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11,076자)
아픈 몸은 철학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8년 8월 말, 드레스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여름 내내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그는 네 해 동안 쓴 원고를 남이 읽을 수 있는 글씨로 처음부터 다시 옮겨 적으며, 옮기는 김에 문장을 고쳤다. 출판인 브로크하우스는 원고의 나머지를 9월 초까지 꼭 보내 달라고 그를 다그쳤다. 그러지 않으면 가을 책 시장에 책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날짜를 맞추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알텐부르크의 인쇄소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7주 동안 찍힌 것은 인쇄 전지 네 장뿐이었다. 그나마 찍힌 쪽은 계약서에 적힌 것보다 줄이 많아 한 쪽에 서른다섯 줄이 들어차 있었다. 8월 31일 그는 브로크하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은 책이 시장에 늦지 않도록 9월 초까지 나머지를 꼭 끝내 놓으라고 나를 다그쳤습니다. 나는 굶주린 필경사처럼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군요. … 떠날 준비는 다 되어 있고, 나를 붙잡는 것은 당신 하나뿐입니다. 내게는 내 책이 나 자신보다 훨씬 앞서기 때문입니다. 말을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내게 없습니다.”[주 12-01]
그는 그 편지에서 브로크하우스가 원고료를 늦게 치른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고 썼다. 그래서 원고의 나머지를 보내기 전에 전지 마흔 장에 해당하는 원고료를 미리 보내라고 했다. 받는 다음 날 돈을 보내겠다는 명예를 건 약속을 하지 않으면, 라이프치히에 사람을 두어 법으로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는 편지 끝에 이렇게 썼다. 내 참을성은 보시다시피 바닥났습니다.[주 12-02]
*
브로크하우스는 그 편지를 받고 곧바로 답했다. 그는 알텐부르크 인쇄소의 책임자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베껴 함께 보냈다. 줄 수가 늘어난 것은 인쇄소가 자기 뜻을 어기고 한 일이고, 자기는 내내 인쇄소를 다그쳐 왔다는 것을 그 편지들이 보여 주었다. 그는 이어서 썼다. 이것을 보면 내가 질서 있고 정확하고 분별 있는 장사꾼으로서 일했으며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나는 직접 활자를 짜고 찍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원고료는 계약대로 원고의 나머지를 넘기는 날 받으면 됩니다. 그러려고 내 명예를 걸 필요는 없습니다. 참으로 명예로운 사람에게는 꾸밈없는 말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내가 원고료를 늦게 준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 말을 한 저자의 이름을 하나만이라도 대 보시오.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을 명예로운 사람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주 12-03]
쇼펜하우어는 그 마지막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원고의 나머지를 라이프치히의 대리인에게 보내 원고료를 받게 했고, 9월 18일 대리인은 금화 마흔 닢을 받았다. 9월 22일 그는 브로크하우스에게 다시 편지를 썼지만 그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이틀 뒤 브로크하우스의 답이 왔다.
“선생! 22일 편지에서 나는 무엇보다 먼저, 앞의 편지에서 한 모욕적인 주장의 증거나 그 주장을 거두는 말을 기다렸습니다. 둘 다 없으니, 앞서 밝힌 대로 나는 당신을 앞으로 ‘명예로운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편지가 더 오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그 거칠기가 철학자보다는 마부를 떠올리게 하는데, 앞으로는 겉봉에서 당신의 글씨를 알아보면 받지 않겠습니다.”[주 12-04]
그는 편지 끝에, 당신의 책을 찍어 봐야 휴지밖에 안 되리라는 자기 걱정이 맞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 무렵 그는 인쇄소에 이런 말도 했다. 이 사람과는 나 자신을 몹시 다잡아야 한다. 이 사람은 진짜 사슬에 묶인 개다.[주 12-04]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옳았다. 계약서에는 날짜와 줄 수가 적혀 있었고, 그 약속을 어긴 것은 출판사 쪽이었다. 쇼펜하우어가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은 정당했다. 브로크하우스의 말도 옳았다. 그는 인쇄소를 직접 움직일 수 없었고, 늦어진 까닭을 문서로 보여 주었으며, 원고료를 정확히 치렀다. 그런 사람에게 소문만 듣고 돈을 떼먹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은 모욕이었다. 그리고 그 다툼의 한가운데에는 한 사람의 몸이 있었다. 여름 내내 굶주린 필경사처럼 일한 몸, 떠날 짐을 다 꾸려 놓고 종이 몇 장을 기다리는 몸, 그 몸에서 나온 편지가 마부의 말처럼 거칠어졌다.
그 뒤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다시 오갔다는 흔적은 없다. 쇼펜하우어는 책이 다 찍히기를 기다리지 않고 9월에 이탈리아로 떠났고, 교정지는 그 뒤를 따라 보내졌다. 책은 그해가 끝나기 전에 나왔다. 브로크하우스는 12월 12일 그의 드레스덴 친구 크반트에게 마지막 인쇄 전지들과 저자에게 줄 책을 보냈다. 로마에서 쇼펜하우어는 크반트에게, 인쇄가 잘되어 무척 기뻤다고 썼다.[주 12-05]
*
성과를 위해 몸을 희생하는 것은 어디까지 합리적인가? 몸을 희생하는 것은 어디까지도 합리적이지 않다. 몸이 상하면 그 성과를 누릴 사람도, 다음 성과를 낼 사람도 함께 상한다. 노년의 그는 생각이 달랐다. 예순세 살에 낸 『소품과 부록』의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가운데, 사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룬 둘째 장에서 그는 건강을 두고 이렇게 쓴다.
“우리 행복의 열에 아홉은 오로지 건강에 달려 있다. 건강하면 모든 것이 즐거움의 샘이 된다. 건강하지 않으면 어떤 바깥의 좋은 것도, 그것이 무엇이든 누릴 수 없고, 정신과 마음과 기질처럼 사람 안에 있는 다른 좋은 것들도 병약함 때문에 가라앉고 크게 시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만나면 무엇보다 먼저 서로의 건강을 묻고 서로 잘 지내기를 비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것이 정말로 사람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모든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큰 어리석음이 무엇인지가 나온다. 무엇을 위해서든 자기 건강을 바치는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서든, 출세를 위해서든, 학식을 위해서든, 명성을 위해서든, 하물며 쾌락과 덧없는 즐거움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건강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주 12-06]
이 논증을 하나씩 풀면 이렇다. 먼저 전제가 있다. 바깥의 어떤 좋은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의 상태를 지나야 비로소 그에게 좋은 것이 된다. 다음으로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을 이루는 바탕이 몸이고, 몸이 상하면 그 몸을 거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흐려진다. 그는 같은 장에서 그 증거를 하나 든다. 똑같은 바깥 사정, 똑같은 일이라도 건강하고 힘찬 날에 겪을 때와 병약함이 우리를 짜증 나고 불안하게 만든 날에 겪을 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주 12-07] 그러므로 결론이 나온다. 몸을 바쳐 얻은 학식이나 명성은 그것을 누릴 그릇을 깨뜨려서 얻은 것이다. 그는 그 목록에서 ‘학식을 위해서든, 명성을 위해서든’을 빼지 않았다. 그 두 낱말은 서른 살의 그가 여름 내내 바친 것의 이름이었다.
그는 그 장에서 건강과 밝은 마음을 잇는다. 우리를 가장 곧바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밝은 마음이다. 밝은 마음만이 행복의 현금이고, 다른 모든 것은 어음일 뿐이다. 그리고 밝은 마음에 가장 많이 이바지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건강이다.[주 12-07] 건강을 지키는 길도 그는 적는다. 모든 지나침과 방탕을 피하고, 격하거나 불쾌한 감정의 동요를 피하고, 너무 크거나 너무 오래 끄는 머리 쓰는 일을 피하고, 날마다 적어도 두 시간은 바깥 공기 속에서 빠르게 걷고, 찬물로 자주 씻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몸 안에서 심장과 폐와 창자가 쉼 없이 움직이는데 바깥의 몸이 꼼짝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안의 소용돌이와 바깥의 고요가 해롭게 어긋난다고 쓴다. 그 어긋남은 마음속은 끓는데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와 닮았다.[주 12-07]
그 목록 앞에 1818년 여름을 놓으면 맞는 항목이 거의 없다. 그는 너무 크고 너무 오래 끄는 머리 쓰는 일을 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8월 31일의 편지와 9월의 다툼은 격하고 불쾌한 감정의 동요 그 자체였다. 그는 그 편지에서 자기 몸을 스스로 ‘굶주린 필경사’라고 불렀고, 책이 자기 몸보다 앞선다고 썼다. 그 여름 그의 몸이 어땠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러나 그 몸에서 나온 말이 어땠는지는 기록에 있다. 마흔 장의 원고를 기다리던 출판인은 그 말에서 철학자가 아니라 마부를 읽었다. 건강한 날과 지친 날에 같은 일이 다르게 보인다는 그의 말이 맞다면, 인쇄소의 늦장은 지친 몸을 거쳐 사기꾼의 짓으로 보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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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건강을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린 공로로 만들지 않는다. 같은 장에서 그는 곧바로 단서를 단다. 밝은 마음에 건강이 많이 이바지하지만, 밝은 마음이 건강에만 달린 것은 아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우울한 기질과 어두운 기분이 이어질 수 있다. 그 마지막 까닭은 타고나서 바꿀 수 없는 몸의 바탕에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철학이든 정치든 시든 예술이든 남달리 뛰어난 사람은 모두 우울해 보인다고 덧붙인다.[주 12-08] 건강을 지키라는 말은 아픈 사람을 탓하는 말이 아니다. 몸은 사람이 고르지 않은 채 받은 것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받은 몸을 망가뜨리지 않는 일까지다.
그리고 그 준칙에는 그 자신의 모순이 걸려 있다. 1818년의 그는 내 책이 나 자신보다 앞선다고 썼다. 그 「나 자신」 안에는 그해 여름 쉬지 못한 몸도 들어 있었다. 1851년의 그는 무엇을 위해서든 건강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라고 쓴다. 그 사이에 그의 책은 세상에 나왔고, 서른세 해 동안 거의 읽히지 않았다. 그가 몸을 앞세워 그 여름을 쉬엄쉬엄 보냈다면 책은 한 해 늦게 나왔을 것이다. 그 한 해가 그 책에 무엇을 바꾸었을까? 아마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름 그가 바친 것은 무엇을 얻었는가? 날짜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출판인과의 관계를 잃었다.
뒷날의 그는 그 목록대로 살았다. 그를 가까이서 알았던 그비너에 따르면, 그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곱 시와 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 찬물로 윗몸을 씻었고, 머리가 가장 맑은 아침 시간을 아꼈으며, 날마다 빠른 걸음으로 오래 걸었다.[주 12-09] 그것은 1818년 여름에는 없던 습관이었다. 몸을 앞세우는 법을 그는 원고가 끝나고 한참 뒤에 배웠다.
1818년 9월, 알프스를 넘는 마차 안에서 그는 아직 그것을 몰랐다. 원고는 그의 손을 떠났고, 출판인과의 편지는 끊겼고, 그의 몸은 여름 내내 미뤄 둔 피로를 싣고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책은 그를 기다리지 않고 알텐부르크에서 찍히고 있었다. 몸은 책을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몸이 더는 기다려 주지 않는 날이 오면, 그는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후주
[주 12-01] 1818년 8월 31일 브로크하우스에게 보낸 편지.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브로크하우스, 『프리드리히 아르놀트 브로크하우스, 편지와 기록으로 본 그의 삶과 일』 제2권,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76, 356~357쪽(archive.org friedricharnold02broc, 흑백 PDF 372~373쪽). 인용은 356쪽(PDF 372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Sie haben mich ermahnt doch ja zum Anfang Septembers den Rest fertig zu haben, weil sonst das Werk nicht zur Messe fertig sein könnte: ich habe gearbeitet wie ein verhungerter Abschreiber, und sehe nun, daß es nichts hilft. … Alles ist zu meiner Abreise bereit und nichts hält mich, als Sie: weil mir mein Werk meiner Person weit vorgeht. Es ist nichts schrecklicher für mich, als mit Leuten zu thun zu haben, deren Worte keinen Glauben verdienen. 한국어 의역. 「meiner Person」은 「나 자신」으로 옮겼다. 7주에 4전지, 한 쪽 35줄은 같은 쪽 위(In 7 Wochen sind 4 Bogen gedruckt … 35 Zeilen auf der Seite). 원고를 옮겨 적으며 고친 것은 1818년 3월 28일 편지(같은 책 351쪽, eben jetzt … es selbst ins Reine schreiben will, um dabei noch beträchtliche Verbesserungen im Vortrag vorzunehmen)를 따른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는 「굶주린 필경사처럼」을 풀어 쓴 서술자의 말이다.
[주 12-02] 같은 편지 356~357쪽. 원고료를 늦게 치른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들었다는 것, 40전지분 원고료를 미리 보내라는 것, 받은 다음 날 보낸다는 명예의 약속(Ehrenwort)이 없으면 라이프치히에 사람을 두어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 「내 참을성은 보시다시피 바닥났다」(daß meine Geduld, wie Sie sehn, zu Ende ist)는 취지를 옮겼다. 356쪽은 스캔으로, 357쪽은 djvu 텍스트로 읽었다(357쪽 스캔은 재확인).
[주 12-03] 브로크하우스의 답장(날짜는 편저자가 적지 않음). 같은 책 357~358쪽. djvu 텍스트로 읽고 취지를 옮겼다(스캔 재확인). 인쇄소 책임자와의 편지 사본을 보낸 것, Sie werden hieraus abnehmen, daß ich als ein ordentlicher, pünktlicher und verständiger Geschäftsmann gehandelt habe und mich kein Vorwurf trifft. Selbst setzen und drucken kann und will ich Ihr Werk nicht, Dem wahren Manne von Ehre genügt das Wort, das einfache, 저자의 이름을 하나라도 대지 못하면 명예로운 사람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
[주 12-04] 같은 책 358~359쪽(PDF 374~375쪽). 원고의 나머지를 라이프치히의 한 박사에게(이름은 djvu 텍스트가 깨져 읽지 못함, 재확인) 보내 9월 18일 40두카트를 받게 한 것, 9월 22일 편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편저자의 서술(358쪽, djvu 텍스트). 9월 24일 브로크하우스의 편지는 358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Mein Herr! Ich hatte in Ihrem Briefe vom 22. vor allem Andern einen Beweis für Ihre injuriösen Behauptungen in Ihrem frühern Briefe oder einen Widerruf derselben erwartet, und da sich weder das Eine noch das Andere darin befindet, und ich Sie nach meiner Erklärung also fortan für „keinen Ehrenmann" halte, so kann deshalb auch künftig kein Briefwechsel weiter zwischen uns stattfinden, und werde ich daher Ihre etwaigen Briefe, die ohnehin in ihrer göttlichen Grobheit und Rusticität eher auf einen Vetturino als einen Philosophen schließen lassen möchten, gar nicht annehmen, wenn ich Ihre Handschrift auf der Adresse erkenne … 한국어 의역이며 뒤를 줄였다. 「Vetturino」(이탈리아의 삯마차꾼)를 「마부」로 옮겼다. 편저자에 따르면 이 말은 쇼펜하우어가 8월 31일 편지에서 쓴 「삯마차꾼에게 미리 한 닢을 받아 두는」 비유를 되받은 것이다. 「휴지」(Makulatur) 대목과 「사슬에 묶인 개」(„Ich muß mich mit diesem Menschen sehr zusammennehmen, weil er ein wahrer Kettenhund ist.")는 359쪽(PDF 375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사슬에 묶인 개」는 편저자가 전하는 브로크하우스의 말이며, 인쇄소에 한 말인지는 편저자가 「알텐부르크 인쇄소를 다그치며」 한 말이라고만 적는다.
[주 12-05] 같은 책 359쪽(PDF 375쪽, 스캔 대조). 이후 편지가 다시 오간 흔적이 없다는 것, 책이 1818년이 끝나기 전에 나온 것, 12월 12일 크반트에게 마지막 전지와 저자용 책을 보낸 것, 로마에서 쇼펜하우어가 크반트에게 인쇄가 잘되어 기뻤다고 쓴 것은 편저자의 서술이다(앞의 둘은 스캔, 뒤의 둘은 djvu 텍스트). 책이 다 찍히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탈리아로 떠났고 교정지가 뒤따라 보내졌다는 것은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62, 53쪽(Ohne den Druck abzuwarten eilte er nach Italien, wohin ihm die Revisionsbogen nachgesendet wurden). 그비너는 출간을 1818년 11월로 적는다. 9월에 떠났다는 것은 9월 22일 편지를 드레스덴에서 보낸 뒤라는 편지 날짜와, 카일·괴테에게 밝힌 출발 계획(8월 말~9월 초)에서 끌어낸 것이며, 정확한 출발일은 자료에 없다(재확인).
[주 12-06]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1권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2장 「사람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1913년 에른스트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원문은 Überhaupt aber beruhen 9/10 unseres Glückes allein auf der Gesundheit. Mit ihr wird alles eine Quelle des Genusses: hingegen ist ohne sie kein äußeres Gut, welcher Art es auch sei, genießbar, und selbst die übrigen subjektiven Güter, die Eigenschaften des Geistes, Gemütes, Temperaments, werden durch Kränklichkeit herabgestimmt und sehr verkümmert. Demnach geschieht es nicht ohne Grund, daß man vor allen Dingen sich gegenseitig nach dem Gesundheitszustande befragt und einander sich wohlzubefinden wünscht: denn wirklich ist dieses bei weitem die Hauptsache zum menschlichen Glück. Hieraus aber folgt, daß die größte aller Torheiten ist, seine Gesundheit aufzuopfern, für was es auch sei, für Erwerb, für Beförderung, für Gelehrsamkeit, für Ruhm, geschweige für Wollust und flüchtige Genüsse: vielmehr soll man ihr alles nachsetzen. 한국어 의역. 『소품과 부록』은 1851년에 나왔다.
[주 12-07] 같은 장 47~105행. 밝은 마음이 가장 곧바로 행복하게 하고 행복의 현금이며 다른 것은 어음이라는 것(Sie allein ist gleichsam die bare Münze des Glückes und nicht, wie alles andere, bloß der Bankzettel), 밝은 마음에 재산보다 건강이 이바지한다는 것, 건강을 지키는 수단(Vermeidung aller Exzesse und Ausschweifungen, aller heftigen oder unangenehmen Gemütsbewegungen, auch aller zu großen oder zu anhaltenden Geistesanstrengung, täglich wenigstens zwei Stunden rascher Bewegung in freier Luft, viel kaltes Baden), 안의 움직임과 바깥의 고요의 어긋남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과 닮았다는 것, 같은 사정이 건강한 날과 병약한 날에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Wie sehr unser Glück von der Heiterkeit der Stimmung und diese vom Gesundheitszustande abhängt, lehrt die Vergleichung des Eindrucks …)은 모두 취지를 옮겼다.
[주 12-08] 같은 장 128~146행. 밝은 마음이 건강에만 달린 것은 아니며 완전히 건강해도 우울한 기질이 있을 수 있고 그 까닭이 타고난 몸의 바탕에 있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문제집』 30장 1절)를 빌려 뛰어난 사람은 모두 우울해 보인다는 것은 취지를 옮겼다.
[주 12-09] 그비너 같은 책 208~209쪽. 7시와 8시 사이에 일어나 큰 해면으로 윗몸을 찬물로 씻었다는 것, 아침 시간을 머리를 모으는 데 아꼈다는 것은 djvu 텍스트로 읽고 취지를 옮겼다(스캔 재확인). 날마다 빠르게 오래 걸었다는 것은 같은 책 50쪽(늙어서도 멀리서 알아볼 수 있던 빠른 걸음)과 209~210쪽의 산책 서술. 이 습관들이 언제 생겼는지는 자료에 없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8년 여름의 정서 작업, 7주에 네 전지와 35줄, 8월 31일 편지, 브로크하우스의 답장, 9월 18일 원고료 수령, 9월 22일 편지의 존재, 9월 24일 절교 편지, 「사슬에 묶인 개」라는 말, 이탈리아로 떠난 것과 교정지, 1818년 말의 출간, 12월 12일 크반트에게 보낸 책, 로마에서 쓴 기쁨의 편지, 노년의 생활 습관이다. 편지와 출판 경위는 브로크하우스의 손자가 1876년에 펴낸 전기에 실린 것을 읽었다. 장면은 편지 내용만으로 세웠으며 따로 지어낸 대사는 없다. 그 여름 그의 몸 상태는 기록에 없어 쓰지 않았고, 지친 몸이 편지의 어조를 거칠게 했을 수 있다는 것은 서술자의 추측이다. 알프스를 넘는 마차는 소설의 창작이다. 1851년의 『아포리즘』은 1818년의 서른 살 쇼펜하우어의 생각이 아니라 노년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