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66자)

서천 논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물빛민박의 아침은 이불을 걷는 일로 시작했다⁠. 일곱 시에 이 층 방 다섯 개 문을 차례로 두드리고⁠, 체크아웃한 방에 들어가 창부터 열었다⁠. 바닷바람이 들어오면 방 안에 남은 남의 잠 냄새가 빠져나갔다⁠. 서핑 하는 청년들이 자고 간 방에서는 늘 젖은 고무 냄새와 선크림 냄새가 났다⁠. 나는 젖은 고무 냄새가 싫지 않았다⁠. 내가 갈아 줄 기저귀가 없는 방의 냄새였다⁠.

닷새째가 되자 손이 순서를 외웠다⁠. 베갯잇을 벗기고⁠, 홑청을 벗기고⁠, 솜이불은 두 번 접어 계단 아래로 던진다⁠. 던진 이불은 마당 수돗가에서 말춘이 왼손으로 받았다⁠. 말춘은 받는 것만큼은 깁스를 한 사람 같지 않았다⁠.

주말 손님들은 나를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토요일 밤 마당에서 고기를 굽던 청년 하나가 나에게 상추를 내밀며 물었다⁠.

“⁠이모님은 여기 사장님 동생이세요⁠?⁠”

“⁠아니⁠.⁠”

“⁠그럼 따님⁠?⁠”

말춘이 마루에서 소리쳤다⁠.

“⁠내가 저렇게 이쁜 딸을 낳았으면 서울 아들은 안 낳았지⁠!⁠”

청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상추에 고기를 싸서 입에 넣었다⁠. 남이 구운 고기를 받아먹은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일요일 밤⁠, 손님들이 다 떠난 마루에서 말춘이 빨간 고무 대야를 내 앞에 놓았다⁠. 대야에는 김이 오르는 물이 반쯤 차 있었고⁠, 바닥에 굵은소금이 가라앉아 있었다⁠.

“⁠발 담그시오⁠.⁠”

“⁠제 발이 아픈 거 어떻게 아셨어요⁠?⁠”

“⁠계단을 내려올 때 뒤꿈치를 안 대잖소⁠. 까치발로 내려오는 사람은 둘 중 하나래요⁠. 발이 아프거나 도둑이거나⁠.⁠”

나는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발바닥의 굳은 힘줄을 찾아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숨이 길게 빠졌다⁠. 말춘이 깁스한 손목을 무릎에 올려놓고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시어머니 십 년 모셨소⁠. 이 민박집 이 층 맨 끝 방⁠, 거기가 시어머니 방이었어요⁠. 지금 숙경 씨가 자는 방⁠.⁠”

“⁠어머⁠.⁠”

“⁠시어머니 돌아가신 날 내가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아오⁠?⁠”

“⁠우셨어요⁠?⁠”

“⁠낮잠 잤소⁠. 장례식장 가기 전에 딱 한 시간⁠.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두 시간마다 안 깨고 잤어요⁠. 깨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슬퍼서 나는 눈물인지 잘 자서 나는 눈물인지 나도 몰랐소⁠.⁠”

말춘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하고 대야 속 내 발을 보았다⁠. 물 아래에서 발가락 열 개가 하얗게 불어 있었다⁠. 열다섯 해 동안 내 발가락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 방에서 자니까 숙경 씨가 새벽에 깨는 거래요⁠. 방이 기억하는 거지⁠. 바꿔 줄까요⁠?⁠”

“⁠아니요⁠. 그 방이 좋아요⁠. 깨도 아무도 안 부르니까요⁠.⁠”

월요일에 첫 주급을 받았다⁠. 말춘은 일당을 날마다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주급으로 받겠다고 했다⁠. 한 주를 버틴 다음에 받는 돈이 받고 싶었다⁠. 봉투에는 사십구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읍내 은행 창구에서 새 통장을 만들었다⁠. 창구 직원이 어떤 용도의 통장이냐고 물었고⁠, 나는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월급 통장이요⁠.⁠”

“⁠직장이 어디세요⁠?⁠”

“⁠민박이요⁠.⁠”

직원이 서류의 직장 칸에 「⁠물빛민박⁠」을 적어 넣었다⁠. 예순 살에 새 직장 이름이 서류에 들어갔다⁠. 통장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 은행 유리문에 비친 내가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회사원 같았다⁠. 회사를 한 번도 안 다녀 본 회사원이었다⁠.

*

화요일 오후⁠, 이불을 다 널고 마루에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골목 어귀에 올케 수옥이 나타났다⁠. 일산에서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손에 일산 떡집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빈손으로 안 다니고 늘 무언가를 들고 와서 할 말을 했다⁠.

“⁠형님⁠.⁠”

수옥이 쇼핑백을 내밀었다⁠. 인절미였다⁠. 말춘이 마루 끝에서 수옥을 아래위로 훑었다⁠.

“⁠이번엔 빚쟁이 마누라요⁠?⁠”

수옥이 당황해서 나를 보았다⁠. 나는 웃음을 참고 수옥의 팔을 잡았다⁠.

“⁠바다 보러 가자⁠. 여기선 우리 집안 얘기가 마당에 다 들려⁠.⁠”

우리는 방파제를 따라 빨간 등대까지 걸었다⁠. 콘크리트 방파제는 바다 위로 길게 뻗어 있었고⁠, 발밑의 테트라포드 사이로 파도가 들이쳤다가 빠졌다⁠. 들이칠 때마다 발바닥으로 콘크리트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수옥은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와서 걸음마다 조심스러웠다⁠.

등대 밑 난간을 잡고 수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돌아오세요⁠.⁠”

“⁠두배가 보냈어⁠?⁠”

“⁠아니요⁠. 그이는 제가 여기 온 거 몰라요⁠. 오늘 친정 엄마 병원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수옥의 친정어머니는 고양시의 요양병원에 세 해째 누워 있었다⁠. 수옥은 오전에는 학원 승합차 도우미 일을 하고⁠, 오후에는 이틀에 한 번 요양병원에 가서 저녁밥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수옥의 사정을 명절마다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우리 집 이야기로 받아쳤다⁠. 우리 엄마는 집에 계시잖아⁠, 하고⁠. 집에 계신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 어머니보다 무겁다는 듯이 말했다⁠.

“⁠그이가 그래요⁠. 태루가 일주일 못 버티면 어머님을 일산 우리 집으로 모신대요⁠. 누나한테 보여 준다고⁠.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잘됐네⁠.⁠”

“⁠형님⁠.⁠”

수옥이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리 집 스물네 평이에요⁠. 애들 둘이 방 하나씩 쓰고⁠, 안방에 우리 둘이 자요⁠. 어머님 침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못 해요⁠. 우리 엄마 병원비가 한 달에 백팔십이에요⁠. 저 학원 차 타는 돈이 백이십이고요⁠. 그이 가게는 석 달째 적자고요⁠.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저는 학원 일을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우리 엄마 병원비를 못 내요⁠.⁠”

수옥은 숫자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말했다⁠. 몇 번이고 속으로 세어 본 숫자였다⁠.

“⁠수옥아⁠.⁠”

“⁠형님 힘드신 거 알아요⁠. 아는데요⁠.⁠”

“⁠안다고⁠?⁠”

나는 등대 벽에 등을 기댔다⁠. 등대 벽은 햇볕에 데워져 따뜻했다⁠.

“⁠수옥아⁠, 우리 엄마 기저귀 한 번 갈아 봤어⁠?⁠”

수옥이 입을 다물었다⁠.

“⁠열다섯 해 동안 명절에 와서 전 부치고 설거지했지⁠. 고마웠어⁠. 진짜야⁠. 근데 우리 엄마 방에는 안 들어갔잖아⁠. 냄새 난다고⁠. 두배도 안 들어갔어⁠. 너희 애들은 할머니 방 앞에서 인사만 했어⁠. 문지방 밖에서⁠.⁠”

“⁠형님⁠, 그건⁠.⁠”

“⁠너희 엄마는 병원에 있으니까 너는 이틀에 한 번 두 시간 숟가락 들고 와⁠. 나는 스물네 시간 숟가락 들었어⁠. 누가 더 힘든지 대 보자는 거 아니야⁠. 둘 다 힘들어⁠. 근데 너는 내가 힘든 거 오늘 처음 물어보잖아⁠. 강릉까지 와서⁠.⁠”

수옥의 눈가가 붉어졌다⁠. 파도가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물보라가 난간 위까지 튀었다⁠. 수옥의 구두 코가 젖었다⁠. 수옥은 젖은 구두를 내려다보다가⁠, 화가 난 사람처럼 빠르게 말했다⁠.

“⁠형님은 집이라도 받으셨잖아요⁠.⁠”

두배와 똑같은 말이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서운한 말까지 닮았다⁠.

“⁠우리는요⁠, 그이가 가게 차릴 때 어머님이 서천 논 판 돈 주신 거⁠, 그거 다 날아가서 남은 것도 없어요⁠. 형님은 집이라도 남았잖아요⁠. 화곡동 그 빌라⁠, 재개발 들어가면 두 배 된다면서요⁠.⁠”

수옥은 말을 뱉고 나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늦었다⁠.

“⁠서천 논⁠?⁠”

“⁠형님⁠.⁠”

“⁠엄마가 서천 논 팔았을 때⁠, 그 돈을 두배가 받았어⁠?⁠”

수옥이 고개를 돌렸다⁠. 바다만 보았다⁠.

“⁠몰랐어요⁠?⁠”

몰랐다⁠. 서천에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논이 몇 마지기 있었다는 건 알았다⁠. 어머니가 내가 마흔하나 되던 해에 논을 팔았다는 것도 알았다⁠. 판 돈은 어머니 노후 자금으로 은행에 넣어 두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고 두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형님⁠,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마세요⁠.⁠”

“⁠얼마⁠?⁠”

“⁠일억이요⁠. 그이가 두배타일 차릴 때요⁠. 어머님이 그거 받고 누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누나는 나중에 집 줄 거니까 괜찮다고⁠.⁠”

열아홉 해 전이었다⁠. 나는 급식실에서 하루에 국을 팔백 그릇 펐고⁠, 남편은 공사장에서 일했다⁠. 남편이 비계에서 떨어진 건 세 해 뒤였다⁠. 남편 장례를 치르고 반년 뒤 어머니가 쓰러졌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묻지 않은 건 나였다⁠.

“⁠먼저 받은 사람은 두배였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담담했다⁠. 수옥이 그제야 나를 보았다⁠.

“⁠형님⁠, 그이도 힘들었어요⁠. 가게 열 해 넘게 겨우 버텼어요⁠. 그리고 그이 매달 어머님 통장에 뭘 부쳐요⁠. 나한테도 얼마인지 말 안 하고⁠. 저는 그게 어머님 용돈인 줄 알아요⁠. 그러니까 그이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나쁜 사람이라고 안 했어⁠.⁠”

“⁠눈이 그랬어요⁠.⁠”

나는 웃었다⁠. 웃으니까 수옥도 따라서 반쯤 웃었다⁠. 우리는 둘 다 젖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

방파제를 되짚어 나오는 길에 골목 앞에서 양복 입은 남자 둘이 물빛민박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목에 「⁠해담개발⁠」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말춘이 마당 안에서 대빗자루를 들고 버텼다⁠.

“⁠안 판다고 몇 번을 말해요⁠.⁠”

“⁠어머님⁠, 아드님하고는 이야기가 거의 됐습니다⁠. 이번에 정부에서 해안 관광 개발 지원도 붙어서 지금이 제일 좋은 때예요⁠. 혼자 이불 대시다 또 다치시면⁠.⁠”

“⁠내 손목은 내가 다쳤소⁠. 당신네 회사가 다친 거 아니오⁠.⁠”

남자 하나가 마당 빨랫줄을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따님이세요⁠?⁠”

“⁠직원이에요⁠.⁠”

남자가 서류철을 덮었다⁠. 직원이 있는 민박은 혼자 사는 노인의 민박보다 사기가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명함을 마루에 두고 갔다⁠. 말춘이 명함을 집어 아궁이 불쏘시개 통에 던졌다⁠.

“⁠수옥 씨라고 했소⁠? 인절미는 잘 먹을게요⁠.⁠”

말춘이 수옥에게 인절미 값을 내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수옥이 어리둥절해서 지갑을 열자 말춘이 수옥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악수였다⁠. 수옥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

수옥은 막차를 타고 갔다⁠.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에 수옥이 나를 한 번 안았다⁠. 열다섯 해 동안 명절마다 보면서 처음 안아 본 것이었다⁠. 수옥의 어깨가 생각보다 말라 있었다⁠.

“⁠형님⁠, 저는 오늘 형님 편 들러 온 거 아니에요⁠. 우리 집 지키러 온 거예요⁠.⁠”

“⁠알아⁠.⁠”

“⁠그래도 오길 잘했어요⁠. 바다는 처음 봐요⁠. 일산에서 사는데 바다를 못 봤어요⁠.⁠”

버스가 떠났다⁠. 수옥이 창에 이마를 대고 손을 흔들었고⁠, 나도 손을 흔들었다⁠. 수옥의 구두 코에 묻은 바닷물은 일산에 닿을 때쯤 하얀 소금 자국으로 말라 있을 것이다⁠. 나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조씨네 효도방⁠」에는 저녁 내내 두배가 올린 글이 쌓여 있었다⁠. 태루가 기저귀를 잘못 채워 이불이 젖었다는 소식을 두배가 어디서 들었는지 올려 두었고⁠, 글 밑에 「⁠일주일 중 사흘 남음⁠」이라고 썼다⁠. 시계 이모티콘을 같이 붙였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눌렀다⁠. 쓰는 동안 손이 떨리지 않았다⁠. 손보다 발이 먼저 떨렸다⁠. 정류장 바닥이 낮게 진동했다⁠. 덤프트럭 한 대가 호텔 부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배야⁠. 서천 논 판 돈 일억⁠, 언제 받았니⁠?⁠」

전송을 누르자 숫자 1이 떴다⁠. 오 초쯤 뒤에 1이 사라졌다⁠. 두배가 읽었다⁠. 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대화방 꼭대기에 두배가 십 분 전에 올려 둔 공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엄마 일산 이사 준비 중⁠. 침대는 내가 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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