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88자)

관 짜서 나간다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월요일 아침⁠, 말춘이 예약 달력 대신 서류 봉투를 마루에 올려놓았다⁠. 아들이 두고 간 해담개발 봉투였다⁠. 이 주 동안 불쏘시개 통 옆에 세워져 있던 봉투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모서리가 뜯겨 있었다⁠.

“⁠숙경 씨⁠, 앉아 봐요⁠.⁠”

나는 아침상을 다 치우고 행주를 쥔 채 마루 끝에 앉았다⁠. 말춘은 깁스를 푼 지 사흘 된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손목이 아직 가늘었다⁠.

“⁠나 겨울에 서울 가요⁠.⁠”

“⁠파시게요⁠?⁠”

“⁠안 팔아요⁠. 가기만 가⁠.⁠”

말춘이 손목을 주무르던 손을 멈췄다⁠.

“⁠며느리가 둘째를 가졌대요⁠. 큰애가 네 살인데⁠, 며느리가 입덧이 심해서 큰애 등원을 못 시킨대요⁠. 아들이 엄마 와서 석 달만 봐 달래요⁠. 석 달⁠. 그 말 듣고 내가 웃었소⁠. 석 달이 석 달로 끝나는 거 봤소⁠?⁠”

“⁠열다섯 해요⁠.⁠”

“⁠그래요⁠. 숙경 씨가 제일 잘 알지⁠.⁠”

말춘은 봉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근데 가 보려고요⁠. 손주가 보고 싶어서⁠. 그거 하나는 진짜래요⁠. 대신 이 집은 안 팔아요⁠. 팔면 내가 돌아올 데가 없어⁠. 석 달이 석 달로 끝나면 돌아와야지⁠.⁠”

“⁠그럼 민박은요⁠?⁠”

“⁠숙경 씨가 맡아요⁠.⁠”

나는 행주를 떨어뜨렸다⁠.

“⁠월세로⁠. 겨울은 손님이 없으니까 싸게⁠. 대신 이불 빨래 맡기는 데 알아 놨고⁠, 호주 총각이 무거운 거 들어 주고⁠. 숙경 씨는 예약 받고⁠, 아침상 하고⁠, 손님 방 주고⁠. 지난 이 주 동안 숙경 씨가 다 한 일이래요⁠. 이름만 바뀌는 거지⁠. 직원에서 사장으로⁠.⁠”

“⁠제가 사장을요⁠?⁠”

“⁠예순이면 사장 할 나이지⁠. 나는 마흔둘에 이 집 차렸소⁠.⁠”

말춘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하고 마당을 보았다⁠. 빨랫줄에 이불이 일곱 채 널려 있었다⁠. 이 주 전에는 내가 넘긴 이불이었는데⁠, 오늘은 호주 청년이 넘긴 이불이었다⁠. 내 손이 하지 않은 일이 마당에 가득 널려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내가 한 일 같았다⁠.

*

수요일 점심때 말춘의 아들이 다시 내려왔다⁠. 어머니가 서울에 온다는 말은 반가웠고⁠, 민박을 남한테 맡긴다는 말은 반갑지 않았다⁠. 아들은 마루에 오르지 않고 마당에 선 채로 나를 보았다⁠.

“⁠아주머니⁠, 그 얘기 들었어요⁠.⁠”

“⁠네⁠.⁠”

“⁠우리 엄마 서울 오시면 이 집은 비워 둬야 팔기가 쉬워요⁠. 해담개발에서 올해 안에 답 달라고 했어요⁠. 지금이 값이 제일 좋을 때래요⁠. 아주머니가 여기 계시면 엄마는 돌아올 데가 있다고 생각하실 거고⁠, 그럼 안 파세요⁠.⁠”

“⁠네⁠, 안 파실 거예요⁠.⁠”

아들이 말문이 막혔다⁠.

“⁠아주머니한테 무슨 권리가 있어요⁠? 남의 집인데⁠.⁠”

“⁠권리는 없어요⁠. 월세 낼 거예요⁠.⁠”

“⁠월세 몇 푼에 엄마 노후를⁠.⁠”

“⁠아드님⁠.⁠”

나는 행주를 내려놓고 마루 끝에 앉았다⁠. 허리를 펴고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저도 집 하나를 얼마 전에 돌려줬어요⁠. 엄마한테 받은 집이었는데⁠, 그 집 때문에 열다섯 해 동안 엄마 옆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였어요⁠. 받은 집이 저를 묶었어요⁠. 사장님은 이 집이 사장님을 안 묶는대요⁠. 돌아올 데래요⁠. 돌아올 데가 있는 사람은 서울 가서 손주 보다가도 숨을 쉬어요⁠. 돌아올 데가 없는 사람은 손주 보다가 거기서 끝이에요⁠.⁠”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마당 빨랫줄을 보았다⁠. 바람에 이불 귀퉁이가 들렸다 내려갔다⁠. 말춘이 부엌 문에 기대 서서 아들을 보고 있었다⁠.

“⁠엄마⁠.⁠”

“⁠왜⁠?⁠”

“⁠석 달 뒤에 진짜 돌아가실 거예요⁠?⁠”

“⁠모르지⁠. 니 둘째 놈이 나를 얼마나 붙잡는지 봐야지⁠.⁠”

아들이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아들은 해담개발 봉투를 집어 들고 차로 돌아갔다⁠. 봉투를 가져갔다⁠. 말춘이 부엌 문에서 몸을 떼며 나에게 말했다⁠.

“⁠숙경 씨⁠, 말 잘하네⁠. 그거 어디서 배웠소⁠?⁠”

“⁠엄마요⁠. 아흔 해 동안 말로 사람 이기는 분이에요⁠.⁠”

*

같은 수요일 오후⁠, 나는 화곡동 빌라 거실에서 처음 보는 남자에게 차를 내고 있었다⁠. 진태루다⁠. 할머니 집이 된 지 닷새 된 집이었다⁠. 삼촌이 부동산 사장과 함께 남자 한 사람을 데려왔다⁠. 남자는 재개발 지역 빌라만 골라 사 모은다는 사람이었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현관에서 천장 높이를 쟀다⁠.

“⁠방이 셋이죠⁠? 지금 사시는 분이 몇 분⁠?⁠”

“⁠할머니랑 저요⁠.⁠”

“⁠할머니는 언제 나가세요⁠?⁠”

부동산 사장이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무 늦었다⁠. 할머니 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사극이었다⁠. 화면 속 대비마마가 「⁠무엄하다⁠!⁠」 하고 소리쳤다⁠. 소리가 거실 벽을 울렸다⁠. 삼촌이 할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할머니는 리모컨을 쥐고 소리를 끝까지 올려 놓은 채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돋보기 너머로 거실을 내다보았다⁠.

“⁠저 양반이 나 언제 나가냐고 물었냐⁠?⁠”

“⁠엄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관 짜서 나간다고 전해라⁠.⁠”

거실에서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부동산 사장이 남자의 팔을 끌고 현관으로 갔다⁠. 남자는 신발을 신으면서도 천장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문이 닫혔다⁠. 할머니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두배야⁠, 앉아⁠.⁠”

삼촌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나는 문간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내지 않았다⁠. 증인이 필요할 때 할머니는 늘 한 사람을 남겼다⁠.

“⁠팔라고 사람까지 데려왔냐⁠?⁠”

“⁠엄마⁠.⁠”

“⁠니 누나가 돌려준 집이여⁠. 닷새 됐어⁠. 닷새 만에 팔라고⁠.⁠”

삼촌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 밑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나 가게 넘어가요⁠.⁠”

할머니가 효자손을 내려놓았다⁠.

“⁠다음 달이면 넘어가요⁠. 대출 이자 석 달 밀렸어요⁠. 캐피탈에서 기한 이익 상실이래요⁠. 그게 뭔지 알아요⁠? 남은 돈 한 번에 다 갚으래요⁠. 못 갚으면 가게 보증금 가져가고 차 가져가요⁠. 엄마가 준 일억으로 차린 가게예요⁠. 열아홉 해 버텼어요⁠. 그 일억⁠, 다 날렸어요⁠. 엄마⁠, 미안해요⁠.⁠”

삼촌이 울었다⁠. 쉰일곱 살 남자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죽여서 울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삼촌이 우는 걸 처음 보았다⁠. 할머니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른손을 뻗어 삼촌의 뒤통수에 얹었다⁠.

“⁠알어⁠.⁠”

삼촌이 고개를 들었다⁠.

“⁠알어⁠. 니가 다 날린 거 나 알어⁠. 니가 다달이 나한테 뭘 부쳤는지도 알어⁠.⁠”

“⁠엄마⁠.⁠”

“⁠울지 마라⁠. 니 누나는 열다섯 해 동안 내 앞에서 한 번도 안 울었다⁠. 울면 내가 미안해할까 봐⁠.⁠”

할머니가 삼촌 뒤통수에서 손을 뗐다⁠.

“⁠그래도 집은 안 판다⁠. 이 집 팔아서 니 빚 갚으면⁠, 니는 다음에 또 빚을 진다⁠. 니 성질 내가 알어⁠. 집 팔아서 나 시설 보내고 나머지로 니 가게 살리면⁠, 니 누나 열다섯 해가 니 가게 보증금이 되는 거여⁠. 그건 못 한다⁠.⁠”

“⁠그럼 저는 어떡해요⁠.⁠”

“⁠그건 생일날 말혀 주마⁠.⁠”

삼촌이 멍하니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사극 소리를 한 칸 올렸다⁠.

*

목요일 오후에는 국민건강보험 직원이 왔다⁠. 상담원이 권한 장기요양 등급 다시 받기였다⁠. 나이 지긋한 여자 직원이 서류철과 줄자를 들고 할머니 방에 들어왔다⁠.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시켜 보고 물어보면서 몸이 얼마나 혼자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등급이 높아지면 요양보호사가 오는 시간이 늘어나고⁠, 시설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직원이 설명했다⁠.

“⁠어르신⁠, 혼자 일어나 앉아 보시겠어요⁠?⁠”

할머니가 오른팔로 침대 난간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반쯤 일어나다 멈췄다⁠. 나는 할머니가 일부러 멈춘 줄 알았다⁠. 등급을 올리려고 더 못하는 척하는 줄 알았다⁠. 동네 단톡방에서는 그런 요령이 돌았다⁠. 할머니가 숨을 몰아쉬고 다시 힘을 주었다⁠. 끝까지 일어나 앉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할머니⁠, 그냥 누워 계셔도 되는데⁠.⁠”

“⁠시끄러⁠. 나는 내 몸 그대로 보여 줄 거여⁠.⁠”

할머니가 직원을 보았다⁠.

“⁠선생⁠, 거짓말로 등급 올리면 그 시간만큼 남의 손이 더 오는 거지⁠?⁠”

“⁠네⁠, 어르신⁠.⁠”

“⁠그럼 거짓말 안 혀⁠. 남의 손이 와도 내 몸 그대로 아는 손이 와야지⁠. 엉터리로 알고 오면 그 손이 나를 잘못 굴려⁠.⁠”

직원이 서류에 무언가를 적으며 웃었다⁠. 할머니는 직원이 시키는 것을 다 했다⁠. 숟가락 쥐기⁠, 이름 대기⁠, 오늘 날짜 말하기⁠. 날짜를 묻자 할머니는 날짜에 요일까지 붙여 대답하고⁠, 덧붙였다⁠.

“⁠다음 주 토요일이 내 생일이여⁠. 선생도 와⁠.⁠”

직원이 돌아간 뒤 나는 할머니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할머니가 남의 손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강릉에 다녀온 뒤로 할머니 말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무엇이 바뀌는지는 아직 몰랐다⁠.

*

금요일 오전 열 시에 문자가 왔다⁠. 할머니 기저귀를 갈고 있을 때였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휴대전화를 열 수 없어서 장갑을 벗었다⁠. 테이프를 아래 것만 붙인 채였다⁠.

「⁠국토물길공사 신입 사원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신입 연수는 1월 3일부터이며⁠, 첫 근무지는 연수 후 지역 사업소로 배정됩니다⁠」

나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일곱 해 동안 기다린 글자였다⁠. 글자를 읽는데 손이 아니라 무릎이 떨렸다⁠. 할머니가 누운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테이프 마저 붙여⁠.⁠”

“⁠할머니⁠, 저 붙었어요⁠.⁠”

“⁠알어⁠. 니 얼굴에 다 쓰여 있어⁠. 테이프 마저 붙여⁠. 반만 붙인 기저귀는 안 붙인 거보다 못혀⁠.⁠”

나는 위 테이프를 비스듬히 붙였다⁠. 다 붙이고 나서 할머니 이불을 덮어 드렸다⁠. 할머니가 이불 밑에서 오른손을 꺼내 내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띵⁠, 띵⁠. 종 대신이었다⁠. 두 번은 기저귀였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

금요일 밤⁠, 나는 물빛민박 마루에서 태루의 전화를 받았다⁠. 태루는 첫마디를 하기 전에 숨을 세 번 쉬었다⁠.

“⁠엄마⁠, 나 붙었어⁠.⁠”

나는 마루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리가 찌르르 울렸지만 일어났다⁠. 마당에 있던 호주 청년이 놀라서 이불을 떨어뜨렸다⁠.

“⁠붙었어⁠? 진짜⁠?⁠”

“⁠응⁠. 일월 삼일부터 연수래⁠. 그다음엔 지방 사업소로 간대⁠.⁠”

“⁠잘했다⁠, 잘했어⁠, 우리 태루⁠.⁠”

나는 마당에서 맨발로 뱅뱅 돌았다⁠. 말춘이 부엌에서 뛰어나왔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손뼉부터 쳤다⁠. 호주 청년도 영문도 모르고 손뼉을 쳤다⁠. 셋이 마당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한참 손뼉을 치다가 손이 멈췄다⁠. 일월 삼일⁠. 지방 사업소⁠. 화곡동 빌라 삼 층에는 아흔 살 어머니가 있었다⁠. 태루가 일월에 떠나면 어머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 너머에서 태루가 내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 그 생각 하지 마⁠. 할머니가 생일날 정한대⁠.⁠”

“⁠생일⁠?⁠”

“⁠다음 주 토요일이 할머니 생신이잖아⁠. 대화방 봐⁠.⁠”

전화를 끊고 「⁠조씨네 효도방⁠」을 열었다⁠. 어머니 계정으로 글이 올라와 있었다⁠. 태루가 대신 쳐 준 글이었지만 말투는 어머니 것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 내 생일⁠. 다 와라⁠. 두배⁠, 수옥이⁠, 태루⁠, 그리고 강릉 사는 손님도⁠. 손님은 초인종 누르고 들어와라⁠. 내가 다 정한다⁠」

글 밑에 두배가 무릎 꿇은 사람 이모티콘을 하나 붙였다⁠. 수옥은 케이크 이모티콘을 붙였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아무 이모티콘도 붙이지 않고 한 줄만 썼다⁠.

「⁠갈게⁠. 손님으로⁠.⁠」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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