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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식
신용 무관·소액 대출 · 서강림
12월 21일 월요일 오전 열 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11층 소회의실에서는 모두가 개조식으로 말했다. 오진경은 화면에 열일곱 번째 묶음을 띄워 놓고 보고서 첫 장을 읽었다.
“열일곱 번째 묶음. 신고·제보·민원 삼천이백사 건. 광고, 대출, 추심이 나뉜 분업형 정황 확인됨. 추심 발신 번호 마흔한 개 이용 중지 요청 예정. 수사 의뢰 필요함.”
국장 장석진은 쉰넷이었고 볼펜을 귀에 꽂고 다녔다. 국장이 볼펜을 귀에서 빼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수사 의뢰는 보류함.”
“국장님, 보류 사유를 개조식 말고 말로 해 주십시오.”
옆자리 박선우가 기침을 했다. 국장은 웃지도 않고 말로 했다.
“민생 특사경이 석 달 안에 뜬다. 법무부가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 직원 마흔 명이 압수수색이랑 영장 신청 연수를 받았어. 출범하면 우리가 직접 수사한다. 지금 경찰에 넘기면 우리가 한 일은 수사 의뢰 공문 한 장으로 끝나. 금융위는 지금도 특사경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첫 사건이 크게 보여야 다음 사건이 생겨.”
“석 달이면 신고가 천 건 더 늡니다. 하루 열 건씩이요. 신림동 스물세 살이 얼굴 합성 사진을 받은 게 지난주입니다.”
“그래서 번호는 끊자는 거야. 경고 문자도 보내고. 계좌 거래 정지는 아직 하지 마. 계좌부터 막으면 저 사람들이 냄새 맡고 흩어진다.”
“신고하신 분들한테는 뭐라고 합니까?”
“채무자대리인 붙여 드리고, 무효 확인서 내 드리고, 번호 끊어 드리고. 그건 지금도 다 해.”
“수금책이 옆방에 사는 신고자한테는요?”
“이사 가라고 해.”
국장은 말해 놓고 볼펜을 다시 귀에 꽂았다. 귀에 꽂힌 볼펜이 한 번 미끄러졌다. 국장은 볼펜을 고쳐 꽂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농담이야. 관악서에 그 친구 신변 보호 요청은 넣어. 그건 수사 의뢰가 아니니까.”
진경은 펜 끝으로 보고서의 「수사 의뢰 필요함」 아래에 줄을 그었다. 줄 아래에 국장의 말을 받아 적었다. 「보류함. 사유 — 첫 사건이 크게 보여야 함」. 받아 적고 나서 보니 진경의 글씨가 평소보다 컸다.
“국장님 말씀도 보고서 말투네요.”
“이 건물에서 삼십 년 살아 봐. 잠꼬대도 개조식이다.”
*
같은 날 밤 아홉 시, 분석팀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진경 하나였다. 번호 이용 중지 요청 공문 마흔한 장에 번호를 하나씩 옮겨 적고 나서, 진경은 오래된 민원 하나를 열었다. 신입이던 2011년 봄에 진경이 처리한 민원이었다. 인천의 시장 상인이 일수 이자가 너무 세다고 낸 글이었고, 진경은 답변 칸에 「사인 간 금전 거래로 감독 대상이 아님」이라고 썼다. 개조식으로, 맞는 말로.
민원인의 이름을 작게 소리 내어 읽었다. 열다섯 해 만에 처음 읽는 이름이었다. 인천 상인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진경은 민원 창을 닫지 않고 묶음 017 창 뒤에 깔아 두었다. 신고 숫자가 삼천이백사에서 삼천이백칠로 바뀌었다.
*
12월 22일 화요일 오후 두 시 십 분, 금감원 본원 1층 로비 출입문 앞에서 형광 연두 조끼를 입은 인호가 경비원에게 막혀 있었다. 경비원은 인호의 조끼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배달은 지하 일층 하역장으로 가세요.”
“배달 아니에요. 신고하러 왔어요.”
“신고도 배달처럼 오시네.”
진경이 내려와 출입증을 찍어 주었다. 1층 민원상담센터 옆 작은 상담실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둘, 휴지 한 통이 있었다. 인호는 헬멧을 무릎에 올려놓고 휴대전화를 탁자 가운데에 놓았다. 자동으로 녹음된 통화였다. 12월 11일 오전 아홉 시 사 분, 사 분 십이 초짜리.
진경은 소리를 키웠다. 「직장으로 찾아뵙기 전에 먼저 연락드렸습니다」로 시작하는 여자 목소리가 관청 말투로 흘러나왔다. 연장비, 상환 의사 확인 단계, 비상 연락처 안내. 인호는 녹음 속 제 목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숙였다. 삼십팔 먼저 받으면 안 되느냐고 비는 목소리였다.
끝나기 직전, 플라스틱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이어 숨 같은 목소리.
「일, 삼, 삼, 이.」
딸깍. 통화가 끊겼다. 진경은 녹음을 되돌려 두 번 더 들었다. 머리띠 스치는 소리에서 딸깍까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세었다.
“삼 초네요.”
“네?”
“이 사람은 누가 안 듣는 삼 초를 알아요. 그 틈에 말하는 거예요.”
진경은 노트북을 열어 묶음 017의 동그라미 친 점에 새 이름을 붙였다. 「삼 초」. 인호가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옆방 형은요? 형도 오십 빌렸다가 사백 됐대요. 형도 신고한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정우진 씨는 피해자이면서 피의자예요. 협박 문자를 보낸 손이니까요.”
“그럼 저는 형을 판 거예요?”
진경은 대답하지 않고 금감원 홈페이지의 불법사금융 지킴이 이자율 계산기를 열었다. 빌린 날, 받은 돈, 갚기로 한 날, 갚기로 한 돈. 인호가 불러 주는 대로 넣자 숫자가 떴다. 연 오천육백 퍼센트가 넘었다.
“권인호 씨는 아무것도 안 팔았어요. 이 숫자를 판 사람이 있는 거예요. 지난 3월부터 이런 계약에는 원장 명의로 무효 확인서를 내 드려요. 신청하면 검토해서 업자 번호로도 보내고요.”
“업자 번호요?”
“권인호 씨한테 문자 보낸 번호요.”
인호는 헬멧 턱끈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옆방 형의 두 번째 휴대전화였다.
“엄마한테 간 문자는요? 그것도 불법이에요?”
“가족이나 지인한테 빚을 알리는 건 불법이에요. 밤 아홉 시 넘어 연락하는 것도요. 다 신고서에 넣어 두세요. 날짜하고 시각까지.”
“시각은 제가 잘 알아요. 분 단위로요.”
인호는 헬멧 속에 넣어 둔 메모지를 꺼냈다. 12월 13일 오전 열 시 오십이 분 엄마, 열한 시 사 분 단톡방, 열한 시 칠 분 지점장. 12월 14일 오후 여덟 시 사십 분 사진. 진경은 메모지를 받아 들고 숫자를 눈으로 따라 내려갔다. 신고서 삼천 건 가운데 시각을 분까지 적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라이더라서요. 콜 잡을 때 분으로 세요.”
진경은 메모지를 복사기에 올렸다. 상담실 밖 로비에서 경비원이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달은 하역장으로 가세요.
*
2027년 1월 7일 목요일 오전 열한 시, 부천 중동 상가 5층 동백금융 대표실 벽에는 액자가 하나 있었다. 「정직한 금리 연 19.9%」. 진경과 선우가 현장 점검 공문을 내밀자 대표 고태준이 일어나서 액자부터 바로잡았다. 마흔 살 태준은 짙은 남색 양복에 넥타이를 끝까지 올려 매고 있었다.
책상 뒤 선반에는 감사패 세 개가 키 순서로 놓여 있었다. 「서민금융 이바지 · 동백금융 대표 고만석」. 세 개 모두 아버지 이름이었고, 태준의 이름이 든 것은 책상 위 명패 하나뿐이었다. 명패의 금박이 아직 반짝였다.
“법정 최고금리 안입니다. 연체 연락도 일주일에 일곱 번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화면에 숫자가 떠요.”
“알아요. 고객분이 일곱 번째 전화에서 세면서 하냐고 물으셨다더군요.”
진경은 태블릿을 돌려 보였다. AI가 새해 첫날 묶음 017에 붙인 새 칸이었다. 「등록 대부업체 동백금융 · 대출 거절 뒤 24시간 안에 ‘신용 무관 · 당일 소액’ 문자 수신 · 1,204건」.
“동백금융에서 거절당한 분들 가운데 천이백 명이, 거절 문자를 받은 다음 날 같은 사채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연이라면 동백금융은 운이 나쁜 회사예요.”
태준은 태블릿을 오래 보았다. 직원들이 앉은 바깥 사무실에서 상담 전화 받는 목소리가 유리벽을 넘어왔다. 「고객님, 이번 주 일곱 번째 연락입니다」.
“거절한 손님 번호는 저희가 안 팝니다. 저희 직원 열두 명은 법 안에서 일합니다.”
“그럼 번호는 어디서 나갔을까요?”
“감독원은 저희가 문 닫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태준이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갱신 대상 고객 4,021명 · 신용평점 하위 10%」.
“이분들은 은행도 카드사도 다 거절했습니다. 저희가 연 19.9%로 다음 달 갱신을 해 드려서 버티는 분들입니다. 저희가 영업 정지를 맞으면 사천 명이 다음 달에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노란 전단 번호로 갑니다. 감독원 계산기에 넣으면 오천 퍼센트 나오는 데로요.”
“그 사천 명 가운데 천이백 명은 이미 거기 갔습니다. 동백금융 문 앞에서요.”
두 사람 사이 탁자 위에 종이 두 장이 나란히 놓였다. 사천이십일 명과 천이백사 건. 선우가 볼펜을 쥔 채 숨을 참고 있었다. 태준이 먼저 눈을 들었다.
“점검 기간이 언제부터입니까?”
“2025년 7월부터요. 개정법 시행일부터.”
“작년 봄 전까지 저는 대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회사였어요.”
태준은 한마디만 하고 다시 일어나 액자를 만졌다. 액자는 이미 반듯했다.
상가를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선우가 점검 서류철을 가슴에 안고 말했다.
“선배, 저 사람 거짓말은 안 했어요. 번호를 판 게 저 사람이라는 말도 없었고요.”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제일 어려워. 한 문장씩 다 맞거든.”
“사천 명은 진짜일까요?”
“진짜일 거야. 그래서 어려운 거야.”
공용 차 안은 아침 볕에 데워져 있었다. 진경은 안전띠를 매다 말고 태블릿을 다시 켰다. 동백금융 칸에서 뻗은 줄 천이백네 개가 모두 같은 두 마디로 이어져 있었다. 「신용 무관」 「당일 소액」. 진경은 동백금융 칸 옆에 작게 한 줄을 달았다. 「2026년 봄 대표 교체 · 아버지」.
*
같은 날 밤 열한 시 사십 분, 인호는 배차 정지가 풀리고 처음으로 열여섯 콜을 채운 다리로 고시원 3층에 올라왔다. 311호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총무가 마대 걸레로 바닥을 밀고 있었다.
“311호 방 뺐어. 짐은 다음 주에 가지러 온대. 월세는 열흘 치 남았는데 안 받는대.”
방 안은 침대 하나와 접이식 탁자 하나였다. 벽에 붙은 노란 전단 묶음은 다 떼어져 있었다. 침대 밑에 작은 검은 가방 하나만 남아 있었다. 열린 지퍼 사이로 신분증 크기의 사진 한 장이 보였다.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자와 교복 입은 여자아이, 그리고 앳된 얼굴의 우진이 어느 식당 앞에서 나란히 웃고 있었다. 식당 간판의 글자가 반쯤 잘려 있었다. 「전주 콩나물」. 우진은 동네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인호는 사진 뒷면을 뒤집어 보았다. 볼펜으로 「우희 중학교 졸업 · 2019」라고 쓰여 있었다.
“총무님, 이 가방 제가 갖고 있을게요. 옆방이었어요.”
“가져가. 버리면 나도 일이야.”
인호는 가방을 들고 312호로 들어가 우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가방 두고 갔어요. 사진 들어 있어요」. 답은 십 분 뒤에 왔다. 「버려.」 일 분 뒤에 한 통이 더 왔다. 「아니. 갖고 있어.」 두 문자 모두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우진은 협박 문자에도 마침표를 꼭 찍었다. 인호는 마침표를 이제야 알아보았다.
공용 주방 냉장고 문에 메모지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김치 두 젓가락 넘게 먹은 거 죄송합니다 · 311」. 인호는 메모지를 떼지 않았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돌기 시작했고, 메모지 끝이 바람에 한 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