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40자)

다섯 해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강릉역 플랫폼에 두배와 나란히 서 있으려니 열하루 전 서울역이 떠올랐다⁠. 서울역에서 두배는 내 가방끈을 붙잡았다⁠. 오늘은 내 팔꿈치를 붙잡고 있었다⁠. 허리가 시큰거려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는데⁠, 두배가 말없이 팔을 내밀었다⁠. 열차가 들어오자 두배가 내 팔을 놓고 무릎 보호대를 고쳐 찼다⁠. 두배는 긴장하면 늘 무릎 보호대를 만졌다⁠.

휠체어석 칸 문이 열리고 역무원 두 사람이 경사판을 걸쳤다⁠. 태루가 휠체어를 뒤로 돌려 조심조심 끌어내렸다⁠. 휠체어 위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손에는 박하사탕 봉지를 쥐고 있었다⁠. 역무원 하나가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조심히 가세요⁠.⁠”

“⁠고마워유⁠. 사탕 하나 더 잡숴⁠.⁠”

어머니가 사탕을 하나 더 쥐여 주고 나서야 우리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이마로 밀어 올리고 두배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니께 볼 만허다⁠. 이게 몇 해 만이여⁠.⁠”

두배가 먼저 다가갔다⁠.

“⁠엄마⁠, 아흔에 기차를 타시면 어떡해요⁠. 쓰러지시면⁠.⁠”

“⁠쓰러지면 니가 들쳐 업겄지⁠. 숙경이는 허리 나갔다며⁠.⁠”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아래위로 한 번⁠, 다시 위로 한 번이었다⁠. 회갑 날 아침 내 코트를 보던 눈이었다⁠.

“⁠얼굴이 폈다⁠. 사진보다 더 폈어⁠.⁠”

“⁠엄마도 사진 봤어⁠?⁠”

“⁠큰집 대화방에 니 얼굴이 떴는데 내가 안 볼 리가 있냐⁠? 태루가 크게 키워 줬어⁠. 돋보기로 봤다⁠.⁠”

태루가 내 앞으로 왔다⁠. 셔츠 어깨에 이번에는 죽 대신 박하사탕 가루가 묻어 있었다⁠. 태루는 나를 안지 않았다⁠. 대신 내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마⁠, 허리⁠.⁠”

“⁠응⁠.⁠”

“⁠삼촌이 들고 오게 해⁠.⁠”

태루가 두배에게 가방을 건넸다⁠. 두배는 받았다⁠.

*

승합차 조수석은 높았다⁠. 어머니를 휠체어에서 조수석으로 옮겨야 했는데⁠, 나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두배가 어머니 앞으로 갔다⁠. 두배는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를 안아 본 적이 없었다⁠. 팔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몰라 두 번 헛손질을 했다⁠.

“⁠무릎 밑에 한 팔⁠, 등 뒤에 한 팔⁠.⁠”

내가 말했다⁠. 두배가 시키는 대로 팔을 넣고 어머니를 들어 올렸다⁠. 마흔두 킬로그램이 두배의 팔에 실렸다⁠. 두배의 얼굴이 놀랐다⁠.

“⁠엄마⁠, 왜 이렇게 가벼워요⁠.⁠”

“⁠니가 안 들어 봐서 그려⁠. 니 누나는 열다섯 해 들어서 무거운 줄 알어⁠.⁠”

두배가 어머니를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띠를 매 드렸다⁠. 안전띠 버클을 꽂는 손이 떨렸다⁠. 태루와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태루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삼촌 일산에서 기저귀도 갈았어⁠. 이십 분 걸려서⁠.⁠”

“⁠들었어⁠.⁠”

“⁠할머니가 고개 돌리지 말라고 했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솔숲 사이로 바다가 언뜻언뜻 보였다⁠. 조수석에서 어머니가 선글라스를 다시 내리며 중얼거렸다⁠.

“⁠바다가 저렇게 생겼던가⁠.⁠”

*

물빛민박 대문 앞에서 말춘이 대빗자루 대신 방석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에 방석을 세 겹 깔아 두었다⁠. 두배가 어머니를 안아 마루에 앉혔고⁠, 말춘이 어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머님⁠, 먼 길 오셨소⁠. 마카 들어오시오⁠.⁠”

“⁠마카가 뭐여⁠?⁠”

“⁠다⁠, 모두라는 말이래요⁠.⁠”

“⁠그럼 다라고 허지⁠, 왜 마카라고 혀⁠.⁠”

“⁠그럼 어머님네는 그려를 왜 그려라고 허오⁠? 그렇다고 허지⁠.⁠”

어머니가 말춘을 한참 보더니 웃었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웃음이었다⁠.

“⁠이 집 주인이 말이 되는 사람이구먼⁠.⁠”

“⁠어머님 따님이 이불을 잘 넘기는 사람이오⁠.⁠”

“⁠그건 내가 가르쳤어⁠.⁠”

“⁠그럼 어머님이 잘 가르치신 거고⁠.⁠”

두 할머니가 마루에서 서로 사투리로 칭찬을 주고받는 동안 두배는 대문 앞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태루는 마당 수돗가에서 어머니 기저귀 가방을 정리했다⁠. 기저귀 가방을 여는 손이 익숙했다⁠. 회갑 날 밤 테이프를 위에서부터 붙이던 손이었다⁠.

어머니가 마당 너머 바다를 보았다⁠. 해변까지는 골목을 따라 쉰 걸음이었다⁠.

“⁠엄마⁠, 모래 밟아 볼래⁠? 휠체어로 모래 앞까지는 갈 수 있어⁠.⁠”

“⁠안 가⁠.⁠”

“⁠왜⁠?⁠”

“⁠모래 들어가면 기저귀에 들어가⁠. 니가 털 거여⁠? 니 허리로⁠?⁠”

어머니는 마루 끝에 앉아 바다를 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해가 기울면서 바다가 연한 은색으로 변해 갔다⁠. 골목 끝 호텔 부지 가림막에 조명이 들어왔다⁠. 「⁠해담개발⁠」 글자가 하얗게 빛났다⁠. 말춘이 혀를 찼다⁠.

“⁠저 불이 켜지면 바다가 잘 안 보여요⁠. 그래도 저 불 덕에 밤에 넘어지진 않아⁠.⁠”

*

저녁은 말춘이 감자옹심이를 끓였다⁠. 감자를 갈아 동그랗게 빚은 새알을 멸치 국물에 넣고 끓이는 강릉 음식이었다⁠. 말춘은 깁스한 손으로 빚을 수 없어서 태루에게 빚게 했다⁠. 태루가 빚은 옹심이는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하나를 건져 올려 들여다보았다⁠.

“⁠이건 새알이 아니라 타조알이여⁠.⁠”

“⁠할머니⁠, 큰 거 드시면 배불러서 좋잖아요⁠.⁠”

“⁠아흔 노인이 이걸 씹다가 틀니가 빠지면 니가 바다에 들어가서 건질 거냐⁠?⁠”

말춘이 국자로 큰 옹심이를 반으로 잘라 어머니 그릇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가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 오래 오물거렸다⁠.

“⁠간이 맞네⁠. 숙경이 거보다 낫다⁠.⁠”

“⁠엄마⁠, 나는 열다섯 해 동안 엄마 혈압 때문에 싱겁게 했잖아⁠.⁠”

“⁠알어⁠. 그러니께 남이 끓인 게 맛있는 거여⁠.⁠”

모두 웃었다⁠. 두배만 웃다가 말고 휴대전화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대문 옆에서 두배가 등을 돌리고 낮게 말했다⁠. 바닷바람이 말소리를 마루까지 실어 왔다⁠.

“⁠네⁠, 압니다⁠. 다음 주까지만요⁠. 현장 대금이 들어오면 바로⁠. 네⁠, 기한 이익 상실이 뭔지 압니다⁠. 압니다⁠.⁠”

두배는 같은 말을 네 번 했다⁠. 압니다⁠. 통화를 끝내고 두배는 한참 대문 기둥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무릎 보호대가 바지 위로 불룩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태루가 내 얼굴을 보았고⁠, 어머니는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옹심이를 하나 더 건졌다⁠. 어머니는 다 들었다⁠. 누워 있으면 위에서 다 보이듯⁠, 앉아 있으면 마당 끝까지 다 들렸다⁠.

두배가 마루로 돌아와 앉았다⁠. 귀가 빨갛지 않았다⁠. 얼굴 전체가 하얬다⁠.

“⁠거래처⁠.⁠”

두배가 말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대답했다⁠.

*

저녁을 먹고 나서 어머니가 효자손으로 마룻바닥을 두드렸다⁠. 땅⁠, 땅⁠, 땅⁠. 세 번이었다⁠. 리모컨이 없는 곳에서 세 번은 다 오라는 소리였다⁠. 두배와 태루와 내가 마루에 둘러앉았다⁠. 말춘은 부엌으로 들어가려다 어머니가 손짓해서 마루 끝에 앉았다⁠.

“⁠주인 양반도 들어⁠. 남의 집 마루에서 남의 집 얘기 할 거니께⁠, 주인 양반이 증인이여⁠.⁠”

어머니가 두배를 보았다⁠.

“⁠두배야⁠, 종이 꺼내라⁠.⁠”

“⁠집에 있어요⁠, 엄마⁠.⁠”

“⁠니 지갑에 있잖여⁠.⁠”

두배의 귀가 빨개졌다⁠. 어머니는 아들의 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 해 동안 니가 지갑을 세 번 바꿨어⁠. 바꿀 때마다 그 종이를 새 지갑으로 옮기는 거 내가 다 봤다⁠. 명절에 니가 우리 집 와서 지갑 열면 맨 안쪽에 누런 종이가 접혀 있었어⁠. 니는 내가 침대에 누워 있으니께 아무것도 못 보는 줄 알지⁠. 누워 있으면 위에서 다 보여⁠.⁠”

두배가 엉덩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갈색 가죽 지갑의 모서리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맨 안쪽 칸에서 누렇게 바랜 편지지를 꺼냈다⁠. 네 번 접힌 자리가 닳아 거의 찢어질 듯했다⁠.

“⁠숙경이 줘라⁠.⁠”

두배가 종이를 쥐고 망설였다⁠. 태루가 두배를 보았다⁠. 말춘도 두배를 보았다⁠. 마루 위 전구가 바닷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두배가 종이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손을 떼면서 두배는 고개를 돌렸다⁠. 일산의 새벽에 기저귀 앞에서 돌렸던 고개였다⁠.

나는 종이를 폈다⁠. 위쪽 세 줄은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다⁠.

「⁠화곡동 집은 숙경이에게 준다⁠. 숙경이는 나를 맡아라⁠. 2012년 3월 마봉실⁠」

세 줄 아래 도장이 하나 있었다⁠. 사진은 도장 바로 위에서 잘려 있었다⁠. 도장 아래로 볼펜 글씨가 두 줄 더 이어졌다⁠. 글씨가 위의 세 줄보다 작고 비뚤었다⁠. 오른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다만 숙경이가 아프거나 십 년이 차면 나는 시설로 간다⁠. 그때는 두배가 누나를 쉬게 하고 내 일을 맡아라⁠. 두배는 이 종이를 가지고 있다가 그때 누나에게 보여 줘라⁠.⁠」

마지막 줄 끝에 도장이 하나 더 찍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는 입술이 따라 움직였다⁠. 진단서를 읽던 두배의 입술처럼⁠.

“⁠십 년⁠.⁠”

내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이천이십이 년이네⁠. 다섯 해 전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파도 소리만 골목을 타고 들어왔다⁠. 태루가 어머니 담요 끝을 쥐었다⁠.

“⁠두배야⁠.⁠”

두배가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엄마가 울었어⁠.⁠”

“⁠뭐⁠?⁠”

“⁠십 년 되던 해에⁠, 내가 이 종이 들고 엄마 방에 들어갔어⁠. 누나가 장 보러 간 사이에⁠. 이제 시설 알아볼까요⁠, 했더니 엄마가 울었어⁠. 남의 손은 싫다고⁠. 거기 가면 다들 죽어서 나온다고⁠. 엄마가 우는 거 처음 봤어⁠.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안 울었잖아⁠. 그래서 다시 접어서 지갑에 넣었어⁠. 누나가 하고 있으니까⁠. 누나는 잘하니까⁠.⁠”

“⁠그래서 사진도 잘라서 보여 줬어⁠?⁠”

두배가 대답하지 않았다⁠. 귀가 빨갰다⁠.

나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무릎에 놓은 채였다⁠.

“⁠엄마도 알았어⁠?⁠”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돋보기도 선글라스도 없는 맨눈이었다⁠.

“⁠알었다⁠.⁠”

“⁠다섯 해 동안⁠?⁠”

“⁠그려⁠. 내가 쓴 종이를 내가 모를 리가 있냐⁠? 날짜도 내가 셌어⁠. 십 년 되는 날 아침에 니가 내 기저귀를 갈았어⁠. 나는 그날 아침에 말할라고 했다⁠. 숙경아⁠, 이제 됐다⁠, 하고⁠. 근데 니 손이 따뜻했어⁠. 남의 손은 찰 것 같았어⁠. 그래서 두배가 입 다무는 거 보고 나도 다물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흔 해 동안 큰일 앞에서 늘 담담했던 목소리였다⁠.

“⁠니 허리 휘는 거 다 보면서 다물었다⁠. 내가 그랬다⁠.⁠”

나는 종이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종이가 바닷바람에 들썩였다⁠. 말춘이 마루 끝에서 손을 뻗어 종이 모서리를 깁스 낀 손으로 눌러 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증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열다섯 해를 나는 혼자 맡은 줄 알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다섯 해는 두 사람이 나 몰래 나눠 가졌다⁠. 한 사람은 지갑 속에⁠, 한 사람은 베개 밑에⁠.

“⁠다섯 해⁠.⁠”

내가 말했다⁠. 두배와 어머니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너희 둘이 나 몰래 나눠 가진 다섯 해⁠. 그 다섯 해 동안 내 허리가 나갔어⁠. 내 발이 압정을 밟았어⁠. 내 혈압이 백육십이 됐어⁠. 나는 그 다섯 해를 돌려받을 데가 없어⁠.⁠”

마루 위 전구가 다시 흔들렸다⁠. 나는 일어났다⁠. 허리가 찌르르 울렸지만 일어났다⁠. 신발을 신지 않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맨발에 마당 흙이 차가웠다⁠. 뒤에서 태루가 「⁠엄마⁠」 하고 불렀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골목으로 나갔다⁠. 쉰 걸음 끝에서 모래가 시작되었다⁠. 밤 모래는 낮보다 찼다⁠. 발밑에서 모래가 내 무게만큼 꺼졌다가 받쳐 주었다⁠. 나는 파도 끝까지 걸어가 멈추고⁠,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파도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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