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11,642자)

비판 한마디가 하루를 망친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20년, 독일 중부의 대학 도시 예나에서 나오던 서평 신문 『예나 일반 문학 신문』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다룬 긴 서평이 실렸다. 226호부터 229호까지 네 번에 걸쳐, 377쪽부터 403쪽까지 스물일곱 쪽을 차지하는 글이었다.[주 19-01] 책은 1818년 말에 나왔다. 서른두 살의 쇼펜하우어에게 그만큼 긴 서평은 누군가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표시일 수도 있었다.

서평에는 쓴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쓴 사람을 알아냈다. 스물두 살쯤 된 베네케라는 젊은이였고, 바로 그해 여름 학기에 학생으로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이었다.[주 19-02] 강의실 의자에 앉아 그의 말을 받아 적던 사람이 몇 달 뒤 익명으로 그의 책을 심판했다.

그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혹평이 아니었다. 서평자는 곳곳에서 문장 앞뒤에 인용 부호를 달고, 그 안의 말을 쇼펜하우어 자신의 말로 내놓았다. 그런데 그 따옴표 안에는 그의 책 여러 쪽에 흩어진 구절을 이어 붙인 문장, 앞뒤를 잘라 뜻이 달라진 문장, 그가 한 번도 쓰지 않은 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에서도 사람이 순결을 서약해야 한다고 쓴 적이 없고, 성자가 스스로 거세에 손을 댄다고 쓴 적도 없다고 했다. 서평에는 그런 말이 그의 문장으로 찍혀 있었다.[주 19-03]

*

1821년 1월 6일, 그는 그 신문의 편집인 아이히슈테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꼭 필요한, 지어낸 인용에 대한 질책」이라는 글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는 그 글을 한 음절도 고치지 말고 곧바로 실어 달라고 했다. 거절하면 같은 글을 다른 문학 신문과 정치 신문 여섯 곳에 싣고, 편집인이 거절했다는 사실까지 덧붙이겠다고 했다.[주 19-04]

동봉한 글의 첫머리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에 항의하지 않는지부터 밝혔다.

“익명으로 남의 책을 공격하는 고상하고 용감한 일을 하는 분들이 내 글에 비난을 쏟아붓고, 내 글을 깎아내리고, 저주하고, 나쁘다고, 거짓이라고, 뒤틀렸다고, 스스로 모순된다고, 미친 소리에 가깝다고 선언한다 해도 나는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본다. 모든 것은 자기와 전혀 다른 것에 부딪혀 반발과 미움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일을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주 19-05]

그리고 그는 선을 그었다.

“그러나 거짓말과 중상만은 누구도 잠자코 넘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진 의무다. 이런 일에서 침묵은 대개 서명과 같은 값을 지닌다.”[주 19-05]

글의 끝에서 그는 서평자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는 자기 주장이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라고 했다. 그 문장들이 책 어디에 있는지 쪽과 줄만 대면 누구나 책을 펴서 확인할 수 있다. 서평자가 그렇게 해내면 자기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했다. 해내지 못하면 다른 어떤 핑계도, 침묵조차도 중상을 자백한 것으로 보겠다고 했다.[주 19-06]

*

아이히슈테트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임시 답장만 보내고, 서평자가 해명할 수 있는지 먼저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문제의 구절들은 인용이 아니라 밑줄을 그어 강조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1월 27일 쇼펜하우어는 다시 썼다.

“밑줄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 긴 대목들에 밑줄을 그을 까닭이 내 말이라고 내세우는 것 말고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따옴표가 붙은 그 대목들은 실제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습니다. 위조범의 공범이 되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주 19-07]

편집인의 논리에도 근거가 있었다. 서평은 책의 내용을 서평자의 말로 요약하는 글이고, 요약에는 서평자의 해석이 들어간다. 편집인은 익명의 서평자를 보호해야 했고, 한 저자의 항의만 듣고 곧바로 자기 신문의 글을 위조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었다. 서평자에게 답할 기회를 주는 것은 편집인으로서 당연한 절차였다. 쇼펜하우어의 논리도 틀리지 않았다. 해석은 서평자의 몫이지만, 따옴표 안의 말은 저자의 몫이다. 따옴표를 쳐 놓고 저자가 쓰지 않은 말을 넣으면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가짜 증거가 된다.

1월 26일, 신문사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답을 보냈다. 쇼펜하우어는 30일에 편지를 써서 지난 편지의 거친 말을 사과했다. 오래 끈 일과 첫 답장의 애매함 때문에 참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신문사의 답장에는 인쇄공의 실수, 곧 조판 오류가 몇 군데 있었다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는 곧바로 게재를 멈춰 달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서평자의 잘못이고 어디까지가 조판공의 잘못인지 정확히 알기 전에는 서평자를 공개적으로 고발할 수 없다고 했다.[주 19-08] 이틀 뒤 그는 서평과 신문사 편지를 맞대어 보고 그 두 군데의 조판 오류를 스스로 찾아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오류였고, 그는 질책을 거두지 않았다.[주 19-08] 그의 「질책」은 결국 세상에 나왔다.[주 19-09]

그 한 달 동안 그는 스물일곱 쪽의 서평 가운데 몇 문장을 붙들고 편지를 네 통 썼다. 서평이 그의 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그의 편지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은 따옴표와 밑줄과 조판 오류였다.

*

여러 칭찬보다 한 번의 무시가 왜 오래 남는가? 칭찬과 무시가 같은 줄에 매달려 있어서, 한쪽을 반기는 사람은 다른 쪽에서 반드시 다친다.

그는 서른 해 뒤인 1851년, 예순세 살에 펴낸 『소품과 부록』 첫째 권의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넷째 장을 이 약점에서 시작한다.

“남의 좋은 평가를 알리는 표시를 볼 때마다, 허영이 조금이라도 간질여질 때마다 사람이 속으로 얼마나 기뻐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어김없이 가르랑거리듯, 칭찬을 받는 사람의 얼굴에는, 그것도 그가 자부하는 분야에서 칭찬을 받으면, 달콤한 기쁨이 번진다. 그 칭찬이 뻔한 거짓이라도 그렇다. 반대로 그의 명예심이 어떤 식으로든, 어느 정도로든 다치면, 곧 얕보이거나 뒤로 밀리거나 무시당하면, 그는 어김없이 상처를 받고 자주 깊이 아파한다. 이 둘은 같은 실에 매달려 있다.”[주 19-10]

그는 이 감수성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칭찬받을 때와 다칠 때를 함께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칭찬에 기뻐하는 마음만 남겨 두고 비난에 아파하는 마음만 덜어 낼 수는 없다. 칭찬을 반기는 그 줄이 비난을 받을 때도 같은 힘으로 당겨진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람은 남의 의견과 남의 생각에 매인 노예로 남는다.[주 19-10]

그다음 그는 명예를 정의한다. 명예는 바깥에서 보면 우리의 값어치에 대한 남의 의견이고, 안에서 보면 그 의견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주 19-11] 칭찬 열 마디보다 무시 한마디가 오래 남는 까닭이 이 정의 안에 있다. 칭찬은 이미 가진 것을 확인해 줄 뿐이지만, 무시는 두려워하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신호다. 사람은 확인보다 신호에 오래 붙들린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 마음을 나눈다. 자부심은 어떤 점에서 자기가 뛰어나다는 것을 이미 굳게 믿는 마음이다. 허영은 남들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 주고 싶은 마음이고, 대개 그렇게 해서 자기도 그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남몰래 바란다. 자부심은 안에서 나오는 곧바른 자기 존중이고, 허영은 그것을 바깥에서 간접으로 얻으려는 애씀이다.[주 19-12] 허영이 큰 사람에게 비판 한마디는 의견 하나가 아니다. 그가 자기 값어치를 세우려고 빌려 온 바닥이 꺼지는 일이다. 자기 값어치가 남의 입에 걸려 있으면, 남의 입 하나가 그 값어치 전체를 흔들 수 있다.

그는 같은 장의 긴 뒷부분에서, 사회의 상류층과 그들을 흉내 내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이른바 기사도적 명예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 규범에 따르면 명예는 남이 나를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남이 나에 대해 무엇을 입 밖에 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가장 하찮고 어리석은 사람 하나가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내뱉기만 하면 내 명예는 그 자리에서 다친다. 명예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당하는 일에 달려 있게 되고, 아무나의 혀끝에 매달리게 된다.[주 19-13] 그는 이 규범을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가 비웃은 구조는 결투장 밖에서도 똑같이 돌아간다. 낯모르는 서평자 한 사람의 따옴표가 한 달 내내 그의 책상을 차지했다. 그가 결투 대신 편지를 들었을 뿐, 그의 하루는 남의 펜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어떤 비난이든 그것이 들어맞는 만큼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들어맞는 아주 가벼운 암시가 아무 근거도 없는 가장 무거운 고발보다 훨씬 깊이 상처를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자기가 그 비난을 받을 까닭이 없다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그 비난을 마음 놓고 무시해도 되고, 실제로 무시할 것이다. … 자기 값어치를 건드리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 말이 퍼지지 않게 서둘러 눌러 막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값어치를 낮게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주 19-13]

비판 한마디가 하루를 망친다면, 그 한마디가 어딘가에 들어맞았거나, 내가 나를 충분히 믿지 못하고 있거나, 둘 다다. 들어맞았다면 그 비판은 상처이기 전에 정보다. 들어맞지 않았다면 그 비판은 나를 다치게 할 힘이 없어야 맞다. 그런데도 다친다면, 다친 자리는 비판이 아니라 내 값어치를 남의 말에 맡겨 둔 그 자리다.

*

「아포리즘」 넷째 장을 쓴 예순세 살의 그는 1821년 1월의 자기에게 그대로 들이댈 수 있는 문장을 남겼다. 서른두 살의 그는 몇 문장의 따옴표 때문에 편집인에게 신문 여섯 곳을 들먹였고, 스물두 살의 서평자를 편지 속에서 겨우 학교를 벗어난 애송이라고 불렀다.[주 19-04] 그것은 비난을 마음 놓고 무시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퍼지기 전에 눌러 막으려는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를 위선자로만 볼 수도 없다. 같은 장에서 그는 바깥에서 명예를 공격할 수 있는 길은 중상뿐이고, 그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그 중상에 걸맞은 공개적인 반박과 중상한 사람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쓴다.[주 19-14] 1821년의 질책이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서평자의 평가에는 손대지 않았다. 그는 판단과 사실을 갈랐다. 판단은 서평자의 몫이니 얼마든지 혹독해도 좋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썼느냐는 책을 펴 보면 가려지는 사실이고, 사실을 틀리게 전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비판을 모두 무시하는 것과 거짓을 바로잡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는 그 차이를 알았고, 조판 오류가 섞였다는 말을 듣자 자기 고발부터 멈추어 세웠다.

남는 문제는 그 사이에 있었다. 그의 질책은 내용으로는 정당했고, 말투로는 다친 사람의 것이었다. 정당한 반박과 상처받은 자존심이 한 장의 편지 안에 함께 들어 있었다. 서른 해 뒤에 쓴 문장은 둘을 가르라고 말하지만, 1821년 1월 베를린의 책상 앞에서 둘은 한 손으로 쓰였다.

비판의 내용과 그것이 남긴 상처를 가를 수 있다면, 사람은 비판에서 무엇을 건지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하는가?

후주

[주 19-01] 서평이 『예나 일반 문학 신문』 1820년치 226~229호, 377~403쪽에 실렸다는 것은 쇼펜하우어가 쓴 「꼭 필요한, 지어낸 인용에 대한 질책」(Nothwendige Rüge erlogener Citate)의 본문.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간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145쪽. OCR로 읽었고 이 쪽은 스캔 대조를 하지 않았다(재확인).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20년 항목도 이 서평과 그의 반박을 적는다. 책이 1818년 말에 나온 것은 생애 연표.

[주 19-02] 서평자의 이름, 나이 「스물두 살쯤」, 지난여름 학생으로 그의 강의를 들었다는 것은 같은 글, 서간집 146쪽(Der anonyme Herr, der übrigens mit Namen J. E. Beneke heißt, circa 22 Jahr alt ist und noch im letzten Sommer als Student meinen Vorlesungen beygewohnt hat). 스캔으로 대조했다(PDF 206쪽). 글에는 J. E. Beneke로 찍혀 있으나, 아르투어 휘브셔, 「대학 교사로서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연감』 1958년호, 174쪽은 그를 F. E. 베네케라 부른다. 그가 어떻게 서평자를 알아냈는지는 자료에 없다.

[주 19-03] 따옴표 안에 그가 쓰지 않은 말이 섞였다는 것, 흩어진 구절을 이어 붙이거나 앞뒤를 잘랐다는 것, 순결 서약과 성자의 거세에 관한 말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은 같은 글, 서간집 144~145쪽의 내용을 취지로 옮겼다. 145쪽은 OCR로 읽었다(재확인).

[주 19-04] 1821년 1월 6일 아이히슈테트에게 보낸 편지. 서간집 142~143쪽. 질책을 한 음절도 고치지 말고 실어 달라는 것, 거절하면 다른 문학·정치 신문 여섯 곳에 싣겠다는 것, 서평자를 「Bursche」(애송이, 젊은 녀석)라고 부른 것은 OCR로 읽은 내용을 취지로 옮겼다(스캔 대조 안 함, 재확인). 「겨우 학교를 벗어난」은 OCR에서 읽히는 「…zucht kaum entlaufenen Burschen」의 뜻을 짐작해 옮긴 것으로, 정확한 낱말은 재확인한다. 1월 27일 편지에도 「Recensenten-Junge」라는 말이 나온다(스캔 대조함, 서간집 147쪽).

[주 19-05] 같은 글, 서간집 14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PDF 204쪽). 한국어 의역. 첫 인용의 원문은 (Wenn die Herren, welche das edle und tapfere Gewerbe treiben, nicht anonym herausgegebene Bücher öffentlich anonym) anzugreifen, meine Schriften mit dem vollen Maß ihres Tadels überschütten, sie herabsetzen, verdammen, sie für schlecht, unwahr, verkehrt, sich selber widersprechend und fast an Wahnsinn grenzend erklären; so habe ich dagegen nicht das Mindeste einzuwenden, finde es vielmehr ganz in der Ordnung, den Gesetzen der Natur gemäß, welche bestimmte, daß Jegliches durch das ihm ganz Heterogene zum Widerstreben und Haß erregt werde … Ja, ich kann aufrichtig sagen, daß ich dergleichen mit einer gewißen Befriedigung wahrnehme. 괄호 안 앞부분은 143쪽으로 OCR로 읽었다. 둘째 인용의 원문은 Hingegen sind Lügen und Verläumdungen es allein, welche nicht stillschweigend über sich ergehen zu laßen, Jeder sich selber schuldig ist, weil Schweigen hiebey meistens so viel gilt als Unterschreiben.

[주 19-06] 같은 글, 서간집 146쪽(da sie kein Urtheil, sondern eine bloße quaestio facti betrifft … Kann er dieses leisten: so will ich diese meine Anschuldigungen als höchst ungerecht ihm öffentlich abbitten. Kann er aber das nicht: so helfen hier keine Ausflüchte … ebensowohl als sein Stillschweigen, als Bekenntniß seiner verläumderischen Lüge anzusehen seyn). 스캔으로 대조했다(PDF 206쪽).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9-07] 1821년 1월 27일 아이히슈테트에게 보낸 편지. 서간집 147쪽, 스캔으로 대조했다(PDF 207쪽). 한국어 의역. 원문은 Die Ausflucht mit dem Unterstreichen gilt nicht; denn wozu hätten so lange Stellen unterstrichen werden sollen, wenn nicht um meine Worte vorzustellen? — Sodann sind in diesen mit Gänsefüßen bezeichneten Stellen wirklich unterstrichene Stellen. Sie werden wohl thun, sich nicht zum complice des Falsarius zu machen. 아이히슈테트가 임시 답장을 보내고 서평자의 해명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 밑줄 설명을 내놓은 것은 이 편지 첫머리가 전하는 내용이다. 아이히슈테트의 편지 원문은 확보한 자료에 없다. 편집인의 논리를 풀어 쓴 대목은 서술자의 재구성이다.

[주 19-08] 1821년 1월 30일 아이히슈테트에게, 2월 1일 신문사 발송부에 보낸 편지. 서간집 147~149쪽. 1월 26일 신문사 답장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 거친 말을 사과한 것, 조판 오류 때문에 게재를 멈춰 달라고 한 것, 2월 1일 두 군데 오류를 스스로 찾아냈고 그것이 아주 사소하다고 한 것은 OCR로 읽은 내용을 취지로 옮겼다(스캔 대조 안 함, 재확인). 「질책을 거두지 않았다」는 2월 1일 편지의 흐름과 질책이 실제로 나온 사실에서 끌어낸 서술이다.

[주 19-09] 휘브셔 1958, 174쪽은 베네케가 「꼭 필요한, 지어낸 인용에 대한 질책」으로 「벌을 받았다」(abgestraft wurde)고 적는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20년 항목도 이 반박(Erwiderung)을 적는다. 실린 지면과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주 19-10]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1권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4장 첫 문단. 1913년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한국어 의역. 원문은 Es ist demnach kaum erklärlich, wie sehr jeder Mensch sich innerlich freut, so oft er Zeichen der günstigen Meinung anderer merkt und seiner Eitelkeit irgendwie geschmeichelt wird. So unausbleiblich wie die Katze spinnt, wenn man sie streichelt, malt süße Wonne sich auf das Gesicht des Menschen, den man lobt und zwar in dem Felde seiner Prätension, sei das Lob auch handgreiflich lügenhaft. … und, umgekehrt, ist es zum Erstaunen, wie sehr jede Verletzung seines Ehrgeizes, in irgend einem Sinne, Grad oder Verhältnis, jede Geringschätzung, Zurücksetzung, Nichtachtung ihn unfehlbar kränkt und oft tief schmerzt. … denn beides hängt am selben Faden. 중간의 위로 대목은 생략했다. 감수성을 함께 줄여야 한다는 것과 「남의 의견의 노예」(Sklave fremder Meinung)는 같은 문단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9-11] 같은 장, 명예를 정의하는 문단(die Ehre ist, objektiv, die Meinung anderer von unserm Wert, und subjektiv, unsere Furcht vor dieser Meinung). 한국어 의역.

[주 19-12] 같은 장, 「Die hier geschilderte Torheit unsrer Natur treibt hauptsächlich drei Sprößlinge」로 시작하는 문단. 자부심(Stolz)과 허영(Eitelkeit)의 구별을 취지로 옮겼다.

[주 19-13] 같은 장, 기사도적 명예(ritterliche Ehre)를 비판하는 부분. 그 규범의 첫째·둘째 조목(Die Ehre besteht nicht in der Meinung anderer von unserm Wert, sondern ganz allein in den Äußerungen einer solchen Meinung … / Sie liegt sonach in der Hand, ja, hängt an der Zungenspitze eines jeden)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이 규범이 퍼진 범위는 그의 말(unter den höheren Ständen der Gesellschaft und was ihnen nacheifert)을 옮겼다. 이어지는 인용은 같은 부분의 「Jedenfalls ist die Erwiderung oder Vergeltung von Beleidigungen Sache des Zorns」가 들어 있는 문단. 한국어 의역. 원문은 Vielmehr ist ganz gewiß, daß jeder Vorwurf nur in dem Maße, als er trifft, verletzen kann; welches auch daran ersichtlich ist, daß die leiseste Andeutung, welche trifft, viel tiefer verwundet, als die schwerste Anschuldigung, die gar keinen Grund hat. Wer daher wirklich sich bewußt ist, einen Vorwurf nicht zu verdienen, darf und wird ihn getrost verachten. … Der aber muß selbst eine schwache Meinung von seinem eigenen Werte haben, der sich beeilt, jeder denselben anfechtenden Äußerung den Daumen aufs Auge zu drücken, damit sie nicht laut werde. 중간 문장(Dagegen aber fordert das Ehrenprinzip …)은 생략했다.

[주 19-14] 같은 장, 명예의 소극적 성격을 다루는 문단 끝(Bloß durch Verläumdung ist ein Angriff von außen auf die Ehre möglich: das einzige Gegenmittel ist Widerlegung derselben, mit ihr angemessener Öffentlichkeit und Entlarvung des Verläumders). 취지를 옮긴 것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서평이 실린 호수와 쪽수, 서평자의 이름과 나이와 수강 사실, 그가 문제 삼은 지어낸 인용의 내용, 1821년 1월 6일·27일·30일과 2월 1일의 편지와 그 내용, 신문사의 1월 26일 답장, 조판 오류를 둘러싼 경과, 질책이 실제로 나온 사실이다. 편지 구절은 서간집에 실린 그의 글을 옮긴 것이며 대사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아이히슈테트 쪽의 논리는 그의 편지에 비친 아이히슈테트의 답을 바탕으로 서술자가 풀어 쓴 것이다. 서평의 본문은 확보한 자료에 없어 직접 보지 못했다. 1851년의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은 1821년의 쇼펜하우어가 한 생각이 아니라 예순세 살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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