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9,622자)

음악은 왜 말보다 깊이 들어오는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8년 9월 말, 쇼펜하우어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드레스덴을 떠났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거쳐 알프스를 넘었고, 처음 오래 머문 곳은 바다 위에 지은 도시 베네치아였다. 11월 하순에는 볼로냐와 피렌체를 지나 로마로 내려가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주 14-01] 그의 이탈리아어는 혼자 길을 묻고 숙소를 정할 만큼은 되었다.[주 14-01]

이탈리아에서 그는 연극과 오페라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보러 다녔다. 오페라는 노래와 관현악과 연극을 합친 무대였다. 이탈리아의 극장은 같은 작품을 몇 주씩 거듭 올렸고, 그는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으면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몸으로 익혔다. 귀가 밝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되풀이해 들으면 저절로 판단이 생기는 방식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를 평생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여행에서 시작되었다.[주 14-02] 그날 밤 무슨 곡이 올랐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로마에서 그는 카를 비테와 자주 어울렸다. 비테는 열두 살에 괴팅겐 대학에서 쇼펜하우어와 같은 강의를 들은 신동이었고, 이제 열여덟 살이 되어 로마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은 독일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작은 식당 아르멜리노에서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고, 그 자리에서 옛 유적과 미술품을 보러 같이 나서곤 했다. 비테는 스스로 철학에 재주가 없다고 여겼다. 괴팅겐에서 철학 강의를 들었지만 그 강의가 자기 안의 철학하는 힘을 깨우지 못했다고 훗날 그는 회상했다.[주 14-03]

*

극장을 나온 밤, 두 사람은 돌길을 따라 걸었다. 겨울 로마의 밤공기는 축축했고, 골목마다 숯불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비테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가사를 절반은 놓쳤습니다. 이탈리아 말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니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사를 놓쳤을 뿐입니다.”

“가사가 이야기입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배신했는지를 알아야 그 노래가 왜 슬픈지도 알지요. 말이 없으면 소리는 그냥 좋은 소리일 뿐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왜 숨을 죽였습니까? 그 순간 당신은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당신 안에 곧장 들어왔지요.”

“그게 무엇인지 말할 수 없으니 저는 그걸 안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안다고 하면 그건 기분이지 앎이 아닙니다.”

“말할 수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의 성질입니다. 말은 이 사람의 슬픔, 저 사람의 기쁨을 하나씩 집어서 말합니다. 그 음악은 누구의 슬픔도 아닌 슬픔 자체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건 철학자의 말씀입니다. 저는 철학에 재주가 없어서, 들은 것을 이름 붙일 수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앎이라 부르지 않는 건 정직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늘 밤 거기서 무언가를 받았고, 그걸 받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것도 정직하지 않습니다.”

“받은 건 맞습니다. 다만 그걸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뿐입니다. 박사님은 그걸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하시지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건 또 말이 되지 않습니까?”

쇼펜하우어는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비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음악은 무엇을 말하는지 하나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증명하지 못하는 그것에 사람은 숨을 죽였다. 한 사람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만 앎이라 불렀고, 다른 사람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더 깊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증명하려고 그가 쓸 수 있는 것은 결국 말뿐이었다.

*

두 사람의 우정은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로마의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쇼펜하우어는 거침없는 말로 적을 많이 만들었고, 비테는 그와 어울리지 말라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다. 비테가 화가들과 더 자주 어울리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가 서먹해졌고, 끝내 쇼펜하우어가 보낸 쪽지 한 장에 비테가 마음이 상해 사이가 끊어졌다.[주 14-03] 그해 1월쯤 그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독일에서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인쇄본은 로마에 있는 그에게 늦게야 닿았다.[주 14-04] 책이 어떻게 읽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채로 그는 극장에 갔다.

*

음악은 왜 말보다 깊이 들어오는가? 음악은 무엇에 관해 말하지 않고, 원하는 마음 그 자체를 소리로 옮긴다. 쇼펜하우어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마친 그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로 나뉘는데, 예술을 다루는 셋째 부분의 마지막 절인 52번째 절이 통째로 음악에 바쳐져 있다.

그의 논증은 다른 예술과의 비교에서 시작한다. 그림과 조각과 시는 낱낱의 사물을 그려서 그 사물의 변하지 않는 본보기, 곧 그가 플라톤에게서 빌려 ‘이념’이라 부른 것을 보여 준다. 그러니 다른 예술은 세상을 한 번 거쳐서 의지를 보여 준다.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어떤 사물도 베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세상이 없어도 음악은 어떤 뜻에서 있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음악은 다른 예술처럼 이념을 본뜬 것이 결코 아니다. 음악은 의지 자체를 본뜬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다른 예술보다 훨씬 힘세고 깊이 파고든다. 다른 예술은 그림자를 말하지만, 음악은 본질을 말한다.”[주 14-05]

여기서 의지는 마음먹는 힘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 안에서 살려 하고 원하는 움직임 전체다. 그러니 그의 주장은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흉내 낸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이 세상이 생겨나는 그 밑바닥의 움직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소리를 재는 학문의 결론이 아니라, 그의 형이상학이 음악에 내린 해석이다.

그는 그 대응을 하나씩 짚는다. 사람들은 늘 음악이 감정과 정열의 언어이고, 말은 이성의 언어라고 해 왔다고 그는 먼저 상기시킨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선율이 영혼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리듬과 선율이 소리일 뿐인데 왜 마음의 상태를 닮았느냐고 물었다.[주 14-06] 그는 그 물음에 자기 방식으로 답한다.

사람의 본질은 이렇다. 의지가 무언가를 원하고, 채워지고, 다시 원한다. 바람에서 채움으로, 채움에서 새 바람으로 빨리 넘어가는 동안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채움이 오지 않으면 괴롭고, 새 바람이 오지 않으면 맥이 빠지고 지루하다. 선율의 본질도 이와 똑같다고 그는 쓴다. 선율은 으뜸음에서 끊임없이 벗어나 수많은 길로 헤맨다. 화음이 맞는 자리로도 가고, 귀에 거슬리는 음으로도 가지만, 끝내는 으뜸음으로 돌아온다. 벗어나는 길은 원함의 여러 모양을 표현하고, 화음이 맞는 자리와 으뜸음으로 돌아오는 일은 채움을 표현한다.[주 14-06]

그는 이 대응을 빠르기와 조성에까지 끌고 간다. 바람에서 채움으로 빨리 넘어가는 것이 행복이듯, 크게 헤매지 않는 빠른 선율은 즐겁다. 아픈 불협화음을 거쳐 여러 마디가 지나서야 겨우 으뜸음으로 돌아오는 느린 선율은 늦어지고 어려워진 채움을 닮아 슬프다. 새 바람이 오지 않아 맥이 빠진 상태는 으뜸음을 오래 붙들고 있는 소리로밖에 나타낼 수 없고, 그 소리는 곧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장조와 단조의 차이에 놀란다. 반음 하나가 바뀌어 장3도 대신 단3도가 들어서기만 하면 우리 안에 곧바로 불안하고 아픈 느낌이 밀려들고, 장조가 돌아오면 그 느낌이 똑같이 순식간에 풀린다.[주 14-07] 반음 하나만큼의 차이가 마음을 바꾼다는 것, 그 반음이 무슨 일을 가리키는지 우리는 하나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를 붙들었다.

그리고 그는 작곡가를 이렇게 본다. 선율을 지어내는 일은 천재의 일이며, 거기에는 계산도 의도도 거의 끼어들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곡가는 세상의 가장 깊은 본질을 드러내고 가장 깊은 지혜를 말한다. 그런데 그는 그 말을 자기 이성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한다. 최면에 든 사람이 깨어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에 대해 술술 답을 내놓는 것과 같다.”[주 14-06]

그날 밤 비테가 가사를 놓치고도 숨을 죽인 까닭이 여기 있다. 그는 이어서 음악이 표현하는 것은 이런저런 낱낱의 기쁨이나 슬픔이 아니라고 말한다. 음악은 기쁨 자체, 슬픔 자체, 아픔 자체, 두려움 자체, 마음의 고요 자체를 말한다. 어떤 일 때문에 생긴 감정이 아니라, 그 일과 까닭을 다 덜어 낸 감정의 알맹이를 들려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알아듣는다.[주 14-08] 말은 늘 무엇에 관한 말이다. 누구의 슬픔인지, 무엇 때문인지를 붙여야 말이 된다. 음악은 그것을 붙이지 않고도 슬픔에 닿는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음악이 대신 말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그 마음을 설명하지 못한 까닭은 우리 마음에 까닭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마음이 까닭보다 먼저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오페라를 두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노래에 붙는 가사는 음악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상상력이 그것에 살을 입히고 싶어 하다 생긴 것이다. 그러니 가사는 끝까지 아랫자리에 있어야 한다. 음악이 말을 너무 따라가려 하면, 자기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하려 애쓰게 된다. 지금 전하는 판본의 같은 절에서 그는 그 잘못에서 가장 깨끗이 벗어난 작곡가로 로시니를 꼽는다. 로시니의 음악은 자기 언어를 너무 또렷하게 말해서 가사가 없어도 되고, 악기로만 연주해도 제 힘을 다 낸다고 그는 썼다.[주 14-08] 이탈리아의 극장에서 되풀이해 들은 그 음악이 그의 책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음악의 그 일반성이 음악을 우리의 모든 괴로움에 듣는 만병통치약으로 만든다고까지 말한다.[주 14-08]

*

그러나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전에 그가 스스로 털어놓은 것을 함께 들어야 한다. 선율과 의지를 맞대어 놓는 설명을 펴던 중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놀라운 예술을 설명할 때조차 개념은 자기의 가난함과 한계를 드러낸다고.[주 14-06] 음악이 말보다 깊다는 것을 그는 말로 증명하려 했고, 그 일이 끝까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세운 대응도 증명이 아니다. 선율이 으뜸음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모양과 사람이 원했다가 채워지는 모양이 닮았다는 것은 그가 보아 낸 닮음이지, 소리를 재고 마음을 재어서 얻은 결론이 아니다. 같은 선율을 듣고 누구는 슬퍼하고 누구는 아무렇지 않다. 그는 음악이 세상의 본질을 말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의 형이상학 전체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설득력을 갖는 해석이었다.

비테가 옳았던 자리가 거기다. 음악이 들려주는 슬픔 자체는 누구의 슬픔도 아니어서, 그 슬픔을 겪는 사람을 하나도 돕지 못한다. 극장에서 숨을 죽인 사람도 극장을 나오면 다시 이름과 주소와 처지를 가진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는 음악을 만병통치약이라 불렀지만, 그 약은 듣는 동안에만 들었다. 그날 밤 그도 숙소로 돌아가 책의 소식이 언제 올지를 다시 셈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겨울 극장에서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풀리지 않은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한 채 극장에 들어갔고, 그대로 나왔다. 그 사이의 몇 시간 동안 그는 자기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를 따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문제를 품은 채로 다른 방식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음악이 준 것은 그 정도였고, 그 정도가 적지 않았다.

그해 겨울 바이마르에서는 여동생 아델레가 오빠에게 긴 편지를 썼다. 노래를 아름답게 불러 사람들을 사로잡던 아델레는 목소리를 잃어 가고 있어서, 대신 피아노에 매달리고 있다고 적었다.[주 14-09]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을 노래로 해 오던 사람이 그 노래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 편지는 1819년 3월에야 나폴리에 있던 그의 손에 들어갔다.

후주

[주 14-01] 9월 말 빈을 거쳐 이탈리아로 떠난 것은 빌헬름 그비너, 『쇼펜하우어의 생애』(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78), 178쪽. 처음 오래 머문 곳이 베네치아였다는 것, 이탈리아어를 개인 교습과 독서로 익혀 남에게 뜻을 통할 만큼은 되었다는 것은 같은 책 179쪽, 11월 하순 볼로냐를 거쳐 피렌체와 로마로 가서 겨울을 보낸 것은 182쪽. 여행지는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8~1819년 항목(베네치아, 로마, 나폴리, 파이스툼, 밀라노)과도 맞는다.

[주 14-02] 이탈리아에서 연극과 오페라를 「거의 빠짐없이」(fast regelmässig) 보러 다녔고, 로시니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끊임없는 되풀이로 문외한도 차츰 판단을 얻게 되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비너 전기 182쪽의 서술이다. 취지를 옮겼다. 어느 극장에서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는 자료에 없어 쓰지 않았다.

[주 14-03] 카를 비테의 회상과 1819년 2월 19일 그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그비너 전기 183~185쪽에 실려 있다. 열두 살에 괴팅겐에서 같은 강의를 들은 것, 로마에서 만났을 때 열여덟 살이었다는 것, 괴팅겐에서 들은 슐체의 논리학 강의가 자기의 「얼마 안 되는 철학적 재능」을 깨우지 못했다는 것, 식당 아르멜리노에서 거듭 늦은 점심을 함께 먹고 유적과 미술품을 같이 보러 다닌 것, 로마의 독일 사람들이 그를 적으로 여겨 비테에게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 비테가 화가들과 어울리며 사이가 멀어지고 쪽지 한 장 때문에 갈라선 것은 모두 비테의 증언이다. 취지를 옮겼다. 아카이브 스캔 PDF 212쪽(인쇄 184쪽)을 눈으로 대조했다. 극장에서 함께 나와 나눈 대화는 소설의 창작이다. 비테가 함께 오페라를 보았다는 기록은 없으며, 철학에 재주가 없다고 여긴 비테의 자기 평가와 쇼펜하우어가 그 무렵 써 둔 원전의 관점을 대사로 옮겼다. 숯불 냄새와 돌길은 창작이다.

[주 14-04] 책이 1818년이 끝나기 전에 나왔고 마지막 인쇄 전지와 증정본을 로마에서 크반트를 통해 받았다는 것은 그비너 전기 178쪽. 「1월쯤」은 서술자의 짐작이며 정확한 날짜는 자료에 없다.

[주 14-05]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3권 §52.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304쪽, PDF 34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Die Musik ist also keineswegs, gleich den anderen Künsten, das Abbild der Ideen; sondern Abbild des Willens selbst, dessen Objektität auch die Ideen sind: deshalb eben ist die Wirkung der Musik so sehr viel mächtiger und eindringlicher, als die der anderen Künste: denn diese reden nur vom Schatten, sie aber vom Wesen. 한국어 의역이며, 「이념도 의지의 객관화」라는 부분은 줄였다. 다른 예술이 이념을 거친다는 설명과 「세상이 없어도 음악은 어떤 뜻에서 있을 수 있다」(könnte gewissermaaßen, auch wenn die Welt gar nicht wäre, doch bestehn)는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4-06] 같은 절, 인쇄 307쪽, PDF 351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음악은 감정과 정열의 언어, 말은 이성의 언어라는 말(die Musik sei die Sprache des Gefühls und der Leidenschaft, so wie Worte die Sprache der Vernunft), 플라톤 『법률』 제7권과 아리스토텔레스 『문제집』 19장의 인용, 바람·채움·새 바람과 선율이 으뜸음에서 벗어났다 돌아오는 대응(Wie nun das Wesen des Menschen darin besteht … die Befriedigung)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작곡가 대목(der Komponist offenbart das innerste Wesen der Welt und spricht die tiefste Weisheit aus, in einer Sprache, die seine Vernunft nicht versteht; wie eine magnetische Somnambule Aufschlüsse giebt über Dinge, von denen sie wachend keinen Begriff hat)은 한국어 의역이다. 「최면에 든 사람」은 원문의 「자기(磁氣) 몽유 상태의 여자」를 풀어 쓴 것이다. 「이 놀라운 예술을 설명할 때조차 개념은 자기의 가난함과 한계를 드러낸다」(Sogar bei der Erklärung dieser wunderbaren Kunst zeigt der Begriff seine Dürftigkeit und seine Schranken)도 같은 쪽,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4-07] 같은 절, 인쇄 308쪽, PDF 35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빠른 선율은 즐겁고, 아픈 불협화음을 거쳐 여러 마디 뒤에야 으뜸음으로 돌아오는 느린 선율은 슬프며, 맥 빠진 상태(languor)는 오래 붙든 으뜸음으로만 나타낼 수 있다는 것, 반음 하나로 장3도 대신 단3도가 들어서면 「불안하고 아픈 느낌」(ein banges, peinliches Gefühl)이 밀려들고 장조가 그것을 곧바로 풀어 준다는 것(Aber wie wundervoll ist die Wirkung von Moll und Dur!)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같은 쪽의 춤곡·알레그로 마에스토소·아다지오 대목은 쓰지 않았다.

[주 14-08] 같은 절, 인쇄 309쪽, PDF 35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음악은 이런저런 기쁨이 아니라 기쁨 자체를 「추상적으로」(in abstracto) 표현하며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알아듣는다는 것, 가사와 오페라는 아랫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로시니의 음악이 가사 없이도 제 힘을 낸다는 것(Von diesem Fehler hat Keiner sich so rein gehalten, wie Rossini), 음악의 일반성이 그것을 「우리의 모든 괴로움의 만병통치약」(Panakeion aller unserer Leiden)으로 만든다는 것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로시니 대목이 1818년 말 초판에 이미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비너의 서술로는 로시니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 여행부터이므로 뒤의 판에서 더해졌을 수 있다(재확인).

[주 14-09] 아델레가 1818/19년 겨울 바이마르에서 오빠에게 쓴 편지. 그비너 전기 188~195쪽에 실려 있고, 「목소리를 잃기 시작해 피아노에 매달려 열심히 하고 있다」(Da ich anfange, die Stimme zu verlieren, habe ich mich aufs Clavier verlegt)는 192쪽, 아델레가 노래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비너 자신의 서술로 187쪽이다. 취지를 옮겼다. 이 편지가 나폴리에서 그에게 닿았다는 것은 186~187쪽(그비너는 「1818년 3월」이라 적었으나 여행의 차례로 보아 1819년 3월의 잘못이다). 이 192쪽 대목은 아카이브의 전사 텍스트로만 읽었다(재확인).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8년 9월 말 출발, 베네치아·볼로냐·피렌체·로마의 여정,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거의 빠짐없이 본 일과 로시니에 대한 애호, 로마에서 카를 비테와 어울리고 갈라선 일, 증정본을 로마에서 받은 일, 아델레가 목소리를 잃어 가며 피아노로 옮겨 간 일이다. 극장을 나온 밤의 대화와 날씨는 소설의 창작이며 무슨 작품이 올랐는지는 지어내지 않았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음악론은 그가 드레스덴에서 이미 써 둔 것이지만, 인용 문장은 1891년판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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