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58자)

묶어 주세요

새벽 러닝크루장이 도깨비였다 · 도결애

잠원동 아파트 경비실은 정문 옆 유리 상자였다⁠. 토요일 오후 두 시⁠, 유리 상자 안에서 젊은 경비원이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내가 유리를 두드리자 경비원은 뚜껑을 젓가락으로 눌러 놓고 창을 열었다⁠.

“⁠세 해 전에 여기서 일하시던 할아버지 아세요⁠? 새벽에 한강에서 뛰시던 분이요⁠.⁠”

“⁠저는 작년에 왔어요⁠. 근데 그 할아버지 얘기는 다들 해요⁠.⁠” 경비원은 컵라면을 내려다보았다⁠. “⁠관리소장님이 그러는데⁠, 구청 방문 간호사가 찾았대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 집을 도는 간호사요⁠. 한 달 넘게 연락이 안 돼서 문을 열어 봤다고⁠. 단발머리였대요⁠. 그 뒤로 그 간호사는 안 왔대요⁠.⁠”

나는 창틀을 쥐었다⁠. 유리가 손바닥에 차가웠다⁠.

“⁠할아버지 짐은요⁠?⁠”

“⁠가족이 다 가져갔는데⁠, 하나 남았어요⁠.⁠” 경비원이 책상 밑에서 종이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 매직으로 「⁠분실물⁠」이라 적혀 있었다⁠. 우산 세 개⁠, 장갑 한 짝⁠, 아이 신발주머니 사이에서 경비원이 러닝화 한 켤레를 들어 올렸다⁠. 회색 러닝화였다⁠. 뒤축이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닳아 있었고⁠, 왼쪽 신발 끈 끝에 노란 고무줄이 감겨 있었다⁠. “⁠할아버지가 근무 끝나면 여기서 갈아 신고 뛰러 나가셨대요⁠. 끈 끝이 풀린다고 고무줄로 감아 두셨대요⁠.⁠”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크루 분이세요⁠?⁠”

“⁠네⁠.⁠”

말이 먼저 나왔다⁠. 크루 분이세요⁠, 라는 물음에 네⁠, 라고 대답한 것은 처음이었다⁠. 경비원은 러닝화를 비닐봉지에 넣어 창밖으로 내밀었다⁠. 컵라면이 다 불어 있었다⁠.

아파트 담장을 따라 걸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둑길이었다⁠. 만보기 딸깍거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엄마⁠, 걷기 모임에 누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해⁠?⁠”

“⁠하루 안 나오면 단톡방에 물어보지⁠. 이틀 안 나오면 전화하고⁠. 사흘 안 나오면 집에 가 봐⁠. 반찬 들고⁠.⁠”

“⁠그 사람이 오지 말라고 하면⁠?⁠”

“⁠그럼 문 앞에 반찬 놓고 와⁠. 나흘째에 또 가고⁠.⁠” 엄마는 숨을 한 번 골랐다⁠. “⁠작년에 영순이 언니가 그렇게 두 달을 안 나왔어⁠. 우리가 두 달 동안 문 앞에 반찬을 놨다⁠. 지금은 언니가 맨 앞에서 걸어⁠.⁠”

“⁠묶어 놓은 건 아니고⁠?⁠”

“⁠묶긴 뭘 묶어⁠. 반찬통 돌려받으러 간 거지⁠.⁠”

엄마는 웃었다⁠. 나는 웃지 못하고 담장 끝에 멈췄다⁠. 할아버지가 안 나오던 한 달 동안⁠, 할아버지 집 문 앞에는 반찬통이 하나도 없었다⁠.

*

영상은 한 달 사이에 둔치의 새벽을 바꾸어 놓았다⁠. 「⁠크루장 vs 신입⁠」은 조회수 백만을 넘겼고⁠, 막내는 하루에 한 번씩 후속편을 올렸다⁠.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분수 앞 잔디밭에 휴대전화를 든 구경꾼이 모였다⁠. 셀카봉을 든 대학생들⁠, 강아지를 안은 부부⁠, 퇴근길에 들렀다는 야간 근무자들⁠. 누군가는 메밀묵을 들고 왔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메밀묵이 잔디밭 가장자리에 일곱 통 놓여 있었다⁠.

“⁠이거 다 크루장님 거래요⁠.⁠” 막내가 통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댓글 보고 가져왔대요⁠. 도깨비는 메밀묵 좋아한다고⁠.⁠”

두억은 출석 콩을 다 옮기기도 전에 메밀묵 통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먹고⁠, 또 한 조각을 먹었다⁠. 일곱 통이 다 비는 데 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환호했다⁠. 두억은 빈 통을 겹쳐 쌓으면서 말했다⁠.

“⁠사람이 주는 건 다 받는다⁠. 도깨비 법이다⁠.⁠”

“⁠크루장님 그 법 방금 만드셨죠⁠.⁠”

“⁠천 년 전에 만들었다⁠.⁠”

공원 안내판 옆에 새 종이가 붙었다⁠. 「⁠새벽 시간 단체 촬영 및 모임 자제 · 이용객 민원 다수 · 한강공원⁠」 다섯 명 넘게 줄지어 달리지 말라는 옛 종이 바로 밑이었다⁠. 치과의사가 두 종이를 번갈아 읽고 말했다⁠. “⁠이러다 반포에서 숨 쉬는 것도 다섯 명씩 하라고 하겠습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공원 관리원이 무전기를 들고 잔디밭으로 걸어왔다⁠. 관리원은 사람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두억을 단번에 찾아냈다⁠.

“⁠크루장님이세요⁠? 새벽 민원이 하루에 서른 건이에요⁠. 사람이 너무 모인다⁠, 소리를 지른다⁠, 메밀묵 통을 버리고 간다⁠.⁠”

“⁠나는 안 불렀다⁠.⁠”

“⁠그럼 누가 불렀어요⁠?⁠”

두억이 막내를 보았다⁠. 막내는 휴대전화를 등 뒤로 숨겼다⁠. 관리원은 한숨을 쉬고 안내문 한 장을 두억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다음 주부터 계도 들어가요⁠. 해 뜨기 전 단체 모임은 자제해 주세요⁠. 계속 모이시면 과태료 얘기까지 나올 수 있어요⁠.⁠”

“⁠해 뜨기 전에 모이는 게 우리 크루다⁠.⁠”

“⁠그러니까 문제죠⁠.⁠”

관리원이 돌아가자 두억은 안내문을 접어 콩 주머니에 넣었다⁠. 콩 사이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크루는 다섯씩 갈라져 구경꾼 사이를 빠져나갔다⁠. 구경꾼 몇이 따라 뛰다가 동작대교 앞에서 하나씩 멈췄다⁠.

*

시월 둘째 주⁠, 나는 다리 여섯 개를 두 발로 건넜다⁠. 일요일 새벽⁠, 크루 달리기를 마치고 혼자 동쪽으로 갔다⁠. 잠수교를 건너 북단⁠, 한남대교를 건너 남단⁠, 동호대교를 건너 북단⁠, 성수대교를 건너 남단⁠, 영동대교를 건너 북단⁠, 청담대교를 건너 남단⁠. 내기 길을 거꾸로 밟아 가는 연습이었다⁠. 다리를 하나 건널 때마다 엄마 단톡방에 숫자 하나를 보냈다⁠. 엄마 친구들은 숫자 하나에 박수 이모티콘을 열두 개씩 보냈다⁠.

치과의사가 준 사탕은 두 다리마다 하나씩 먹었다⁠. 성수대교 위에서 시계가 「⁠혈당 하강 · 71⁠」을 띄웠을 때 사탕 하나를 깨물었고⁠, 십 분 뒤에 숫자가 고개를 들었다⁠. 숫자를 보고 몸을 다루는 일이 조금씩 손에 익었다⁠. 숫자는 무섭게 굴지 않았다⁠. 내가 먼저 보고 먼저 움직이면⁠, 숫자는 그저 길을 알려 주는 안내판이었다⁠.

청담대교 남단에서 다리가 풀렸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을 때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여섯 개였다⁠. 열두 개의 반⁠. 내기 날까지 세 주가 남았다⁠.

계단 위에서 공공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가 났다⁠. 막내였다⁠. 헬멧 위에 헤드랜턴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누나 위치 공유 켜 놓은 거 보고 왔어요⁠. 청담에서 점이 안 움직이길래 쓰러진 줄 알았어요⁠.⁠”

“⁠쓰러진 거 맞아⁠.⁠”

막내는 내 옆에 앉아 생수를 내밀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막내는 강 건너 뚝섬 둔치를 한참 보다가 말했다⁠.

“⁠누나⁠, 저 사실 군대보다 무서운 게 있어요⁠. 다녀왔는데 크루가 없으면요⁠. 끈 풀리고 다들 흩어지고⁠, 제대해서 반포 왔는데 분수 앞에 아무도 없으면요⁠.⁠”

“⁠그럼 끈 있는 게 낫겠어⁠?⁠”

“⁠아뇨⁠. 탈영병은 싫어요⁠.⁠” 막내가 웃었다⁠. 웃는 입꼬리가 금방 내려갔다⁠. “⁠그냥⁠, 누나가 이기고 크루도 있고 그러면 안 돼요⁠?⁠”

나는 대답 대신 생수를 마셨다⁠. 막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내기는 세상에 없었다⁠. 크루장이 이 내기를 고를 때부터 그랬다⁠.

*

월요일 새벽⁠, 나는 할아버지의 러닝화를 비닐봉지째 들고 분수 앞으로 갔다⁠. 구경꾼들이 오기 전이었다⁠. 크루원들이 다리를 풀고 있었고⁠, 두억은 콩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비닐봉지에서 러닝화를 꺼내 잔디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노란 고무줄이 감긴 끈이 이슬에 젖었다⁠.

크루원 몇이 숨을 들이켰다⁠. 은퇴한 수학 교사가 다가와 신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거 할아버지 신발이네⁠. 고무줄⁠.⁠” 두억은 콩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손이 주머니 안에서 멈춰 있었다⁠. 한참 뒤에 두억이 러닝화 앞으로 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으로 닳은 뒤축을 한 번 쓸었다⁠.

“⁠바깥으로 디뎠다⁠. 무릎이 안 좋아서⁠. 내가 안쪽으로 디디라고 백 번은 말했다⁠. 백까지는 콩으로 셌다⁠.⁠”

두억은 짧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손에 쥔 콩 한 알이 끝내 오른손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나는 페메를 보았다⁠. 페메는 깃발을 등에 꽂은 채 잔디밭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러닝화를 보지 않고 있었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얼굴이었다⁠.

“⁠페메 님⁠.⁠”

“⁠…⁠…⁠.⁠”

“⁠할아버지를 찾은 방문 간호사⁠, 페메 님이죠⁠?⁠”

크루원들이 페메를 보았다⁠. 페메는 깃발을 등에서 뽑아 손에 쥐었다⁠. 깃대 끝이 떨렸다⁠.

“⁠네⁠.⁠”

페메는 잔디 위에 깃발을 내려놓았다⁠. 「⁠6⁠:30⁠」이 하늘을 보고 누웠다⁠. 페메가 깃발을 내려놓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달릴 때도⁠, 라면을 끓일 때도 깃발은 늘 페메의 등에 있었다⁠.

“⁠구청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 집을 돌았어요⁠. 한 달에 한 번요⁠. 할아버지는 제 명단 맨 끝이었어요⁠. 제일 건강하셨으니까요⁠. 새벽마다 한강에서 뛰신다고⁠, 틀니가 헐거워서 치과 가야 한다고⁠, 그런 얘기만 하셨어요⁠.⁠” 페메는 러닝화를 보았다⁠. 처음으로 보았다⁠. “⁠한 번 연락이 안 됐는데⁠, 다음 달에 가면 되겠지 했어요⁠. 제일 건강하신 분이니까⁠. 다음 달에 문을 열었어요⁠.⁠”

막내가 휴대전화를 내렸다⁠. 렌즈가 땅을 향했다⁠. 구경꾼이 하나도 없는 잔디밭에 다리 위 버스 소리만 내려왔다⁠.

“⁠그 뒤로 일 그만두고 방에서 안 나왔어요⁠. 일 년이요⁠. 어느 날 새벽 다섯 시에 잠이 안 와서 강에 나왔는데⁠, 크루장님이 할아버지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 크루 사람들한테요⁠. 할아버지 걸음이 느렸다고⁠, 바깥으로 디뎠다고⁠.⁠” 페메가 두억을 보았다⁠. “⁠그날 어깨를 두드려 주셨어요⁠. 다리가 가벼웠어요⁠. 다음 날도 나왔고⁠, 그다음 날도 나왔어요⁠. 나흘째에 또 방에 있고 싶어졌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부탁했어요⁠. 저 묶어 주세요⁠. 안 그러면 저 또 안 나와요⁠.⁠”

페메는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페이스를 셀 때처럼⁠, 들이쉬고 둘⁠, 내쉬고 둘⁠.

“⁠묶이고 나니까 살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 번 더 부탁했어요⁠. 다른 사람도 묶어 주세요⁠. 할아버지처럼 안 되게요⁠. 크루장님은 싫다고 하셨어요⁠. 사람을 묶는 건 밤길 도깨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제가 사흘을 졸랐어요⁠. 크루장님이 처음 묶은 건 저고⁠, 두 번째부터는 제가 데려온 사람들이에요⁠.⁠”

두억이 입을 열었다⁠.

“⁠묶은 건 나다⁠. 묶어 달라고 한 건 이 아이다⁠.⁠”

내 귀에 심장 소리가 올라왔다⁠. 달리지 않는데 오르막의 심장이었다⁠. 나는 첫날을 떠올렸다⁠. 가입 신청을 누르던 새벽 두 시⁠. 신청서 맨 밑에 「⁠한마디⁠」 칸이 있었다⁠. 나는 한마디 칸에 무엇을 썼는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쓰고 나서 잊으려고 했다⁠.

“⁠예서 씨가 가입 신청할 때 쓴 한마디⁠, 제가 읽었어요⁠.⁠” 페메가 말했다⁠. “⁠「⁠혼자 뛰기 무서워서요⁠」 새벽 두 시에요⁠.⁠”

크루원들이 나를 보았다⁠.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시계는 「⁠심박 118⁠」을 띄우고 있었다⁠. 숫자는 내가 무슨 말을 숨겨 왔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 걸었어요⁠. 첫날 크루장님한테 예서 씨 어깨 꼭 두드려 달라고 한 것도 저예요⁠. 사흘째에 그만두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첫날 묶어야 한다고⁠.⁠” 페메는 잔디 위의 깃발을 집어 들었다⁠. 깃대에 묻은 이슬을 바람막이 소매로 닦았다⁠. “⁠예서 씨 데려온 거⁠, 후회 안 해요⁠. 근데 예서 씨가 크루를 깨려는 건⁠, 제가 데려와서예요⁠.⁠”

나는 할아버지의 러닝화를 내려다보았다⁠. 노란 고무줄 끝이 바람에 까딱거렸다⁠. 처음 말을 걸어 준 사람이⁠, 처음부터 끈을 쥐고 있었다⁠.

다리 위로 첫 버스가 지나갔다⁠. 두억이 콩 한 알을 마저 오른손으로 옮겼다⁠. 내 앞에서였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묶어 주세요 · 새벽 러닝크루장이 도깨비였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