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10,502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려면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33년 여름, 마흔다섯 살의 쇼펜하우어는 마인강 가의 상업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짐을 풀었다. 이번에는 잠시 머물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남은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았고, 스물일곱 해 뒤 이 도시에서 죽었다.[주 25-01]

여기까지 오는 데 두 해가 걸렸다. 1831년 8월 그는 콜레라를 피해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을 떠났고, 그 겨울을 프랑크푸르트의 셋방에서 났다. 이듬해 7월에는 라인강과 네카어강이 만나는 도시 만하임으로 옮겨 한 해를 살았다. 그리고 1833년 6월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눌러앉았다.[주 25-01] 베를린에는 그를 따라오겠다던 이다가 남았다. 어머니와 여동생과는 오래전에 사이가 끊어졌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뒷날 유언장 첫머리에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고, 윗대로는 살아 있는 친척이 더는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주 25-02]

그는 혼자 사는 길을 골랐다. 그러나 그 길을 고르는 동안에도 그에게 혼자 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

베를린의 친구 하인리히 폰 로우초는 그가 떠난 뒤에도 꼬박꼬박 편지를 보냈다. 로우초가 바란 것은 하나였다. 친구가 혼자 지내지 않는 것이었다.

1831년 12월, 로우초는 친구가 이다와 헤어질 때 넉넉하게 처신하지 않았다고 나무란 뒤, 언젠가 친구가 즐거움을 좇지 않고 괴로움 없는 삶을 좇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주 25-03] 이듬해 8월, 친구가 만하임에서 새로 사귄 여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로우초는 그 사람이 예전의 인연을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10월에는 다시 이렇게 썼다. 그녀가 당신 곁에 없다는 것이 나는 여전히 마음 아프다고 했다.[주 25-04]

로우초의 걱정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친구가 떠날 때 그는 이다에게 필요하면 돈을 건네 달라는 부탁을 맡았고, 앓아누운 이다를 찾아가 소식을 전했고, 편지가 엇갈리면 그 까닭을 알아내 알려 주었다.[주 25-03] 베를린에 남은 친구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쇼펜하우어는 멀리서 혼자 지낼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삶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 꾸려졌다.

쇼펜하우어의 답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답했을지는 그가 고른 삶이 보여 준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누구와도 살림을 합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생각은 모두 근거가 있었다. 로우초는 친구를 가까이에서 오래 보았다. 그는 친구가 사람을 의심하고 밀어내면서도 사람 없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사는 삶이 친구를 더 날카롭게 만들까 걱정하는 것은 우정이었다. 쇼펜하우어에게도 근거가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열한 해 동안 대학과 극장과 셋방 사이를 오가며 사람에게 지쳤다. 강의실은 비어 있었고, 이웃과는 법정까지 갔고, 사랑한 사람과는 의심 속에 헤어졌다. 사람 곁에서 그는 자기 일을 하지 못했다. 혼자가 되면 적어도 하루를 자기 생각으로 채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다툰 것은 사람이 필요한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얼마나, 어떤 모양으로 필요한가였다. 로우초가 그린 곁의 사람은 날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쇼펜하우어가 그린 곁의 사람은 그가 문을 열 때만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앞의 모양은 따뜻하지만 하루를 남과 나누어야 하고, 뒤의 모양은 하루를 지켜 주지만 열병이 들었을 때 물 한 잔 건네줄 사람이 없다.

*

그래도 그는 사람을 완전히 끊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는 점심을 여관 「잉글리셔 호프」의 식당에서 먹었고, 같은 식탁에 앉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 가운데 화가 쥘 룬테쉬츠는 그의 친구가 되었다.[주 25-05] 1836년 12월에는 거의 스무 해 동안 소식을 끊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 긴 편지를 썼다. 아홉 살 무렵 프랑스 항구 르아브르에서 두 해를 함께 산 안팀 그레구아르였다. 그는 그 편지에 자기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차례로 적었다.[주 25-06]

혼자 사는 사람이 스무 해 만에 옛 친구를 찾아 자기 삶을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을 피해 혼자가 되지 않았다. 사람과 함께 사는 방식을 바꾸었다. 같은 지붕 아래가 아니라 점심 식탁과 편지로, 날마다가 아니라 가끔, 그가 정한 만큼만 함께했다.

*

혼자 있는 시간은 자유인가 고립인가? 혼자 있는 시간은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되고, 채울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립이 된다.

프랑크푸르트에 자리 잡고 열여덟 해가 지나, 그는 노년의 생각을 모은 『소품과 부록』을 펴냈다. 그 첫 권에 실린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은 여섯 장으로 짜여 있는데, 사람됨을 다루는 둘째 장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혼자 있으면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 보내지고, 그때 그 사람이 자기 안에 무엇을 가졌는지가 드러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비단옷을 입고도 벗어던질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무게에 한숨짓고, 재능 있는 사람은 가장 쓸쓸한 곳도 자기 생각으로 채워 북적이게 한다.[주 25-07] 그는 이어서 말한다. 남이 남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에는 아주 좁은 한계가 있고, 끝에 가서는 누구나 혼자 남는다. 그러니 그때 혼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주 25-07]

같은 대목에서 그는 사람의 질을 머릿수로 메울 수 없다고 덧붙인다. 바보 백 명을 한데 모아 놓아도 똑똑한 사람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주 25-07]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넓은 사교계에 드나들지 않고 몇 사람과 식탁을 나누는 데 그친 것은 그 셈과 맞아떨어졌다.

다섯째 장의 준칙들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누구든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그러니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만 사람은 자유롭다.”[주 25-08]

그는 그 준칙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따르는 귀찮음과 손해와 위험과 짜증은 셀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고 했다.[주 25-08] 1831년의 일을 겪은 사람에게 이 말은 이론이 아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약속을 믿고 떠날 날을 정했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혼자 있을 때만 자유롭다고 말하는 까닭은 앞 문장에 있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맞추어야 하고, 저마다 자기 온도를 조금씩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 모임은 클수록 싱거워진다. 맞추는 일에는 언제나 억지가 따르고, 억지는 자기를 조금씩 내주는 일이다. 내줄 자기가 클수록 그 희생도 크다. 따라서 혼자 있을 때만 아무것도 내주지 않고 온전히 자기로 있을 수 있다.[주 25-08]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까닭도 따진다. 사람들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해서 생기지 않는다고 그는 본다. 혼자 있을 때의 쓸쓸함과 답답함, 자기 의식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을 피하려고 나쁜 동무라도 감수하고, 함께 있는 데 따르는 귀찮음과 억지도 참는다.[주 25-09] 사교로 공허를 메우려는 사람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달아나는 중이다.

*

그러나 그는 반대편도 적어 넣었다. 그는 고독이 사람의 본디 상태라고 말한 바로 뒤에서 스스로 이렇게 되묻는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른 뜻에서는 고독이 사람에게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은 세상에 들어올 때 혼자가 아니라 부모와 형제 사이에, 곧 공동체 속에 태어났다.”[주 25-10]

그래서 고독을 사랑하는 마음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고 그는 결론짓는다. 그것은 겪고 생각한 끝에 생긴다. 어린아이는 몇 분만 혼자 두어도 겁에 질려 운다. 소년에게 혼자 있는 것은 벌이다. 젊은이는 하루를 혼자 보내기도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기가 쉬워진다.[주 25-10] 그렇다면 혼자 있는 능력은 우월함의 표지가 아니다. 지나온 세월과 겪은 일이 만든 생활의 조건이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은 덜 자란 사람이 아니라, 아직 다른 시절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고독의 값도 숨기지 않았다. 집 안에만 오래 머문 몸이 찬바람 한 줄기에도 병이 나듯이, 오래 혼자 지낸 마음은 아주 사소한 일과 말 한마디, 남의 표정 하나에도 불안해지고 서운해지고 다친다고 썼다. 늘 사람들 틈에 사는 사람은 그런 것을 알아채지도 못한다.[주 25-11] 그는 그 대가를 줄이는 방법도 하나 내놓았다. 고독을 끝내 견디지 못하는 젊은 사람이라면 자기 고독의 일부를 사람들 사이로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을 곧바로 다 털어놓지 않고, 남들의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지 않는 법을 익히라고 했다.[주 25-11]

그는 나이에 관해서도 적었다. 예순 살 무렵이 되면 혼자 있으려는 마음이 거의 본능처럼 자연스러워지고, 사람은 고독 속에서 물속의 물고기처럼 지낸다고 했다.[주 25-10] 그 문장을 쓴 사람은 예순셋이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흔다섯 살에 프랑크푸르트에 짐을 풀 때는 아직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고독은 아직 물고기의 물이 아니었고, 날마다 견디며 몸에 익혀야 하는 낯선 물이었다.

여기에는 그 자신의 그림이 겹친다.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되면서 더 날카로워졌다. 로우초가 걱정한 것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고른 점심 식탁과 편지는, 고독의 일부를 사람들 사이로 가지고 들어가는 그 나름의 방법이었다.

*

그의 글에는 다른 그늘도 있다. 같은 대목에서 그는 고독을 즐기는 성향을 귀족적인 감정이라 부르고, 하찮은 사람일수록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고 쓴다.[주 25-12] 혼자 있는 능력을 사람의 등급으로 바꾸는 순간, 고독은 생활의 조건이 아니라 자랑이 된다. 그렇게 되면 외로워서 사람을 찾는 이웃은 덜 된 사람이 되고, 혼자 사는 사람은 자기가 외롭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는 1836년에 스무 해 만에 옛 친구를 찾았다. 그 편지를 쓴 밤, 그는 우월해서 혼자였는가, 아니면 외로워서 펜을 들었는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려면 혼자인 시간을 채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채울 것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필요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둘을 한꺼번에 살았다. 오전에는 문을 닫고 혼자 썼고, 낮에는 여관 식탁에서 남들과 밥을 먹었다. 혼자 쓰는 오전이 없었다면 그는 자기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들과 앉는 식탁이 없었다면 그의 고독은 그가 경고한 대로 찬바람 한 줄기에도 앓는 몸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 두 시간 가운데 어느 쪽이 그의 진짜 삶이었는지는 그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후주

[주 25-01] 1831년 8월 콜레라를 피해 베를린을 떠나 그 겨울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것, 1832년 7월부터 1833년 6월까지 만하임에 산 것, 그 뒤 프랑크푸르트에 아주 자리 잡은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25~1831년·1832~1833년 항목.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32·1833년 항목도 같다. 1860년 9월 21일 프랑크푸르트의 자기 집에서 죽은 것은 두 연표의 1860년 항목. 「짐을 풀었다」의 여름이라는 계절은 6월 귀환에 맞춘 것이다.

[주 25-02] 1852년 6월 22일 자 유언장 첫머리.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라이프치히, 1893), 547쪽(OCR로 읽음, 스캔 대조 안 함, 재확인). 원문은 … der ich niemals verehelicht war und auch in aufsteigender Linie keine Verwandte mehr habe … 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유언장 작성 연도는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52년 항목. 어머니·여동생과의 불화는 앞 화들의 일이며, 여동생이 1814년 이후 오빠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르투어 휘브셔, 「아델레가 아르투어에게 — 알려지지 않은 편지들 I」, 『쇼펜하우어 연감』 1977년호(권 번호 재확인), 133~134쪽. 이웃과 법정까지 간 일은 1821년 카롤리네 마르케와의 충돌과 1824년 판결이다.

[주 25-03] 하인리히 폰 로우초가 1831년 12월 29일 쓴 편지. 아르투어 휘브셔, 「쇼펜하우어의 베를린 연인 — 알려지지 않은 편지들」, 『쇼펜하우어 연감』 1974년호(권 번호 재확인), 47쪽.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은 … daß Sie bei der Trennung doch nicht con una hidalga generosidad gehandelt haben, und daß ich noch zu erleben hoffe, Sie nicht mehr nach dem ἡδύ sondern nach dem ἄλυπον streben zu sehn. 그리스어 두 낱말은 「즐거운 것」과 「괴로움 없는 것」이다. 로우초가 그녀에게 필요하면 돈을 건네는 일을 맡았고(같은 글 44~45쪽), 앓던 그녀를 찾아가 소식을 전하고 편지가 엇갈린 까닭을 알아봐 준 것(1831년 10월 13일·29일, 12월 29일 편지, 같은 글 45~47쪽)도 같은 글이 전한다.

[주 25-04] 로우초의 1832년 8월 5일 편지(Jedenfalls wünsche ich, daß Ihnen die neue Freundin die frühere Verbindung ersetzen möge)와 10월 11일 편지(Mir thut es noch immer herzlich leid, daß sie nicht bei Ihnen ist). 휘브셔 같은 글 49~50쪽. 취지를 옮긴 것이다. 만하임의 「새 여자 친구」가 누구인지는 자료에 없다. 쇼펜하우어의 답장은 휘브셔의 글에 실려 있지 않다.

[주 25-05] 쥘 룬테쉬츠가 「잉글리셔 호프에서 함께 식사하던 친구」(Freund und Tischgenosse im Englischen Hof)였다는 것은 휘브셔 같은 글 39쪽. 룬테쉬츠가 1855년부터 그의 초상을 그린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55년 항목. 식탁 모임이 1833년부터 이어졌는지는 자료에 없다. 「점심」과 「오전에는 혼자 썼다」는 아침을 일에 쓰라는 그 자신의 준칙과 잉글리셔 호프의 식탁 이야기에 근거해 서술자가 하루를 나눈 것으로, 날마다의 일과를 기록한 사료로 확인하지 않았다(재확인).

[주 25-06] 1836년 12월 10일 안팀 그레구아르 드 블레지메르에게 쓴 프랑스어 편지가 거의 스무 해의 침묵 끝에 쓴 「요약된 생애 보고」라는 것은 휘브셔 같은 글 39쪽(nach einem Stillschweigen von beinah zwei Jahrzehnten einen zusammenfassenden Lebensbericht). 르아브르에서의 두 해는 [주 1-01]. 편지 전문은 휘브셔, 『쇼펜하우어 연감』 제51권(1970), 45쪽 이하에 실렸다고 하나 확보한 자료에서 보지 못했다.

[주 25-07] 쇼펜하우어,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2장 「사람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1913년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앞 대목은 Denn in der Einsamkeit, als wo jeder auf sich selbst zurückgewiesen ist, da zeigt sich, was er an sich selber hat: da seufzt der Tropf im Purpur … während der Hochbegabte die ödeste Umgebung mit seinen Gedanken bevölkert und belebt, 뒤 대목은 Was einer dem andern sein kann, hat seine sehr engen Grenzen: am Ende bleibt doch jeder allein, und da kommt es darauf an, wer jetzt allein sei. 둘 다 취지를 옮긴 것이다. 바보 백 명 대목은 같은 장의 aber leider geben hundert Narren, auf einem Haufen, noch keinen gescheuten Mann 의 취지다.

[주 25-08] 같은 책 제5장 B절 준칙 9번.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인용은 한국어 의역. 원문은 Ganz er selbst sein darf jeder nur so lange er allein ist: wer also nicht die Einsamkeit liebt, der liebt auch nicht die Freiheit: denn nur wann man allein ist, ist man frei. 앞뒤의 논증(Zunächst erfordert jede Gesellschaft notwendig eine gegenseitige Akkommodation und Temperatur: daher wird sie, je größer, desto fader … Zwang ist der unzertrennliche Gefährte jeder Gesellschaft, und jede fordert Opfer, die um so schwerer fallen, je bedeutender die eigene Individualität ist)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준칙의 첫머리(Denn teils darf man, mit einiger Sicherheit, auf niemand zählen, als auf sich selbst, und teils sind die Beschwerden und Nachteile, die Gefahr und der Verdruß, welche die Gesellschaft mit sich führt, unzählig und unausweichbar)도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5-09] 같은 준칙 9번의 저자 각주 [L].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핵심은 … so ist auch der Geselligkeitstrieb der Menschen im Grunde kein direkter, beruht nämlich nicht auf Liebe zur Gesellschaft, sondern auf Furcht vor der Einsamkeit … welcher zu entgehn man daher auch mit schlechter Gesellschaft vorlieb nimmt.

[주 25-10] 같은 준칙 9번, Aber hatte doch auch Adam weder Vater, noch Mutter! 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인용은 한국어 의역. 원문은 Aber hatte doch auch Adam weder Vater, noch Mutter! Daher wieder ist, in einem andern Sinne, die Einsamkeit dem Menschen nicht natürlich; sofern nämlich er, bei seinem Eintritt in die Welt, sich nicht allein, sondern zwischen Eltern und Geschwistern, also in Gemeinschaft, gefunden hat. 어린아이·소년·젊은이의 대목(Das kleine Kind erhebt ein Angst- und Jammergeschrei …)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고독이 사람의 본디 상태라는 앞 문장(In diesem Sinne ist die Einsamkeit sogar der natürliche Zustand eines jeden …)은 같은 준칙 바로 앞 문단의 끝이다. 예순 무렵의 고독(in den sechziger Jahren ist der Trieb zur Einsamkeit ein wirklich naturgemäßer, ja instinktartiger … man ist in der Einsamkeit, wie der Fisch im Wasser)도 같은 준칙의 뒷부분으로,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5-11] 같은 준칙 9번, 고독의 단점(Unter jenen Nachteilen ist übrigens einer … uns beunruhigt, oder gekränkt, oder verletzt fühlen)과 고독의 일부를 사람들 사이로 가지고 가라는 권고(Wer nun aber, zumal in jüngern Jahren … dem rate ich, daß er sich gewöhne, einen Teil seiner Einsamkeit in die Gesellschaft mitzunehmen …).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둘 다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5-12] 같은 준칙 9번(Sonach ist es ein aristokratisches Gefühl, welches den Hang zur Absonderung und Einsamkeit nährt. Alle Lumpe sind gesellig, zum Erbarmen).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31~1833년의 거처 이동과 프랑크푸르트 정착,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는 유언장의 자기 소개, 로우초의 1831년 12월·1832년 8월·10월 편지 내용, 잉글리셔 호프의 식탁 친구 룬테쉬츠, 1836년 그레구아르에게 쓴 생애 보고 편지다. 그가 베를린에서 사람에게 지쳤다는 것, 오전과 낮으로 나눈 하루는 서술자의 해석과 재구성이다. 1851년의 「아포리즘」은 1833년의 그가 한 생각이 아니라 열여덟 해 뒤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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