 든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밖에서 오는 크고 많은 강제를 견디며 산다. 제자리에서 들이는 작은 자기 강제는 뒷날 밖에서 오는 많은 강제를 막아 준다. 원의 중심 가까이의 작은 호가 바깥 둘레의 백 배나 큰 호에 맞먹는 것과 같다.[주 27-07]
왜 그렇게 어려운가? 그는 다른 준칙에서 까닭을 댄다. 눈앞에 있는 것, 지금 보이고 들리는 것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보다 턱없이 세게 우리를 흔든다. 그 내용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바로 지금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모양이 그 힘을 만든다. 생각과 이유는 하나씩 따져 보는 데 시간과 고요가 필요해서, 어느 순간에도 한꺼번에 다 떠올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찮은 줄 아는 사람의 평가에도 마음이 상하고, 업신여겨도 될 모욕에도 화가 난다.[주 27-08] 채찍 소리 한 번이 반나절 쌓은 생각보다 센 까닭이 거기 있다.
그는 반응하며 사는 삶의 값도 적었다. 일이나 놀이의 소란 속에서 지나간 일을 곱씹지 않고 그저 삶을 실타래처럼 풀어 내기만 하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잃는다. 그의 마음은 뒤죽박죽이 되고 생각에는 어지러움이 끼며, 그가 하는 말은 툭툭 끊기고 조각나서 마치 잘게 다져 놓은 것 같아진다. 바깥이 소란하고 받아들이는 인상이 많을수록, 안에서 하는 일이 적을수록 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녁에 잠들기 전 그날 한 일을 돌아보라는 피타고라스의 규칙을 권한다.[주 27-09] 하루를 반응으로만 채운 사람에게는 그날 무엇을 했는지조차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무엇에 시달렸는지뿐이다.
여기에 그의 대답이 있다. 내 시간을 빼앗는 것은 밖에 있지만, 시간을 지키는 손잡이는 안에 있다. 밖에서 오는 강제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침이 없다. 자기 강제는 내가 쥐고 있어서,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는 조금 늦출 수도 있다.[주 27-07] 그러니 밖을 바꾸려 애쓰기 전에 안의 칸부터 정리하라는 것이 그의 준칙이었다.
*
그러나 「소음과 잡음에 관하여」의 그는 그 준칙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서랍을 닫는 대신 남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으려 했다. 자기를 다잡는 규칙이 남을 다잡는 규칙으로 넘어갔고, 그 끝에 몽둥이가 있었다. 그가 아포리즘에 적은 처방은 안을 다스리는 일이었는데, 소음에 관한 글에 적은 처방은 밖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물론 둘 다 필요할 때가 있다. 도시의 소음은 한 사람이 마음을 다잡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그가 낸 매듭 규칙은 지금 보아도 그럴듯하다. 그의 실패는 규칙을 원한 데 있지 않았다. 규칙을 원하면서 그 규칙 때문에 일을 바꿔야 하는 사람을 짐승으로 부른 데 있었다. 자기 시간이 귀하다는 생각은 남의 시간도 귀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부의 아침은 그의 서랍장 어디에도 칸이 없었다. 그가 바란 고요는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는 모두의 것이었고, 거리의 아침도 모두의 것이었다. 고요를 원하는 사람과 생계를 원하는 사람이 같은 거리를 쓰려면, 어느 한쪽을 짐승이라 부르지 않는 규칙이 필요했다.
그는 『아포리즘』에서 하루가 작은 일생이라고 썼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작은 탄생이고, 잠드는 것은 작은 죽음이라고 했다.[주 27-02] 그렇다면 같은 거리에서 같은 아침을 맞는 두 사람의 작은 일생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내 하루를 지키는 규칙이 남의 하루를 지우지 않으려면, 그 규칙은 어디까지 나를 향하고 어디서부터 남을 향해도 되는가?
후주
[주 27-01] 1843년 쇠네 아우스지히트 17번지로 옮겨 열여섯 해를 산 것, 1844년 주저 제2권과 개정판, 1851년 『소품과 부록』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43~1844년·1851년 항목. 1859년 7월 1일 이웃한 16번지로 옮긴 것도 같은 연표 1859년 항목이다.
[주 27-02] 쇼펜하우어,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5장 B절 준칙 13번 가운데 Hiezu ist der Morgen die rechte Zeit … 로 시작하는 대목. 1913년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핵심은 Denn der Morgen ist die Jugend des Tages … Man soll ihn nicht durch spätes Aufstehn verkürzen, noch auch an unwürdige Beschäftigungen oder Gespräche verschwenden, sondern ihn als die Quintessenz des Lebens betrachten und gewissermaßen heilig halten. Hingegen ist der Abend das Alter des Tages … Jeder Tag ist ein kleines Leben, — jedes Erwachen und Aufstehen eine kleine Geburt … und jedes zu Bette gehn und Einschlafen ein kleiner Tod. 쇠네 아우스지히트 시절 그가 실제로 아침을 이렇게 보냈다는 일과 기록은 확보한 자료에 없다. 「그 시절 그는 하루에서 아침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는 그의 준칙을 근거로 한 서술자의 말이다(재확인).
[주 27-03]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30장 「소음과 잡음에 관하여」.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679쪽, PDF 689쪽 무렵. OCR로 읽었고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고른 소음이 발의 나무토막처럼 생각을 무겁게 한다는 대목(Bisweilen quält und stört ein mäßiges und stätiges Geräusch mich eine Weile …), 망치 소리·개 짖는 소리·아이 울음과 채찍 소리(Hammerschläge, Hundegebell und Kindergeschrei sind entsetzlich: aber der rechte Gedankenmörder ist allein der Peitschenknall, 680쪽), 사형 집행인의 칼(wie das Richtschwert zwischen Kopf und Rumpf), 오목거울과 「소음은 생각을 끊고 부순다」(Der Lerm aber ist die impertinenteste aller Unterbrechungen, da er sogar unsere eigenen Gedanken unterbricht, ja, zerbricht), 영국 사람들의 「열한 번째 계명」(never interrupt … das elfte Gebot genannt), 끊길 것이 없는 곳에서는 소음이 대수롭지 않다는 대목(Wo jedoch nichts zu unterbrechen ist, da wird er freilich nicht sonderlich empfunden werden)은 모두 취지를 옮긴 것이다. 강변 거리와 골목으로 짐마차가 지나갔다는 첫 문장은 그가 「도시의 울리는 골목」에서 채찍 소리를 날마다 겪는다고 쓴 대목에 근거한 서술자의 묘사이며, 쇠네 아우스지히트 거리에서 들은 것이라는 기록은 없다.
[주 27-04] 같은 장, 인쇄 680쪽(PDF 690쪽), OCR로 읽음(재확인). 채찍 소리가 말에게 쓸모없다는 반박, 빈 마차의 마부, 채찍 끈 끝의 매듭을 정하는 경찰 규칙(durch polizeiliche Verordnung eines Knotens am Ende jeder Peitschenschnur), 「팔로 일하는 쪽이 머리로 일하는 쪽에게 퍼붓는 뻔뻔한 조롱」(ein frecher Hohn des mit den Armen arbeitenden Theiles der Gesellschaft gegen den mit dem Kopfe arbeitenden), 몽둥이 다섯 대(um fünf aufrichtig gemeinte Stockprügel zu empfangen)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거룩한 쓸모에 대한 존경」과 만 명의 머리 대목(Bei allem Respekt vor der hochheiligen Nützlichkeit … in successive zehn Tausend Köpfen (eine halbe Stunde Stadtweg) im Keime zu ersticken, 679~680쪽)도 OCR로 읽어 취지를 옮겼다. 박애주의자와 입법 의회 대목은 681쪽 첫 줄로 이어지며 스캔으로 확인했다.
[주 27-05] 같은 장, 인쇄 681쪽, PDF 691쪽. 스캔으로 원문을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Fuhrknechte, Sackträger, Eckensteher u. dgl. sind die Lastthiere der menschlichen Gesellschaft; sie sollen durchaus human, mit Gerechtigkeit, Billigkeit, Nachsicht und Vorsorge behandelt werden; aber ihnen darf nicht gestattet seyn, durch muthwilligen Lerm den höhern Bestrebungen des Menschengeschlechts hinderlich zu werden. Ich möchte wissen, wie viel große und schöne Gedanken diese Peitschen schon aus der Welt geknallt haben.
[주 27-06] 「아포리즘」 제5장 B절 준칙 13번의 마지막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한국어 의역. 원문은 Wie kleine Gegenstände, dem Auge nahe gehalten, unser Gesichtsfeld beschränkend, die Welt verdecken, — so werden oft die Menschen und Dinge unserer nächsten Umgebung, so höchst unbedeutend und gleichgültig sie auch seien, unsere Aufmerksamkeit und Gedanken über die Gebühr beschäftigen, dazu noch auf unerfreuliche Weise, und werden wichtige Gedanken und Angelegenheiten verdrängen. Dem soll man entgegenarbeiten. 제5장 B절의 표제는 Unser Verhalten gegen uns selbst betreffend(우리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이다.
[주 27-07] 같은 B절 준칙 15번.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핵심은 … wir müssen also gleichsam Schiebfächer unserer Gedanken haben, von denen wir eines öffnen, derweilen alle andern geschlossen bleiben … daß jedoch ein kleiner, an der rechten Stelle angebrachter Selbstzwang nachmals vielem Zwange von außen vorbeugt; wie ein kleiner Abschnitt des Kreises zunächst dem Centro einem oft hundertmal größern an der Peripherie entspricht … Auch haben wir den Selbstzwang noch immer in der Gewalt, und können, im äußersten Fall, oder wo er unsere empfindlichste Stelle trifft, etwas nachlassen; hingegen der Zwang von außen ist ohne Rücksicht, ohne Schonung und unbarmherzig.
[주 27-08] 같은 B절 준칙 19번.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핵심은 … daß man überall Herr werden soll über den Eindruck des Gegenwärtigen und Anschaulichen überhaupt … hingegen Gedanken und Gründe verlangen Zeit und Ruhe, um stückweise durchdacht zu werden … ebenso kränkt uns ein Urteil, dessen gänzliche Inkompetenz wir kennen; erzürnt uns eine Beleidigung, deren Verächtlichkeit wir einsehen. 같은 준칙에 여자들이 이런 인상에 자주 진다는 편견 섞인 구절이 있으나 여기서는 옮기지 않았다.
[주 27-09] 같은 B절 준칙 8번.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핵심은 Auf die hier gegebene Anempfehlung zielt auch die Regel des Pythagoras … Wer im Getümmel der Geschäfte oder Vergnügungen dahinlebt, ohne je seine Vergangenheit zu ruminiren, vielmehr nur immerfort sein Leben abhaspelt, dem geht die klare Besonnenheit verloren … das Abrupte, Fragmentarische, gleichsam Kleingehackte seiner Konversation … je größer die äußere Unruhe, die Menge der Eindrücke, und je geringer die innere Tätigkeit seines Geistes ist.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43년 쇠네 아우스지히트 17번지로의 이사와 그곳에서 쓴 책들, 그리고 1851년 「소음과 잡음에 관하여」에 그 자신이 적은 경험과 주장이다. 마부의 처지와 생각(배운 대로 말을 부린다, 늦으면 일감을 놓친다)은 서술자가 그의 맞은편 논리를 세우려고 재구성한 것이며, 특정 마부의 기록은 없다. 지어낸 인물이나 대사는 없다. 그의 아침 일과를 날마다 기록한 사료는 확보한 자료에 없어, 아침에 관한 서술은 그의 준칙에 근거했다. 1851년의 두 글은 1843년 이사 당시의 생각이 아니라 여덟 해 뒤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