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10자)

보호자는 나여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아래는⁠?⁠”

내가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벌린 채 물었다⁠. 두배가 휴대전화를 도로 가져갔다⁠.

“⁠아래는 날짜랑 도장이지 뭐⁠.⁠”

“⁠날짜는 위에 있잖아⁠.⁠”

“⁠도장이 크게 찍혔어⁠. 사진에 안 들어갔어⁠.⁠”

“⁠원본 보여 줘⁠.⁠”

“⁠집에 있어⁠. 누나가 서울 오면 보여 줄게⁠.⁠”

두배는 승합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한 발을 올렸다⁠. 떠나기 전에 한 수를 더 두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화투를 쳐도 마지막 패를 쥐고 놓지 않는 아이였다⁠.

“⁠누나⁠, 내일까지 안 오면 엄마 요양병원에 단기로 넣는다⁠. 일주일만⁠. 병원비는 나중에 누나 집에서 정산하고⁠.⁠”

“⁠엄마가 가신대⁠?⁠”

“⁠엄마가 안 가신다고 안 가는 거면 세상에 요양병원이 왜 있어⁠?⁠”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과 상자는 마당에 남았다⁠. 말춘이 상자를 열어 사과 하나를 꺼내 옷에 문질렀다⁠.

“⁠빚쟁이가 사과는 좋은 걸 가져왔네⁠.⁠”

*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사흘째 되는 토요일 아침⁠, 나는 할머니 죽 온도를 손등으로 쟀다⁠. 손등에 대 보고 뜨겁지 않으면 할머니 입에는 아직 뜨겁다⁠. 손목 안쪽에 대 보고 미지근하면 드린다⁠. 이건 엄마 쪽지에 없었다⁠. 첫날 할머니가 죽을 뱉으면서 가르쳐 줬다⁠.

“⁠니 에미는 손목에 대 봤어⁠. 니는 눈으로 대 보냐⁠?⁠”

나는 서른두 살 진태루다⁠. 공기업 인적성을 일곱 해째 보고 있고⁠, 최종 면접까지 두 번 갔다가 두 번 떨어졌다⁠. 할머니 말로는 내가 떨어진 이유가 얼굴에 「⁠집에 가고 싶다⁠」고 쓰여 있어서다⁠. 사흘 동안 할머니는 나를 백 번쯤 혼냈고⁠, 혼낼 때마다 정확했다⁠. 기저귀 테이프를 위에서부터 붙였을 때는 「⁠니는 바지도 허리띠부터 매냐⁠」고 했고⁠, 체위를 바꾸다 할머니 왼팔을 깔았을 때는 「⁠그 팔도 내 팔이여⁠」라고 했다⁠.

오후 두 시에 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세 시간을 있다 가셨고⁠, 나머지 스물한 시간은 내 차지였다⁠. 선생님은 첫날 내 손을 보더니 장갑부터 사라고 했다⁠. 손목 보호대도 사라고 했다⁠. 엄마 화장대 서랍을 열어 보니 늘어난 손목 보호대가 네 개 들어 있었다⁠.

엄마는 이 일을 열다섯 해 했다⁠. 나는 열일곱 살부터 그걸 봤는데 사실은 하나도 안 봤다⁠. 엄마가 새벽 세 시마다 일어난다는 것도⁠, 할머니 왼다리 밑에 접은 수건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엄마 손이 차가운 이유가 하루에 손을 마흔 번 씻어서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엄마한테 문자로 할머니가 엄마 손이 차갑다더라고 썼는데⁠, 보내 놓고 나서야 내 문자가 얼마나 못된 말인지 알았다⁠. 지우려고 했을 때는 이미 「⁠읽음⁠」이 떴다⁠.

삼촌이 어제 저녁 대화방에 썼다⁠. 「⁠엄마가 저녁 한 숟갈도 안 드셨다니까 누나가 강릉에서 흔들리더라⁠」 할머니는 어제 저녁에 죽 두 그릇과 계란찜을 드셨다⁠. 계란찜이 싱겁다고 간장을 두 번 더 달라고 하셨다⁠. 나는 삼촌의 글을 할머니한테 읽어 드렸다⁠.

“⁠두배 저놈이 내 숟가락을 팔아먹었구먼⁠.⁠”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침대 난간을 땅 쳤다⁠.

아홉 시쯤 이 층 홍 할머니가 서류를 들고 올라왔다⁠. 재개발 동의서였다⁠. 홍 할머니는 엄마 도장을 받으러 왔다가 엄마가 강릉에 갔다는 말을 듣고 서류로 부채질을 했다⁠.

“⁠숙경이가 바다를 갔어⁠? 혼자⁠? 잘했네⁠. 나도 가고 싶어⁠. 우리 영감 두고⁠.⁠”

“⁠할아버지 아프세요⁠?⁠”

“⁠아니⁠, 너무 건강해서 문제지⁠. 하루 세 끼를 집에서 자셔⁠.⁠”

홍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 고개를 들이밀고 인사를 하더니⁠, 나가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집 재개발 들어가면 값이 두 배 된대⁠. 두배가 좋아하겠네⁠. 이름값 한다고⁠.⁠”

삼촌은 정말로 이름값 농담을 대화방에 쓴 적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까지 아는 농담이었다⁠.

*

열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삼촌 얼굴이 크게 떴고⁠, 뒤로 하늘색 조끼를 입은 남자 둘이 접이식 들것을 들고 있었다⁠. 조끼 등판에 「⁠사설 환자 이송⁠」이라고 쓰여 있었다⁠. 삼촌은 문이 열리자마자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태루야⁠, 할머니 짐 싸⁠. 요양병원 일주일⁠. 입원 수속은 내가 다 해 놨어⁠.⁠”

“⁠할머니가 가신대요⁠?⁠”

“⁠할머니가 가셔야 니 엄마가 와⁠.⁠”

삼촌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을 안 봤다⁠. 눈을 안 볼 때의 삼촌은 자기도 자기 말이 이상한 걸 아는 사람이었다⁠. 이송 요원 한 사람이 들것을 펴며 할머니 방을 들여다보았다⁠.

“⁠어르신 체중 어떻게 되세요⁠? 계단이 좁아서요⁠.⁠”

방 안에서 종이 울렸다⁠. 띵⁠, 띵⁠, 띵⁠. 세 번은 리모컨이었는데⁠, 할머니는 리모컨을 이미 손에 쥐고 있었다⁠. 세 번은 그냥 다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이불을 가슴까지 올리고⁠, 효자손을 칼처럼 무릎에 세워 놓고 우리를 맞았다⁠. 사극에서 왕대비가 신하들을 부를 때 저렇게 앉는다⁠.

“⁠두배야⁠.⁠”

“⁠엄마⁠, 일주일만이에요⁠. 거기 간호사도 있고 밥도 나오고⁠.⁠”

“⁠니 누나 데려오려고 날 볼모로 잡는 거잖여⁠.⁠”

삼촌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이송 요원 둘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내가 아흔 해 살면서 일제 때 공출도 봤고 피란도 봤어⁠. 볼모 잡히는 건 처음이여⁠. 그것도 내 배로 낳은 놈한테⁠.⁠”

“⁠엄마⁠,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위해서예요⁠. 태루가 할머니를 어떻게 봐요⁠. 얘 손이 곰 발바닥인데⁠.⁠”

“⁠곰 발바닥이 니 손보다 낫다⁠. 니는 기저귀를 한 번도 안 갈아 봤잖여⁠.⁠”

“⁠엄마⁠.⁠”

“⁠한 번이라도 갈아 봤으면 말을 해 봐⁠. 테이프는 어디부터 붙이는지⁠.⁠”

삼촌이 대답을 못 했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이송 요원 하나가 서류를 넘기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보호자 동의는 두 분 다 하신 거죠⁠?⁠”

할머니가 효자손 끝으로 자기 가슴을 짚었다⁠.

“⁠보호자는 나여⁠. 내가 내 보호자여⁠.⁠”

*

삼촌은 물러나지 않았다⁠. 삼촌은 들것을 펴게 하고⁠, 내 팔을 잡아 거실로 끌고 나갔다⁠. 목소리를 낮췄다⁠.

“⁠태루야⁠, 니가 이러면 니 엄마 안 와⁠. 니 엄마가 안 오면 니가 할머니 똥 기저귀 평생 간다⁠. 니 시험은⁠? 다음 달 필기 아냐⁠? 니 인생은 어쩔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삼촌 말이 맞았다⁠. 사흘 동안 문제집은 한 장도 못 넘겼다⁠. 할머니가 주무시는 틈에 펼쳤다가 종소리에 덮기를 스무 번 했다⁠. 문제집 첫 지문은 하필 「⁠세계 인구 고령화와 돌봄 노동⁠」이었다⁠. 지문을 읽다가 종이 울렸고⁠, 나는 지문 속 돌봄 노동을 하러 일어났다⁠.

엄마를 데려오고 싶었다⁠. 솔직히 사흘 동안 백 번은 데려오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나는 다시 내 방문을 닫고 문제집을 풀면 됐다⁠. 열다섯 해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열다섯 해를 사흘 해 보고 나니⁠, 엄마가 기차를 탄 이유를 나는 알았다⁠.

들것이 방문을 통과하려고 비스듬히 기울었다⁠.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문틀을 막았다⁠. 이송 요원이 쩔쩔맸다⁠. 나는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지 않은 채 계단참으로 나갔다⁠. 빌라 계단은 폭이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가운데 서면 들것이 못 지나간다⁠. 나는 계단 맨 윗칸을 막고 버텼다⁠.

“⁠삼촌⁠, 일주일만 제가 해 볼게요⁠.⁠”

“⁠뭐⁠?⁠”

“⁠일주일⁠. 제가 해 볼게요⁠. 그동안 엄마 데리러 가지 마세요⁠.⁠”

“⁠너 시험은⁠?⁠”

“⁠할머니 주무실 때 풀게요⁠. 할머니 코 고는 소리가 백색 소음보다 나아요⁠.⁠”

방 안에서 할머니가 소리쳤다⁠.

“⁠나 코 안 골어⁠!⁠”

이송 요원 둘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뒤통수였다⁠. 이 층에 사는 홍 할머니가 문을 빼꼼 열고 내다보다가 삼촌과 눈이 마주치자 혀를 찼다⁠.

“⁠숙경이 없으니까 이 집이 동물원이네⁠.⁠”

삼촌이 이송 요원에게 출장비를 물었다⁠. 십오만 원이었다⁠. 삼촌은 카드를 내밀면서 나를 보았다⁠.

“⁠일주일이다⁠. 일주일 뒤에 니가 못 한다고 하면⁠, 그때는 니 엄마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데려온다⁠.⁠”

“⁠네⁠.⁠”

“⁠그리고 니 엄마 지금 강릉역이야⁠. 내가 아침에 엄마 병원 간다고 문자 보냈거든⁠. 표 끊었다더라⁠.⁠”

*

토요일 아침 아홉 시⁠, 두배의 문자를 받고 나는 가방을 쌌다⁠. 속옷 세 벌과 양말⁠, 혈압약⁠, 칫솔⁠. 이틀 동안 꺼낸 것도 없어서 싸는 데 삼 분이면 됐다⁠. 계단을 내려가자 말춘이 마루에서 왼손 하나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이틀치요⁠. 십사만 원⁠.⁠”

“⁠어제는 반나절밖에 안 했어요⁠.⁠”

“⁠이불 넘기는 법 안 가르쳐 줬으면 내가 오늘 아침에 또 넘어졌어요⁠. 그 값이래요⁠.⁠”

말춘이 봉투를 내 코트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봉투 겉에 볼펜으로 「⁠조숙경 일당⁠」이라고 쓰여 있었다⁠. 누가 내 이름을 쓰고 이름 옆에 돈을 넣어 준 일이 열다섯 해 만이었다⁠. 나는 봉투를 주머니 속에서 한 번 쥐었다⁠.

“⁠방은 그대로 둘게요⁠. 돌아오면 쓰고⁠, 안 돌아와도 그대로 두고⁠.⁠”

“⁠안 돌아오면 왜 그대로 둬요⁠?⁠”

“⁠이 골목에서 방 비워 놓으면 호텔 회사 사람들이 와서 문 두드려요⁠. 비워 둬 봐야 팔라는 소리나 듣지⁠. 차라리 짐 놓고 간 사람 방이라고 하는 게 나아⁠.⁠”

말춘은 대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나는 택시를 불렀다⁠.

강릉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나는 종이표를 쥐고 있었다⁠. 일부러 창구에서 종이로 달라고 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돌아갈 마음이 단단해질까 해서였다⁠. 두배의 문자는 짧았다⁠. 「⁠엄마 오늘 요양병원 들어간다⁠. 누나 때문이야⁠」

열한 시 기차였다⁠. 십 분 남았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태루의 영상 통화였다⁠. 받자마자 화면 가득 어머니의 돋보기가 들어왔다⁠. 태루가 휴대전화를 너무 가까이 들이민 것이었다⁠.

“⁠숙경이냐⁠?⁠”

“⁠엄마⁠, 괜찮아⁠?⁠”

“⁠니 지금 역이여⁠?⁠”

“⁠응⁠.⁠”

“⁠그 표 물러⁠.⁠”

어머니 목소리는 아침 죽을 드신 목소리였다⁠. 기운이 남아 있었다⁠.

“⁠니가 와도 나 병원 안 가⁠. 니가 안 와도 안 가⁠. 그러니께 니가 오는 거랑 내가 병원 가는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상관도 없는 일로 기차표 값 버리지 말어⁠.⁠”

화면이 흔들리더니 태루 얼굴이 들어왔다⁠. 머리가 까치집이었다⁠. 셔츠 어깨에 흰죽이 한 방울 말라붙어 있었다⁠.

“⁠엄마⁠, 일주일만 내가 해 볼게⁠. 오지 마⁠.⁠”

“⁠태루야⁠, 너 시험⁠.⁠”

“⁠알아⁠. 그러니까 일주일⁠.⁠”

태루가 화면 밖을 보고 무어라 말하자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테이프는 아래부터여⁠.⁠」 태루가 화면을 보고 웃었다⁠. 일곱 해 동안 시험에 떨어지면서 짓던 웃음과 다른 웃음이었다⁠.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종이표를 반으로 접었다⁠. 접힌 자리를 손톱으로 한 번 눌러 세우고⁠, 천천히 찢었다⁠. 「⁠서울⁠」과 「⁠강릉⁠」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합실 청소하시는 분이 찢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주었다⁠.

역 밖으로 나오는데 두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알았어⁠. 그럼 엄마 연금 통장이랑 카드는 내가 가져간다⁠. 누나가 엄마 돈으로 장 보는 거 이제 아니잖아⁠. 태루한테도 말해 놨어⁠」

나는 태루에게 짧게 썼다⁠. 「⁠할머니 통장은 할머니 거야⁠. 삼촌한테 주기 전에 할머니한테 여쭤봐⁠」

답이 금방 왔다⁠.

「⁠이미 여쭤봄⁠. 할머니가 통장을 베개 밑에 깔고 누우셨어⁠. 삼촌이 베개 들면 종 열 번 치신대⁠」

조금 있다가 한 줄이 더 왔다⁠.

「⁠종 열 번은 뭔지 나도 모름⁠」

나는 문자를 읽고 택시 승강장으로 걸었다⁠. 오후 두 시까지 이불 열두 채가 남아 있었다⁠. 주말 손님이 서핑 보드를 들고 몰려올 시간이었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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