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10,280자)

이겼는데 관계는 끝났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20년 3월 23일, 베를린 대학의 회의실에 철학부 교수들이 모였다. 맨 앞자리에는 이 학부에서 가장 이름난 교수가 앉아 있었다. 두 해 전, 칸트 뒤를 이은 철학자 피히테가 맡았던 교수 자리를 넘겨받은 쉰 살의 헤겔이었다. 강단에는 서른두 살의 강사 지원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섰다.[주 20-01] 그가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으려면 이 자리에서 시험 강의를 하고, 교수들의 질문에 맞서 자기 주장을 지켜 내야 했다.

강의 주제는 원인이 작용하는 서로 다른 네 가지 방식이었다. 그는 돌이 굴러가게 하는 원인과, 식물이나 몸의 기관을 움직이는 자극과, 동물을 움직이는 동기를 갈랐다. 자극은 언제나 직접 닿아야 작용한다. 동기는 닿지 않아도 된다. 동기로 작용하는 대상은 그저 지각되고 알아차려지기만 하면 되고, 가까운지 먼지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 동물이 동기 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주 20-02] 맨 앞자리의 헤겔은 그 말을 연필로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헤겔은 지원자의 논지를 거의 한 줄씩 따라 적었고, 첫 줄 옆에는 자기 물음을 하나 달았다. 왜 그것이 자극이나 냄새나 맛이나 잠이나 충동이 아니라는 말인가?[주 20-02]

강의가 절반쯤 왔을 때 헤겔이 끼어들었다. 그날 주고받은 말은 뒷날 쇼펜하우어가 젊은 벗에게 들려준 이야기로 전한다.[주 20-03]

“말 한 마리가 길에 드러눕는다고 합시다. 그때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 말이 자기 아래에서 발견하는 바닥입니다. 그 바닥이 말의 피로, 곧 말의 몸 상태와 만난 것이지요. 그 말이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다면 드러눕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동물적 기능까지 동기로 친다는 말씀이오?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것도 동기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겁니까?”

“그런 것을 동물적 기능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동물의 몸이 의식하며 하는 움직임을 동물적 기능이라 부릅니다. 할러의 생리학이 그렇게 씁니다.”

헤겔은 물러서지 않았다. 심장 박동과 혈액 순환처럼 의식 없이 일어나는 몸의 과정이 동물적 기능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지원자는 자기 학문의 교과서를 들이댔고, 교수는 자기 개념을 붙들었다. 그때 의학에 밝은 동료 교수 리히텐슈타인이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이번에는 쇼펜하우어 박사 쪽이 옳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희 학문에서는 지금 말하는 그 기능을 동물적 기능이라고 부릅니다.”[주 20-03]

헤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론은 거기서 끝났다. 그가 꼭 한 시간 분량으로 준비해 간 원고 여덟 장 가운데 넷째 장 끝에 이르렀을 때였다.[주 20-04] 학부 회의록은 그날을 짧게 적었다. 헤겔 교수가 그 강의를 두고 지원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는 그가 공개 시험 강의를 마치면 강사로 인정하기로 했다.[주 20-04]

*

두 사람의 논리는 둘 다 서 있었다. 낱말에서는 쇼펜하우어가 옳았다. 당시 생리학이 ‘동물적 기능’이라는 말로 가리키던 것은 의식적인 움직임이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그 자리에서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헤겔의 물음이 낱말 싸움만은 아니었다. 그가 연필로 적은 물음은 진지했다. 동기와 자극과 충동의 경계는 어디인가? 지친 말이 드러눕는 것은 바닥을 알아보았기 때문인가, 몸이 그저 무너졌기 때문인가? 헤겔이 낱말을 잘못 골랐다고 해서 그 물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낱말에서 이겼고, 그 물음은 그 자리에서 아무도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이겼다. 그러나 그 승리로 얻은 것은 많지 않았다. 강의는 중간에 끊겼고, 교수단 앞에서 자기 체계를 끝까지 펼칠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학부에서 가장 힘 있는 교수는 젊은 지원자에게 남들 앞에서 고쳐 배우는 쪽이 되었다. 쇼펜하우어 연구자 휘브셔는 헤겔이 쇼펜하우어의 책을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읽지 않았다고 적는다.[주 20-01] 3월 23일 이후 두 사람이 철학을 두고 다시 말을 주고받은 기록은 없다. 그해 여름부터 그는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걸었고, 그 일은 그가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주 20-05]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 앉은 자리에서 둘은 질문을 함께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낱말을 맞게 썼는가를 가리는 상대가 되었다.

*

열 해쯤 뒤, 그는 논쟁에서 쓰이는 부정한 술책들을 모아 하나하나 이름을 붙인 원고를 썼다. 오늘 『논쟁적 변증술』 또는 『옳다고 우기는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읽히는 원고다. 그는 이 원고를 살아서 내놓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몇 해 뒤 그의 유고를 맡은 프라우엔슈테트가 그 일부를 처음 세상에 냈다.[주 20-06]

원고 첫머리에서 그는 논쟁이 왜 진리에서 벗어나는지를 묻는다. 그의 논증은 이렇게 이어진다. 사람이 철저히 정직하다면 토론의 목적은 진리를 찾는 것 하나뿐이어야 한다. 진리가 처음에 내가 내세운 쪽에 있든 상대 쪽에 있든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타고난 허영이 있고, 그 허영은 특히 지적 능력에 대해서 쉽게 날이 선다. 그래서 내가 처음 내세운 것이 틀리고 상대의 것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을 허영이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기 전에 말하고, 말한 뒤에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를 바란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허영의 이해관계에 자리를 내준다.[주 20-07] 결론은 분명하다. 논쟁에서 사람이 지키려는 것은 대개 명제가 아니라 자기다.

원고의 맨 끝에 그는 마지막 술책을 둔다.

“상대가 더 우세하여 내가 질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인신공격으로 넘어가 모욕하고 거칠어져라. 인신공격이란 논쟁의 대상에서 벗어나, 거기서는 이미 진 판이니, 논쟁하는 사람 자체로 넘어가 그 사람을 어떻게든 공격하는 것이다. … 그것은 정신의 힘에서 몸의 힘으로, 곧 짐승의 본성으로 호소하는 일이다. 이 규칙은 누구나 쓸 수 있어서 아주 인기가 있고, 그래서 자주 쓰인다.”[주 20-08]

여기까지는 지는 쪽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어서 이기는 쪽을 겨눈다.

“자기만 인신공격을 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아주 침착하게, 당신이 틀렸고 따라서 잘못 판단하고 잘못 생각했다고 보여 주면, 논쟁에서 이길 때마다 바로 그렇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거칠고 모욕적인 말보다 그를 더 격분시킨다. 왜 그런가? 정치 철학자 홉스가 『시민론』 첫 장에서 말한 대로, 마음의 모든 즐거움과 모든 생기는, 자기를 견줄 상대가 있어서 그와 견주며 자기를 대단하게 여길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주 20-08]

그는 그 까닭을 한 번 더 풀어 쓴다. 사람에게 허영의 만족보다 큰 것은 없고, 허영이 입은 상처보다 아픈 상처도 없다. 그 만족은 주로 남과 자기를 견주는 데서 생기고, 무엇보다 정신의 힘을 견줄 때 생긴다. 그리고 그 견줌이 실제로, 아주 세게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토론이다. 그래서 진 사람은 아무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격분하고, 마지막 수단인 인신공격으로 손을 뻗는다. 내 쪽에서 아무리 예의를 차려도 그것은 막을 수 없다.[주 20-08]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왜 대화는 실패하는가? 증명이 끝나는 순간 그 자리는 진리를 찾는 자리에서 누가 더 나은 머리를 가졌는지 견주는 자리로 바뀌고, 진 사람은 명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었다고 느낀다. 이긴 사람이 침착할수록 진 사람의 상처는 깊어진다. 그는 그 상처가 정당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상대는 그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처는 실제로 있고, 그 상처가 다음 대화의 문을 닫는다.

거친 말과 침착한 증명을 나란히 놓으면 그의 논증이 더 또렷해진다. 거친 말을 들은 사람에게는 되갚을 길이 있다. 그는 더 거친 말로 받아칠 수 있고, 적어도 상대가 무례했다고 남들 앞에서 말할 수 있다. 그 순간 잘못한 쪽은 상대가 되고, 그의 자존심은 다치지 않은 채 남는다. 침착한 증명을 들은 사람에게는 그런 길이 없다. 상대는 무례하지 않았고, 틀린 것은 자기였으며, 그것을 모두가 보았다. 그가 화를 내면 화를 낸 쪽이 더 초라해진다. 되갚을 데가 없는 상처는 안으로 들어가 오래 남고, 다음번에 그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날의 논점이 아니라 그날의 패배다.

그가 내놓는 처방은 화려하지 않다. 상대가 인신공격으로 넘어오면 그것은 이 논쟁과 상관이 없다고 조용히 말하고 곧바로 논점으로 돌아가 계속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래서 유일하게 확실한 규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토피카』 마지막 장에서 준 것이다. 아무하고나 논쟁하지 말 것. 근거로 다투고 근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진리를 귀하게 여겨 상대의 입에서 나온 좋은 근거도 기꺼이 듣는 사람, 진리가 저쪽에 있을 때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견딜 만큼 공정한 사람과만 논쟁할 것.[주 20-08] 그런 사람은 백에 하나도 드물다고 그는 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두고,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말대로 평화가 진리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주 20-08]

*

그런데 이 원고의 날카로움은 그 자신에게도 돌아간다. 1820년 3월의 회의실에서 그는 진리를 함께 찾는 사람이었는가, 이기는 사람이었는가? 그날 그는 술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정당한 근거로 이겼고, 낱말에서는 옳았다. 그러나 그의 원고가 말하는 바로 그 일, 곧 상대에게 침착하게 그가 틀렸음을 보여 주는 일을 학부 전체 앞에서, 학부에서 가장 이름난 사람에게 해냈다. 그 결과도 원고가 말한 그대로였다. 헤겔은 일어섰고, 대화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는 원고에서 논쟁을 서로의 생각을 바로잡고 새 생각을 낳는 머리와 머리의 마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그러려면 두 사람이 학식과 정신에서 엇비슷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주 20-08] 그는 헤겔을 그런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헤겔의 물음에서 진지한 경계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낱말의 실수만 본 것은, 상대를 처음부터 함께 생각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른한 해 뒤, 예순세 살의 그는 『소품과 부록』 둘째 권의 「논리학과 변증술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이 원고를 다시 언급했다. 예전 어느 해에 그는 사람들이 토론에서 되풀이해 쓰는 속임수와 꼼수를 모아 그 형식만 깨끗하게 떼어 내 보여 주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원고를 다시 보니 사정이 달랐다.

“이번에 그 예전 작업을 다시 살펴보니, 평범한 인간 본성이 자기 결함을 감추려고 쓰는 샛길과 꼼수를 그토록 자세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이제는 내 마음 상태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그 원고를 치워 둔다.”[주 20-09]

그는 몇 가지 보기만 남기고 나머지를 서랍에 넣었다. 이기는 법을 낱낱이 적어 두었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그 기술을 들여다보는 일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술책을 모은 목록은 남을 고발하는 문서였지만, 동시에 그 술책을 그토록 잘 알아본 자기 눈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이기는 것과 함께 생각하는 것을 둘 다 가질 수 있는 대화가 있는가? 그런 대화를 하려면, 먼저 상대를 이길 사람이 아니라 함께 물을 사람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후주

[주 20-01] 날짜, 장소, 헤겔이 학부에서 가장 이름난 교수였고 두 해 전 피히테의 교수 자리를 넘겨받았으며 쉰 살이었다는 것, 지원자가 서른두 살이었다는 것, 헤겔이 쇼펜하우어의 책을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읽지 않았다는 판단은 아르투어 휘브셔, 「헤겔과 쇼펜하우어 — 그들의 계승, 그들의 현재」, 『쇼펜하우어 연감』 1945~1948년호, 첫 쪽. https://download.uni-mainz.de/fb05-philosophie-schopenhauer/files/2019/06/1945-1948_Hübscher2.pdf 텍스트층으로 읽었다. 「읽지 않았다」 대목의 원문은 텍스트층에서 Hegel, der Schopenhauers Werk vorher noch nachher gelesen hat 로 읽혀 앞 낱말(weder)이 빠져 있다(재확인).

[주 20-02] 강의 주제, 자극과 동기의 구별, 「동물이 동기 없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강의 문장, 헤겔이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 적은 연필 메모와 그 첫 줄의 물음(Daß ein Tier ohne Motiv, d.i. erkanntes Objekt eine Bewegung sollte gemacht haben, ist unmöglich. Warum nicht Reize — Riechen, Schmecken, Schlafen — Trieb)은 아르투어 휘브셔, 「대학 교사로서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연감』 1958년호, 172~173쪽. 휘브셔는 강의 원고를 실은 도이센판 전집 제11권 12~15쪽과 헤겔의 메모를 대조했다. 취지를 옮긴 것이다. 메모의 「Warum nicht」를 헤겔의 물음으로 읽은 것은 휘브셔가 「비판적 메모의 단초」라고 한 것을 따랐다. 돌이 굴러가게 하는 원인의 보기는 서술자의 것이다.

[주 20-03] 말 이야기, 동물적 기능, 할러의 생리학, 동료 교수의 개입, 헤겔이 일어선 것은 휘브셔 1945~1948, 첫 쪽이 쇼펜하우어의 회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화. 휘브셔 1958, 172쪽은 쇼펜하우어가 뒷날 젊은 벗 카를 게오르크 바르에게 이 일을 자세히 들려주었다고 적고(휘브셔, 「쇼펜하우어의 대화」, 『쇼펜하우어 연감』 1933년호, 38~39쪽), 끼어든 교수를 리히텐슈타인이라고 밝힌다. 따라서 대화는 쇼펜하우어 쪽에서 전해진 것이며, 헤겔 쪽 기록은 없다. 이 소설의 대사는 휘브셔가 전한 말을 한국어로 다듬은 것이며 낱말 하나하나가 기록된 그대로는 아니다. 리히텐슈타인을 「의학에 밝은」이라 한 것은 휘브셔 1945~1948의 「전문 의학자」(ein Mediziner vom Fach)를 따랐다.

[주 20-04] 원고가 여덟 장이고 강의가 넷째 장 끝에서 토론으로 넘어갔다는 것, 「꼭 한 시간 분량」, 학부 회의록(Hr Prof. Hegel besprach sich darüber mit demselben. Die Facultät beschloß, daß er als habilitirt betrachtet werden solle, sobald er seine öffentliche Probevorlesung würde gehalten haben)은 휘브셔 1958, 172·174쪽. 회의록은 한국어 의역.

[주 20-05] 같은 시간 강의는 [주 18-05]·[주 18-06]과 같은 출전.

[주 20-06] 쇼펜하우어가 살아서 이 원고를 내지 않았고, 그의 유고 관리자 율리우스 프라우엔슈테트가 그가 죽은 지 몇 해 뒤 유고 선집으로 처음 일부를 냈다는 것은 영역본 『논쟁의 기술』 역자 서문(T. 베일리 손더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10731번)의 서술이다. 원고를 쓴 때를 「열 해쯤 뒤」, 곧 1830년 무렵으로 둔 것은 현대 편집본들의 추정을 따른 것으로, 확보한 자료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쇼펜하우어 자신은 1851년에 그 작업을 「예전 몇 해」(in früheren Jahren)의 일로만 적었다([주 20-09]). 「옳다고 우기는 기술」(Die Kunst, Recht zu behalten)은 후대 편집본의 제목이다.

[주 20-07] 『논쟁적 변증술』 첫머리, 「인간 본성의 타고난 비열함」을 다루는 대목. 독일어 원문은 확보한 자료에 없어 영역본(프로젝트 구텐베르크 10731번)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취지를 옮겼다. 독일어로는 Die angeborne Eitelkeit, die besonders hinsichtlich der Verstandeskräfte reizbar ist, will nicht haben, daß was wir zuerst aufgestellt, sich als falsch und das des Gegners als Recht ergebe 와 Aber zur angebornen Eitelkeit gesellt sich bei den Meisten Geschwätzigkeit und angeborne Unredlichkeit 로 알려져 있으나 원문 대조를 하지 못했다(재확인). 따라서 따옴표로 인용하지 않았다.

[주 20-08] 같은 원고의 마지막 술책.로 확인했다. 첫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Wenn man merkt, daß der Gegner überlegen ist und man Unrecht behalten wird, so werde man persönlich, beleidigend, grob. Das Persönlichwerden besteht darin, daß man von dem Gegenstand des Streites (weil man da verlornes Spiel hat) abgeht auf den Streitenden und seine Person irgend wie angreift … Es ist eine Appellation von den Kräften des Geistes an die des Leibes, oder an die Tierheit. Diese Regel ist sehr beliebt, weil jeder zur Ausführung tauglich ist, und wird daher häufig angewandt. 둘째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Man würde sich sehr irren, wenn man meint, es sei hinreichend, selbst nicht persönlich zu werden. Denn dadurch, daß man Einem ganz gelassen zeigt, daß er Unrecht hat und also falsch urteilt und denkt, was bei jedem dialektischen Sieg der Fall ist, erbittert man ihn mehr als durch einen groben, beleidigenden Ausdruck. Warum? Weil wie Hobbes de Cive, Kap. 1, sagt: Omnis animi voluptas, omnisque alacritas in eo sita est, quod quis habeat, quibuscum conferens se, possit magnifice sentire de seipso. 라틴어 문장은 의역했다. 허영의 만족과 상처, 진 사람의 격분(Daher die Erbitterung des Besiegten, ohne daß ihm Unrecht widerfahren), 침착하게 논점으로 돌아가는 방법과 그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토피카』 마지막 장의 규칙, 「백에 하나」(unter Hundert kaum Einer), 볼테르의 말(La paix vaut encore mieux que la vérité), 「머리와 머리의 마찰」(Reibung der Köpfe)과 학식·정신이 엇비슷해야 한다는 조건은 같은 대목을 취지로 옮겼다.

[주 20-09]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2장 「논리학과 변증술에 관하여」.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28쪽, PDF 3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Bei jetzt vorgenommener Revision jener meiner früheren Arbeit jedoch, finde ich eine solche ausführliche und minutiöse Betrachtung der Schleichwege und Kniffe, deren die gemeine Menschennatur sich bedient, um ihre Mängel zu verstecken, meiner Gemüthsverfassung nicht mehr angemessen, lege sie daher zurück. 「예전 몇 해 동안 속임수를 모아 형식만 떼어 내려 했다」는 앞쪽(인쇄 27쪽, PDF 37쪽)의 취지를 OCR로 읽고 옮겼다(스캔 미대조, 재확인). 그 장에서 그는 몇 가지 술책을 보기로 남겼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20년 3월 23일 시험 강의의 날짜와 주제, 헤겔의 나이와 자리, 헤겔의 연필 메모, 말과 동물적 기능을 둘러싼 문답, 리히텐슈타인의 개입, 헤겔이 일어서며 토론이 끝난 것, 강의가 중간에 끊긴 것, 학부 회의록, 『논쟁적 변증술』이 생전에 나오지 않은 것, 1851년에 그가 그 원고를 치워 두었다고 밝힌 것이다. 회의실의 문답은 쇼펜하우어가 뒷날 전한 이야기를 휘브셔가 재구성한 것을 바탕으로 했고, 대사의 낱말은 소설이 다듬었다. 헤겔 쪽의 논리를 풀어 쓴 것과, 그가 헤겔을 함께 생각할 상대로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짐작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논쟁적 변증술』과 1851년의 『소품과 부록』은 1820년의 쇼펜하우어가 한 생각이 아니라 뒷날의 글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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