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60자)

마흔두 킬로그램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일요일 오후 두 시⁠, 마지막 손님이 서핑 보드를 차 지붕에 묶고 떠났다⁠. 나는 이 층 방 다섯 개에서 걷어 낸 솜이불을 한데 묶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불 다섯 채를 묶으면 어머니 한 분 무게쯤 되었다⁠. 계단 중간쯤에서 허리 아래가 뚝 하고 어긋났다⁠.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를 굴릴 때마다 나던 소리와 같았는데⁠, 이번에는 소리 뒤에 아무것도 따라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불 뭉치가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나는 계단 난간을 붙잡고 반쯤 앉은 채로 멈췄다⁠. 허리를 펴려고 하자 엉덩이부터 왼다리 뒤로 전기가 흘렀다⁠. 숨을 쉬면 아팠고⁠, 숨을 참아도 아팠다⁠.

말춘이 마당에서 이불 뭉치를 받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숙경 씨⁠!⁠”

“⁠괜찮아요⁠. 잠깐만요⁠.⁠”

“⁠잠깐이 몇 년이오⁠. 그 얼굴이 괜찮은 얼굴이오⁠?⁠”

말춘이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올라왔다⁠. 일흔둘의 깁스한 여자가 예순의 허리 못 펴는 여자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둘 중 하나는 집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마당 평상에 나를 눕히고 나서 말춘이 숨을 몰아쉬었다⁠.

“⁠내일 병원 가요⁠. 내가 따라가⁠.⁠”

“⁠말춘 씨 손목도 아직⁠.⁠”

“⁠그러니까 둘이 가면 진료비가 한 번에 끝나지⁠. 같은 날 같은 병원⁠.⁠”

*

월요일 아침 강릉 읍내 정형외과 대기실은 장날 같았다⁠. 사천⁠, 연곡⁠, 주문진에서 온 어르신들이 의자를 꽉 채우고 있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인 할아버지가 옆 할머니에게 「⁠오늘은 원장이 기분이 좋아 보이드래⁠」 하고 속삭였고⁠, 할머니는 「⁠기분 좋으면 주사를 한 대 더 놓는다⁠」고 받았다⁠.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수입 관절 영양제 광고가 끝없이 나왔다⁠. 북유럽 바다에서 잡은 생선 기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우리 앞바다 생선 기름은 왜 안 쓰나⁠.⁠”

번호표를 뽑고 접수대에서 이름을 말했다⁠. 간호사가 물었다⁠.

“⁠조숙경 님⁠, 보호자 오셨어요⁠?⁠”

말춘이 깁스한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요⁠. 내가 보호자요⁠.⁠”

간호사가 말춘의 깁스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나는 웃다가 허리가 결려서 얼굴을 찡그렸다⁠. 열다섯 해 동안 병원 접수대에서 나는 늘 보호자였다⁠. 「⁠마봉실 님 보호자분⁠」 하고 부르면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대기실 의자에 환자로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었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한 시간 반이 걸렸는데⁠, 나는 한 시간 반이 아깝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국민건강보험 — 조숙경 님은 올해 국가건강검진 대상자입니다⁠. 연말 전에 받으세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은 문자가 왔다⁠. 나는 해마다 문자를 지웠다⁠. 오후 두 시가 되면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원장은 예순 중반쯤 된 남자였다⁠. 허리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볼펜으로 화면을 짚었다⁠. 등뼈 아래 마디 두 개 사이가 까맣게 좁아져 있었다⁠.

“⁠어머님⁠, 이 허리로 뭘 드셨어요⁠? 쌀가마 지셨어요⁠?⁠”

“⁠엄마요⁠.⁠”

원장이 볼펜을 멈췄다⁠.

“⁠어머님의 어머님이요⁠?⁠”

“⁠네⁠. 열다섯 해 동안요⁠. 기저귀 갈고⁠, 굴리고⁠, 목욕시키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어머님 체중이 몇이세요⁠?⁠”

“⁠마흔두 킬로요⁠.⁠”

원장이 볼펜으로 화면을 몇 번 두드리다가 나를 보았다⁠.

“⁠마흔두 킬로를 하루에 열 번 넘게 드셨으면⁠, 공사장 인부도 허리가 이렇게 됩니다⁠. 척추관이라고⁠,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졌어요⁠. 디스크도 밀려 나왔고요⁠. 그래서 왼다리가 저리신 거예요⁠. 발뒤꿈치는요⁠?⁠”

“⁠아침마다 압정 밟는 것 같아요⁠.⁠”

“⁠족저근막염⁠. 그것도 오래됐네요⁠. 혈압은 오늘 백육십이고요⁠. 약은 드세요⁠?⁠”

“⁠먹다 말다 했어요⁠.⁠”

원장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어머님⁠, 지금부터 무거운 거 들지 마세요⁠. 이불 다섯 채도 들지 마세요⁠. 사람은 더 안 됩니다⁠. 물리치료 받고 약 드시고⁠, 석 달 봐서 안 되면 수술 이야기 하셔야 돼요⁠. 어머님은 지금 누가 돌봐 드려야 하는 몸이에요⁠.⁠”

진료실 문 옆에 말춘이 서서 듣고 있었다⁠. 나는 원장의 말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열다섯 해 동안 아무도 나한테 이 말을 해 주지 않았다⁠. 해 준 사람이 강릉 읍내에서 처음 본 남자 의사였다⁠.

“⁠진단서 떼 주세요⁠.⁠”

“⁠어디 내시게요⁠?⁠”

“⁠동생한테요⁠.⁠”

원장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진단서를 써 주었다⁠. 「⁠요추 척추관 협착증⁠, 요추 추간판 탈출증⁠, 족저근막염⁠, 고혈압⁠. 중량물 취급 및 장시간 돌봄 노동 금함⁠.⁠」 마지막 줄은 원장이 볼펜으로 따로 덧붙였다⁠.

*

물리치료실에는 침대가 여덟 개 있었고⁠, 침대 사이를 연두색 커튼이 갈랐다⁠. 나는 엎드려 누웠고⁠, 젊은 물리치료사가 내 허리에 뜨거운 찜질 팩을 올렸다⁠. 수건을 두 겹 깔고 수건 위에 팩을 올리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뜨거우시면 말씀하세요⁠.⁠”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뜨거우냐고 묻는 말을 듣는 게 낯설었다⁠. 열다섯 해 동안 나는 어머니 목욕물에 손을 넣어 보고 「⁠뜨거워⁠?⁠」 하고 물었다⁠. 묻는 사람은 늘 나였다⁠.

“⁠괜찮아요⁠. 조금 더 뜨거워도 돼요⁠.⁠”

“⁠그럼 수건 한 겹 뺄게요⁠.⁠”

커튼 너머 옆 침대에서 말춘이 손목에 전기 치료기를 붙이고 누워 있었다⁠. 커튼이 반쯤 열려 있어서 말춘의 깁스 끝이 보였다⁠.

“⁠숙경 씨⁠, 의사가 누가 돌봐 줘야 하는 몸이라 했소⁠?⁠”

“⁠들으셨어요⁠?⁠”

“⁠귀는 안 다쳤소⁠.⁠”

말춘이 웃었다⁠. 전기 치료기가 일정하게 딱딱 소리를 냈다⁠.

“⁠우리 아들이 어제 또 전화했어요⁠. 엄마 혼자 넘어지면 누가 치우냐고⁠. 오늘 같은 날 보면 아들 말이 맞아⁠. 둘이 넘어져서 둘이 같이 병원 왔으니⁠. 근데 둘이 오니까 대기실에서 안 심심했소⁠.⁠”

“⁠저도요⁠.⁠”

“⁠그럼 됐지⁠.⁠”

찜질 팩의 열이 허리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물리치료사가 커튼을 닫으며 이십 분 뒤에 오겠다고 했다⁠. 이십 분 동안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찜질 팩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깼다⁠. 옆 침대에서 말춘이 「⁠나는 못 들었소⁠」 하고 말했다⁠.

*

병원 건물 일 층 약국 앞 벤치에서 약을 기다리는데 낯익은 무릎 보호대가 다가왔다⁠. 두배였다⁠. 말춘이 대화방에 몰래 글을 올린 건 아니었다⁠. 두배는 오늘 아침 민박에 들렀다가⁠, 마당을 쓸던 이웃 할머니에게서 숙경이 병원 갔다는 말을 듣고 따라왔다고 했다⁠. 사천진 골목에는 비밀이 없었다⁠.

“⁠누나⁠, 허리 다쳤어⁠?⁠”

“⁠앉아⁠.⁠”

두배가 내 옆에 앉았다⁠. 승합차에서 밤새 자고 온 얼굴이었다⁠. 두배는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 하나를 틀었다⁠. 넥타이를 맨 변호사가 칠판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화면 위 제목이 「⁠효도 조건 붙여 준 집⁠, 안 모시면 돌려줘야 — 대법원 판결⁠」이었다⁠.

“⁠이천십오 년에 대법원 판결이 났대⁠. 아버지가 아들한테 집을 넘기면서 같이 살면서 잘 모시겠다는 각서를 받았는데⁠, 아들이 안 모셨어⁠. 아버지가 집 돌려 달라고 소송했고⁠, 법원이 돌려주라고 했어⁠. 부모 모신다는 조건으로 받은 거면 조건 안 지킬 때 무를 수 있대⁠.⁠”

두배는 변호사처럼 말했다⁠. 밤새 승합차에서 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보았을 것이다⁠.

“⁠누나는 엄마가 쓴 종이가 있잖아⁠. 숙경이는 나를 맡아라⁠. 누나가 안 맡으면 엄마가 소송하면 돼⁠. 집은 엄마 거가 되고⁠, 엄마 거면⁠.⁠”

“⁠반은 니 거⁠.⁠”

두배가 말을 멈췄다⁠.

“⁠태루가 사진 보냈어⁠. 화곡공인중개사⁠. 다온캐피탈⁠.⁠”

두배의 귀가 빨개졌다⁠. 두배는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들키면 귀부터 빨개졌다⁠. 오십칠 년이 지나도 귀는 그대로였다⁠.

“⁠그래⁠, 알아봤어⁠. 가게가 어려워⁠. 두 달째 이자 밀렸어⁠. 그래서 뭐⁠. 누나는 그 집에서 열다섯 해 공짜로 살았잖아⁠. 관리비만 내고⁠.⁠”

“⁠일억은⁠.⁠”

“⁠받았어⁠.⁠”

두배가 처음으로 시인했다⁠. 약국 자동문이 열렸다 닫혔다⁠. 안에서 약사가 「⁠마봉실 님⁠」이 아니라 「⁠조숙경 님⁠」을 불렀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받았어⁠, 일억⁠. 그때 엄마가 그랬어⁠. 니는 이 돈 받고 엄마 노후는 신경 쓰지 마라⁠. 누나한테는 집 준다⁠. 누나는 집⁠, 너는 돈⁠. 그게 정리였어⁠. 그 정리를 엄마가 했어⁠. 나는 그대로 산 거야⁠. 근데 누나가 지금 와서 정리를 깨고 있잖아⁠. 엄마를 버리고⁠.⁠”

“⁠버린 거 아니야⁠.⁠”

“⁠그럼 뭐야⁠?⁠”

나는 가방에서 진단서를 꺼내 두배 무릎 위에 올렸다⁠. 두배가 진단서를 집어 들고 오래 읽었다⁠. 두배는 돋보기가 없으면 작은 글씨를 못 읽었다⁠. 우리 남매는 둘 다 어머니를 닮아서 눈이 빨리 나빠졌다⁠.

“⁠척추관 협착⁠. 이게 뭐야⁠.⁠”

“⁠허리 신경 지나가는 길이 좁아졌대⁠. 엄마 드느라⁠.⁠”

“⁠누나 나이 되면 다 아파⁠. 나도 무릎 연골 없어⁠. 의사가 타일 일 그만하래⁠. 그만두면 뭐 먹고 살아⁠?⁠”

“⁠두배야⁠.⁠”

“⁠누나만 아픈 거 아니라고⁠.⁠”

“⁠맨 밑에 줄 읽어 봐⁠.⁠”

두배가 진단서를 눈에서 멀리 떼었다⁠. 「⁠중량물 취급 및 장시간 돌봄 노동 금함⁠.⁠」 두배는 마지막 줄을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는 입술이 따라 움직였다⁠.

“⁠나 이제 엄마 못 들어⁠. 들고 싶어도 못 들어⁠. 의사가 들지 말래⁠. 엄마 마흔두 킬로⁠. 나 이불 다섯 채에 허리 나갔어⁠.⁠”

두배가 진단서를 내 무릎에 돌려놓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화가 나서인지 다른 이유인지 나는 몰랐다⁠.

“⁠그럼 집 내놔⁠. 엄마 못 모시면 집은 엄마한테 돌아가야지⁠. 그게 조건이잖아⁠.⁠”

“⁠그 종이⁠, 아래까지 보여 줘⁠.⁠”

두배가 입을 닫았다⁠.

“⁠사진 아래가 잘렸더라⁠. 볼펜 자국이 잘린 데 너머로 이어졌어⁠. 아래에 뭐가 더 있어⁠. 날짜랑 도장은 위에 있었잖아⁠.⁠”

“⁠아무것도 없어⁠.⁠”

“⁠그럼 보여 줘⁠.⁠”

“⁠누나가 서울 오면⁠.⁠”

“⁠두배야⁠, 너 귀 빨개⁠.⁠”

두배가 손바닥으로 귀를 덮었다⁠. 약국 앞을 지나가던 어르신 둘이 우리를 힐끗 보았다⁠. 예순 살 누나와 쉰일곱 살 남동생이 약국 앞 벤치에서 귀를 가리고 앉아 있었다⁠. 약사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조숙경 님⁠, 약 나왔습니다⁠.⁠」

*

약 봉투를 받아 들고 나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루였다⁠. 동시에 두배 휴대전화도 울렸다⁠. 두배 화면에 「⁠수옥⁠」이 떴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 보고 각자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디야⁠?⁠”

태루 목소리 뒤로 열차 안내 방송이 들렸다⁠. 「⁠이번 역은 평창⁠, 평창역입니다⁠.⁠」

“⁠병원⁠. 너 어디야⁠?⁠”

“⁠기차⁠. 할머니랑⁠. 강릉 가⁠.⁠”

“⁠뭐⁠?⁠”

“⁠할머니가 바다 보러 간대⁠. 아침에 일어나시더니 숙경이 사는 꼴 좀 봐야겠다고⁠. 휠체어석 끊었어⁠. 역무원 아저씨 두 분이 휠체어 들어 올려 주셨어⁠. 할머니가 고맙다고 사탕 드렸어⁠. 박하사탕⁠.⁠”

전화 너머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숙경아⁠, 두배한테는 말하지 마라⁠. 쫓아오면 귀찮다⁠.⁠”

옆에서 두배가 수옥의 전화를 받으며 소리쳤다⁠.

“⁠뭐⁠? 엄마가 강릉을 가⁠? 기차로⁠? 아흔에⁠?⁠”

두배가 나를 보았다⁠. 나는 두배를 보았다⁠. 어머니가 말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이미 내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두배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진단서가 든 내 가방을 내려다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나도 간다⁠. 역으로⁠.⁠”

“⁠너 차 있잖아⁠.⁠”

“⁠누나 허리로 역까지 어떻게 가⁠. 타⁠.⁠”

두배가 승합차 조수석 문을 열었다⁠. 조수석 바닥에 타일 조각과 줄자와 컵라면 용기가 굴러다녔다⁠. 두배가 발로 쓸어 운전석 밑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한 발씩 올라탔다⁠. 조수석은 높았다⁠. 오르는 동안 두배가 내 팔꿈치를 받쳤다⁠. 두배가 내 몸을 받친 건 열다섯 해 만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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