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2자)

스물네 평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목요일 아침⁠, 두배는 끝내 일억에 대한 답을 쓰지 않았다⁠. 대신 「⁠조씨네 효도방⁠」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승합차 조수석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누가 씌웠는지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목에는 내가 열 해 전 사 드린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사진 밑에 두배가 썼다⁠. 「⁠엄마 일산 나들이⁠.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모심⁠」

나는 이불을 털다 말고 태루에게 전화했다⁠.

“⁠할머니가 가신대⁠?⁠”

“⁠응⁠. 할머니가 가신대⁠.⁠”

태루 목소리 뒤로 승합차 시동 소리가 들렸다⁠.

“⁠삼촌이 억지로 모셔 가는 거면⁠.⁠”

“⁠아니야⁠, 엄마⁠. 할머니가 먼저 가자고 했어⁠. 삼촌 집 구경 좀 해야겠대⁠. 삼촌이 일억 얘기를 안 하니까 할머니가 가서 직접 보시겠대⁠.⁠”

전화 너머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숙경아⁠, 니는 이불이나 털어⁠. 내가 가서 보고 올 거여⁠.⁠”

“⁠엄마⁠, 뭘 봐⁠.⁠”

“⁠두배가 사는 꼴⁠.⁠”

전화가 끊겼다⁠.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는 화곡동 빌라 삼 층을 내려온 적이 손에 꼽았다⁠. 아흔 살 어머니가 아들 사는 꼴을 보러 일산까지 가는 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마당에서 솜이불 귀퉁이를 잡고 오래 서 있었다⁠. 말춘이 저쪽에서 반대편 귀퉁이를 왼손으로 잡아 주었다⁠.

*

삼촌네 아파트는 스물네 평이었다⁠. 나는 진태루고⁠,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삼촌네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 스물네 평이 얼마만 한지 몰랐다⁠. 현관에서 휠체어를 접어야 했다⁠. 신발장과 벽 사이가 휠체어 바퀴보다 좁았다⁠.

거실 한가운데에 전동 침대가 놓여 있었다⁠. 삼촌이 의료기 대여점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소파와 텔레비전 사이에 침대가 끼어 있어서⁠, 침대에 누우면 텔레비전이 발끝에 있었고 소파에 앉으면 침대 난간이 무릎에 닿았다⁠. 숙모가 부엌에서 나오다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고 소리 없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머님⁠, 오셨어요⁠.⁠”

“⁠수옥아⁠, 미안허다⁠. 니 거실을 내가 차지혔네⁠.⁠”

“⁠아니에요⁠, 어머님⁠.⁠”

“⁠아니긴⁠. 내가 봐도 아닌 게 아니여⁠.⁠”

할머니는 침대에 눕자마자 리모컨부터 찾았다⁠. 삼촌네 텔레비전은 말로 채널을 바꾸는 신형이었다⁠. 할머니가 리모컨에 대고 「⁠사극 틀어⁠」라고 하자 텔레비전이 「⁠사과 요리법을 찾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리모컨을 흔들었다⁠.

“⁠이 기계는 귀가 먹었구먼⁠.⁠”

“⁠할머니⁠, 천천히 또박또박 하세요⁠.⁠”

“⁠사⁠, 극⁠.⁠”

「⁠사골 국물 끓이는 법⁠」

거실 소파에서 삼촌네 큰딸이 휴대전화를 들고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대학 삼 학년이었다⁠. 할머니가 텔레비전과 싸우는 영상은 저녁도 되기 전에 짧은 동영상 앱에서 조회수가 십만을 넘었다⁠. 댓글에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섞여 있었다⁠. 「⁠할머니 리액션 최고⁠」 「⁠Grandma vs AI⁠, grandma wins⁠」 큰딸이 댓글을 읽어 드리자 할머니가 물었다⁠.

“⁠스페인 사람들도 사극 보냐⁠?⁠”

“⁠할머니가 이겼대요⁠.⁠”

“⁠당연하지⁠. 나는 저 기계보다 아흔 해 먼저 났어⁠.⁠”

*

저녁은 숙모가 차렸다⁠. 숙모는 할머니 침대 난간에 작은 밥상을 걸쳐 놓고 죽을 떠 드렸다⁠. 손목 안쪽에 숟가락을 대 보고 나서 드렸다⁠. 나는 놀랐다⁠. 숙모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몰랐다⁠.

“⁠수옥아⁠, 니 손목은 왜 그러냐⁠?⁠”

할머니가 숙모 손목의 살색 보호대를 보았다⁠. 숙모가 소매를 끌어내렸다⁠.

“⁠학원 차에서 애들 안전띠 매 주다가요⁠. 별거 아니에요⁠.⁠”

“⁠니 엄마는 요새 어떠냐⁠?⁠”

숙모의 숟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명절마다 십오 년을 봤는데⁠, 할머니가 숙모의 친정어머니 안부를 묻는 걸 나는 처음 들었다⁠.

“⁠그냥 그래요⁠. 누워 계세요⁠. 말씀은 잘 못 하시고요⁠.⁠”

“⁠니가 매일 가냐⁠?⁠”

“⁠매일은 못 가요⁠. 이틀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이면 매일이여⁠. 나는 우리 아들을 명절에 한 번 봐⁠.⁠”

숙모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부엌에서 삼촌이 헛기침을 했다⁠.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여 둔 종이가 보였다⁠. 「⁠간병비 인상 안내 — 다음 달부터 간병인 일당 조정⁠」 숙모 친정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서 온 안내문이었다⁠. 숫자 위에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두 번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가 죽을 다 드시고 숙모 손등을 효자손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니 손목 아끼라⁠. 니가 무너지면 니 엄마도 무너지고 우리 두배도 무너져⁠. 숙경이 봐라⁠. 무너질 때까지 아무도 안 봤잖여⁠.⁠”

숙모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개수대 물소리가 한참 났다⁠.

*

삼촌은 목요일 밤 할머니 침대 옆 소파에서 자겠다고 했다⁠. 숙모가 안방 문을 닫으며 한마디 했다⁠.

“⁠당신이 한다고 했으니까 당신이 해⁠.⁠”

나는 작은방에 깔린 요 위에서 자는 척을 했다⁠. 삼촌이 혼자 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못 하는 걸 보고 싶었다⁠. 엄마가 열다섯 해 동안 혼자 했던 일을 삼촌이 하룻밤에 해내면⁠, 나는 화가 났을 것이다⁠.

새벽 두 시에 할머니가 삼촌을 불렀다⁠. 종을 안 가져와서 할머니는 효자손으로 침대 난간을 두드렸다⁠. 땅⁠, 땅⁠. 두 번이었다⁠.

“⁠두배야⁠.⁠”

“⁠예⁠, 엄마⁠.⁠”

“⁠두 번이여⁠.⁠”

“⁠뭐가요⁠?⁠”

“⁠두 번이면 기저귀여⁠. 니 누나는 알아들어⁠.⁠”

삼촌이 일어나 거실 불을 켰다⁠. 나는 작은방 문틈으로 거실을 보았다⁠. 삼촌은 기저귀 봉지를 뜯다가 봉지째 바닥에 쏟았다⁠. 기저귀가 바닥에 흩어졌다⁠. 삼촌은 무릎을 꿇고 하나를 집어 펴더니 앞뒤를 몰라 한참 돌려 보았다⁠.

“⁠엄마⁠, 이게 어디가 앞이에요⁠?⁠”

“⁠그림 있는 데가 뒤여⁠.⁠”

“⁠그림이 앞에 있어야 보기 좋잖아요⁠.⁠”

“⁠누가 보라고 그림 그려 놨겄냐⁠? 갈아 주는 사람 헷갈리지 말라고 뒤에 그려 놓은 거여⁠.⁠”

삼촌이 할머니 이불을 걷었다⁠. 걷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냄새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그걸 보았다⁠.

“⁠고개 돌리지 마라⁠.⁠”

삼촌의 손이 멈췄다⁠.

“⁠니 누나는 열다섯 해 동안 고개 한 번 안 돌렸어⁠. 고개 돌리면 내가 부끄러운 걸 알아서⁠.⁠”

삼촌이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거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삼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할머니는 누운 채로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둘이 그렇게 마주 본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명절마다 삼촌은 할머니 방 문지방 밖에서 큰절만 했다⁠.

“⁠두배야⁠. 니가 날 여기 왜 데려왔는지 내가 모를 거 같으냐⁠?⁠”

“⁠엄마 편하시라고요⁠.⁠”

“⁠니 누나 약 올리려고지⁠. 니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또 하나 있지⁠?⁠”

“⁠없어요⁠.⁠”

“⁠일억⁠.⁠”

삼촌이 기저귀를 쥔 채 굳었다⁠.

“⁠니 누나가 물었다며⁠. 니는 답을 안 하고 나를 실어 왔고⁠. 나를 니 거실에 눕혀 놓으면 니 누나가 일억 소리를 못 할 줄 알았지⁠.⁠”

“⁠엄마가 누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 거짓말하라고 했냐⁠?⁠”

삼촌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기저귀를 가리켰다⁠.

“⁠테이프는 아래부터여⁠. 비스듬히⁠.⁠”

삼촌이 기저귀를 갈았다⁠. 이십 분 넘게 기저귀와 씨름했다⁠. 엄마는 오 분이면 했다⁠. 다 갈고 나서 삼촌은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물을 틀어 놓았다⁠. 물소리 사이로 무언가 막힌 소리가 났다⁠. 나는 삼촌이 속이 불편한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둘 다였을 수도 있다⁠.

*

삼촌이 화장실에 있는 동안 식탁 위 삼촌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불을 켰다⁠. 나는 물 마시러 나온 척하고 식탁 옆을 지나갔다⁠. 화면 잠금 위로 알림 두 개가 떠 있었다⁠.

「⁠[화곡공인중개사] 문의하신 화곡동 빌라 302호 시세 답변드립니다⁠. 재개발 구역 확정 시 현재가의 두 배 가까이 예상⁠, 지금 매도하셔도 손해는 아닙니다⁠. 소유주 분 동의가 먼저 필요합니다⁠」

「⁠[다온캐피탈] 조두배 고객님⁠, 사업자 대출 이자가 두 달째 연체 중입니다⁠. 기한 이익 상실 전 연락 바랍니다⁠」

화곡동 빌라 302호는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의 주인은 엄마였다⁠. 소유주 동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삼촌은 엄마한테 묻기도 전에 시세부터 물었다⁠.

물소리가 그쳤다⁠. 나는 컵을 들고 작은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기 전에 거실을 한 번 더 보았다⁠. 삼촌이 식탁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알림을 보고⁠, 작은방 문을 보았다⁠. 문틈 사이로 삼촌과 내 눈이 맞았다⁠.

삼촌이 작은방으로 걸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숨에서 치약 냄새가 났다⁠.

“⁠봤냐⁠?⁠”

“⁠봤어요⁠.⁠”

“⁠니 엄마한테 말할 거냐⁠?⁠”

“⁠해야죠⁠.⁠”

삼촌이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태루야⁠, 그 집 원래 누구 집이었냐⁠?⁠”

“⁠할머니 집이요⁠.⁠”

“⁠할머니 집이면 반은 내 거였어⁠. 할머니가 누나한테 다 준 거야⁠. 나는 일억 받았고⁠, 누나는 집 받았어⁠. 근데 그 집이 지금 일억이 아니야⁠. 재개발 들어가면 네 배야⁠. 나는 십구 년 전에 일억 받아서 가게 차리고 다 날렸고⁠, 누나는 앉아서 네 배가 됐어⁠. 그게 공평하냐⁠?⁠”

“⁠엄마는 앉아 있지 않았어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안방에서 숙모가 기침을 했다⁠.

“⁠엄마는 열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앉아 있지 않았어요⁠. 삼촌 오늘 기저귀 하나 가는 데 이십 분 걸렸잖아요⁠. 엄마는 그걸 하루에 여섯 번 했어요⁠. 새벽에도요⁠.⁠”

삼촌이 나를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맞다는 끄덕임이 아니었다⁠. 알았다는 끄덕임이었다⁠. 삼촌은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

토요일 아침 강릉은 맑았다⁠. 서핑 손님 열두 명이 한꺼번에 밀려와 방 다섯 개가 다 찼다⁠. 나는 아침상에 감자조림과 미역줄기 볶음을 올렸다⁠. 남의 아들들이 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휴대전화를 보니 동영상 채널이 또 내 속을 읽고 있었다⁠. 추천 영상에 「⁠예순 살 가출 일주일 차 브이로그⁠」 「⁠엄마가 집을 나갔다 — 자식 입장⁠」 「⁠황혼 가출⁠, 돌아가야 할까⁠」가 줄줄이 떴다⁠. 말춘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고 혀를 찼다⁠.

“⁠저 기계가 숙경 씨 일기장을 훔쳐봤나⁠.⁠”

“⁠제가 검색한 적도 없어요⁠.⁠”

“⁠검색 안 해도 저것들은 다 알아⁠. 우리 아들이 나보고 서울 오라는 영상도 맨날 떠요⁠. 「⁠부모님 모셔 오는 법⁠」⁠”

“⁠가실 거예요⁠?⁠”

“⁠그 영상 보고 가면 지는 거래요⁠.⁠”

태루의 문자는 아침 아홉 시에 왔다⁠. 사진 두 장이었다⁠. 삼촌 휴대전화 화면을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화곡동 빌라 302호 시세 답변⁠, 그리고 대출 연체 안내⁠. 사진 밑에 태루가 썼다⁠.

「⁠엄마⁠. 삼촌이 엄마 집 팔 생각해⁠. 아직 엄마한테는 안 물어봄⁠」

나는 수세미를 쥔 채 화면을 오래 보았다⁠. 고무장갑 끝에서 거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 다음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영상이었다⁠. 삼촌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스카프를 다시 두르고 선글라스를 이마에 올린 채였다⁠.

“⁠숙경아⁠, 나 집에 간다⁠. 여기 와서 보니께 내 집이 어딘지 알겄다⁠.⁠”

어머니 뒤로 두배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두배는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두배가 휠체어를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어머니가 한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두배가 니 집 팔겠단다⁠. 니가 와서 니 입으로 안 판다고 해라⁠.⁠”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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