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9,849자)
아무 일도 없는데 견딜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5년 5월 6일, 드레스덴에 온 지 한 해가 된 스물일곱 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한 지인에게 답장을 썼다. 편지의 대부분은 돈 이야기였다. 그 일을 다 적고 나서, 안부를 물어 준 데 고마워하며 그는 편지 끝에 자기 형편을 적었다.
“나는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을 어느 모로 보나 다행으로 여깁니다. 내 삶에 값을 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좇는 데 이만큼 고요하고, 이만큼 바깥의 도움이 갖추어진 곳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곳에서처럼 밝고 나 자신에게 만족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 가장 큰 몫은 안에서 생각이 자라 가는 데 있습니다.”[주 10-01]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관청에 나가지 않았고, 강의를 하지 않았고, 장사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그를 먹여 살렸고, 그의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것이었다. 남들이 꿈꾸는 쉼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쉼을 견딜 수 있었다. 안에서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
그는 드레스덴에서 숨어 살지 않았다. 그의 전기를 처음 쓴 빌헬름 폰 그비너에 따르면, 그는 타고난 귀족 기질 때문에 사귀는 사람을 가렸지만 세상과 담을 쌓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의 비꼬는 말과 거만한 태도에도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존중했다. 그 아래 있는 정직함이 상처 주는 말을 덮어 주었다. 그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재치 있는 예술 애호가 요한 고틀로프 폰 크반트였다. 그는 또 그 무렵 독일에서 가장 이름난 소설가 세 사람, 카를 호인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슐체와 구스타프 실링과 친하게 지냈다. 셋 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그는 실링의 이야기들이 끝없이 우스워서 좋아했다.[주 10-02]
크반트는 그를 끝까지 따른 친구였지만, 그의 빈정거림을 피하지 못했다. 여러 해 뒤 크반트는 친구의 철학을 논하면서 웃으며 그를 상기시켰다. 쇼펜하우어는 예전부터 크반트의 판단을 대단치 않게 여겼고, 크반트가 그럴듯하게 영리한 생각을 하나 말하면 언제나 그것을 어디서 읽었느냐고 물었다. 마치 크반트가 자기 생각을 책 더미의 쓰레기 속에서 주워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주 10-03]
*
그런 어느 저녁이었다. 저녁 식탁의 대화가 길어지고, 크반트가 무엇에 대해 재치 있는 한마디를 했다.
“그 말은 어디서 읽으셨습니까?”
크반트는 웃었다. 처음 듣는 물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겁니다. 왜 늘 내 말에는 출처가 있어야 합니까?”
“당신이 생각했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이런 자리에서 오가는 말은 대개 누군가 어디서 읽은 것입니다. 저녁을 채우는 말이지요.”
“저녁을 채우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 우리는 여기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모였지요. 당신도 그렇잖습니까? 당신도 저녁마다 여기 옵니다.”
“옵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그럼 당신은 왜 옵니까? 낮에는 혼자 생각하는 게 그렇게 좋다면서.”
쇼펜하우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크반트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데 대단한 생각이 있어야 할 까닭은 없었다. 좋은 저녁은 좋은 저녁만으로 값이 있었다. 그의 말도 틀린 데가 없었다. 그가 그 자리에서 들은 말의 대부분은 시간을 보내려고 오가는 말이었고, 그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그 뒤로도 그는 저녁마다 사람들 속에 앉았고, 크반트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소설가 슐체는 뒷날 그를 한 곤란한 연애 사건에서 빼내 주었다. 그가 드레스덴에서 가장 좋아한 시간은 그래도 혼자였다. 그는 엘베 강가를 걸으며 좋은 생각을 모았고, 떠오른 생각을 지갑 속 종이에 낱말 하나로 적어 두었다가, 늙어서도 멀리서 알아볼 수 있었다는 그 빠른 걸음으로 혼자 일하는 방으로 돌아갔다.[주 10-04]
*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면 왜 불안하고 지루한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이다. 할 일이 없어져도 원하는 마음은 남아서 원할 것을 찾는다. 그가 드레스덴의 네 해 동안 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번호를 매긴 짧은 절들로 이어지는 책인데, 그 57번째 절에서 그는 그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를 그린다.
“그의 삶은 시계추처럼, 아픔과 권태 사이를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 둘이 사실 삶을 이루는 마지막 재료다. 이것이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사람은 온갖 괴로움과 고문을 지옥에 옮겨 놓고 나자, 천국에는 권태 말고 남겨 둘 것이 없었다.”[주 10-05]
그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세운다. 먼저 전제가 있다. 사람은 원하는 것 덩어리다. 그는 같은 절에서 사람을 ‘천 가지 필요가 뭉친 것’이라고 부른다.[주 10-05] 다음으로 이유가 있다. 원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하면 그 모자람이 아픔이다. 원하는 것을 다 얻어 더 원할 것이 없으면, 원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붙잡을 것을 잃은 채 남는다. 그 붙잡을 것 없는 원함이 권태다. 그러므로 결론이 나온다. 사람은 필요가 채워지면 쉬는 것이 아니라 권태 쪽으로 넘어간다. 쉼은 시계추가 아픔에서 권태로 넘어가는 한가운데를 지나는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는 이어서 쓴다.
“곤궁과 괴로움이 사람에게 잠시 쉼을 허락하자마자, 권태가 곧바로 다가와 그는 시간 보낼 거리를 꼭 찾아야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바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애씀이다. 그러나 삶이 보장되고 나면 그들은 그 삶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을 움직이는 둘째 힘은, 삶이라는 짐을 벗어나려는 애씀, 그 짐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애씀, 곧 ‘시간을 죽이려는’ 애씀, 권태에서 달아나려는 애씀이다.”[주 10-06]
그는 그 애씀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를 바로 짚는다. 곤궁과 걱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른 짐을 마침내 다 내려놓고 나자 이제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짐이 된다. 그들은 한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고 나면 그것을 번 것으로 친다. 그런데 그 한 시간은 그들이 지금까지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온 바로 그 삶에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이다.[주 10-06]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 살 걱정이 사라지자 산 날을 덜어 내며 기뻐한다. 쉼이 불안한 까닭이 거기 있다. 쉬는 시간에는 그 짐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사교가 어디서 오는지를 말한다. 권태는 가볍게 여길 불행이 아니며, 끝내는 얼굴에 참된 절망을 그려 넣는다. 서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토록 서로를 찾는 것은 권태 때문이다. 권태가 사교의 샘이다.[주 10-06]
그는 권태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려고 감옥을 예로 든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엄한 교도소 제도는 죄수를 혼자 가두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다. 그 제도는 오직 권태 하나만을 형벌의 도구로 쓰는데, 그 벌이 얼마나 끔찍한지 죄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라들이 굶주림을 막듯 권태를 막는 대책을 세우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권태는 굶주림처럼 사람을 가장 큰 방종으로 몰아갈 수 있고, 그래서 백성에게는 빵과 함께 구경거리가 필요하다고 그는 쓴다.[주 10-07] 그는 그것을 사회의 층으로도 나누어 본다. 곤궁이 늘 백성을 때리는 채찍이라면, 권태는 높은 사람들의 채찍이다. 보통 시민의 삶에서는 엿새의 일하는 날이 곤궁을 맡고, 일요일이 권태를 맡는다.[주 10-07]
이 그림 앞에 그해 저녁의 식탁을 놓으면, 크반트의 물음 ‘당신은 왜 옵니까?’에 대한 답이 그 자신의 책에 들어 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엿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요일이 한 주에 한 번 오지만, 그들에게는 날마다가 일요일이었다. 이름난 소설가 세 사람이 쓰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수많은 독자의 그 일요일을 채웠다. 그 식탁에서 오간 재치도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람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저녁마다 그 사람들을 찾아갔다.
*
그런데 그 그림에는 쉼과 권태와 혼자 있음이 한데 섞여 있지 않다. 그는 그 셋을 갈라 놓는다.
쉼은 곤궁이 잠시 물러간 상태다. 그것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권태는 원할 것을 잃은 원함이다. 그것은 할 일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이 붙잡을 것을 못 찾는 데서 온다. 혼자 있음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1815년의 편지에서 그는 한 해 동안 거의 혼자 지냈는데도 이처럼 밝은 적이 없다고 썼다. 그 까닭을 그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밝혔다. 안에서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혼자 있는 사람 안에 원함이 붙잡을 것이 있으면, 그것은 권태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쉬는 것도 지루한 것도 아니고, 일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죄수와 드레스덴의 그를 나란히 놓으면 그 차이가 더 날카로워진다. 두 사람은 똑같이 혼자였고, 똑같이 누가 시키는 일이 없었다. 한쪽에게 그것은 목숨을 끊게 할 만큼의 형벌이었고, 다른 쪽에게 그것은 이처럼 밝은 적이 없는 날들이었다. 둘을 가른 것은 혼자 있느냐 아니냐도, 일이 있느냐 없느냐도 아니었다. 원하는 마음이 붙잡을 것을 안에 갖고 있느냐였다. 죄수에게 그것을 빼앗은 것은 감옥의 벽이었고, 그에게 그것을 준 것은 네 해 동안 자라 간 하나의 생각이었다.
이 구별은 그의 권태론의 빈 곳을 보여 준다. 그는 사람이 대부분 시계추처럼 흔들린다고 말하지만, 그 자신은 네 해 동안 그 시계추의 양 끝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곤궁은 유산이 막아 주었고, 권태는 원고가 막아 주었다. 아무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가 누린 그 자리는 재산과, 붙잡을 만한 큰일과, 그 일을 해낼 머리가 한꺼번에 있어야 생긴다. 일요일이 권태인 시민에게 그 셋은 없다. 권태를 피하는 그의 길은 모두에게 열린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곤란한 물음이 있다. 원고가 그의 시계추를 붙들어 주었다면, 원고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1818년 3월, 네 해의 일이 끝났다. 원함이 붙잡을 것이 사라지는 날이었다. 그는 원고를 넘기는 즉시 이탈리아로 떠나겠다고 정했다. 그 여행은 오래 미뤄 둔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큰일이 끝난 뒤 다가오는 권태를 피하는 또 하나의 시간 보낼 거리였을까? 그의 그림대로라면 바쁘게 지내는 것은 권태를 이기는 길이 아니라 권태가 오는 것을 미루는 길이다. 그는 저녁마다 사람들 속으로 가는 것을 시간을 죽이는 일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홀로 엘베 강가를 걷던 그의 빠른 걸음은 그것과 무엇이 달랐을까?
그는 크반트에게 그날 저녁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아직 대답할 말을 갖고 있지 않았다.
후주
[주 10-01] 쇼펜하우어가 *** 에게 보낸 1815년 5월 6일 편지.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Schopenhauer-Briefe),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106~108쪽. 받는 사람의 이름은 편자가 감추었다. 인용은 107~108쪽, 스캔 PDF 159~160쪽을 그림으로 떠서 대조했다. 원문은 Ich wünsche mir in jeder Hinsicht Glück zur Wahl meines Aufenthalts u. glaube daß im Ganzen genommen ich nirgends so viel Ruhe, u. zugleich so viel Hülfsmittel von Außen, um dem Zweck, durch den allein das Leben für mich Werth hat, nachstreben zu können, würde gefunden haben, als grade hier. Auch bin ich nie heitrer, nie mi[t] mir selbst mehr zufrieden gewesen, als eben hier. Fre[ilich] thut die Entwickelung von Innen das Beste dabei. 꺾쇠는 원본의 빈 곳을 편자가 채운 것이다. 한국어 의역.
[주 10-02]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aus persönlichem Umgange dargestellt),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62, 47~49쪽. 귀족 기질 때문에 사귐을 좁혔지만 숨어 살지 않았다는 것, 비꼬는 말과 거만함에도 좋아하고 존중받았다는 것, 크반트와 가까웠다는 것, 카를 호인·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슐체(필명 프리드리히 라운)·구스타프 실링이 그때 가장 이름난 독일 소설가 세 사람이었고 모두 훨씬 나이가 많고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실링의 이야기를 그 끝없는 익살 때문에 좋아했다는 것은 그비너의 서술이며 취지를 옮겼다. 48쪽 아랫부분은 스캔(archive.org arthurschopenha00gwingoog, PDF 69쪽)으로 대조했고, 47·49쪽은 djvu 텍스트로 읽었다. 크반트를 「예술 애호가」로 푼 것은 그비너의 「사랑스러운 아마추어 애호가」(der liebenswürdige Dilettant)를 따른 서술자의 말이다.
[주 10-03] 그비너 같은 책 48~49쪽. 스캔(PDF 69쪽)으로 대조했다. 크반트가 여러 해 뒤 친구의 체계를 논하면서, 쇼펜하우어가 예전부터 자기 판단을 대단치 않게 여겼고 영리한 생각을 말하면 늘 어디서 읽었느냐고 물었다고 웃으며 상기시켰다는 것(gefragt habe, wo er es gelesen, als wenn er seine Gedanken im Kehricht der Literatur auflese)은 그비너가 전하는 크반트의 회고다. 취지를 옮겼다. 그 물음이 오간 특정한 저녁, 그날의 대사는 모두 소설의 창작이며, 두 사람의 기록된 관점(크반트의 회고, 쇼펜하우어의 사교관)을 대사로 옮겼다. 날짜와 장소는 자료에 없어 드레스덴 시절의 어느 저녁 식탁에 두었다.
[주 10-04] 슐체가 그를 한 연애 사건에서 빼내 준 것은 그비너 같은 책 49쪽. 엘베 강가를 걸으며 생각을 모으고 지갑 속 종이에 낱말 하나로 적어 두었다가 늙어서도 멀리서 알아볼 수 있던 빠른 걸음으로 혼자 일하는 방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같은 책 50쪽(An den Ufern der Elbe wandelnd, sammelte er seine besten Gedanken, die er oft mit einem einzigen Stichwort in der Brieftasche fixirte …)의 취지다. djvu 텍스트로 읽었다(스캔 대조는 재확인).
[주 10-05]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57.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368쪽, PDF 41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Sein Leben schwingt also, gleich einem Pendel, hin und her, zwischen dem Schmerz und der Langenweile, welche beide in der That dessen letzte Bestandtheile sind. Dieses hat sich sehr seltsam auch dadurch aussprechen müssen, daß, nachdem der Mensch alle Leiden und Quaalen in die Hölle versetzt hatte, für den Himmel nun nichts übrig blieb, als eben Langeweile. 한국어 의역. 「천 가지 필요가 뭉친 것」(ein Konkrement von tausend Bedürfnissen)은 같은 쪽.
[주 10-06] 같은 절, 인쇄 369쪽, PDF 41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 daß sobald Noth und Leiden dem Menschen eine Rast vergönnen, die Langeweile gleich so nahe ist, daß er des Zeitvertreibes nothwendig bedarf. Was alle Lebenden beschäftigt und in Bewegung erhält, ist das Streben nach Daseyn. Mit dem Daseyn aber, wenn es ihnen gesichert ist, wissen sie nichts anzufangen: daher ist das Zweite, was sie in Bewegung setzt, das Streben, die Last des Daseyns los zu werden, es unfühlbar zu machen, „die Zeit zu tödten", d. h. der Langenweile zu entgehen. 한국어 의역. 자기 자신이 짐이 되어 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번 것으로 친다는 대목(Demgemäß sehen wir, daß fast alle vor Noth und Sorgen geborgene Menschen, nachdem sie nun endlich alle anderen Lasten abgewälzt haben, jetzt sich selbst zur Last sind und nun jede durchgebrachte Stunde für Gewinn achten, also jeden Abzug von eben jenem Leben, zu dessen möglichst langer Erhaltung sie bis dahin alle Kräfte aufboten)도 같은 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겼다. 사교의 샘 대목(Die Langeweile aber ist nichts weniger, als ein gering zu achtendes Uebel: sie malt zuletzt wahre Verzweiflung auf das Gesicht. Sie macht, daß Wesen, welche einander so wenig lieben, wie die Menschen, doch so sehr einander suchen, und wird dadurch die Quelle der Geselligkeit)도 같은 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겼다.
[주 10-07] 같은 절, 인쇄 369~370쪽, PDF 413~41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필라델피아 교도소 대목(Das strenge Philadelphische Pönitenziarsystem macht, mittelst Einsamkeit und Unthätigkeit, bloß die Langeweile zum Strafwerkzeug: und es ist ein so fürchterliches, daß es schon die Züchtlinge zum Selbstmord geführt hat)과 공공 대책·빵과 구경거리 대목(panem et Circenses braucht das Volk)은 취지를 옮겼다. 「미국」이라는 풀이는 서술자의 말이다. Wie die Noth die beständige Geissel des Volkes ist, so die Langeweile die der vornehmen Welt. Im bürgerlichen Leben ist sie durch den Sonntag, wie die Noth durch die sechs Wochentage repräsentirt의 취지를 옮겼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5년 5월 6일 편지의 내용, 드레스덴에서 그가 사람들과 어울린 방식과 그 평판, 크반트와 세 소설가와의 교유, 크반트가 회고한 「어디서 읽었느냐」는 물음, 슐체가 도운 연애 사건, 엘베 강가의 산책과 메모 습관, 1818년 3월의 원고 완성과 이탈리아 여행 계획([주 9-03])이다. 드레스덴 생활의 세부는 그비너의 서술과 그가 전한 크반트의 회고에 기댄다. 그 저녁 식탁의 장면과 대사,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소설의 창작이다. 유산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주 1-11]. §57은 1814~1818년에 쓴 원고에 들어 있던 대목이지만, 인용한 문장은 1891년판에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