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98자)
다섯 시 정각
새벽 러닝크루장이 도깨비였다 · 도결애
새벽 다섯 시를 구 분 남기고 손목의 시계가 떨렸다. 「혈당 상승 · 168」 반포대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이었다. 어젯밤 회사에서 가을 신메뉴 무화과 타르트를 종류별로 한 입씩 먹었는데, 왼쪽 위팔 바깥쪽에 붙인 동전만 한 패치는 한 입 한 입을 밤새 잊지 않고 있었다.
패치를 붙인 지 열흘째였다. 회사 건강검진 결과지가 먼저 왔다. 「공복 혈당 112 · 당뇨 전 단계 · 생활 습관 개선 권고」 결과지를 찍어 대전의 엄마에게 보냈더니 삼 초 만에 전화가 왔다.
“우리 집 내력이다. 엄마도 너만 할 때 그랬어.”
“엄마 그때 몇 살이었는데?”
“서른둘.”
“나 스물일곱이야.”
“그러니까 네가 다섯 해 빠르다고.”
엄마는 십오 년째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엄마 냉장고 문칸에는 주삿바늘 통과 홍시가 나란히 들어 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연속 혈당 측정 패치를 주문했고, 설명서대로 왼쪽 위팔 바깥쪽에 붙였다. 패치가 잰 숫자는 휴대전화와 손목시계로 건너왔다. 소매를 걷지 않아도 손목만 뒤집으면 숫자가 보였다. 숫자를 보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고, 숫자를 봐야 겨우 겁이 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둘 다였다.
러닝크루는 취향 모임 앱에서 찾았다. 「달리기」를 누르고 동네를 흑석동으로 맞추자 맨 위에 글 하나가 떴다. 「반포 새벽 다섯 시 · 처음 오는 사람 환영 · 빠지는 사람 없음」 마지막 말이 이상했지만 나는 후기부터 읽었다. 백 개가 넘었고 하나같이 짧았다. 「다리가 가벼워져요」 「아침이 달라져요」 「크루장님 머리 뻗친 거 실화」 가입 신청을 누르자 일 분 만에 쪽지가 왔다. 「처음 오시면 분수 앞 파란 깃발을 찾으세요. 제 등만 보고 오시면 돼요. — 페이스메이커」
*
달빛무지개분수는 꺼져 있었다. 다리 난간을 따라 늘어선 노즐 밑으로 강물이 검게 흘렀고, 다리 위를 지나는 첫 버스 소리가 콘크리트를 타고 둔치까지 내려왔다. 분수 앞 잔디밭에 열 명 남짓이 모여 다리를 풀고 있었다. 어깨에 닿는 검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검은 레깅스 위에 형광 주황 러닝 조끼를 입은 사람은 나 하나였다. 대학 때 마라톤 동아리에 사흘 나가고 남은 조끼였다. 필라테스도 사흘, 클라이밍도 사흘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일단 해 보고, 사흘째에 그만두는 사람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만 신호등처럼 빛났다.
“주황 조끼 님, 처음이죠?”
파란 깃발이 먼저 다가왔다. 등에 꽂은 손바닥만 한 깃발에 「6:30」이 적혀 있었다. 깃발 주인은 귀밑에서 자른 단발머리에 낡은 바람막이를 입은 여자였다. 웃을 때 입보다 눈가가 먼저 접혔다.
“페이스메이커예요. 다들 페메라고 불러요. 오늘은 제 뒤에서 일 킬로미터에 육 분 삼십 초로 가요. 숨이 차면 깃발을 잡아당기세요. 그럼 줄여 줄게요.”
“깃발을 잡아당겨요?”
“말하기 힘들 때가 오거든요.”
옆에서 헤드랜턴을 쓴 남자가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 제자리 뛰기를 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랜턴 불빛이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누나 신입이에요? 한 컷만요. 「새벽 다섯 시 크루 신입 등장」 얼굴 안 나와요, 조끼만 나와요.”
“조끼가 얼굴보다 잘 보이는데요.”
“그래서 조회수가 나와요.”
막내 크루원이었다. 재수 끝에 올봄 체육교육과에 들어갔고, 숏폼 플랫폼에 「오운완」 영상을 하루도 안 빼고 올린다고 했다. 오늘 운동 완료, 의 줄임말이었다. 막내 뒤에서 머리가 반쯤 센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치실이었다.
“단 거 드셨죠. 웃을 때 어금니에 무화과 씨가 보여요.”
“아…….”
“혈당이 높으면 잇몸이 제일 먼저 압니다. 저는 잠원동에서 치과를 합니다. 지금은 혼자 합니다. 이혼해서요.”
묻지도 않은 말이었다. 막내가 휴대전화 너머로 속삭였다. “원장님 자기소개 풀버전 떴다.” 이혼한 치과의사는 못 들은 척하고 내 치실 포장을 마저 뜯어 주었다.
다섯 시 정각, 다리 밑 어둠에서 키 큰 사내가 걸어 나왔다. 검은 바람막이의 후드를 목 뒤로 넘기고 검은 운동복 바지를 입었다. 키가 다리 밑 조명에 닿을 만큼 컸고, 헝클어진 검은 머리가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오른 손목의 팔찌에 손가락만 한 나무 열쇠고리가 매달려 있었는데, 혹이 울퉁불퉁 달린 방망이 모양이었고 고리에 열쇠는 하나도 없었다. 손때가 묻어 검게 반들거렸다. 사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줌 꺼내 손바닥에 펼쳤다. 메주콩이었다.
“출석.”
사내는 크루원 앞을 하나씩 지나가며 왼손의 콩을 한 알씩 오른손으로 옮겼다. 내 앞에서도 한 알이 건너갔다.
“앱에 출석 체크 있는데요.”
“두억이다. 크루장. 나는 콩으로 센다.”
“앱이 더 정확해요.”
“콩은 배터리가 안 나간다.”
*
코스는 반포에서 동작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오 킬로미터였다. 자전거길 옆 안내판에 「다섯 명 넘게 줄지어 달리지 마세요 · 한강공원」이 붙어 있었고, 크루는 안내판 앞에서 군말 없이 다섯씩 갈라졌다. 페메가 앞 무리를 끌었고 나머지는 백 미터 뒤에서 따라왔다. 두억은 어느 무리에도 끼지 않고 무리와 무리 사이를 혼자 오갔다. 덩치가 산만 한데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치과의사가 내 옆으로 붙으며 낮게 말했다. “크루장님은 다섯까지는 콩 없이 세십니다. 여섯부터는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요.” 뒤에서 막내가 숨을 헐떡이며 거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다섯 명씩 뛰어요. 안내판이 크루장님 맞춤이에요.” 페메가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웃었다. 크루는 크루장을 놀리는 데 익숙했고, 크루장은 놀림을 콩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나는 시계를 켰다. 혈당을 잡으려면 심박을 백삼십 언저리에 두고 오래 뛰어야 한다고, 영상 열 개가 똑같이 말했다. 일 킬로미터를 지나자 시계가 「심박 158」을 띄웠고, 이 킬로미터에서는 「165」였다. 깃발은 멀어지지 않았고, 내 심장은 귀 안쪽까지 올라와 쿵쿵거렸다.
두억이 어느새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숫자 끄고 숨 들어.”
“심박을 봐야 지방이 타요. 이 구간으로 뛰어야 혈당이 떨어져요.”
“네 심장이 지금 뭐라는지 시계가 아냐?”
“시계가 심장을 재는 거예요.”
“그럼 시계한테 물어봐라. 얘는 왜 이렇게 서두르냐고.”
나는 대답 대신 속도를 올렸다. 깃발을 따라잡으면 이긴다는 계산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멋대로 돌았다. 앞 무리 다섯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페메가 고개를 돌렸고, 동작대교 교각 밑 반환점에서 내 발끝이 보도블록 턱을 찼다. 넘어지지는 않았다.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이자 숨이 목구멍 위로 넘쳤고,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나는 손을 뻗어 페메의 깃발을 잡아당겼다.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정말로 왔다.
페메가 걸음을 멈추고 내 등에 손바닥을 얹었다. 두억은 교각에 등을 기대고 강을 보고 있었다.
“여기 옛날엔 나루였다. 새벽마다 배가 떴다.”
“언제요?”
“옛날.”
두억은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숨을 맞춰 주었다. 들이쉬고 둘, 내쉬고 둘. 두억은 둘보다 큰 수로 세지 않았다. 둘, 둘, 둘을 따라가는 사이에 심장이 귀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돌아오는 이 킬로미터 반은 시계를 보지 않았다. 사실은 볼 힘이 없었다.
*
분수 앞으로 돌아오자 다섯 시 오십팔 분이었다. 강 건너 빌딩 사이로 하늘 끝만 희미하게 밝았다. 크루원들은 잔디밭에 둥글게 서서 종아리를 늘였고, 두억은 원을 한 바퀴 돌며 손목의 방망이 열쇠고리로 사람들의 어깨를 하나씩 톡 쳤다.
“수고했다.”
톡.
“수고했다.”
맞은 사람은 하나같이 어깨를 한 번 털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막내가 “와, 오늘도 리셋” 하고 기지개를 켰다. 두억이 내 앞에 왔다. 피할 틈도 없이 나무 방망이가 오른 어깨에 닿았다.
종아리에 차 있던 납덩이가 빠져나갔다. 사흘 내리 야근하며 머리 뒤쪽에 눌어붙은 뿌연 것도 같이 빠져나갔다. 시계를 봤다. 「심박 141」이 한 번 깜빡이더니 「64」가 되었다. 숨 한 번 사이였다. 짜증은 그대로였다. 다리만 남의 다리처럼 가벼웠다.
다리 밑 조명이 두억의 등 뒤에서 비쳤고, 콘크리트 바닥에 긴 그림자가 누워 있었다. 그림자의 정수리에 뿔이 하나 솟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손톱만 한 것이 살짝 비죽 나와 있었다. 뻗친 머리라고 생각했던 자리였다. 다시 바닥을 봤다. 그림자의 뿔은 손톱만 하지 않았다. 옆에서 페메의 그림자가 깃발을 단 채 기지개를 켰고, 치과의사의 그림자는 치실을 꺼냈다. 아무도 바닥을 보지 않았다.
“방금 뭐 하신 거예요?”
“피곤 좀 덜었다.”
“누가 덜어 달래요?”
“다들 덜고 간다.”
“제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묻지도 않고요.”
“어깨 두드린 거다.”
“열쇠고리로요.”
페메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예서 씨, 크루장님은 원래 그래요. 처음엔 다 놀라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저 오늘만 나온 거예요. 앱에서 나갈게요.”
두억은 콩을 주머니에 쏟아 넣으며 말했다.
“내일 다섯 시.”
“안 와요.”
“온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다리를 오르는 동안 한 번도 숨이 차지 않았다. 숨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 계단보다 무서웠다.
*
지하철에서 막내의 영상을 봤다. 「새벽 다섯 시 크루 신입 등장」 속 주황 조끼는 정말로 얼굴보다 잘 보였다. 조회수는 이천이 조금 넘었다. 댓글 맨 위에 처음 보는 계정이 글을 남겨 두었다. 「반포 새벽에 뿔 그림자 러너 봤다는 사람 나 말고 또 있음?」 밑에 답글이 서른 개 달려 있었다. 「잠실에서도 봄」 「한남대교 밑에서 후드 쓴 거인 봄」 「도깨비 러닝크루 ㅋㅋ」
회사는 성수동 디저트 브랜드였다. 다음 달 팝업 매장을 열 예정이었고, 나는 팝업에 깔 가을 신메뉴를 맡은 마케터였다. 아침 시식은 밤 몽블랑이었다. 팀장이 포크로 몽블랑을 반 갈라 내밀었다.
“예서 씨 요즘 혈당 본다며. 반만 먹어. 반은 내가 먹을게. 나는 아직 젊으니까.”
“팀장님 마흔셋이세요.”
“마음이.”
점심때 페메에게서 쪽지가 왔다. 「예서 씨 오늘 좋았어요. 내일은 깃발 안 잡아당겨도 될 거예요.」 내일이라는 말에 엄지가 멈췄다. 답장 칸에 「저 내일은」까지 쓰고 지웠다가, 「감사했습니다」만 보냈다. 페메는 일 초 만에 웃는 얼굴 하나를 보냈다. 회사 단톡방은 서른 명이 넘는데, 점심시간에 내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은 페메 하나였다. 서른과 하나를 나란히 놓고 보기 싫어서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몽블랑을 먹고 나서 손목을 봤다. 앱의 그래프가 아침부터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한 군데에서 이상했다. 다섯 시 오십팔 분부터 삼 분 동안, 그래프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평평했다. 기계가 꺼진 자리라면 선이 끊겨야 했다. 선은 끊기지 않았다.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밤 열한 시까지 일했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퇴근길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아침에 막 세수한 얼굴이었다. 나는 앱을 열고 크루 화면 맨 아래의 단추를 눌렀다. 「반포 새벽 다섯 시 크루를 나가시겠습니까?」 「네」 알람 다섯 개를 전부 껐다. 이불을 귀까지 끌어 올리고, 내일은 일곱 시 반까지 자겠다고 소리 내어 말했다.
*
발목이 시렸다.
눈을 뜨자 강바람이 먼저 왔다. 나는 꺼진 분수 앞 잔디밭에 서 있었다. 곰돌이가 그려진 극세사 잠옷 바지가 바람에 펄럭였다. 발에는 러닝화가 신겨 있었고, 끈은 내가 늘 묶는 대로 두 번 감아 묶여 있었다. 손목의 시계가 「04:59」를 띄웠다.
잔디밭에 둘러선 크루원들이 나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막내의 휴대전화가 슬그머니 올라갔다가 페메의 손에 눌려 내려갔다. 다리 밑 어둠에서 검은 후드가 걸어 나왔다. 두억이 콩 한 알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겼다.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