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4자)

남의 손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이 방의 버릇이었고 내 몸의 버릇이었다⁠. 바로 아래층 마루에서 효자손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땅⁠, 땅⁠. 두 번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태루가 이미 어머니 곁에 있었다⁠. 말춘이 마루에 이부자리를 펴 주어서 어머니와 태루는 마루에서 잤다⁠. 어머니가 방 안은 답답하다고⁠, 바다 소리를 들으면서 자겠다고 했다⁠. 태루가 휴대전화 불빛에 기대 기저귀를 갈았다⁠. 아래 테이프부터 비스듬히⁠. 다 갈고 나서 태루는 기저귀를 돌돌 말아 봉지에 넣고⁠, 손을 씻으러 수돗가로 나갔다⁠. 손을 씻으러 나가는 뒷모습이 열다섯 해 전 나와 같았다⁠.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앉아⁠.⁠”

나는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마루 끝에 앉았다⁠. 바다는 아직 까맸고⁠, 호텔 부지 가림막의 조명만 하얗게 켜져 있었다⁠. 바람이 차서 어머니 담요를 턱까지 끌어 올렸다⁠.

“⁠어젯밤에 니가 바다에다 대고 소리 지르는 거⁠, 나 다 들었다⁠.⁠”

“⁠무슨 소리였는지는 나도 몰라⁠.⁠”

“⁠나는 알어⁠. 니 어릴 적에 서천 갯벌에서 소리 지를 때랑 똑같았어⁠. 엄마 미워⁠, 였다⁠.⁠”

나는 웃음이 나서 고개를 숙였다⁠. 다섯 살 무렵⁠, 어머니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느라 나를 둑에 앉혀 두고 반나절을 잊어버린 날이 있었다⁠. 나는 둑 위에서 바다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미워⁠. 어머니가 내 소리를 듣고 갯벌에서 달려 나왔다⁠. 장화에 뻘을 잔뜩 묻힌 채였다⁠.

“⁠숙경아⁠.⁠”

“⁠응⁠.⁠”

“⁠이제 다 알았으니께 돌아와라⁠.⁠”

어머니 목소리는 담담했다⁠. 담담할수록 어머니는 진심이었다⁠.

“⁠두배도 알고 태루도 알어⁠. 니 허리 나간 것도 다 알어⁠. 이제 니가 안 들어도 돼⁠. 들기는 두배가 들고⁠, 기저귀는 태루가 갈고⁠. 니는 옆에만 있어라⁠. 옆에만⁠.⁠”

“⁠엄마⁠.⁠”

“⁠남의 손은 차다⁠. 시설 가면 다 남의 손이여⁠. 니 손이 따뜻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바닷바람에 손등이 빨갛게 터 있었다⁠.

“⁠엄마⁠, 태루가 그러더라⁠. 엄마가 내 손 차갑다고 했다며⁠.⁠”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한참 만에 대답했다⁠.

“⁠그건 태루 놈 잘하라고 한 소리여⁠.⁠”

“⁠알아⁠.⁠”

“⁠알면⁠.⁠”

“⁠엄마⁠, 옆에만 있는 게 제일 무거워⁠.⁠”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열다섯 해 동안 엄마 옆에만 있었어⁠. 엄마가 종 치면 일어나고⁠, 안 치면 칠까 봐 못 자고⁠. 아무 일도 안 하는 시간에도 나는 엄마 옆에 있었어⁠. 동창회 못 가고⁠, 계모임 못 가고⁠, 내 병원도 못 가고⁠. 엄마가 옆에만 있으라는 거⁠, 그게 열다섯 해였어⁠.⁠”

어머니가 담요 밑에서 오른손을 꺼냈다⁠. 굳지 않은 쪽 손이었다⁠. 손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뼈만 남은 손이 따뜻했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

“⁠엄마가 쓴 대로 해⁠.⁠”

“⁠시설⁠?⁠”

“⁠엄마가 쓴 거야⁠. 엄마 손으로⁠.⁠”

“⁠그때는 마흔다섯 먹은 딸년이 늙어 갈 줄 몰랐다⁠. 나는 그때 일흔다섯이었어⁠. 십 년 지나면 나는 죽을 줄 알았지⁠. 근데 안 죽었어⁠. 아흔이 됐어⁠. 아흔이 될 줄 알았으면 십 년이라고 안 썼다⁠.⁠”

어머니 말에 나는 웃었다⁠.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도 웃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내 무릎에서 손을 거두었다⁠. 거둔 손으로 담요를 끌어 올리고 바다를 향해 돌아누웠다⁠.

“⁠안 돌아온다는 소리구먼⁠.⁠”

“⁠응⁠.⁠”

“⁠그려⁠. 그럼 나도 남의 손 안 받는다⁠. 니 손 아니면 태루 손이여⁠.⁠”

돌아누운 어머니의 등이 작았다⁠. 마흔두 킬로그램이 담요 밑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나는 마루 끝에 앉아 바다가 밝아 오는 것을 보았다⁠. 첫 빛이 수평선을 가르며 들어왔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태루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

아침에 두배가 승합차 조수석에 어머니를 안아 올렸다⁠. 어제보다 손이 빨랐다⁠. 무릎 밑에 한 팔⁠, 등 뒤에 한 팔⁠. 어머니가 안전띠를 매며 말춘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인 양반⁠, 옹심이 잘 먹었소⁠. 다음엔 새알만 하게 빚게 혀⁠.⁠”

“⁠어머님⁠, 또 오시오⁠. 오실 땐 마카 데리고⁠.⁠”

“⁠마카가 뭐여⁠?⁠”

“⁠어제 가르쳐 드렸잖소⁠.⁠”

“⁠알어⁠. 한 번 더 들을라고 그랬어⁠.⁠”

태루가 휠체어를 접어 뒷자리에 실었다⁠. 두배가 운전석 문을 열다 말고 나를 마당 구석으로 불렀다⁠. 빨랫줄 밑이었다⁠. 젖은 이불에서 물이 똑똑 떨어졌다⁠.

“⁠누나⁠.⁠”

“⁠응⁠.⁠”

“⁠그 종이대로 하면 내가 엄마 맡아야 돼⁠. 아랫단에 그렇게 쓰여 있잖아⁠. 두배가 내 일을 맡아라⁠.⁠”

“⁠응⁠.⁠”

“⁠나 못 해⁠. 진짜 못 해⁠. 가게 넘어가⁠. 수옥이는 장모님 병원 다니고⁠. 우리 집 스물네 평이야⁠. 누나도 봤잖아⁠, 사진으로⁠.⁠”

“⁠알아⁠.⁠”

“⁠그리고 누나⁠, 그 종이 위에 뭐라고 쓰여 있어⁠. 숙경이는 나를 맡아라⁠. 그게 먼저야⁠. 누나가 먼저 안 맡았어⁠. 회갑 날 아침에 쪽지 한 장 두고 나왔어⁠. 아랫단은 윗단 다음이야⁠. 조건을 먼저 깬 건 누나야⁠.⁠”

두배는 밤새 생각한 문장을 꺼냈다⁠. 두배는 늘 다음 문장을 준비해 두는 사람이었다⁠.

“⁠다섯 해는⁠?⁠”

“⁠그 다섯 해는 미안해⁠. 진짜야⁠. 근데 미안한 거랑 맡는 거는 달라⁠. 미안하다고 내 가게 대출 이자가 없어지는 거 아니잖아⁠.⁠”

두배는 빨랫줄 밑에서 이불 물방울을 어깨로 맞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미안하다고 이자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열다섯 해 동안 고생했다고 내 허리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두배야⁠, 그럼 엄마는 누가 맡아⁠?⁠”

“⁠누나가 돌아오든지⁠, 집을 내놓든지⁠. 시설 보내려면 돈이 있어야 돼⁠. 장기요양 등급 받아도 본인이 내는 돈이 있어⁠. 엄마 연금으로는 모자라⁠. 엄마 돈은 없어⁠. 그럼 집밖에 없잖아⁠.⁠”

“⁠그 집은 내 이름이야⁠.⁠”

“⁠그러니까⁠. 누나가 정해⁠.⁠”

두배가 승합차로 돌아갔다⁠. 엔진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고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숙경아⁠, 허리 조심허라⁠. 이불 들지 말고⁠.⁠”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뒷유리 너머로 태루가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태루의 눈이 어머니도 나도 아닌 곳을 보았다⁠. 어디를 보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금요일⁠, 말춘은 이불 드는 일을 맡을 사람을 새로 들였다⁠. 호주에서 온 서핑 강사였다⁠. 사천 해변에 반년째 머물면서 서핑 강습을 하고⁠, 오전에는 일거리를 찾던 청년이었다⁠. 키가 커서 솜이불 다섯 채를 한 번에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말춘이 청년에게 일당을 주며 말했다⁠.

“⁠무거운 거는 저 총각⁠. 숙경 씨는 이제 들지 마시오⁠. 예약 전화 받고⁠, 아침상 차리고⁠, 손님 방 배정하고⁠. 손으로 하는 일 말고 머리로 하는 일⁠.⁠”

“⁠제가 그런 거 해 본 적이 없는데요⁠.⁠”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님 약 시간⁠, 병원 날짜⁠, 요양보호사 오는 날⁠, 기저귀 사는 날 다 머리로 했잖소⁠. 그게 예약 관리래요⁠.⁠”

호주 청년은 나를 「⁠보스⁠」라고 불렀다⁠. 말춘이 보스가 뭐냐고 물었다⁠. 청년이 서툰 한국말로 대답했다⁠. 「⁠사장님⁠. 큰 사람⁠.⁠」 말춘이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숙경 씨가 나보다 크긴 하지⁠.⁠”

나는 마루에 앉아 예약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 대학생이 다음 주 토요일 방 두 개를 원했다⁠. 나는 달력에 이름과 인원을 적었다⁠. 처음으로 남의 날짜를 적는 일이 재밌었다⁠. 내 날짜가 아니고 손님의 날짜라 무겁지 않았다⁠. 등 뒤로 청년이 이불을 안고 지나갔다⁠. 허리가 아프지 않은 하루였다⁠.

*

일요일 점심때 말춘의 아들이 내려왔다⁠. 마흔다섯쯤 된 남자였다⁠. 서울 번호판을 단 흰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당 빨랫줄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오는 호주 청년을 보고⁠, 마루에서 예약 전화를 받는 나를 보았다⁠. 세 번 보고 나서 얼굴이 굳었다⁠.

“⁠엄마⁠, 사람을 더 들였어⁠?⁠”

“⁠손목 다쳤잖소⁠. 손이 모자라서⁠.⁠”

“⁠그러니까 팔자고 했잖아⁠. 손이 모자라면 일을 줄여야지 사람을 늘리면 어떡해⁠.⁠”

말춘의 아들은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 귀퉁이에 「⁠해담개발⁠」 글자가 보였다⁠. 아들은 마루 끝에 봉투를 내려놓고 나를 보았다⁠.

“⁠아주머니가 서울에서 오신 분이세요⁠?⁠”

“⁠네⁠.⁠”

“⁠우리 엄마 일 도와주시는 건 감사한데요⁠, 아주머니가 계시니까 엄마가 더 안 팔려고 해요⁠. 엄마 일흔둘이세요⁠. 혼자 넘어지면 누가 일으켜요⁠? 저는 서울에 있고요⁠. 아주머니가 평생 계실 것도 아니잖아요⁠.⁠”

말춘의 아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차분하게⁠, 몇 번이고 연습한 말을 했다⁠. 두배와 같은 얼굴이었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얼굴과 어머니의 집을 계산하는 얼굴이 한 얼굴에 겹쳐 있었다⁠. 나는 겹친 얼굴을 열다섯 해 동안 명절마다 봤다⁠.

“⁠저는 일당 받는 직원이에요⁠.⁠”

“⁠네⁠?⁠”

“⁠직원이 사장님 집을 팔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요⁠. 팔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건 사장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아들이 말춘을 보았다⁠. 말춘은 대빗자루 대신 예약 달력을 들고 있었다⁠.

“⁠들었냐⁠? 직원도 아는 걸 아들이 모르네⁠.⁠”

“⁠엄마⁠.⁠”

“⁠다음 주 토요일 방 두 개 찼다⁠. 너 잘 데 없다⁠. 자고 갈 거면 마루에서 자⁠.⁠”

아들은 자고 가지 않았다⁠. 해 지기 전에 흰 승용차를 몰고 올라갔다⁠. 서류 봉투는 마루 끝에 그대로 두고 갔다⁠. 말춘은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고 아궁이 불쏘시개 통 옆에 세워 두었다⁠. 불쏘시개 통에 넣지는 않았다⁠.

“⁠버리진 않으시네요⁠.⁠”

“⁠아들이 놓고 간 거니까⁠.⁠”

말춘은 오래 봉투를 보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녁 국은 평소보다 짰다⁠.

*

이튿날 월요일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울 국번이었다⁠.

“⁠조숙경 님 맞으시죠⁠? 저는 서울 서부 노인보호전문기관 상담원입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을 학대하거나 방치한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집을 찾아가 살피는 곳이라고 상담원이 먼저 설명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화곡동 빌라 302호⁠, 마봉실 어르신 관련해 방임 의심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주 보호자였던 따님이 집을 떠난 뒤⁠, 아흔 어르신을 서른 대 손자분 혼자 돌보고 있고⁠, 밤마다 큰 소리가 난다는 내용이에요⁠. 지난주에 어르신이 장거리 이동을 하셨다는 내용도 있고요⁠.⁠”

“⁠누가 신고했어요⁠?⁠”

“⁠신고하신 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흔 어르신의 장거리 이동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어머니가 강릉에 왔다는 건 우리 넷과 말춘⁠, 그리고 수옥만 알았다⁠. 큰집 대화방에는 아무도 올리지 않았다⁠. 나는 마루 끝 기둥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목요일 오전에 댁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어르신과 손자분 뵙고⁠, 가족분들 이야기도 듣고요⁠. 따님도 오실 수 있으세요⁠? 주 보호자셨으니까요⁠.⁠”

“⁠저는 이제 주 보호자가 아니에요⁠.⁠”

“⁠그럼 어떤 보호자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상담원이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목요일 오전 열 시입니다⁠. 오실 수 있으세요⁠?⁠”

“⁠갈게요⁠.⁠”

전화를 끊고 나는 휴대전화로 기차표를 끊었다⁠. 목요일 아침 여섯 시 강릉 출발 서울행⁠. 열여드레 전 회갑 날 아침에는 가는 표만 샀다⁠. 이번에는 돌아오는 표도 같이 샀다⁠. 목요일 저녁 여덟 시 서울 출발 강릉행⁠. 두 장의 표가 휴대전화 화면에 나란히 떴다⁠. 말춘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는 표까지 샀으면 됐소⁠. 방은 그대로 둘게요⁠.⁠”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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