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10,740자)

세상이 내 책을 읽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9년 2월, 로마.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해가 바뀌기 전에 라이프치히에서 나왔다. 저자는 그 책이 독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와 가장 가까이 어울리던 로마의 독일 사람조차 그랬다. 열여덟 살의 카를 비테는 2월 19일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이렇게 맺었다.

“독일에서 쇼펜하우어가 막 낸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무척 알고 싶습니다.”[주 17-01]

책은 나왔지만, 책에 대한 말은 아무 데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3월, 나폴리에 있던 그에게 고향에서 첫 소식이 왔다. 바이마르의 여동생 아델레가 겨우내 써서 부친 긴 편지였다. 아델레는 책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얼마 전에 책을 받았는데, 바이마르의 늙은 시인 괴테가 무척 기뻐하며 책을 받아 그 두꺼운 책을 곧바로 반으로 갈라 두 덩이로 만들고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 괴테는 쪽지 한 장을 아델레에게 보냈다. 고맙다, 책 전체가 좋으리라 믿는다, 자기는 책을 펼치면 늘 가장 중요한 대목을 펼치는 운이 있는데 표시해 둔 쪽들을 읽고 무척 기뻤다, 무슨 뜻인지 오빠가 찾아볼 수 있도록 그 쪽 번호를 보낸다는 말이었다. 쪽지에는 숫자 넷과 괴테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주 17-02]

며칠 뒤 괴테의 며느리 오틸리에가 아델레에게 일러 주었다. 시아버지가 그 책 앞에 앉아, 자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의로 읽고 있다고. 괴테는 오틸리에에게 이제 꼬박 한 해 동안 즐거움이 생겼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니 그만한 시간은 들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델레에게 직접, 이 책에서는 특히 서술과 문체가 맑아서 좋다고 했다. 다만 쇼펜하우어의 말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달라서, 그가 요구하는 대로 사물을 부르는 데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말을 ‘말’이라 하지 않고 이탈리아 말로 ‘카발로’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편하게 읽힌다는 비유였다. 그러면서도 그 볼품없이 두툼한 모양새가 끝내 마음에 걸려서,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다고 여기기로 했다고 했다.[주 17-02]

아델레는 이렇게 덧붙였다. 적어도 괴테가 이런 식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읽는 저자는 오빠 하나뿐이니 그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한다고. 그러고는 자기 이야기도 솔직하게 적었다. 자기와 오틸리에도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는데, 머리말부터 겁이 나서 오빠가 일러 준 부분부터 읽으려 했고, 오틸리에가 처음부터 읽자고 우겨서 그렇게 했지만, 낯선 낱말과 암시가 너무 많아서 알아듣지 못했다고.[주 17-02]

그가 받은 첫 반응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늙은 시인이 표시한 네 쪽, 그리고 처음 몇 쪽에서 멈춘 두 젊은 여자였다.

뒷날 그는 그 쪽지를 잊지 않았다. 여러 해 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의 개정판을 내면서, 그는 54번째 절에 각주 하나를 달았다. 1824년 괴테가 젊은 비서 에커만과 나눈 대화에서 사람의 정신을 두고, 우리 눈에만 지는 것처럼 보일 뿐 실은 쉬지 않고 계속 빛나는 해와 같다고 말했는데, 그 비유는 괴테가 자기에게서 가져간 것이지 자기가 괴테에게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고 그는 썼다. 그리고 그 근거를 하나씩 댔다. 초판이 1818년 12월 괴테에게 보내졌고, 1819년 3월 괴테가 누이를 통해 나폴리에 있던 자기에게 칭찬을 전하며 특히 마음에 든 쪽 번호를 적은 쪽지를 넣었다. 그는 각주를 이렇게 끝냈다.

“그러니 그는 내 책을 읽은 것이다.”[주 17-03]

*

1819년 6월 밀라노에서 그는 아버지의 유산 일부를 맡겨 둔 단치히의 상회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독일로 돌아왔다.[주 17-04] 돌아오는 길에 그는 바이마르에 들러 괴테를 만났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괴테는 그해 일을 정리한 기록에 이 방문을 짧게 적었다. 대개 오해받지만 알아보기도 어려운, 공로 있는 젊은이 쇼펜하우어 박사가 찾아와 자기를 자극했고, 서로 배우는 만남이 되었다고.[주 17-05] 그 무렵 괴테는 그에게 투명한 물체 속에 빛을 비추면 나타나는 색 무늬를 직접 보여 주었다.[주 17-05]

괴테가 유리판을 빛에 기울이자 그 안에 색 무늬가 떠올랐다. 쇼펜하우어는 무늬를 보고 나서, 무늬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았다.

“각하께서 표시해 주신 쪽들은 찾아 읽었습니다. 그 뒤로도 읽으셨습니까?”

“읽고 있네. 한 해는 걸릴 거라고 했지. 서두를 책이 아니야.”

“저는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책이 나온 지 반년이 넘었는데, 신문 한 곳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자네 책을 읽으려면 먼저 자네가 정한 이름들을 배워야 하네. 나도 그게 쉽지 않았어. 남들이 다 쓰는 말을 자네는 다른 뜻으로 쓰지. 그걸 배우는 수고를 들일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자네 탓도, 그들 탓도 아닐세.”

“제 탓이 아니라면, 저는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까?”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말일세. 자네는 반대하는 사람을 보면 먼저 칼을 뽑지.”

“거짓을 보고도 칼을 뽑지 않으면 그건 거짓에 동의하는 겁니다.”

괴테는 대답 대신 유리판을 다시 빛 쪽으로 기울였다. 두 사람 다 옳았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쓴 사람은 그 침묵이 세상의 게으름 탓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었다. 일흔 살의 시인은 그 침묵의 절반쯤은 책을 쓴 사람의 고집스러운 말과 성미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신이 색채론을 내놓았다가 학자들과 서평지들에게 외면과 혹평을 받아 본 사람이었다.

*

그해 가을 그는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겨울을 났다. 책 소식은 여전히 드물었다. 11월, 이제 어머니와 함께 단치히에 있던 아델레가 편지를 보냈다. 문학 잡지 하나에 그 책을 다룬 글이 실렸는데, 바이마르 사람이 쓴 것 같다고 했다. 책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있어서 반가웠지만 그렇게 진지한 책에는 너무 가볍고 날렵해서, 마치 여자들을 위해 쓴 글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빠에게 이렇게 썼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칭찬이나 꾸중이 오빠에게 거의 같은 무게일 거예요. 중요한 건 오빠의 책이 알려지는 것이고, 그래서 오빠에게 새로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이라는 시간도 오빠를 붙들고 있으니까요! 다가올 몇 백 년을 위해 일하는 건 위대하고 가슴 벅찬 일이에요. 하지만 일을 다 마쳐 버리고 나면 괴로운 빈자리만 남아요. 그래서 나는 오빠가 지금 사람들과 몇 번쯤 싸우기를, 지든 이기든 싸우기를 바라기까지 해요. 그게 오빠를 삶에 이어 주는 끈이니까요.”[주 17-06]

그 반년 전 5월에 아델레는 이미 더 날카롭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오빠가 사람들의 업신여김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자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우리 모두를 이어 놓은 삶의 사슬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오빠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 오빠가 내려다보는 그 사람들이 필요해질 때가 올지 모른다고.[주 17-07]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주 17-08]

*

열심히 만든 결과가 외면받으면 내 가치도 사라지는가? 외면받는다고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외면은 가치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 겨울의 침묵을 그가 글로 풀어낸 것은 서른두 해가 지난 1851년, 예순세 살 때였다. 노년의 글 모음 『소품과 부록』 둘째 권의 스무 번째 장 「판단, 비평, 박수, 명성에 관하여」에서 그는 1819년의 침묵을 이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먼저 그 침묵이 어디서 오는지를 묻는다. 뛰어난 업적이 나타나면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상처를 입는다. 공작의 꼬리를 본 다른 새들처럼 그들은 깊은 침묵에 빠지고, 그 침묵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한마음이다. 그는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빌려 그것을 ‘시샘의 침묵’이라 부르고, 그 기술의 이름을 ‘묵살’이라고 적는다. 특히 높은 학문에서는 업적을 처음 받아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분야의 경쟁자들이고, 더 넓은 대중은 스스로 따져 보지 못한 채 그들의 판단을 따른다. 그래서 그 침묵은 오래 갈 수 있다.[주 17-09]

그리고 그는 오래가는 명성이 왜 늦게 오는지를 따진다.

“이와 반대되는 까닭으로, 오래 이어질 명성은 아주 늦게 익는다. 그 명성이 이어질 몇 백 년은 대개 같은 시대 사람들의 박수를 대가로 치르고 사야 한다. 그렇게 오래 값을 지킬 것은 이루기 어려운 뛰어남을 지녀야 하고, 그 뛰어남은 알아보는 데만도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닌 머리들이 필요하다. 그런 머리들은 목소리를 낼 만큼 많이 모여 있는 일이 드물고, 늘 깨어 있는 시샘은 그들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무슨 일이든 한다.”[주 17-10]

그의 논증을 풀어 보면 이렇다. 전제는 평가가 그 업적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자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업적은 보통 사람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빨리 오는 명성을 오히려 의심했다. 그리스의 정치가 포키온은 연설 도중 군중이 크게 환호하자 곁의 친구들에게 혹시 자기가 무슨 어리석은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고 그는 전한다.[주 17-10] 다른 하나는,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분야의 경쟁자라서 침묵하기 쉽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당대의 평가는 업적의 값을 재는 저울이 아니라, 그 업적을 알아볼 사람들이 언제 얼마나 모이느냐를 보여 주는 표시다. 그러니 외면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일의 값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설명은 한 사람의 마음가짐보다 넓은 곳을 가리킨다. 1819년에 책 한 권이 알려지는 길은 몇 갈래 없었다. 대학의 교수들이 강의에서 다루거나, 몇몇 서평지가 글을 싣거나, 책 시장의 목록에 이름이 오르는 것이었다. 그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그가 머리말에서 비웃고 편지에서 다툰 사람들이었다. 평가는 업적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업적이 지나가야 하는 문들을 거쳐서 온다. 그 문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책은, 좋든 나쁘든 오래 문 앞에 서 있게 된다.

*

그러나 이 논증에는 위험한 뒷면이 있다. 빨리 오는 박수가 의심스럽다는 말은 쉽게 뒤집혀, 박수가 오지 않는 것이 뛰어남의 증거라는 말이 된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다. 수많은 책이 시샘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지 않아서 잊힌다. 그 장을 쓴 사람은 서른 해 넘게 외면받은 사람이었고, 그 이론은 그에게 너무 잘 맞았다. 자기 처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을 만났을 때 사람은 그 이론을 가장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이론대로 살지 않았다. 박수가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쓴 사람이, 괴테의 쪽지 한 장을 수십 년 동안 기억했다. 그 쪽지를 근거로 괴테가 자기 비유를 빌려 갔다고 각주까지 달았다. 그러니 그는 내 책을 읽은 것이라는 그 문장에는 한 사람의 독자가 얼마나 절실했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의 판단을 무시할 수 있었다면 그는 그 문장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델레는 그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삶의 사슬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책을 쓴 사람의 값은 외면으로 사라지지 않지만, 그 값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시간을 견디는 일은 이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1819년 겨울, 드레스덴의 그는 이론보다 먼저 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다리는 대신 베를린 대학에 강의를 하겠다는 청원서를 썼다. 책이 독자를 찾지 못하면, 자기가 직접 독자 앞에 서기로 했다.

후주

[주 17-01] 카를 비테가 1819년 2월 19일 로마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 빌헬름 그비너, 『쇼펜하우어의 생애』(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78), 184쪽. 아카이브 스캔(archive.org/details/schopenhauersle00gwin) PDF 212쪽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Ich wünschte sehr, zu erfahren, wie man in Deutschland über Schopenhauer's eben erschienenes Buch: Die Welt als Vorstellung und Willen, urtheilt. 한국어 의역. 비테는 책 이름을 「표상과 의지로서의 세계」로 뒤바꿔 적었다. 책이 1818년이 가기 전에 나온 것은 같은 책 178쪽.

[주 17-02] 아델레 쇼펜하우어가 1818/19년 겨울 바이마르에서 오빠에게 쓴 편지. 그비너 전기 188~195쪽, 책 이야기는 189~191쪽(PDF 217~219쪽). 189~190쪽은 스캔으로 대조했고 191쪽은 전사 텍스트로 읽었다. 괴테가 책을 받아 「그 두꺼운 책을 곧바로 둘로 갈라」(zerschnitt gleich das ganze dicke Buch in zwei Theile) 읽기 시작한 것, 한 시간 뒤 쪽지를 보내 전한 말, 오틸리에가 전한 열의와 「꼬박 한 해의 즐거움」, 서술과 문체의 맑음, 사물을 그가 요구하는 대로 불러야 한다는 것과 cavallo의 비유, 「볼품없는 모양새」(das ungraziöse Format), 「괴테가 이렇게 진지하게 읽는 저자는 오빠뿐」, 머리말이 겁났고 낯선 말이 많았다는 아델레 자신의 말은 모두 편지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그비너는 쪽지에 pag. 320. 321. 440. 441. Goethe. 라고 적혀 있었고 이것이 제3판의 261쪽 이하와 360쪽 이하에 해당한다고 각주에 적었다. 그 쪽들이 어느 대목인지는 확인하지 못해 쓰지 않았다. 편지가 1819년 3월 나폴리에서 그에게 닿은 것은 [주 17-03]의 그의 각주와 그비너 186~187쪽(그비너의 「1818년 3월」은 1819의 잘못). 오틸리에가 괴테의 며느리라는 것은 그비너 187쪽.

[주 17-03]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4권 §54의 각주.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331쪽, PDF 375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에서 괴테가 정신을 「우리 지상의 눈에만 지는 것처럼 보일 뿐 실은 쉬지 않고 빛나는 해」에 빗댄 것, 「괴테가 그 비유를 내게서 가져갔지 내가 그에게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Goethe hat das Gleichniß von mir; nicht etwan ich von ihm), 같은 말이 초판 401쪽과 528쪽에 있었다는 것, 초판이 1818년 12월 괴테에게 보내졌고 1819년 3월 누이를 통해 나폴리로 칭찬과 쪽 번호를 적은 쪽지를 보냈다는 것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인용은 끝 문장 also hatte er mein Buch gelesen 의 한국어 의역이다. 이 각주는 1824년 대화 이후에 쓴 것이므로 초판에는 없고 뒤의 판에서 더해졌다. 에커만을 「젊은 비서」로 푼 것은 서술자의 말이다.

[주 17-04] 1819년 6월 밀라노에서 단치히 상회 A. L. 뮐의 파산 소식을 듣고 독일로 서둘러 돌아온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8~1819년 항목(schopenhauer.de/zeittafel)과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19년 항목.

[주 17-05] 괴테의 『연대기』(Tag- und Jahreshefte) 1819년 항목. 그비너 전기 154쪽(PDF 182쪽)의 인용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Ein Besuch Dr. Schopenhauer's, eines meist verkannten, aber auch schwer zu kennenden, verdienstvollen jungen Mannes, regte mich auf und gedieh zur wechselseitigen Belehrung. 취지를 옮겼다. 그비너는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적는다. 1819년 8월 괴테가 그에게 엔톱틱 색채(투명한 물체 속에 편광으로 나타나는 색 무늬)를 직접 보여 주었다는 것은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1893) 420쪽 편자 주석(『괴테 연감』 98쪽이 전하는 괴테 일기에 따름)을 OCR로 읽은 것이다(재확인).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도 바이마르에서 괴테를 다시 만났다고 적는다. 유리판을 기울이는 장면과 대화는 소설의 창작이다. 괴테의 대사는 아델레가 전한 그의 독서 소감(이름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 해가 걸린다)과 『연대기』의 「알아보기 어려운」이라는 말, 그의 색채론이 서평지에서 혹평받은 사실(1815년 8월 라이프치히 문학 신문의 서평을 쇼펜하우어의 1818년 6월 23일 편지가 전한다, 셰만 서신집 103쪽, 인용하지 않음)에 기대어 세웠다. 괴테의 나이 일흔은 1749년생이라는 데서 셈한 것이다.

[주 17-06] 아델레가 1819년 11월 단치히에서 오빠에게 쓴 편지. 그비너 전기 201쪽(PDF 22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문학 잡지는 그비너가 「코체부의 새 문학 주간지」(Recension im neuen litterarischen Wochenblatt Kotzebou's)라고 적은 것이며, 아델레는 필자가 바이마르의 리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너무 가볍고 날렵해서 여자들을 위해 쓴 글 같다」(zu zierlich und leicht, zu damenmässig)는 취지를 옮겼다. 인용은 Lob und Tadel kann dir jetzt vom Einzelnen beinah gleich gelten; die Hauptsache bleibt, dass dein Werk bekannt werde, damit dadurch dir neuer Lebensstoff erwachse; denn die Gegenwart hält ja auch dich! für kommende Jahrhunderte arbeiten ist gross, erhebend schön; gearbeitet haben lässt eine peinigende Leere zurück. Darum wünsche ich dir sogar einige Kämpfe mit den Zeitgenossen, Niederlage und Sieg, wie's kommt. Das ist ja das Band, das dich ans Leben knüpft. 의 한국어 의역이다. 그해 가을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겨울을 난 것은 그비너 200쪽.

[주 17-07] 아델레가 1819년 5월 오빠에게 쓴 편지. 그비너 전기 195~198쪽, 이 대목은 197쪽(PDF 225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Nie kann ich mit dir darin übereinstimmen, dass du dir aus der Verachtung der Menschen nichts machst: reisse wie du willst an der Lebenskette, die uns Alle verknüpft, du reissest dich doch nicht los, und es ist eine grosse Frage, ob nicht Stunden kommen, wo du die Menschen brauchst, über die du dich jetzt stolz erhebst. 취지를 옮겼다.

[주 17-08] 주저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4~1818년 항목. 몇 부가 팔렸는지는 확인한 자료가 없어 쓰지 않았다.

[주 17-09]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20장 「판단, 비평, 박수, 명성에 관하여」.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전집 제6권), 인쇄 497쪽, PDF 507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공작 꼬리와 새들, 한마음의 침묵, 「세네카의 시샘의 침묵」(das silentium livoris des Seneka), 「묵살」(Ignoriren), 높은 학문에서는 처음 받아 보는 사람들이 경쟁자이고 대중은 스스로 따지지 못한다는 것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소품과 부록』은 1851년에 나왔다.

[주 17-10] 같은 장, 인쇄 499쪽, PDF 50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Aus umgekehrten Gründen wird ein Ruhm, der von langem Bestande seyn soll, sehr spät reifen, und die Jahrhunderte seiner Dauer müssen meistens mit dem Beifall der Zeitgenossen erkauft werden. Denn was so anhaltend in Geltung bleiben soll, muß eine schwer zu erlangende Trefflichkeit haben, welche auch nur zu erkennen schon Köpfe erfordert, die nicht jederzeit dasind, am wenigsten in hinreichender Anzahl, um sich vernehmbar machen zu können, während der stets wache Neid Alles thun wird, ihre Stimme zu ersticken. 의 한국어 의역이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업적은 보통 사람의 능력을 크게 넘지 않는다는 것, 빨리 오는 명성은 의심스러운 표시라는 것, 포키온의 이야기(Plut. apophth.)는 같은 쪽 위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비테의 1819년 2월 편지, 아델레의 1818/19년 겨울·1819년 5월·11월 편지와 그 안의 괴테의 독서와 쪽지, 그가 뒷날 §54에 단 각주, 1819년 6월 밀라노의 소식과 귀국,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만난 일과 『연대기』의 기록, 괴테가 색 무늬를 보여 준 일, 문학 주간지의 서평, 책의 상업적 실패, 드레스덴의 겨울이다. 바이마르에서 나눈 대화와 유리판 장면은 소설의 창작이다. 베를린 대학 청원서는 1819년 12월 31일 자로 셰만 서신집 111쪽에 실려 있다(라틴어, 스캔 PDF 171쪽에서 첫머리를 보았다). 『소품과 부록』 제2권 제20장은 1851년의 저작으로, 1819년의 그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라 뒷날의 글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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