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9,206자)

잠시 나를 잊는 시간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드레스덴은 엘베강을 끼고 앉은 작센 왕국의 수도였다. 1814년 5월 어머니와 갈라선 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 도시로 옮겨 와, 1818년 가을까지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한 권의 책만 썼다.[주 13-01] 그 네 해 동안 그는 스물여섯 살에서 서른 살이 되었다.

그의 하루는 책상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1819년 말 그가 베를린 대학에 낸 이력서에 직접 적은 것을 보면, 드레스덴에서 그를 붙든 것은 왕실 도서관과 이름난 그림 전시관과 자연과학 기구들이었다. 그는 그 도시에서 네 해 반을 아무 방해 없이 공부했다고 썼다.[주 13-02] 그를 곁에서 지켜본 전기 작가 그비너는, 드레스덴의 미술 소장품들이 그에게 그 원본이 있는 남쪽 땅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한껏 키웠다고 적었다.[주 13-02] 그림 앞에 선 시간은 그에게 공부였고, 동시에 공부가 아닌 무엇이었다.

그가 책을 쓰던 그 몇 해 가운데 어느 날, 그는 식물 온실에 들렀다. 자료는 그날이 언제였는지, 어느 온실이었는지를 남기지 않았다. 온실의 공기는 바깥보다 무겁고 따뜻했으며, 젖은 흙냄새와 잎이 내뿜는 풀냄새가 유리 지붕 아래 고여 있었다. 그는 한 나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잎이 줄기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가지가 어느 쪽으로 뻗었는지, 한 그루의 생김새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느라 몸까지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 몸짓을 온실지기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주 13-03]

온실지기가 다가왔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쇼펜하우어는 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걸 알려 주실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주 13-03]

“농담하실 일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나무들은 궁정 것이고, 제가 지키는 겁니다. 한 시간 가까이 한자리에 서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시니 여쭙는 겁니다. 어디 사시는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농담이 아닙니다. 방금 저는 아무도 아니었습니다. 이 나무를 보는 동안 제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물으셔서 그게 다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름은 있으실 것 아닙니까?”

“있습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입니다. 그 이름을 대는 순간 저는 다시 그 사람이 됐습니다.”

온실지기는 더 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남의 재산을 지키는 사람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했고, 이름을 묻는 것은 그의 일이었다. 쇼펜하우어에게도 잘못은 없었다. 그는 정말로 그 순간 아무도 아니었고, 그 질문을 받고서야 다시 누군가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나무 앞에 서서 서로 다른 것을 지키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무를 지켰고, 한 사람은 나무 앞에서 잠시 사라진 자기 자신을 지키려 했다.

온실지기의 물음은 세상이 사람에게 늘 던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너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러 여기 왔으며, 무엇을 가졌느냐? 그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려면 누구나 이름과 자리를 대야 하고, 그것을 대는 순간 그 이름에 딸린 걱정도 함께 돌아온다. 오늘 끝내야 할 일, 갚아야 할 돈, 남에게 보여야 할 얼굴이 그 이름에 붙어 있다. 나무 앞에서 그가 잠시 내려놓은 것은 바로 그 짐이었다.

*

온실을 나서면 그는 다시 그 이름의 사람이었다. 그 이름의 사람에게는 끝내야 할 원고가 있었다. 원고가 끝나 가자 그는 바깥일을 셈해야 했다. 누구에게 책을 맡길지, 언제 나올지, 얼마를 받을지, 세상이 그 책을 어떻게 받을지였다. 나무 앞에서 아무도 아니었던 사람이, 책상 앞에서는 세상이 자기 이름을 알아주기를 누구보다 바랐다. 이름을 묻는 온실지기에게 그는 대답을 미뤘지만, 그가 쓰던 책은 결국 그 이름을 세상에 내놓으려는 일이었다.

*

왜 어떤 풍경이나 그림 앞에서는 걱정이 잠깐 멎는가? 그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무엇에 쓸지 묻지 않고 본다. 쇼펜하우어는 드레스덴에서 쓰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에서, 예술을 다루는 셋째 부분을 통째로 들여 이것을 따졌다. 그 책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로 나뉘어 있는데, 34번째 절이 그 출발점이다.

그는 먼저 우리가 평소에 사물을 어떻게 아는지부터 묻는다. 그의 생각으로 사람의 앎은 처음부터 의지를 섬기려고 생겨났다. 여기서 의지는 마음먹는 힘이 아니라, 살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원하는 움직임 전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는 늘 몇 가지를 함께 묻는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언제 생겼는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리고 나에게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 물음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는 이것을 몸의 생김새로 보여 준다. 낮은 동물일수록 머리가 몸통에 붙어 땅을 향해 있고, 땅에는 먹이처럼 그 동물이 원하는 것이 있다. 동물의 앎은 끝내 그 원함의 심부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의 머리는 어깨 위에 따로 얹혀 있어서, 몸이 그 머리를 떠받칠 뿐 머리가 몸을 섬기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로마 교황청의 벨베데레 정원에 있던 아폴론 조각을 들어, 멀리 내다보는 그 신의 머리가 몸의 걱정에서 놓여난 듯 어깨 위에 서 있다고 쓴다.[주 13-04] 사람에게도 앎은 대개 의지의 심부름꾼이다. 다만 사람은 아주 드물게 그 심부름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드물게 이 물음이 멈추는 때가 있다고 그는 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정신의 힘에 들려 사물을 보는 평소의 방식을 놓아 버릴 때가 있다. 그때 그는 사물이 어디에, 언제, 왜, 무엇을 위해 있는지를 더는 따지지 않고, 오직 그것이 무엇인지만 본다. 풍경이든 나무든 바위든 건물이든 눈앞의 대상을 고요히 바라보는 일에 의식 전체를 내어 준다. 독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대로, 그는 그 대상 속에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자기라는 개인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잊고, 대상을 비추는 맑은 거울로만 남는다. 그러면 보는 사람은 사라지고 대상만 거기 있는 것처럼 된다.”[주 13-04]

그때 사람이 보는 것은 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고 그는 이어서 말한다. 그는 그것을 ‘이념’이라 불렀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빌린 말로, 같은 종류의 나무가 수없이 나고 죽어도 변하지 않는 그 나무다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도 더는 한 개인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 사람은 의지도 고통도 시간도 없는 ‘순수한 앎의 주체’가 된다.[주 13-04] 온실지기의 질문에 쇼펜하우어가 내놓은 대답은, 그가 그 무렵 책상에서 쓰던 문장을 사람의 입으로 옮긴 것이었다.

이것이 왜 걱정을 멎게 하는가? 38번째 절에서 그는 그 까닭을 원하는 일의 구조에서 끌어낸다. 원하는 일은 모자람에서 나오고, 모자람은 괴로움이다. 하나를 채우면 적어도 열 가지가 채워지지 않은 채 남는다. 채운 것도 곧 새 바람에 자리를 내준다. 그러니 원하는 일에 붙들려 있는 동안에는 쫓든 피하든 두려워하든 바라든 쉴 곳이 없다. 그는 그 사람을 그리스 신화의 벌 받는 자들에 빗댄다. 영원히 도는 불 수레바퀴에 묶인 익시온, 밑 빠진 체로 물을 길어야 하는 다나오스의 딸들, 목까지 물에 잠기고도 마시지 못하는 탄탈로스다.[주 13-05]

그리고 그는 이렇게 쓴다.

“그런데 바깥의 어떤 계기나 마음의 어떤 결이 우리를 끝없는 원함의 물살에서 문득 들어 올릴 때가 있다. 그때 앎은 의지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사물을 내 바람과 이어진 동기로 보지 않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 본다. 관심도, 내 처지도 끼어들지 않는다. 그러면 원함의 길에서 늘 찾았지만 늘 달아나던 평온이 저절로 찾아오고, 우리는 아주 편안해진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가장 높은 좋음이자 신들의 상태라고 기린 것이 바로 이 고통 없는 상태다. 그 순간 우리는 원함이라는 고역에서 벗어나 감옥의 노역에도 쉬는 날이 오듯 쉬고, 익시온의 바퀴는 멈춘다.”[주 13-05]

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이 상태에서는 개인의 차이가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감옥에서 보든 궁전에서 보든 해가 지는 모습은 같다고 그는 쓴다.[주 13-06] 그 평온을 일으키는 데 반드시 대단한 대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네덜란드 화가들을 예로 든다. 그들은 부엌 식탁 위의 과일이나 그릇 같은 하찮은 것을 그토록 객관적으로 보았고, 그 고요한 정물화는 보는 사람에게도 그 고요를 건넨다. 그리고 자연은 이 일을 더 쉽게 해 준다. 괴로운 열정이나 가난과 근심에 시달리는 사람도 자연을 한 번 자유롭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갑자기 기운을 되찾는다.[주 13-06]

걱정이 멎을 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쪽은 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그 순간 세상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같은 나무가 목재상에게는 값이고, 길 잃은 사람에게는 표지이며, 온실지기에게는 지켜야 할 재산이다. 그 나무를 아무것에도 쓰지 않고 볼 때에만, 그 나무는 걱정거리의 목록에서 빠진다.

*

그러나 그는 그 평온이 오래 간다고 쓰지 않았다. 같은 절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 곁에는 모든 비참에서 완전히 벗어난 땅이 늘 이렇게 가까이 있다. 그러나 누가 그 땅에 오래 머물 힘을 지녔는가?”[주 13-07]

그는 곧바로 답한다. 그렇게 순수하게 바라보던 대상과 내 의지, 내 사람됨 사이의 관계가 다시 의식에 들어오는 순간 마법은 끝난다. 우리는 다시 사물을 이유와 쓸모로 아는 앎으로 떨어지고, 이념 대신 낱낱의 사물을 보며, 사슬의 한 고리로 다시 묶인다.[주 13-07]

그는 그 문이 누구에게나 쉽게 열린다고도 쓰지 않았다. 같은 쪽에서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거의 늘 원함의 자리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연과 단둘이 있기를 좋아하지 않고, 함께 있을 사람이나 적어도 책 한 권을 찾는다. 그들의 앎은 여전히 의지를 섬기므로, 눈앞의 사물에서 자기와 이어진 쓸모만 찾는다. 쓸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마음속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낮은 소리가 끝없이 울린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경치도 쓸쓸하고 낯설고 적대적으로 보인다.[주 13-07] 그 말에는 남을 낮추는 오만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정직한 관찰도 있다. 걱정이 많은 날일수록 우리는 풍경 앞에서도 손에 쥘 무언가를 찾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온실지기의 질문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구냐는 물음 하나에 그는 이름과 주소와 처지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물음이 없었더라도 그는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온실 문밖에는 그의 원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쓰던 책은 원함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다루었지만, 그 책을 쓰는 일만큼은 그가 가장 강하게 원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땅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깝지는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보든 궁전에서 보든 해 지는 모습은 같다고 썼지만, 감옥에 갇힌 사람이 해 지는 쪽 창을 가질 수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드레스덴의 네 해 반 동안 그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보고 걸었고, 그 걱정 없는 하루는 유산의 이자가 받쳐 주었다. 그러니 그 평온은 모든 괴로움을 푸는 처방이 아니었다. 잠깐 문이 열리는 일이었고, 그 문 앞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래도 그 문은 있었다. 드레스덴의 그 몇 해 동안 그가 알게 된 것은 행복의 다른 쪽이었다. 무엇을 더 얻어서 생기는 기쁨이 아니라, 아무것도 더 얻지 않아도 되는 동안의 고요였다. 그것은 짧았고, 바깥에서 오는 질문 하나에 깨졌다. 그러나 깨진 다음에도 사람은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날 저녁 그는 책상에 앉았다. 구두 밑창에는 온실의 젖은 흙이 아직 묻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털지 않은 채, 이름을 묻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시 펜을 들었다.

후주

[주 13-01] 1814년 5월 드레스덴으로 옮긴 것, 그 전에 어머니와 갈라선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4~1818년 항목(schopenhauer.de/zeittafel),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14년 항목(Trennung von der Mutter und Übersiedlung nach Dresden). 빌헬름 그비너, 『쇼펜하우어의 생애』(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78), 145쪽은 5월 말이라고 적는다. 1818년에 원고를 마치고 그해 9월 말 이탈리아로 떠난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18년 항목과 그비너 전기 178쪽.

[주 13-02] 왕실 도서관, 그림 전시관, 자연과학 기구가 공부를 도왔고 드레스덴에서 「네 해 반」(fünfthalb Jahre)을 방해 없이 살았다는 것은 그가 1819년 말 베를린 대학 철학부에 낸 라틴어 이력서의 내용이다. 그비너 전기 262쪽의 독일어 번역을 따라 취지를 옮겼다. 드레스덴 소장품들이 원천(이탈리아의 원본)을 보고 싶은 마음을 한껏 키웠다는 것(Die dresdener Sammlungen hatten sein Verlangen nach den Quellen aufs Höchste gesteigert)은 그비너 전기 179쪽의 서술이며 취지를 옮겼다. 두 대목 모두 아카이브(archive.org/details/schopenhauersle00gwin)의 전사 텍스트로 읽었다(재확인).

[주 13-03] 식물 온실의 관리인이 식물의 생김새에 빠져 몸짓을 하는 그를 지켜보다 누구냐고 묻자 「그걸 알려 주실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은 그비너 전기 162쪽(율리우스 프라우엔슈테트, 『회상록』 241쪽 인용)이 전하는 이야기다(Ja, wenn Sie mir das sagen könnten, dann wäre ich Ihnen vielen Dank schuldig). 한국어 의역. PDF 190쪽에서 눈으로 대조했다. 그비너는 이 대답을 「익살」(mit Humor)로 소개하지만, 이 소설은 웃음 장면으로 쓰지 않았다. 일이 언제, 어느 온실에서 있었는지는 자료에 없다. 그비너는 이 일을 그가 책을 쓰던 드레스덴 시절의 일로 소개한다. 온실 안의 공기와 냄새, 나무의 모습은 창작이다. 대답 뒤에 이어지는 온실지기와의 대화, 궁정 재산이라는 말,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소설의 창작이며, 이름을 묻는 관리인의 직분과 그가 그 무렵 쓰던 원전의 관점을 대사로 옮겼다.

[주 13-04]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3권 §34.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209~211쪽, PDF 253~255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210쪽 Wenn man, durch die Kraft des Geistes gehoben, die gewöhnliche Betrachtungsart der Dinge fahren läßt … als ob der Gegenstand allein da wäre, ohne Jemanden, der ihn wahrnimmt 의 한국어 의역이며, 중간의 「추상적 사유와 이성의 개념이 의식을 차지하지 않게 하고」는 줄였다. 이념과 「순수하고 의지 없고 고통 없고 시간 없는 앎의 주체」(reines, willenloses, schmerzloses, zeitloses Subjekt der Erkenntniß, 210~211쪽)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앎이 의지를 섬기려고 생겨났다는 설명, 동물과 사람의 머리와 몸통,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같은 권 §33 끝(인쇄 209쪽, PDF 253쪽)의 취지를 OCR로 읽고 옮긴 것이다(재확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초판은 1818년 말에 나왔고 표제 연도는 1819년이다. 이 판은 1859년 제3판 계열의 본문이어서 초판 문장과 다를 수 있다(재확인).

[주 13-05] 같은 책 §38. 인쇄 231쪽, PDF 275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함의 구조(하나를 채우면 열이 남는다, 쫓든 피하든 같다)와 익시온·다나오스의 딸들·탄탈로스의 비유는 같은 쪽 앞부분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인용은 Wann aber äußerer Anlaß, oder innere Stimmung, uns plötzlich aus dem endlosen Strome des Wollens heraushebt … das Rad des Ixion steht still 의 한국어 의역이다. 「감옥의 노역에도 쉬는 날이 오듯」은 원문의 「원함이라는 감옥 노역의 안식일」(den Sabbath der Zuchthausarbeit des Wollens)을 풀어 쓴 것이다.

[주 13-06] 같은 절, 인쇄 232쪽, PDF 276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감옥에서 보든 궁전에서 보든 해가 지는 모습은 같다」(ob man aus dem Kerker, oder aus dem Palast die Sonne untergehen sieht), 네덜란드 정물화가들, 근심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연을 한 번 자유롭게 바라보고 기운을 되찾는다는 대목(der von Leidenschaften, oder Noth und Sorge Gequälte durch einen einzigen freien Blick in die Natur so plötzlich erquickt)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3-07] 같은 절, 인쇄 233쪽, PDF 277쪽. 인용은 So nahe liegt uns beständig ein Gebiet, auf welchem wir allem unserm Jammer gänzlich entronnen sind; aber wer hat die Kraft, sich lange darauf zu erhalten? 의 한국어 의역이며, 220dpi 부분 확대로 대조했다.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의식에 들어오면 마법은 끝난다」(hat der Zauber ein Ende) 대목은 같은 쪽을 낮은 해상도 전체 그림으로 읽고 취지를 옮겼다(재확인).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과 단둘이 있기를 싫어해 사람이나 책을 찾고, 마음속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Es hilft mir nichts)는 낮은 소리가 울려 혼자일 때 아름다운 경치도 쓸쓸하고 적대적으로 보인다는 대목도 같은 쪽을 같은 방식으로 읽고 취지를 옮겼다(재확인).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4년 드레스덴 이주와 1818년 가을까지의 집필, 도서관·그림 전시관·자연과학 기구를 쓴 공부(1819년 이력서), 드레스덴 소장품이 이탈리아 여행의 마음을 키웠다는 그비너의 서술, 온실 관리인의 물음과 그의 대답(그비너가 전하는 프라우엔슈테트의 회상)이다. 프라우엔슈테트의 『회상록』 원본은 대조하지 못했다. 온실 이야기의 날짜와 장소는 자료에 없다. 온실지기와의 이어지는 대화, 구두에 묻은 흙, 저녁의 책상은 소설의 창작이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서술은 [주 1-11]의 사실에 기댄 서술자의 판단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대목은 그가 그 무렵 쓰던 책이지만, 인용 문장은 1891년판 본문이다.

1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