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48자)

열쇠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조씨네 효도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회갑 날 아침 이후 처음으로 내가 먼저 쓰는 글이었다⁠.

「⁠내일 오전 열 시⁠, 엄마 방에서 봐⁠. 다 와⁠. 수옥이도⁠.⁠」

두배가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보냈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 「⁠삭제된 메시지입니다⁠」가 남았다⁠. 수옥은 「⁠네 형님⁠」이라고 썼다⁠. 태루는 읽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계정에서 글이 올라왔다⁠. 태루가 대신 쳐 준 것이었다⁠.

「⁠종 세 번 칠 테니 그때 들어와라⁠」

창밖으로 대관령 터널이 지나갔다⁠. 터널에 들어가면 창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고⁠, 터널을 나오면 산이 비쳤다⁠. 내용증명 봉투는 코트 안주머니에 있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봉투 모서리가 가슴을 찔렀다⁠.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이번에는 길었다⁠.

목요일 밤도 빌라 앞 찜질방에서 잤다⁠. 주황색 반팔을 받아 입는데 카운터 직원이 나를 알아보았다⁠.

“⁠또 오셨네요⁠. 이번엔 며칠이세요⁠?⁠”

“⁠모르겠어요⁠.⁠”

“⁠그럼 열 장짜리 할인권 끊으세요⁠. 그게 더 싸요⁠.⁠”

나는 할인권을 사지 않았다⁠. 열 장을 다 쓸까 봐 무서웠다⁠.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빌라 건너편 김밥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는데 두배가 들어왔다⁠. 내 맞은편에 앉아 김밥 한 줄을 시켰다⁠. 김밥이 나오자 두배는 꽁다리부터 집어 먹었다⁠. 어려서부터 꽁다리를 좋아했다⁠. 내가 늘 꽁다리를 두배 접시에 덜어 주었다⁠.

“⁠누나⁠, 엄마가 소송 걸었어⁠. 엄마 이름으로⁠.⁠”

“⁠알아⁠. 내가 받았어⁠.⁠”

“⁠이기면 집이 엄마 이름으로 돌아가⁠. 그럼 팔아서 엄마 시설비 대고⁠, 남는 건 나중에 나눠⁠.⁠”

“⁠엄마가 팔겠대⁠?⁠”

두배가 김밥을 씹다 멈췄다⁠.

“⁠엄마가 시설 가겠대⁠?⁠”

두배는 대답하지 않고 김밥을 삼켰다⁠. 목이 메는지 물을 한 컵 다 마셨다⁠. 두배는 소송에서 이길 계산만 했고⁠, 이긴 다음 어머니가 무엇을 할지는 계산하지 않았다⁠.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 방 문지방을 넘지 않은 사람의 계산이었다⁠.

“⁠두배야⁠, 꽁다리 더 먹어⁠.⁠”

나는 내 라면 그릇 옆에 남은 단무지를 두배 접시로 밀었다⁠. 두배가 단무지를 내려다보았다⁠. 쉰일곱 살 남자가 단무지 앞에서 귀가 빨개졌다⁠.

*

금요일 오전 열 시⁠, 어머니 방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우리는 거실에서 기다리다 줄지어 들어갔다⁠. 두배⁠, 수옥⁠, 태루⁠, 나⁠. 방이 좁아서 넷이 침대 발치에 어깨를 붙이고 나란히 있었다⁠. 두배는 오늘도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다⁠. 수옥은 손목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태루는 면접 날 맸던 넥타이를 손목에 감고 있었다⁠. 왜 감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침대에 기대앉아 돋보기를 쓰고 있었다⁠. 무릎 위 쟁반에 은색 종과 효자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전 회의였다⁠.

“⁠출석 부르겄다⁠.⁠”

어머니가 효자손으로 두배부터 가리켰다⁠.

“⁠두배⁠. 니는 뭘 원허냐⁠? 솔직히 말혀⁠. 거짓말허면 귀가 빨개지니께 다 보여⁠.⁠”

두배가 귀를 손으로 가리려다 말았다⁠.

“⁠가게 살리고 싶어요⁠. 대출 이자 갚고⁠. 애들 등록금 내고⁠.⁠”

“⁠수옥이⁠.⁠”

“⁠저희 엄마 간병비요⁠, 어머님⁠. 다음 달부터 오른대요⁠.⁠”

“⁠태루⁠.⁠”

“⁠다음 주 금요일 합격 발표요⁠. 붙어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이에요⁠.⁠”

“⁠나는⁠.⁠”

어머니가 효자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었다⁠.

“⁠나는 내 옆에 숙경이⁠. 그거 하나여⁠.⁠”

어머니가 효자손 끝을 나에게 돌렸다⁠.

“⁠숙경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이따가 하겠다고 고개만 저었다⁠. 어머니가 효자손을 쟁반에 내려놓았다⁠. 넷이 원하는 것이 방 안에 한꺼번에 올라왔다⁠. 가게⁠, 간병비⁠, 합격⁠, 딸⁠.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곡동 빌라 삼 층⁠, 마흔두 칸 위의 이 집이었다⁠.

“⁠숙경이 왔냐⁠?⁠”

“⁠응⁠.⁠”

“⁠편지 받았냐⁠?⁠”

“⁠받았어⁠.⁠”

“⁠읽었냐⁠?⁠”

“⁠두 번 읽었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효자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니가 돌아오면 거둔다⁠. 소송⁠.⁠”

방이 조용해졌다⁠. 두배가 고개를 들었다⁠. 두배는 몰랐다⁠. 어머니가 위임장에 이름을 쓴 이유를 두배는 집을 되찾으려는 것으로 알았다⁠. 수옥이 두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두배의 귀가 빨개졌다⁠.

“⁠엄마⁠.⁠”

“⁠니가 집에 돌아와서 내 옆에 있으면⁠, 내가 변호사한테 전화해서 없던 일로 하라고 한다⁠. 니 집은 니 집이고⁠, 나는 니 옆에 있고⁠. 두배는 아무 소리 못 하고⁠. 그게 제일 깔끔혀⁠.⁠”

어머니가 판을 짰다⁠. 아흔 해 동안 화투판에서 마지막 패를 쥐고 놓지 않던 사람이었다⁠. 두배가 그걸 누구에게 배웠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어머니 침대 옆으로 갔다⁠. 의자에 앉지 않고 침대 난간을 잡고 버텼다⁠. 허리가 시큰거렸지만 서서 말하고 싶었다⁠.

“⁠엄마⁠, 소송 안 해도 돼⁠.⁠”

“⁠그려⁠. 그럼 돌아오는 거지⁠.⁠”

“⁠아니⁠. 집 돌려줄게⁠.⁠”

어머니의 효자손이 쟁반 위에서 멈췄다⁠. 종이 쟁반 가장자리로 밀려가 작게 띵 하고 울렸다⁠. 아무도 치지 않았는데 울렸다⁠.

“⁠뭐⁠?⁠”

“⁠화곡동 집⁠, 엄마한테 돌려줄게⁠. 소송할 필요 없어⁠. 법무사 불러서 엄마 이름으로 되돌려 놓자⁠. 오늘⁠.⁠”

두배가 한 걸음 다가왔다가 수옥에게 소매를 붙잡혔다⁠.

“⁠누나⁠, 진짜⁠?⁠”

“⁠당신 웃지 마⁠.⁠”

수옥이 낮게 말했다⁠. 두배는 웃지 않았다⁠. 웃음이 나오려다 들킨 얼굴이었다⁠. 두배는 자기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어머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돋보기를 벗었다⁠.

“⁠니가 미쳤냐⁠? 재개발 들어가면 두 배라는 집을⁠.⁠”

“⁠알아⁠.⁠”

“⁠그럼 니는 어디서 살어⁠?⁠”

“⁠강릉⁠. 민박 이 층 맨 끝 방⁠. 월세 내고⁠.⁠”

“⁠예순 먹고 월세⁠?⁠”

“⁠엄마⁠, 나 열다섯 해 동안 이 집에서 월세 냈어⁠.⁠”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돈으로 안 냈어⁠. 기저귀로 냈고⁠, 새벽 세 시로 냈고⁠, 허리로 냈어⁠. 집을 받아서⁠, 집 받은 대가로 냈어⁠. 갚아도 갚아도 남더라⁠. 열 해 갚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다섯 해가 더 붙었어⁠. 그 다섯 해는 이자였어⁠. 엄마랑 두배가 나 몰래 붙인 이자⁠.⁠”

두배가 고개를 숙였다⁠. 수옥이 두배의 손을 잡았다⁠. 붙잡는 손인지 말리는 손인지 몰랐다⁠.

“⁠집을 돌려주면 나는 엄마한테 빚이 없어⁠. 빚 없이 엄마 딸 하고 싶어⁠.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어⁠. 예순에⁠.⁠”

“⁠그럼 니는 이제 내 딸 노릇도 안 하겄다는 거냐⁠?⁠”

“⁠딸 노릇은 해⁠. 기저귀 노릇은 안 해⁠.⁠”

어머니가 나를 오래 보았다⁠. 아래위로 한 번⁠, 다시 위로 한 번이 아니었다⁠. 눈만 오래 보았다⁠. 그러다 손을 뻗어 쟁반 위의 종을 쥐었다⁠. 치지 않고 쥐기만 했다⁠.

*

법무사는 오후 세 시에 왔다⁠. 열다섯 해 전 어머니가 집을 넘길 때 서류를 꾸민 사람이었다⁠. 그새 머리가 하얗게 셌다⁠. 법무사가 어머니 방에 들어오자 어머니가 먼저 알아보았다⁠.

“⁠그때 그 양반이구먼⁠. 머리가 나보다 하얗네⁠.⁠”

“⁠어르신은 그대로시네요⁠.⁠”

“⁠거짓말도 그대로고⁠.⁠”

법무사는 서류를 펼쳐 놓고 설명했다⁠. 증여를 서로 합의해서 없던 일로 하고 등기를 어머니 이름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되돌리는 것도 나라에서는 새로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세금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두배가 세금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법무사가 두배를 보지 않고 말했다⁠.

“⁠세금은 받는 분이 내십니다⁠. 어르신이요⁠.⁠”

어머니가 혀를 찼다⁠.

“⁠아흔에 세금을 내 보네⁠. 내가 오래 살긴 혔다⁠.⁠”

법무사가 서류 몇 장을 넘기며 나와 어머니에게 차례로 도장을 받았다⁠.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도장을 쥐고 인주를 두 번 묻혔다⁠. 한 번은 손이 떨려서 인주가 손가락에 묻었다⁠. 태루가 물티슈로 할머니 손가락을 닦았다⁠. 아래 테이프부터⁠, 비스듬히 기저귀를 채우던 손으로 닦았다⁠.

법무사가 서류를 챙겨 일어나다 문간에서 돌아보았다⁠.

“⁠열다섯 해 전에 어르신이 저 나가고 나서 따님 몰래 아드님 앞에서 종이에 뭘 더 쓰셨죠⁠. 사무실 탁자에서요⁠. 제가 창밖으로 봤습니다⁠. 무슨 종이였는지는 몰랐어요⁠.⁠”

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았다⁠. 두배가 대답했다⁠.

“⁠시설 가는 날짜요⁠. 엄마가 정한⁠.⁠”

법무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마흔두 번 났다⁠. 나는 세지 않았는데 알았다⁠.

*

다들 거실로 나가고 방에 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현관 열쇠 하나⁠, 우편함 열쇠 하나⁠, 그리고 급식실에서 열 해 일했다고 받은 작은 금속 숟가락 모양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숟가락 뒷면에 「⁠근속 10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열다섯 해 동안 이 열쇠로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을 열었다⁠. 장 보러 나갔다 들어올 때⁠, 약국에 다녀올 때⁠, 어머니 병원 서류를 떼러 주민센터에 다녀올 때⁠.

열쇠 꾸러미에서 현관 열쇠와 우편함 열쇠를 빼냈다⁠. 숟가락 열쇠고리는 남겼다⁠. 그건 집이 아니라 급식실이 준 것이었다⁠.

“⁠엄마⁠, 손⁠.⁠”

어머니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뼈 위에 얇은 살이 덮인 손바닥이었다⁠. 손금이 몇 줄 남지 않았다⁠. 나는 열쇠 두 개를 손바닥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손을 오므렸다⁠. 열쇠가 손가락 사이로 반쯤 보였다⁠. 어머니는 손을 펴지 않았다⁠.

“⁠이제 니 집이 없다⁠.⁠”

“⁠응⁠.⁠”

“⁠그럼 이제 니가 손님이네⁠.⁠”

“⁠응⁠.⁠”

“⁠손님은 초인종 누르고 들어와라⁠.⁠”

“⁠그럴게⁠.⁠”

어머니가 돌아누웠다⁠. 열쇠를 쥔 손을 가슴에 대고 창을 향해 누웠다⁠. 창밖에는 앞 빌라의 벽과 전깃줄과 하늘 한 조각이 있었다⁠. 하늘 한 조각에 구름이 지나갔다⁠. 나는 어머니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 주었다⁠. 이불을 덮어 주는 일은 기저귀 노릇이 아니라 딸 노릇이었다⁠.

거실에서 두배가 휴대전화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부동산이든 캐피탈이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수옥이 두배를 따라 베란다로 나갔다⁠. 유리문 너머로 수옥이 두배의 휴대전화를 빼앗는 모습이 보였다⁠. 태루는 식탁에 앉아 넥타이를 손목에서 풀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고 나가 문을 닫았다⁠. 문이 철컥 잠겼다⁠. 이제 이 문을 밖에서 열 열쇠가 나에게 없었다⁠. 나는 문 앞에 잠깐 서 있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마흔두 칸이었다⁠. 한 칸 내려갈 때마다 허리 아래로 전기가 흘렀고⁠,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아픈 것과 가벼운 것이 같은 계단에서 일어났다⁠. 일 층에 내려서자 빌라 입구 전봇대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재개발 주민 동의서 — 소유주 도장 받습니다⁠」 나는 더는 이 동네의 소유주가 아니었다⁠. 이 층 창문이 열리고 홍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숙경이 어디 가⁠?⁠”

“⁠강릉이요⁠.⁠”

“⁠집은⁠?⁠”

“⁠엄마 집이에요⁠. 오늘부터⁠.⁠”

홍 할머니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손뼉을 쳤다⁠.

“⁠그럼 재개발 동의서는 봉실 언니 도장이네⁠. 아이고⁠, 그 언니 도장 받으려면 사극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사극이 아홉 시 사십 분에 끝나거든요⁠.⁠”

“⁠알아⁠. 십오 년 동안 그 집 텔레비전 소리로 시계 맞췄어⁠.⁠”

나는 웃었다⁠. 홍 할머니가 창문을 닫으려다 말고 한마디를 더 했다⁠.

“⁠숙경아⁠, 또 와⁠. 손님으로⁠.⁠”

나는 현수막 밑을 지나 큰길로 걸어갔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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