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40자)

손님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토요일 아침 열 시⁠, 나는 화곡동 빌라 삼 층 초인종을 눌렀다⁠. 손에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빈손으로 안 다닌다⁠. 나도 조씨 집안 사람이었다⁠.

인터폰에서 태루 목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손님이요⁠.⁠”

인터폰 너머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손님이 선물은 들고 왔냐고 물어봐라⁠.⁠”

“⁠들고 왔어요⁠.⁠”

“⁠그럼 열어 줘라⁠.⁠”

문이 열렸다⁠. 거실 벽에 태루가 붙인 풍선이 몇 개 달려 있었다⁠. 「⁠생신 축하⁠」 글자 풍선 가운데 「⁠신⁠」 자가 바람이 빠져 축 늘어져 있었다⁠. 「⁠생 축하⁠」만 빵빵했다⁠. 태루가 풍선을 보고 머리를 긁었다⁠.

“⁠어제 불었는데 밤새 하나가 샜어⁠.⁠”

“⁠생 축하도 좋네⁠. 살아 계신 거 축하⁠.⁠”

할머니 방에서 효자손 소리가 땅 하고 났다⁠.

“⁠다 들린다⁠!⁠”

어머니는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오늘은 돋보기 대신 강릉에서 쓰던 선글라스를 이마에 얹었고⁠, 목에는 꽃무늬 스카프를 둘렀다⁠. 나는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가방 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 겉에 「⁠물빛민박 숙박권 — 바다 보이는 방 이틀⁠」이라고 내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게 뭐여⁠.⁠”

“⁠숙박권⁠. 엄마 강릉 오면 재워 줄게⁠.⁠”

“⁠공짜냐⁠?⁠”

“⁠아니⁠. 숙박권은 선물이고⁠, 밥값은 받아⁠.⁠”

어머니가 봉투를 오래 들여다보더니 베개 밑에 넣었다⁠. 통장을 넣어 두던 자리였다⁠.

*

점심때 두배와 수옥이 왔다⁠. 두배는 장바구니를 두 개 들고 있었다⁠. 생일 미역국을 자기가 끓이겠다고 했다⁠. 수옥이 장바구니를 받아 들며 나를 보고 눈을 굴렸다⁠. 두배는 쉰일곱 해 동안 라면 말고는 냄비를 불에 올려 본 적이 없었다⁠.

“⁠미역은 얼마나 불려⁠?⁠”

“⁠한 줌만⁠.⁠”

“⁠한 줌이 얼마야⁠.⁠”

“⁠니 손으로 한 줌⁠.⁠”

두배가 자기 손으로 미역을 한 줌 쥐어 물에 담갔다⁠. 십 분 뒤 미역이 냄비 밖으로 넘쳐 나왔다⁠. 두배의 손은 타일을 쥐는 손이라 컸다⁠. 부엌 바닥에 미역이 미끄러져 다녔다⁠. 물 마시러 나온 태루가 미역 한 가닥을 밟고 미끄러지다 냉장고 문을 붙잡았다⁠. 수옥이 미역 반을 덜어 내고 소고기를 볶았다⁠. 두배는 간을 맞추겠다며 국간장을 한 숟갈⁠, 또 한 숟갈 넣었다⁠. 수옥이 세 번째 숟갈을 든 두배의 손목을 잡았다⁠.

“⁠당신⁠, 어머님 혈압⁠.⁠”

“⁠아⁠.⁠”

두배는 간장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바가지 더 부었다⁠. 미역국은 점점 맹물이 되어 갔다⁠.

저녁상은 어머니 침대 옆에 차렸다⁠. 다섯이 둘러앉기엔 방이 좁아서 태루는 문지방에 앉았다⁠. 두배가 미역국을 떠서 어머니 입에 넣었다⁠. 어머니가 오래 오물거렸다⁠.

“⁠맹물이여⁠.⁠”

두배의 얼굴이 굳었다⁠. 어머니가 한 숟갈 더 받아 넣었다⁠.

“⁠맹물인데 니가 끓인 맹물이라 먹는다⁠. 니 생전 처음 끓인 국이잖여⁠.⁠”

두배가 숟가락을 든 채 고개를 숙였다⁠. 수옥이 두배의 등을 한 번 쓸었다⁠. 태루가 문지방에서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큰 초 아홉 개였다⁠. 아흔 개를 꽂으면 케이크가 불이 난다고 태루가 말했다⁠. 어머니가 초를 끄려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기침을 했다⁠. 우리 넷이 동시에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머니가 기침을 멈추고 손을 저었다⁠.

“⁠다들 같이 불어⁠. 내가 혼자 끄면 내년에 또 혼자 꺼야 혀⁠.⁠”

다섯이 같이 불었다⁠. 초가 한 번에 꺼졌다⁠. 연기가 방 안에 퍼지는 동안 어머니가 효자손으로 쟁반을 땅 쳤다⁠.

“⁠오늘 안 정한다⁠.⁠”

두배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 생일날 정한다고⁠.⁠”

“⁠생일은 오늘이고 정하는 건 내일 아침이여⁠. 오늘 밤에 니들이 할 일이 있어⁠. 두배는 오늘 밤을 맡아⁠. 열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기저귀⁠, 체위⁠, 물⁠. 수옥이는 아침 여섯 시부터⁠. 태루는 오늘 밤에 니 방 문 닫고 자⁠. 석 주 만에 처음으로 아침까지 자라⁠.⁠”

“⁠할머니⁠, 저는 괜찮⁠.⁠”

“⁠합격한 놈이 잠 못 자서 연수 가서 졸면 내 얼굴에 똥칠이여⁠.⁠”

“⁠저는요⁠?⁠”

내가 물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니는 손님이잖여⁠. 손님은 거실 소파에서 자⁠.⁠”

*

밤 열한 시⁠, 거실 소파에 담요를 펴고 누웠다⁠. 두배는 할머니 방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졸았다⁠. 태루 방에서는 석 주 만에 처음으로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수옥은 아침 여섯 시 차례라 일찍 자야 했는데⁠, 내 발치에 와서 앉았다⁠. 텔레비전이 소리를 줄인 채 켜져 있었다⁠. 밤 뉴스였다⁠. 「⁠돌봄 로봇 시범 사업⁠, 다음 달부터 전국 요양원 열 곳에⁠」 은색 팔을 단 로봇이 요양원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회갑 날 아침 지하철 광고에서 본 로봇과 같은 모양이었다⁠.

“⁠형님⁠, 저거 오면 우리 일 줄어들까요⁠?⁠”

“⁠모르지⁠. 기저귀는 로봇이 갈아도⁠, 어머님은 로봇한테 맹물이라고는 안 하실걸⁠.⁠”

수옥이 소리 죽여 웃었다⁠. 웃다가 담요 끝을 만지작거렸다⁠.

“⁠형님⁠, 어머님이 요즘 저한테 이상한 걸 물어보세요⁠.⁠”

“⁠뭘⁠?⁠”

“⁠우리 엄마 병원 근처에 요양원이 있느냐고요⁠. 고양시에⁠. 몇 층이냐⁠, 창문이 어디로 나 있냐⁠, 밥은 누가 하냐⁠? 지난주에 두 번 전화하셨어요⁠. 태루한테 번호 눌러 달라고 해서요⁠.⁠”

나는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시큰했다⁠.

“⁠엄마가⁠?⁠”

“⁠네⁠. 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래요⁠. 태루한테도⁠. 형님한테는 말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형님은 손님이라 다른 데 말 안 옮긴다고⁠.⁠”

수옥이 담요 끝을 놓았다⁠.

“⁠우리 엄마 병원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요양원이 하나 있어요⁠. 창문이 호수공원 쪽으로 나 있어요⁠. 바다는 아니지만 물은 보여요⁠. 제가 그 얘기를 했더니 어머님이 한참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다가⁠, 물이 보이면 됐다⁠, 하셨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로봇이 노인을 침대에서 일으키고 있었다⁠. 노인은 웃고 있었다⁠. 화면 속 노인이 정말 웃는 것인지⁠, 웃으라고 해서 웃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수옥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형님⁠, 주무세요⁠. 저도 잘게요⁠. 여섯 시에 그 사람이랑 교대해야 돼요⁠.⁠”

수옥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누웠다⁠. 천장의 얼룩이 열다섯 해 전 모양 그대로였다⁠. 비 오던 해 위층에서 물이 새서 생긴 얼룩이었다⁠. 나는 얼룩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

새벽 세 시⁠, 거실 소파에서 눈이 떠졌다⁠. 이 집의 버릇이었고 내 몸의 버릇이었다⁠. 할머니 방에서 종이 울렸다⁠. 띵⁠, 띵⁠. 나는 담요를 걷고 일어났다⁠. 일어나서 두 걸음을 걸은 뒤에야 내가 손님이라는 게 떠올랐다⁠. 할머니 방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두배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두배가 침대 난간을 내리고 어머니 무릎을 세웠다⁠. 무릎 밑에 한 팔⁠, 어깨에 한 팔⁠. 어머니를 자기 편으로 굴려 눕혔다⁠. 기저귀를 말아 빼고 물티슈를 두 장 뽑았다⁠. 일산에서 이십 분 걸리던 일을 두배는 십 분 만에 끝냈다⁠. 고개를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테이프를 아래부터 비스듬히 붙였다⁠.

두배가 방에서 나오다 문 앞의 나와 마주쳤다⁠. 두배가 손에 든 기저귀 봉지를 등 뒤로 감췄다⁠.

“⁠누나⁠, 왜 일어났어⁠. 누나는 손님이잖아⁠.⁠”

“⁠몸이 일어났어⁠.⁠”

“⁠앉아 있어⁠. 내가 할게⁠.⁠”

두배가 부엌으로 가서 기저귀 봉지를 묶어 베란다에 내놓고⁠, 손을 씻었다⁠. 손을 오래 씻었다⁠. 비누 거품을 손목까지 올려 문질렀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두배가 물을 두 컵 따라 와서 내 앞에 앉았다⁠. 부엌 형광등 하나가 가늘게 지지거렸다⁠. 열다섯 해 동안 새벽 세 시마다 내가 혼자 앉던 자리였다⁠.

“⁠누나⁠, 할 말 있어⁠.⁠”

“⁠해⁠.⁠”

두배가 물을 반 컵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누나만 봤어⁠.⁠”

나는 두배를 보았다⁠.

“⁠어려서부터 그랬어⁠. 누나는 공부도 잘했고 일도 잘했고 엄마 말도 잘 들었어⁠. 나는 다 못했어⁠.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는 일억 주고 끝냈어⁠. 너는 이 돈 받고 알아서 살아라⁠. 누나한테는 집을 줬어⁠. 그리고 나를 맡아 달라고 했어⁠. 누나⁠, 맡긴다는 게 뭔지 알아⁠? 믿는다는 거야⁠. 엄마는 누나를 믿었어⁠. 나는 한 번도 맡겨진 적이 없어⁠. 엄마가 나한테 뭘 맡긴 건 그 종이 하나였어⁠. 지갑 속에 넣어 두라는 종이⁠. 그것도 누나를 쉬게 하라는 종이였어⁠.⁠”

두배의 목소리가 낮았다⁠. 할머니 방에 들리지 않게 낮췄다⁠.

“⁠그래서 다섯 해 동안 안 보여 줬어⁠. 엄마가 울어서 안 보여 준 것도 맞는데⁠, 그것만은 아니야⁠. 그 종이를 꺼내면 엄마가 나한테 맡긴 첫 번째 일이 누나 뒤치다꺼리라는 게 확실해지잖아⁠. 그게 싫었어⁠. 쉰 넘어서도 싫었어⁠.⁠”

나는 물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 컵이 찼다⁠.

“⁠두배야⁠, 맡겨지는 게 좋은 건 줄 알아⁠?⁠”

“⁠좋은 거지⁠. 믿는 거니까⁠.⁠”

“⁠믿는다는 게 열다섯 해 동안 새벽 세 시에 깨는 거야⁠. 믿는다는 게 동창회 못 가는 거야⁠. 믿는다는 게 내 허리가 나가도 아무도 모르는 거야⁠. 엄마가 나를 믿었으니까⁠, 아무도 나를 안 봤어⁠. 믿으니까 볼 필요가 없었던 거야⁠.⁠”

두배가 입을 다물었다⁠. 형광등이 지지거렸다⁠. 두배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는 갚았어⁠.⁠”

“⁠뭘⁠?⁠”

“⁠일억⁠. 엄마한테⁠.⁠”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가게 차리고 삼 년쯤 지나서부터 다달이 오십만 원씩 엄마 통장에 부쳤어⁠. 엄마가 쓰러진 해부터는 하루도 안 빠졌어⁠. 열다섯 해⁠. 장사 안 되는 달에는 카드로 돌려 막아서도 부쳤어⁠. 수옥이한테도 말 안 했어⁠. 수옥이는 엄마 용돈인 줄 알아⁠.⁠”

“⁠엄마 통장⁠?⁠”

“⁠엄마 옛날 통장⁠. 서천 농협 통장⁠. 엄마가 그리로 보내라고 했어⁠. 누나네 반찬값 하라고⁠. 엄마가 누나한테 줬을 거 아니야⁠. 누나 그걸로 장 봤잖아⁠. 엄마 돈으로 장 봤다며⁠.⁠”

“⁠두배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엄마 연금으로 장 봤어⁠. 기초 연금이랑 아버지 유족 연금⁠. 그거 들어오는 통장 하나로 열다섯 해 장을 봤어⁠. 니가 가져가겠다던 통장⁠, 엄마가 베개 밑에 깔고 지킨 통장이야⁠. 서천 농협 통장은 본 적이 없어⁠. 오십만 원도 본 적이 없어⁠.⁠”

두배가 나를 보았다⁠. 처음 듣는 말을 듣는 얼굴이었다⁠. 귀가 빨개지지 않았다⁠. 얼굴 전체가 하얘졌다⁠.

“⁠그럼 그 돈은⁠?⁠”

“⁠몰라⁠.⁠”

“⁠열다섯 해면 구천만 원이야⁠. 누나⁠. 구천만 원⁠.⁠”

두배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두배의 손이 떨렸다⁠. 두배는 지금 다달이 오십만 원 때문에 가게를 잃게 생긴 사람이었다⁠. 다달이 부친 오십만 원이 열다섯 해 동안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나도⁠, 두배도⁠.

어머니 방에서 효자손 소리가 났다⁠. 땅⁠. 한 번이었다⁠. 한 번은 물이었다⁠. 이어서 어머니 목소리가 문틈으로 나왔다⁠. 새벽 세 시에 듣기에는 너무 또렷한 목소리였다⁠.

“⁠내가 다 가지고 있다⁠.⁠”

두배와 나는 동시에 할머니 방 문을 보았다⁠. 문틈의 불빛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두배야⁠, 물 가져와라⁠. 숙경이는 손님이니께 앉아 있고⁠. 날 밝으면 다 보여 주마⁠.⁠”

두배가 물컵을 들고 일어났다⁠. 걸음이 비틀거렸다⁠. 나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손님이니까⁠. 앉아서⁠, 열다섯 해 동안 내가 혼자 서 있던 부엌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장판의 꺼진 자리가 아직 내 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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