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81자)

채무자 공개

신용 무관·소액 대출 · 서강림

12월 13일 일요일 오전 열한 시⁠, 인호는 엄마의 전화에 잠이 깼다⁠. 312호 창문 밖 벽에는 아직 볕이 들지 않았다⁠. 엄마 박미정은 인사도 없이 말했다⁠.

“⁠인호야⁠, 이게 뭐니⁠?⁠”

엄마가 보낸 캡처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채무자 공개] 권인호(⁠23⁠) · 관악구 신림동 · 500⁠,000원 미상환 · 본인과 연락이 안 될 경우 가족분께서 대신 해결 바랍니다⁠」⁠. 문자 아래에 인호가 신분증을 들고 찍은 셀카가 붙어 있었다⁠. 웃지 않은 두 번째 장이었다⁠.

“⁠엄마⁠, 내가 해결할게⁠. 엄마는 아무 데도 돈 보내지 마⁠.⁠”

“⁠오십만 원이 뭐야⁠? 할부 다 갚았다며⁠?⁠”

“⁠그럼요⁠, 아니⁠, 그게⁠.⁠”

“⁠또 그럼요⁠.⁠”

엄마는 울지 않았다⁠. 식당 주방의 환풍기 소리만 길게 들렸다⁠. 전화를 끊자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떨었다⁠. 고등학교 3학년 7반 단톡방에 같은 문자가 올라와 있었고⁠, 아래로 답이 줄줄이 달렸다⁠. 「⁠인호 사채 씀⁠?⁠」 「⁠채무자 공개가 뭐임 신종 밈⁠?⁠」 「⁠얘 고딩 때 매점 외상도 다 갚던 애임⁠」 「⁠인호야 오십이면 내가 오만은 보탬⁠」 「⁠나도 오천 원⁠」⁠. 오천 원을 보낸다는 친구가 열한 명이었다⁠. 인호는 웃다가 화면을 엎었다⁠. 오만오천 원으로는 오십을 막지 못했다⁠.

배달 지점장에게서는 문자가 왔다⁠. 「⁠권인호 라이더님 문자 확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12월 14일 월요일 밤 아홉 시 사십 분⁠, 신림역 뒤 배달 지점 사무실은 난로 하나에 라이더 헬멧 걸이 하나가 전부였다⁠. 황재석 지점장은 인호를 의자에 앉히지 않고 책상 너머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한 시간 전에 이게 왔다⁠.⁠”

화면에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인호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몸에 오려 붙인 사진이었다⁠. 얼굴은 신분증 셀카에서 떼어 온 것이라 눈이 웃지 않았다⁠. 사진 아래 글자가 붙어 있었다⁠. 「⁠귀 지점 라이더 권인호 채무 미이행 · 계속 안 갚으면 거래처 가게에도 보냅니다⁠」⁠. 지점장은 인호가 끝까지 보기 전에 화면을 엎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거 너 아니지⁠?⁠”

“⁠제 얼굴은 맞아요⁠. 나머지는 아니에요⁠.⁠”

“⁠알아⁠. 아는데⁠, 본사 규정이 있어⁠. 라이더 품위 유지⁠. 거래처 사장님들한테 이게 한 장이라도 가면 우리 지점 계약이 끊겨⁠. 너 배차 일주일 정지다⁠.⁠”

“⁠지점장님⁠, 저 일주일 쉬면 진짜 못 갚아요⁠. 그러면 이게 사장님들한테 가요⁠.⁠”

“⁠그러니까 갚아⁠.⁠”

“⁠갚으면 끝나요⁠? 이번 주 갚으면 다음 주 연장비 붙어요⁠. 이자가 이자를 낳아요⁠.⁠”

지점장은 대답 대신 난로 불을 한 칸 줄였다⁠. 손이 떨고 있었다⁠. 인호는 떨리는 손을 보다가 일어났다⁠. 헬멧을 집는 손도 떨렸다⁠. 문을 나서는 인호의 등에 지점장이 말했다⁠.

“⁠인호야⁠. 미안하다⁠. 이상입니다는 안 붙일게⁠.⁠”

*

밤 열한 시 십 분⁠, 고시원 3층 복도는 형광등 두 개 가운데 하나만 켜져 있었다⁠. 인호는 311호 문을 주먹으로 두 번 쳤다⁠. 문이 열리자 검은 후드티의 우진이 휴대전화 두 대를 든 채 서 있었다⁠. 인호는 우진의 후드 앞섶을 쥐고 복도 벽에 밀어붙였다⁠. 소화기가 발에 차여 굴렀다⁠.

“⁠사진 누가 만들었어요⁠?⁠”

“⁠나 아니야⁠. 위에서 해⁠. 나는 문자만 쳐⁠.⁠”

“⁠엄마한테 보낸 것도 형이죠⁠? 단톡방도⁠?⁠”

“⁠하루 서른 통⁠. 정해져 있어⁠.⁠”

우진은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 한 대를 들어 인호의 눈앞에 대 주었다⁠. 「⁠정우진 · 잔액 4⁠,000⁠,000원 · 담당 고객 미수 시 해당 금액 가산⁠」⁠.

“⁠네가 안 갚으면 오십이 내 빚에 붙어⁠. 나도 작년에 삼십 빌렸어⁠. 일 년 만에 사백 됐어⁠. 너도 내가 보낸 문자 받는 사람이고⁠, 나도 누가 보낸 문자 받는 사람이야⁠.⁠”

“⁠그래서 남의 엄마한테 보내요⁠?⁠”

“⁠우리 엄마한테도 갔어⁠. 내 동생한테도⁠.⁠”

인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우진이 후드 앞섶을 털고 굴러간 소화기를 발로 세워 제자리에 놓았다⁠. 복도 끝 방에서 누가 문을 열고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가 도로 닫았다⁠.

*

밤 열한 시 사십 분⁠, 인호는 312호 침대에서 국번 없이 1332를 눌러 놓고⁠, 통화 단추 위에서 엄지를 멈췄다⁠. 이 시각에 남의 전화를 울리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꼴이 되었다⁠. 인호는 번호를 지우고 금감원 홈페이지의 불법금융 신고 창을 열었다⁠. 빌린 날⁠, 받은 돈⁠, 갚을 돈⁠, 연장비⁠, 문자 캡처⁠, 「⁠보낸 분 도금자⁠」 화면⁠, 지점장이 보내 준 사진의 아랫줄 글자⁠. 마지막 칸에 한 줄을 더 쳤다⁠. 「⁠수금하는 사람이 같은 고시원 옆방에 삽니다⁠. 이 사람도 빚이 있다고 합니다⁠.⁠」 새벽 열두 시 오십 분에 제출 단추를 눌렀다⁠.

아침 아홉 시 정각⁠, 인호는 다시 1332를 눌렀고 안내대로 3번을 눌렀다⁠. 여자 상담원이 받았다⁠.

“⁠받으신 돈이 이십사만 원이고⁠, 일주일 뒤 오십만 원을 갚기로 하셨네요⁠. 선이자를 떼고 주면 실제로 받은 돈이 원금입니다⁠. 연으로 오천 퍼센트가 넘어요⁠. 연 육십 퍼센트를 넘는 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예요⁠. 이십사만 원도 갚으실 의무가 없습니다⁠.⁠”

“⁠이십사도요⁠?⁠”

“⁠네⁠. 연장비도 이자로 칩니다⁠. 가족이나 직장에 빚을 알리는 것도⁠, 사진을 보내는 것도 불법이에요⁠. 채무자대리인 신청하시겠어요⁠?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님이 무료로 붙어서⁠, 앞으로 추심 연락은 변호사님이 대신 받으세요⁠.⁠”

인호는 대답하기 전에 벽 너머 311호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신청할게요⁠.⁠”

*

12월 15일 화요일 오전 아홉 시 이십 분⁠,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민생금융범죄정보분석팀 사무실에서 오진경은 모니터 두 대 앞에 종이컵 믹스커피를 내려놓았다⁠. 마흔한 살 진경은 신고를 읽을 때 신고자 이름을 작게 소리 내어 읽는 버릇이 있었다⁠. 옆자리 박선우가 의자를 굴려 왔다⁠.

“⁠선배⁠, AI가 묶음을 하나 더 냈어요⁠. 열일곱 번째 묶음이요⁠.⁠”

화면에 점과 줄이 퍼졌다⁠. 지난 10월에 들어온 AI 분석 체계는 흩어진 피해 신고와 제보와 민원 삼십팔만 건을 훑어⁠, 사건 사이에 같은 번호나 같은 계좌나 같은 문구가 있으면 줄을 그었다⁠. 열일곱 번째 묶음 가운데에는 낱말 두 개가 떠 있었다⁠. 「⁠신용 무관⁠」 「⁠당일 소액⁠」⁠. 거기서 줄이 사방으로 뻗었다⁠. 「⁠신고·제보·민원 3⁠,112건⁠」 「⁠대출 상담 번호 19개⁠」 「⁠상담자 호칭 ‘⁠최 실장⁠’ 1⁠,104회⁠」 「⁠추심 발신 번호 41개⁠」 「⁠입금 계좌 예금주 27명⁠」⁠.

“⁠분업형이네요⁠. 광고 따로⁠, 대출 따로⁠, 추심 따로⁠.⁠”

“⁠보고서에는 ‘⁠분업형 조직 정황 확인됨⁠’으로 쓰자⁠.⁠”

진경은 개조식으로 대답하고 화면 아래 귀퉁이의 작은 점을 눌렀다⁠. 다른 점들과 생김새가 달랐다⁠. 「⁠추심 통화 끝에 신고 번호를 안내받음 · 51건⁠」⁠.

“⁠이게 뭐야⁠. 추심하는 사람이 1332를 알려 줬다고⁠?⁠”

“⁠여자 목소리래요⁠. 끊기 직전에 작게⁠. 신고 쉰한 건이 다 같은 말이에요⁠.⁠”

진경은 점을 동그라미로 둘렀다⁠. 동그라미가 다 닫히기도 전에 묶음 맨 위에 새 신고 하나가 붙었다⁠. 접수 시각 새벽 열두 시 오십 분⁠. 진경은 습관대로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권인호⁠. 신림동⁠. 스물셋⁠. 이십사 받고 오십⁠. 합성 사진⁠. 입금자명 도금자⁠. 수금하는 사람이 옆방에 산다⁠.⁠”

선우가 웃으려다 말았다⁠.

“⁠옆방이요⁠?⁠”

“⁠옆방⁠.⁠”

진경은 신고서의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읽었다⁠. 「⁠이 사람도 빚이 있다고 합니다⁠.⁠」 커피가 식는 동안 진경은 묶음 가운데에 새 칸 하나를 만들고 이름을 붙였다⁠. 「⁠신림 · 수금책 · 옆방⁠」⁠.

“⁠선배⁠, 국장님이 오후 두 시에 보고 들어오래요⁠. 지난 3월 이실장 때처럼 크게 가자고요⁠.⁠”

선우가 말한 이실장은 올해 3월 금감원이 소비자경보를 낸 사채 조직이었다⁠. 평균 백만 원을 열하루 빌려주고 연 이자율이 많게는 육천팔백 퍼센트였고⁠, 피해자 열에 일곱이 이십 대와 삼십 대였다⁠. 진경은 3월에 경보문의 숫자를 세 번 고쳐 썼다⁠. 숫자는 맞았는데⁠, 경보가 나간 뒤에도 신고는 줄지 않았다⁠.

“⁠크게 가자는 말은 국장님 말이고⁠, 우리는 정확하게 가자⁠.⁠”

“⁠그것도 보고서에 쓸까요⁠?⁠”

“⁠쓰지 마⁠.⁠”

진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일흔한 살 엄마는 교회 권사들과 계를 부었고⁠, 진경이 금감원에 다닌다는 것을 계원들에게 자랑하는 것으로 곗돈 이자를 대신했다⁠.

“⁠진경아⁠, 우리 계원 하나가 신용 무관 어쩌고 하는 문자를 받았대⁠. 이거 믿어도 되니⁠?⁠”

“⁠엄마⁠, 그 번호 지우라고 해⁠. 지금⁠. 내가 끊고 나서도 지우라고 해⁠.⁠”

진경은 전화를 끊고 열일곱 번째 묶음을 다시 보았다⁠. 삼천백열두 건 위로⁠, 숫자가 하나 늘어 있었다⁠. 삼천백열세 건⁠.

*

같은 날 오후 세 시⁠, 배차가 정지된 인호는 갈 데가 없어 라이더 쉼터 전기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곽 형이 휴대전화를 들고 와서 인호 옆에 털썩 앉았다⁠.

“⁠야⁠, 나한테도 왔다⁠. 가족분께서 대신 해결하래⁠. 내가 언제 네 가족이 됐냐⁠?⁠”

“⁠형 주소록에 있었어요⁠.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덕분에 내가 너 형 된 거 처음 알았다⁠.⁠”

곽 형은 문자 캡처를 쉼터 라이더들에게 돌려 보였다⁠. 다들 한 번씩 읽고 같은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셋은 본인이⁠, 하나는 동생이 받았다고 했다⁠. 막내 라이더는 받은 문자를 아직 못 지웠다고 했다⁠. 지우면 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안 간다고 했다⁠.

“⁠인호야⁠, 그래서 신고했어⁠?⁠”

“⁠했어요⁠. 변호사가 붙는대요⁠. 무료로요⁠.⁠”

“⁠변호사가 공짜면 우리 배달비도 공짜로 해 주나⁠?⁠”

“⁠형⁠, 지금 그 말 진짜 재미없어요⁠.⁠”

“⁠알아⁠. 나도 말하면서 알았다⁠.⁠”

곽 형이 인호의 헬멧을 두 번 두드렸다⁠. 이번에는 콜 대신 컵라면 하나가 인호 앞에 놓였다⁠. 정수기 온수가 고장 나 미지근한 물을 부었더니 면이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

12월 16일 수요일 밤 열한 시 이십 분⁠,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인호는 법률구조공단 변호사에게 받은 문자를 다시 읽고 있었다⁠. 「⁠채무자대리인 선임 통지를 마쳤습니다⁠. 앞으로 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받지 마시고 저에게 넘겨 주세요⁠.⁠」 냉장고 문에는 메모지가 한 장 늘어 있었다⁠. 「⁠계란 도둑 잡았습니다 · 범인은 총무님 · 302⁠」⁠.

우진이 들어왔다⁠. 밥솥 앞에서 밥을 푸던 우진의 후드 주머니가 연달아 떨었다⁠. 첫 진동에 우진이 휴대전화를 꺼냈고⁠, 화면이 식탁 위 형광등 빛에 하얗게 떴다⁠. 인호는 우진의 어깨 너머로 글자를 읽었다⁠.

「⁠[금융감독원] 귀하의 번호로 이루어진 추심 행위가 불법으로 신고되었습니다⁠. 채무자에게 채무자대리인이 선임되었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휴대전화가 이어 떨었다⁠. 우진이 꺼냈다⁠. 「⁠정우진 · 담당 고객 권인호 신고 · 미수 500⁠,000원 가산 · 잔액 4⁠,500⁠,000원 · 내일 오전 10시 상동 출근⁠」⁠.

우진은 두 화면을 식탁 위에 나란히 엎어 놓았다⁠. 주걱에서 밥알이 떨어졌다⁠. 우진은 주걱을 밥솥에 꽂아 둔 채 인호를 보았다⁠. 인호의 빚은 무효가 되었고⁠, 오십만 원은 사라지지 않고 우진의 숫자 위로 옮겨 앉아 있었다⁠.

인호는 312호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일 분 뒤⁠, 문이 두 번 울렸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었다⁠.

“⁠312호⁠. 문 좀 열어 봐⁠. 나 내일 부천 간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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