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96자)

암사에서

새벽 러닝크루장이 도깨비였다 · 도결애

엿새 동안 나는 뛰지 않았다⁠. 엄마가 흑석동 원룸에 눌러앉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첫날 내 냉장고를 열어 보고 한숨을 쉬더니⁠, 다음 날 아침부터 나물을 무쳤다⁠. 시금치⁠, 고사리⁠, 무⁠, 도라지⁠. 원룸 싱크대가 엄마의 반찬통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밥상에 나물을 먼저 놓고⁠, 계란을 그다음에⁠, 밥을 맨 마지막에 놓았다⁠. 숟가락을 밥부터 대면 손등을 쳤다⁠.

“⁠엄마⁠, 나 내기 그만두라며⁠.⁠”

“⁠그만두라고 했지⁠. 안 그만둘 거잖아⁠.⁠” 엄마는 도라지를 내 그릇에 얹었다⁠. “⁠안 그만둘 거면 나물부터 먹어⁠.⁠”

다섯 시면 나는 발이 시키는 대로 반포에 갔다⁠. 엄마는 첫날 따라 나왔다가⁠, 둘째 날부터는 원룸 창가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반포에서는 뛰지 않았다⁠. 출석 콩을 받고⁠, 잔디밭에 앉아 크루원들이 뛰어갔다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페메는 나를 보지 않고 뛰어갔다가⁠, 돌아오면 내 옆에 생수 한 병을 놓고 갔다⁠.

밤에는 표를 다시 만들었다⁠. 다리 열두 개를 한 줄씩 놓고⁠, 줄마다 할 일을 적었다⁠. 일 킬로미터 뛰고 일 킬로미터 걷기⁠. 다리 위에서는 걷기⁠. 두 다리마다 사탕 하나⁠. 심박이 백육십을 넘으면 걷기⁠. 혈당이 칠십 밑으로 가면 무조건 멈추기⁠. 의사가 말한 두 주는 다 지켜지지 않았다⁠. 대신 의사가 말한 천천히는 지키기로 했다⁠. 다리 열두 개를 천천히 이기는 표였다⁠. 그런 표가 될 수 있는지는 표도 몰랐다⁠.

*

입동 새벽 두 시 반⁠, 암사 둔치에는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섞여 있었다⁠.

사람은 막내 영상을 보고 온 구경꾼이었다⁠. 휴대전화 불빛이 둔치 잔디밭에 반딧불처럼 흩어져 있었다⁠. 공원 관리원이 무전기를 들고 구경꾼 사이를 오가며 “⁠한 줄로요⁠, 자전거길 비워 주세요⁠” 하고 외쳤다⁠. 반포 분수 앞에 고깔을 세웠던 관리원이었다⁠. 일부러 이쪽 근무를 바꿔 왔다고 했다⁠. 어깨를 한 번 두드려 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사람 아닌 것들은 암사대교 교각 그늘에 앉아 있었다⁠. 헬멧⁠, 모자⁠, 우산⁠,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들⁠. 가로등 앞을 지날 때마다 뿔 달린 그림자가 교각에 비쳤다⁠. 교각 맨 앞의 돌 위에 좌장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접은 우산을 가로로 눕혀 두고 있었다⁠.

“⁠증인이 다 왔네⁠.⁠” 좌장이 말했다⁠. “⁠밤길 판 생긴 이래 제일 큰 판이야⁠.⁠”

크루는 출발선 옆에 모였다⁠. 치과의사는 공공 자전거 바구니에 사탕 봉지 두 개와 생수 여섯 병을 실었다⁠. 막내는 헤드랜턴에 휴대전화 거치대를 달았다⁠. 머리는 아직 길었다⁠. 내일 오후 두 시까지 논산이었다⁠.

“⁠누나⁠, 제가 따라가면서 다리 하나마다 실시간 올려요⁠. 제목도 정했어요⁠. 「⁠입동 레전드⁠」⁠”

“⁠레전드 아니면⁠?⁠”

“⁠그럼 「⁠입동 다큐⁠」요⁠.⁠”

엄마는 오지 않았다⁠. 반포 분수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결승선에 엄마가 서 있으면 나는 거기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엄마는 그걸 알고 반포를 골랐다⁠.

두억은 출발선 앞에서 바람막이 후드를 머리까지 끌어 썼다⁠. 페메가 옆에 서서 등의 깃발을 고쳐 꽂았다⁠. 깃발에는 「⁠6⁠:30⁠」 대신 「⁠4⁠:00⁠」이 적혀 있었다⁠. 일 킬로미터에 사 분⁠. 나는 「⁠4⁠:00⁠」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사 분이면 페메가 숨이 넘어갈 속도였다⁠. 두억은 깃발을 보지 않았다⁠.

나는 출발선을 따라 두억 앞으로 걸어갔다⁠. 구경꾼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두억이 후드 그늘 안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접을 수 있다⁠.⁠”

“⁠크루장님도요⁠.⁠”

“⁠도깨비는 내기를 못 접는다⁠.⁠”

“⁠사람도 오늘은 못 접어요⁠. 엄마가 반포에 서 있어서요⁠.⁠”

두억의 입꼬리가 귀 밑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교각 앞의 돌 위에서 좌장이 목청을 높였다⁠.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둔치 끝까지 갔다⁠.

“⁠증인이 규칙을 말할게⁠. 다리 열둘을 차례로⁠, 하나도 빼지 말고 강을 건널 것⁠. 마지막은 잠수교⁠. 반포 분수 앞에 먼저 닿는 사람이 이겨⁠. 해가 먼저 뜨면 둘 다 지고⁠.⁠” 좌장이 우산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지름길은 안 돼⁠. 밤길 도깨비가 보고 있으니까⁠.⁠”

교각 그늘의 것들이 낄낄 웃었다⁠. 길을 접어 주겠다던 입으로 지름길을 막는 것이 우스운 모양이었다⁠.

세 시 정각⁠, 좌장이 우산을 펼쳤다⁠. 비는 오지 않았다⁠.

*

첫 다리는 암사대교였다⁠. 남단에서 북단으로⁠. 두억과 페메가 먼저 다리 위로 올라갔고⁠, 둘의 그림자가 다리 조명 사이로 금세 작아졌다⁠. 나는 표대로 뛰었다⁠. 일 킬로미터를 뛰고⁠, 다리 위에서는 걸었다⁠. 다리 위의 바람이 옆에서 밀었고⁠, 강 한가운데에서 시계가 「⁠심박 148⁠」을 보여 주었다⁠. 숨을 두 번 길게 내쉬자 숫자가 내려갔다⁠.

암사대교 북단에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면 두 번째 다리⁠, 광진교였다⁠. 광진교에 닿기도 전에 두억과 페메가 다리 한가운데에서 멈춰 있는 것이 보였다⁠.

광진교 난간 옆 벤치에 배달 라이더 하나가 누워 있었다⁠. 헬멧을 베개 삼아 베고⁠, 휴대전화는 가슴 위에서 계속 울렸다⁠. 두억이 라이더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페메가 두억의 바람막이 소매를 잡아끌고 있었다⁠.

“⁠크루장님⁠, 가세요⁠. 좌장이 깔아 놓은 사람이에요⁠.⁠”

“⁠지친 건 진짜다⁠.⁠”

두억은 방망이로 라이더의 어깨를 톡 쳤다⁠. 라이더가 잠든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억은 몸을 일으켜 다시 뛰었다⁠. 페메가 한숨을 쉬며 뒤따랐다⁠. 나는 걸으며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라이더 곁을 지날 때 라이더가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아⁠, 잘 잤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고⁠, 라이더는 이번에는 일어나서 받았다⁠.

두 다리를 건넜다⁠. 사탕 하나를 깨물었다⁠. 단맛이 혀를 덮었다⁠.

*

천호대교에서는 넥타이 맨 회사원 둘이 가로등을 돌고 있었다⁠. 올림픽대교에서는 편의점 조끼를 입은 알바가 다리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있었다⁠. 다리마다 누군가가 있었고⁠, 다리마다 두억이 멈췄다⁠. 페메의 깃발이 다리마다 두억의 등 뒤에서 초조하게 펄럭였다⁠.

나는 다리마다 조금씩 따라붙었다⁠. 천호대교 북단에서 두억과 나 사이에 다리 하나가 있었고⁠, 올림픽대교 남단에서는 다리 반이 있었다⁠. 표대로 뛰고 표대로 걸었을 뿐이었다⁠. 치과의사가 자전거로 내 옆을 지나며 생수를 건넸다⁠.

“⁠예서 씨⁠, 심박이 백오십오입니다⁠. 걸으세요⁠.⁠”

“⁠원장님 제 시계 어떻게 보세요⁠?⁠”

“⁠막내가 예서 씨 시계 화면을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구독자들이 다 봅니다⁠. 지금 댓글이 「⁠걸어라⁠」로 도배됐습니다⁠.⁠”

막내의 자전거가 뒤에서 따라오며 헤드랜턴을 깜빡였다⁠. “⁠누나⁠, 동접 이만이에요⁠! 다들 누나 혈당 보고 있어요⁠! 「⁠칠십 밑으로 가면 멈춰⁠」 댓글이 고정됐어요⁠!⁠”

나는 웃다가 숨이 찼다⁠. 걸었다⁠. 이만 명이 내 혈당을 보며 걸으라고 하는 새벽이었다⁠. 회사 단톡방 서른 명보다 많았고⁠, 엄마 걷기 모임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중 누구도 내 어깨를 두드릴 수는 없었다⁠.

올림픽대교를 건너 남단으로 내려오면서 사탕 하나를 더 먹었다⁠. 네 다리였다⁠.

치과의사가 자전거를 세우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화면 불빛에 안경이 하얗게 떴다⁠.

“⁠딸이 보고 있답니다⁠. 멜버른은 지금 아침 일곱 시라고요⁠.⁠” 치과의사가 화면을 내게 보여 주었다⁠. 「⁠아빠 지금 화면에 나왔어⁠. 자전거 바구니에 사탕 너무 많아⁠. 아빠 치과의사 맞아⁠?⁠」 치과의사가 웃었다⁠. 잠원동 대기실에서 그림책을 펼치던 얼굴이었다⁠. “⁠답장을 했습니다⁠. 십이월 첫 토요일에 간다고요⁠. 아직 비행기 표는 없는데⁠, 먼저 보냈습니다⁠.⁠”

“⁠원장님⁠, 제가 지면요⁠?⁠”

“⁠그럼 표를 못 사겠지요⁠. 그래도 답장은 이미 갔습니다⁠.⁠” 치과의사는 페달에 발을 올렸다⁠. “⁠예서 씨⁠, 사탕은 두 다리마다 하나입니다⁠. 제 딸한테 혼납니다⁠.⁠”

*

다섯 번째 다리는 잠실철교였다⁠. 지하철이 다니는 다리 옆에 사람이 걷는 길이 붙어 있었고⁠, 첫차 전이라 철로는 조용했다⁠. 철교 중간에서 두억이 멈춰 있었다⁠. 대리운전 조끼를 입은 사람이 철교 난간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진짜 대리 기사였다⁠. 헬멧을 쓰지 않았고⁠, 그림자에 뿔이 없었다⁠. 손에 남의 자동차 열쇠가 다섯 개나 쥐여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두억을 따라잡았다⁠. 페메가 나를 보고 깃발을 움켜쥐었다⁠.

“⁠크루장님⁠, 예서 씨 왔어요⁠. 가세요⁠, 제발⁠.⁠”

두억은 대리 기사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두억 옆에 멈췄다⁠. 표에는 다리 위에서 걷기라고 적혀 있었다⁠. 표에는 상대 옆에서 멈추기는 없었다⁠.

“⁠크루장님⁠, 이 사람들 좌장이 깔아 놓은 거예요⁠. 다리마다 하나씩요⁠. 크루장님 멈추시게 하려고요⁠.⁠”

“⁠안다⁠.⁠”

“⁠아시면서 왜 멈추세요⁠?⁠”

“⁠지친 건 진짜다⁠. 좌장이 데려다 놨어도⁠, 이 사람 어깨는 진짜로 무겁다⁠.⁠” 두억이 방망이를 손목으로 돌렸다⁠. 대리 기사가 난간에서 이마를 떼고 크게 하품을 했다⁠. 두억이 나를 보았다⁠. “⁠너도 지쳤다⁠. 네 어깨도 진짜로 무겁다⁠.⁠”

“⁠제 어깨는 건드리지 마세요⁠.⁠”

“⁠안 건드린다⁠. 오늘은⁠.⁠”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나는 철교 위를 다시 뛰었다⁠. 다리 위에서는 걷기라고 했던 표를 처음으로 어겼다⁠. 등 뒤에서 페메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서 씨⁠, 지금이라도 접어요⁠! 의사가 두 주라고 했다면서요⁠!⁠”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흔들었다⁠. 페메가 첫날 깃발을 잡아당기라고 했던 손이었다⁠. 철교 북단에 닿았을 때 등 뒤에서 고무 밑창 소리가 다가왔다⁠. 두억이 나를 지나쳤다⁠. 페메가 지나쳤다⁠. 페메가 지나치면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바나나 반 개였다⁠.

*

여섯 번째 다리⁠, 잠실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다리 위에서 시계가 떨렸다⁠.

「⁠혈당 하강 · 71⁠」

바나나를 먹었다⁠. 사탕도 하나 먹었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숫자를 봤다⁠. 「⁠69⁠」 표에는 칠십 밑으로 가면 무조건 멈추기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다리 위에 멈췄다⁠. 다리 아래 강물이 검게 흘렀다⁠. 두억과 페메의 그림자가 남단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치과의사가 자전거에서 내려 내 옆으로 왔다⁠. 사탕 봉지를 열어 두 개를 더 쥐여 주었다⁠. 막내는 헤드랜턴을 끄고 휴대전화를 내렸다⁠. 처음으로 찍지 않았다⁠.

“⁠누나⁠, 댓글이 「⁠멈춰서 다행⁠」이에요⁠.⁠”

“⁠몇 분 멈춰야 돼요⁠?⁠” 내가 치과의사에게 물었다⁠.

“⁠십오 분입니다⁠. 숫자가 올라오는 걸 보고 가셔야 합니다⁠.⁠”

십오 분이면 다리 하나가 더 벌어졌다⁠. 나는 다리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심장 소리를 들었다⁠. 성북동에서 막내를 쫓던 밤의 심장과 달랐다⁠. 빠르지만 고르게⁠, 내가 세는 둘에 맞춰 뛰었다⁠. 숫자를 끄라던 사람이 가르쳐 준 박자였다⁠. 나는 사탕을 입에 넣고 손목을 보았다⁠. 「⁠69⁠」가 「⁠70⁠」이 되기까지 삼 분이 지났다⁠. 손목 시계의 다른 줄이 「⁠04⁠:41⁠」을 띄우고 있었다⁠. 다섯 시까지 십구 분이었다⁠.

잠실대교 남단 계단 위에 검은 롱패딩이 서 있었다⁠. 좌장이었다⁠. 좌장은 펼친 우산을 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비는 오지 않았다⁠. 우산 그늘 안에서 좌장의 목소리가 사근사근했다⁠.

“⁠아가씨⁠. 여섯 개 남았네⁠. 길 접어 줄까⁠? 여기서 반포까지 반으로⁠. 다리 셋만 건너면 분수야⁠.⁠”

우산 그늘 밖에서 강바람이 불었다⁠. 손목의 숫자가 「⁠71⁠」로 올라갔다⁠. 남단 계단 아래로⁠, 두억의 그림자가 일곱 번째 다리를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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