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7,989자)
가족의 기대를 따르면 내 삶은 어디에 남는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02년 겨울, 함부르크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열네 살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산 삶은 거의 전부 아버지가 정한 것이었다.
아홉 살에 프랑스 항구 르아브르로 보내져 두 해를 산 것은 프랑스어를 익히라는 뜻이었다. 아버지와 거래하던 상인 그레구아르 드 블레지메르의 집이었다.[주 1-01] 함부르크로 돌아와서는 룽게 박사가 꾸리는 사립학교에 들어갔다.[주 1-02] 그가 배우는 것은 하나같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버지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는 외아들을 상인으로 키우려 했고, 아들의 하루는 그 길에 필요한 것으로 채워졌다.
아르투어는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룽게 박사의 학교에서 배울 것은 금방 바닥이 났고, 그는 아버지에게 김나지움에 보내 달라고 청했다. 김나지움은 대학에 갈 아이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옛 문헌을 몇 해씩 읽는 학교였다. 거기에 가면 상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아들을 상인으로 만들 사람에게 옛 문헌 공부는 쓸데없는 것이었다.[주 1-02]
*
아버지의 기대에는 까닭이 있었다. 아르투어는 그 까닭을 알았고, 그래서 더 괴로웠다.
아홉 해 전까지 이 집안은 발트해 남쪽 기슭의 항구 도시 단치히에 살았다. 1793년 북독일의 왕국 프로이센이 단치히를 제 땅으로 삼키자, 아버지는 왕의 신민이 되기를 거절했다. 그는 큰 손해를 보면서 고향을 버리고, 어느 왕에게도 속하지 않은 자유 도시 함부르크로 옮겨 왔다.[주 1-03] 상인에게 재산은 자유를 지키는 성벽이었다. 아버지는 그 성벽을 지키느라 고향을 내주었고, 남은 성벽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기대는 아들을 묶으려는 사슬이 아니었다. 자기가 값을 치르고 얻은 자유를 아들에게 그대로 건네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자유가 아버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아버지에게 자유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재산이었다. 아들에게 자유란 하루를 무엇을 생각하며 보낼지 스스로 정하는 일이었다. 같은 낱말이 두 사람에게 다른 것을 뜻했다.
그해 겨울, 노이어 반드라암 92번지 집 아래층 사무실에서 아들은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김나지움에 보내 주십시오.”
하인리히 플로리스는 펜을 내려놓았다.
“라틴어를 배워서 무엇이 되겠느냐? 교수 자리 하나 얻으려고 남의 집 문간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서 단치히를 떠났다. 상인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저는 고개 숙이는 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평생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말하는 겁니다.”
“평생 무엇을 할지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뿐이다. 그 걱정을 덜어 주는 것이 이 일이다. 내가 너한테 주려는 게 바로 그거다.”
“아버지가 주시려는 건 아버지의 삶입니다.”
“그래, 내 삶이다. 고향을 버리고 다시 일으킨 삶이다. 그게 그렇게 하찮으냐?”
“하찮다는 게 아닙니다. 그 삶을 제가 살면, 그건 아버지가 두 번 사시는 겁니다. 저는 한 번도 안 살고요.”
하인리히 플로리스는 한동안 아들을 보았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의 말에 틀린 데가 없을 때 오히려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었다.
“너는 아직 모른다. 사람은 제 하고 싶은 일로 사는 게 아니라 제 식구를 먹이는 일로 산다. 하고 싶은 일은 그다음이다.”
아르투어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주려는 것은 선물이었고, 그 선물을 거절하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아들이 될 것이었다. 받으면 그는 아버지가 바라는 상인이 될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 안에서 아르투어 자신은 어디에 남는가? 그는 그 물음을 소리 내어 묻지 못했다.
*
며칠 뒤 아버지가 그를 서재로 불렀다. 아버지는 앉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둘 중 하나를 골라라. 김나지움에 가겠다면 보내 주마. 아니면 우리와 함께 몇 해 동안 유럽을 돈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까지. 그 대신 돌아오면 상인 수업에 들어간다.”[주 1-04]
아르투어는 이것이 어떤 제안인지 알았다. 르아브르의 두 해는 그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주 1-01] 낯선 거리와 낯선 말 속에서 그는 자기 안의 무엇이 넓어지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런 아들에게 유럽의 여러 나라와 라틴어 문법책을 함께 내밀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억누르지 않았다. 아들이 원하는 것을 써서 아들을 자기 길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는 여행을 골랐다.[주 1-05]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것이었다. 그런데 서재를 나오면서 그는 알았다. 원한 것을 고른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아버지가 원한 길로 들어섰다. 가족의 기대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번에는 한 몸이었고, 그래서 어디까지가 자기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아버지의 기대인지 가를 수 없었다.
*
여행은 1803년에 시작되었다. 돌아온 뒤 그는 약속대로 상인 수업에 들어갔다. 단치히의 상인 카브룬 밑에서, 다음에는 함부르크의 예니슈 상회에서 일을 배웠다.[주 1-06]
1805년 4월 20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기대를 건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기대는 남았다. 이듬해 가을 어머니와 여동생이 함부르크를 떠난 뒤에도 그는 혼자 남아 상인 수업을 이어 갔다. 그 시절 그는 의무로서 상인 수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과 정신의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찢긴 채 흔들렸다.[주 1-07] 아버지가 없는 사무실에서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로 앉아 있었다.
그가 사무실을 떠나 김나지움 공부를 시작한 것은 1807년, 열아홉 살 때였다.[주 1-07] 열네 살에 청한 그 공부를 다섯 해 늦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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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그가 스스로 답을 적은 것은 마흔아홉 해가 지나서였다. 1851년, 예순세 살의 쇼펜하우어는 『소품과 부록』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 첫 권의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에서 그는 사람의 몫을 셋으로 나눈다. 그 사람이 ‘무엇인가?’,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가?’, 그 사람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다. 첫째는 건강과 기질과 성격과 지성처럼 그 사람 자신이다. 둘째는 재산이다. 셋째는 명예와 지위와 명성, 곧 남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이다.[주 1-08]
이 셋으로 1802년의 서재를 다시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 상회와 재산은 둘째 것이었다. 함부르크에서 이름난 상인이라는 자리는 셋째 것이었다. 가족의 기대는 대개 이 두 가지를 향한다. 무엇을 갖고 살지,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는 부모가 미리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첫째 것은 누구도 대신 마련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둘째 장을 이렇게 연다.
“사람의 행복에는 그가 무엇을 가졌느냐,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사람됨은 언제 어디서나 그를 따라다니고, 그가 겪는 모든 일은 그 사람됨의 빛깔로 물든다. 무엇을 누리든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누린다. 영국 사람들은 파리에 간 사람을 두고 ‘파리를 즐긴다’고 하지 않고 ‘파리에서 자기를 즐긴다’고 말하는데, 아주 정확한 말이다.”[주 1-09]
큰 불행을 제쳐 두면, 삶에서 무슨 일을 만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바깥에 있는 것은 모두 그 사람을 거쳐서만 그에게 닿는다. 재산과 지위의 힘은 꺾일 수 있지만, 사람됨이 주는 것은 꺾이지 않는다.[주 1-09]
가족의 기대를 따르면 내 삶은 어디에 남는가? 가족의 기대를 따라도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상회의 사무실에도 따라 들어가고 김나지움에도 따라 들어간다. 같은 사무실, 같은 장부가 아버지에게는 자유였고 아들에게는 감옥이었다. 바깥은 하나였고, 그것을 받는 사람이 달랐다. 기대를 따르면 삶 전체가 남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가진 것과 남에게 보이는 모습까지다.
그렇다고 기대를 따르는 데 아무 값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장의 뒤쪽에서 그는 안이 넉넉한 사람이 바깥에서 얻어야 할 것을 하나만 꼽는다. 자유로운 여가, 곧 날마다 매시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다.[주 1-10] 사람됨이 어디나 따라간다 해도, 그것을 쓸 시간을 빼앗기면 그 사람됨은 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어서 더 단호하게 말한다. 타고난 바탕을 끝까지 키울 사람에게 행복과 불행은 하나뿐이다. 자기 재능을 다 키워 자기 일을 끝내느냐, 아니면 그 일을 가로막히느냐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사소하다.[주 1-10] 이 말은 가족의 기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기대가 무엇을 주느냐보다, 그 기대가 그 사람이 자기 일을 하는 것을 가로막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그는 가로막힌 사람을 ‘멍에를 멘 페가수스’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말이 쟁기에 묶여 밭을 가는 꼴이다.[주 1-10] 열여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상회에 앉아 있던 그가 바로 그랬다. 삶은 거기 남아 있었지만 날지 못하고 있었다.
*
그는 반대편도 정직하게 적어 넣었다. 사람이 타고난 몫은 자기와 식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마련하며 시간을 보내는 데 있고, 사람은 자유로운 지성이기 전에 궁핍의 아들이라는 것이다.[주 1-10]
그 궁핍의 아들로 평생을 산 사람이 하인리히 플로리스였다. 아들이 훗날 자유로운 여가를 누리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 덕분이었다. 1809년 아버지의 유산에서 자기 몫을 받은 뒤로 그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다.[주 1-11] 아들이 끝내 거절한 상인의 길이 아들의 날개값을 치렀다. 가족의 기대를 벗어난 삶조차 가족이 마련한 것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니 1802년 겨울 서재에서 생긴 물음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기대를 따르면 내 삶은 어디에 남는가? 그리고 기대를 거절하면 그 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가? 아버지를 거절하는 일과 자기 삶을 고르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열네 살의 아르투어는 아버지를 거절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골랐는데, 그 선택이 아버지의 길로 이어졌다. 열아홉 살의 아르투어는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그 길을 떠났지만, 떠날 수 있었던 힘의 일부는 아버지에게서 왔다.
그날 밤 서재를 나온 소년은 아직 그런 것을 몰랐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자기 방 책상 서랍을 열고, 거기 넣어 두었던 라틴어 문법책을 여행 짐 맨 아래에 넣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펴지도 못한 채였다.
후주
[주 1-01] 1797년 프랑스어를 배우러 르아브르로 가서, 아버지의 거래처 사람 그레구아르 드 블레지메르의 집에서 두 해를 행복하게 보낸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797년 항목(schopenhauer.de/zeittafel, zwei glückliche Jahre).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797년 항목도 같다.
[주 1-02] 1799년부터 함부르크의 룽게 사립학교에 다닌 것, 그곳에서 배울 것을 빨리 넘어서 김나지움에 보내 달라고 청한 것, 아들을 상인으로 키우려던 아버지가 인문 공부를 쓸데없다고 여겨 들어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799년 항목.
[주 1-03] 단치히가 프로이센에 편입되자 아버지가 큰 손해를 무릅쓰고 함부르크로 옮겨 노이어 반드라암 92번지에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793년 항목(unter großen Verlusten).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는 같은 일을 「프로이센의 단치히 점령에 대한 항의」로 적는다. 재산을 「자유를 지키는 성벽」에 빗댄 것은 서술자의 말이며, 쇼펜하우어 자신도 『아포리즘』 제3장에서 가진 재산을 성벽(Schutzmauer)에 빗댄다.
[주 1-04] 아버지가 마지막에 「김나지움이냐, 여러 해에 걸친 유럽 여행이냐」를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799년 항목(Gymnasium oder mehrjährige Bildungsreise durch Europa). 여행지는 같은 연표 1803~1804년 항목과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3년 항목. 여행이 끝나면 상인이 된다는 약속이 이 제안에 붙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루트비히 뤼트케하우스, 「붓다의 출가인가? 쇼펜하우어의 여행일기」, 『쇼펜하우어 연감』 1988년호, 616쪽(mit dem Versprechen, sich anschließend dem Kaufmannsstande zu ergeben). 같은 쪽에 따르면 쇼펜하우어는 1809년 베를린 대학에 낸 이력서에서 이 제안을 「유혹」(Versuchung)이라 부르고, 「젊은 마음」이 이를 이기지 못했다고 적었다. 아버지가 이 대사 그대로 말했다는 것, 사무실과 서재의 대화는 창작이다. 제안의 정확한 날짜는 자료에 없어 1802년 겨울에 두었다.
[주 1-05] 아르투어가 여행을 골랐다는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799년 항목(Arthur entscheidet sich für die Reise).
[주 1-06] 여행 시작은 두 연표의 1803년 항목. 1804년 단치히 카브룬 밑의 상인 수업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4년 항목, 1805년 함부르크 예니슈 상회의 수업은 두 연표의 1805년 항목.
[주 1-07] 아버지가 1805년 4월 20일 세상을 떠난 것은 두 연표의 1805년 항목. 1806년 9월 어머니와 여동생이 함부르크를 떠나고 그가 혼자 남아 흔들렸다는 대목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6년 항목(Zustand der Zerrissenheit im Schwanken zwischen pflichtmäßiger Fortsetzung der Kaufmannslehre und Neigung zu einem geistigen Lebensberuf)의 한국어 의역이다. 1807년 상인 수업을 그만두고 고타에서 김나지움 공부를 시작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7년 항목과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7~1809년 항목.
[주 1-08]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1권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1장 「기본 구분」 첫머리. 1913년 에른스트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세 구분(Was einer ist / hat / vorstellt)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소품과 부록』은 1851년에 나왔다. 1802년의 아르투어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며, 서술자가 노년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
[주 1-09] 같은 책 제2장 「사람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첫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앞의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중간의 「육체의 즐거움에서 그렇고 정신의 즐거움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생략했다. 뒤의 세 문장은 같은 문단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1-10] 같은 장 「Ein solcher innerlich Reicher」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하나뿐」은 같은 문단의 Wenn einer bestimmt ist … so gibt es für ihn nur ein Glück oder Unglück 이하를 의역했다. 「자유로운 여가」(freie Muße), 「궁핍의 아들이지 자유로운 지성이 아니다」(ein Sohn der Not, nicht eine freie Intelligenz), 「멍에를 멘 페가수스」(ein Pegasus im Joche)는 원문의 표현을 살렸다.
[주 1-11] 성년이 되어 아버지 유산의 자기 몫을 받은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7~1809년 항목, 그 뒤로 재정적으로 독립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9년 항목. 상속분을 받은 정확한 날짜는 자료에 없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르아브르의 두 해, 룽게 사립학교와 김나지움 청원, 아버지의 거절과 그 까닭, 단치히에서 함부르크로 옮긴 일, 「김나지움이냐 여행이냐」라는 제안과 여행을 고른 일, 귀국 뒤 상인 수업, 아버지의 죽음 날짜, 1806년의 흔들림, 1807년의 김나지움 공부, 1809년 상속이다. 사무실과 서재의 대화와 대사, 여행 짐에 넣은 라틴어 문법책은 소설의 창작이다. 1851년의 『아포리즘』은 열네 살 아르투어의 생각이 아니라 노년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