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87자)

입영 통지서

새벽 러닝크루장이 도깨비였다 · 도결애

막내는 입영 통지서를 종이로 뽑아 왔다⁠. 휴대전화로 받은 것을 일부러 편의점에서 출력해⁠, 비닐 파일에 넣어 들고 왔다⁠. 출석 콩이 돌기도 전에 막내는 파일을 두억 앞에 내밀었다⁠.

“⁠크루장님⁠. 이거 보세요⁠. 입동 다음 날 논산이에요⁠. 오후 두 시까지 훈련소 입소⁠.⁠”

두억은 파일을 받아 들고 오래 보았다⁠. 글자를 읽는 얼굴이 아니었다⁠. 종이를 처음 본 얼굴이었다⁠.

“⁠논산이 어디냐⁠.⁠”

“⁠충청남도요⁠. 여기서 이백 킬로미터 넘어요⁠. 다섯 주 동안 거기 있어야 돼요⁠.⁠” 막내는 손가락으로 통지서의 날짜를 두드렸다⁠. “⁠근데 저 끈 있잖아요⁠. 새벽 다섯 시면 제 발이 반포로 간다고요⁠. 훈련소에서 새벽에 철조망 넘어서 걷기 시작하면 그거 탈영이에요⁠. 누나⁠, 탈영병 되면 숏폼 계정도 정지돼요⁠?⁠”

“⁠계정보다 네가 먼저 정지돼⁠.⁠”

“⁠그러니까요⁠!⁠”

치과의사가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하늘색 봉투를 꺼냈다⁠. 잠원동 대기실 서랍에 반쯤 닫혀 있던 봉투였다⁠. 치과의사는 봉투를 막내의 파일 위에 포갰다⁠.

“⁠십이월 첫 토요일⁠, 멜버른입니다⁠. 딸이 결혼합니다⁠. 비행기로 열한 시간⁠.⁠” 치과의사는 두억을 보지 않았다⁠.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막내가 먼저 꺼내는 바람에요⁠.⁠”

두억은 종이 두 장을 들고 서 있었다⁠. 강바람이 종이 끝을 들썩였다⁠. 두억은 종이를 접지도 돌려주지도 않고 콩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출석⁠.⁠”

*

달리기가 끝난 뒤 크루는 편의점 파라솔 아래로 모였다⁠. 의자가 모자라서 몇은 라면 기계에 기대 서 있었다⁠. 크루 열둘이 한자리에 다 앉은 것은 내가 들어온 뒤로 처음이었다⁠. 나는 얼굴은 다 알면서 직함으로만 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다시 보았다⁠. 필라테스 강사⁠, 새벽 배송 기사⁠, 은퇴한 수학 교사⁠, 시험 준비만 네 해째인 공시생⁠, 쌍둥이 자매⁠, 그리고 페메와 치과의사와 막내⁠.

두억이 파라솔 기둥에 등을 기댔다⁠.

“⁠말해 봐라⁠. 다들⁠.⁠”

“⁠저는 누나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막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군대는 가야죠⁠. 탈영병은 싫어요⁠.⁠”

“⁠저도요⁠.⁠” 새벽 배송 기사가 말했다⁠. “⁠새벽 다섯 시에 여기 오느라 두 시간 일찍 배송을 끝내요⁠. 수당이 한 시간에 만 원씩 날아가요⁠.⁠”

“⁠저는 크루장님이요⁠.⁠” 필라테스 강사가 말했다⁠. “⁠끈 풀리면 저 안 와요⁠. 제가 저를 알아요⁠. 저는 회원들한테 꾸준함을 가르치는데⁠, 제가 꾸준한 건 여기뿐이에요⁠.⁠”

은퇴한 수학 교사는 크루장 편이었고⁠, 공시생은 나였다⁠. 쌍둥이 자매는 한 사람씩 다른 편을 골랐다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언니가 크루장님 편이면 나는 신입 편이야⁠.⁠” “⁠너 어제 내 레깅스 입고 나왔지⁠?⁠”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데⁠?⁠” 쌍둥이의 표는 레깅스 한 벌 때문에 갈렸다⁠. 치과의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 예서 씨입니다⁠.⁠” 페메는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 필요가 없는 얼굴로 두억 옆에 서 있었다⁠.

두억이 콩을 꺼내 파라솔 탁자 위에 두 줄로 놓았다⁠. 한 사람이 말할 때마다 콩 한 알이 이쪽 줄이나 저쪽 줄로 갔다⁠. 마지막 콩이 놓였다⁠. 여섯과 여섯이었다⁠.

“⁠무승부네요⁠.⁠” 막내가 말했다⁠. “⁠크루장님 이거 콩 다시 세 봐요⁠. 여섯부터는 못 세시잖아요⁠.⁠”

“⁠여섯은 센다⁠.⁠”

웃음이 났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콩 두 줄이 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콩을 내려다보다가 두억을 보았다⁠.

“⁠크루장님⁠. 막내는 군대에 가야 하고⁠, 원장님은 딸 결혼식에 가야 해요⁠. 배송 기사님은 일을 해야 하고요⁠. 끈이 다들 할 일을 막고 있어요⁠.⁠”

“⁠끈이 없던 때가 있었다⁠.⁠”

두억은 콩 한 알을 집어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세 해 전까지는 끈이 없었다⁠. 어깨를 두드려 줘도 사람들은 오고 싶은 날 오고⁠, 안 오고 싶은 날 안 왔다⁠. 잠원동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밤 근무 끝나고 새벽에 여기 와서 뛰었다⁠. 걸음이 느렸다⁠. 막내보다 다섯 배쯤 느렸다⁠. 그래도 일 년을 하루도 안 빠졌다⁠.⁠”

파라솔 아래가 조용해졌다⁠. 라면 기계가 혼자 꾸르륵 소리를 냈다⁠.

“⁠겨울에 안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안 나오고⁠, 이틀 안 나왔다⁠. 나는 오고 싶은 날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에 할아버지 방에서 할아버지가 발견됐다⁠. 혼자였다⁠.⁠” 두억은 콩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어깨가 제일 무거웠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어깨를 한 달 동안 못 두드렸다⁠.⁠”

“⁠그래서 묶으셨어요⁠?⁠”

“⁠그래서 묶었다⁠.⁠”

“⁠묶어 둔다고 사람이 안 죽는 게 아니에요⁠.⁠”

“⁠안 묶었더니 죽었다⁠.⁠”

나는 할 말을 골랐다⁠. 고를 말이 없었다⁠. 막내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청년 고립 보고서 … 석 달 넘게 정서적으로 고립된 청년 16⁠.9퍼센트⁠」

“⁠누나⁠, 이거 우리 얘기 아니에요⁠? 저 작년에 재수할 때 석 달 넘게 아무하고도 말 안 했어요⁠. 편의점 알바한테 봉투 필요 없어요⁠, 그게 하루 대사였어요⁠.⁠”

막내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막내가 휴대전화를 내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군대는 가야 돼요⁠. 거기 가면 강제로 사람들이랑 말하잖아요⁠.⁠”

“⁠그건 끈이 아니냐⁠.⁠” 두억이 물었다⁠.

“⁠그건 나라 끈이죠⁠. 다섯 주 지나면 풀리잖아요⁠.⁠”

두억은 대답하지 않았다⁠. 페메가 탁자 위의 콩 두 줄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 콩이 한 줌이 되자 두억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무승부면 내기대로 가면 되죠⁠. 입동에요⁠.⁠”

페메는 말을 마치고 계단으로 갔다⁠. 나는 의자를 밀고 뒤따라갔다⁠. 계단 중간에서 페메가 멈췄다⁠.

“⁠페메 님⁠. 할아버지⁠, 아셨어요⁠?⁠”

페메는 돌아보지 않았다⁠. 계단 난간을 쥔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한참 뒤에 대답이 왔다⁠.

“⁠입동에 봐요⁠, 예서 씨⁠.⁠”

깃발이 계단 끝에서 한 번 펄럭이고 사라졌다⁠.

*

투표가 끝난 날 밤⁠, 잠원동 치과 대기실에서 작전 회의가 열렸다⁠. 회의라고 해야 셋이었다⁠. 치과의사는 진료 의자를 눕혀 막내를 앉히고⁠, 나는 접수대에 노트북을 펼쳤다⁠.

“⁠누나⁠, 제 역할은 촬영이에요⁠. 다리 열두 개 전부 찍어서 실시간으로 올리면 증거가 남잖아요⁠.⁠”

“⁠도깨비 내기에 증거가 무슨 소용이야⁠.⁠”

“⁠조회수요⁠.⁠”

치과의사는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포도당 사탕이 한가득이었다⁠.

“⁠제 역할은 보급입니다⁠. 장거리 뛰다가 혈당이 떨어지면 이걸 하나씩 드세요⁠. 다리 두 개마다 하나⁠.⁠”

“⁠원장님 치과의사잖아요⁠. 사탕을 왜 이렇게 많이 갖고 계세요⁠?⁠”

“⁠환자분들한테는 비밀입니다⁠. 진료 끝나고 제가 먹습니다⁠. 이혼한 남자의 저녁은 대개 사탕입니다⁠.⁠”

막내가 진료 의자에서 웃다가 침 흡입기를 건드렸다⁠. 기계가 쉬익 소리를 냈고 막내가 비명을 질렀다⁠. 치과의사가 스위치를 끄며 말했다⁠.

“⁠경비 할아버지⁠, 제 환자셨습니다⁠.⁠” 치과의사는 꺼진 흡입기를 제자리에 꽂았다⁠. “⁠틀니를 맞춰 드렸어요⁠. 새벽에 뛰고 나서 오시면 숨이 차서 입을 오래 못 벌리셨지요⁠. 마지막으로 오신 날⁠, 틀니가 헐겁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맞추자고 했는데 안 오셨어요⁠.⁠” 치과의사가 사탕 봉지를 묶었다⁠. “⁠막내 영상에 할아버지 얘기 단 사람⁠, 저입니다⁠. 아무도 답을 안 달더군요⁠.⁠”

막내가 진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의 표가 혼자 깜빡였다⁠.

*

한 주 동안 나는 한강대교를 두 발로 건넜다⁠. 다섯 시 크루 달리기를 마치고 혼자 동작대교를 지나⁠, 노들섬을 밟고⁠, 한강대교를 북쪽으로 건너 이촌 둔치를 거쳐 돌아왔다⁠. 다리 위의 바람은 둔치의 바람과 달랐다⁠. 강 한가운데에서는 바람이 막는 것 없이 옆에서 밀었고⁠, 나는 비스듬히 기운 채로 뛰었다⁠. 다리 끝에 닿았을 때 시계가 「⁠심박 152⁠」를 보여 주었다⁠. 나는 숫자를 보고 숨을 두 번 길게 내쉬었다⁠. 숫자가 내려갔다⁠. 숫자를 끄라던 사람에게서 숨으로 숫자를 내리는 법을 배운 꼴이었다⁠.

엄마가 걷기 모임 단톡방 화면을 찍어 보냈다⁠. 「⁠우리 딸 이번 주 한강대교 건넜대요⁠」 밑에 아주머니들의 답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장하다⁠」 「⁠도깨비 이겨라⁠」 「⁠나물 먹여⁠」 엄마 친구 열두 명이 내 편이었다⁠. 대전에서는 투표가 무승부가 아니었다⁠.

점심은 여전히 김밥을 풀어서 먹었다⁠. 팀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자기 김밥을 반 잘라 우엉만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기획안은 크루를 빼고 다시 썼다⁠. 「⁠새벽 러너를 위한 저당 디저트⁠」 대신 「⁠먹는 순서가 있는 디저트⁠」 시식대에 채소 칩⁠, 그릭 요거트⁠, 무화과 타르트를 차례로 놓는 기획이었다⁠. 팀장은 기획안을 읽고 말했다⁠. “⁠크루 빼니까 덜 웃기다⁠. 대신 예서 씨가 덜 졸아⁠.⁠” 기획안은 통과되었다⁠.

*

새벽 두 시⁠, 다시 공공 자전거를 탔다⁠. 이번에는 다리를 하나씩 건너며 남북을 바꾸는 길을 바퀴로 그려 볼 생각이었다⁠. 반포에서 잠수교를 건너 북단으로⁠, 한남대교를 건너 남단으로⁠. 한남대교 남단 계단을 내려가자 교각 밑에 지난번의 회사원이 또 있었다⁠. 넥타이 대신 이번에는 점퍼 차림이었다⁠. 교각을 돌며 휴대전화 지도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압구정역까지 도보 9분⁠」이 떠 있었다⁠.

교각 그늘에서 오토바이 헬멧이 몸을 일으켰다⁠. 헬멧 아래로 형광 조끼가 보였다⁠. 「⁠대리운전⁠」 대리 기사 차림이었고⁠, 손에는 남의 자동차 열쇠 대신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헬멧이 회사원의 등을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회사원이 한 바퀴를 더 돌았다⁠.

“⁠그만하세요⁠.⁠”

헬멧이 나를 돌아보았다⁠. 헬멧 유리에 내 형광 주황 조끼가 비쳤다⁠.

“⁠아가씨구나⁠. 반포 신입⁠.⁠”

“⁠저 사람 밤새 돌리실 거예요⁠?⁠”

“⁠밤새는 아니고 해 뜰 때까지⁠. 아침에 정신 들면 집 앞이야⁠. 우리가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야⁠.⁠” 헬멧 안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사람이 밤새 헤매는 걸 구경하는 게 재밌거든⁠. 두억이는 그걸 못 하게 해⁠. 반포에선 사람을 홀리면 안 된대⁠. 촌스럽게⁠.⁠”

헬멧이 손가락으로 회사원을 한 번 더 밀었다⁠. 회사원이 비틀거리다가 교각을 끌어안았다⁠.

나는 회사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저씨⁠, 이쪽이에요⁠. 계단이요⁠.⁠” 회사원은 순순히 따라왔다⁠. 세 걸음을 걷자 몸이 교각을 향해 휘었다⁠. 내가 당기는 힘보다 교각이 당기는 힘이 셌다⁠. 헬멧이 손뼉을 쳤다⁠.

“⁠아가씨 힘으로는 안 돼⁠. 이 사람은 지금 우리 거야⁠. 두억이가 오면 몰라도⁠.⁠”

나는 회사원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멈췄다⁠. 크루장에게는 전화번호가 없었다⁠. 콩은 배터리가 안 나간다던 사람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도로 넣고 회사원의 손목을 두 손으로 쥐었다⁠. 회사원의 맥이 내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뛰었다⁠.

“⁠아가씨⁠, 우리 판에서 아가씨한테 걸었어⁠. 밤길 도깨비들이 입동 내기에 판돈을 다 걸었다고⁠. 두억이 진다에 열에 여덟⁠.⁠”

“⁠왜요⁠?⁠”

“⁠우리 좌장님이 반포 땅을 좋아하시거든⁠.⁠” 헬멧이 고개를 기울였다⁠. 헬멧 그림자가 교각 위로 길게 누웠고⁠, 그림자 정수리에 짧은 뿔 둘이 솟아 있었다⁠. “⁠아가씨가 이기면 두억이는 뜨고⁠, 반포는 빈 땅이 돼⁠. 빈 땅엔 아무나 들어가도 돼⁠.⁠”

회사원이 교각을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구 분이래요⁠. 아까도 구 분이었는데⁠.⁠”

헬멧이 대리운전 조끼의 지퍼를 올렸다⁠.

“⁠열심히 뛰어⁠, 아가씨⁠. 우리가 다 응원해⁠.⁠”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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