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4자)

아래 테이프부터

예순 살의 가출 · 윤은류

금요일 아침 기차로 강릉에 돌아왔다⁠. 태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루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찜질방 수면실에서 깨 보니 태루는 먼저 나가고 없었다⁠. 주황색 반바지가 개켜져 반납함에 들어가 있었다⁠. 태루는 어려서부터 옷을 개는 아이가 아니었다⁠. 할머니를 돌본 석 주가 태루에게 옷 개는 법까지 가르쳤다⁠.

물빛민박에 돌아오자 말춘이 마루에서 예약 달력을 펼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소⁠?⁠”

“⁠방임 아니래요⁠. 아들이 잘했대요⁠.⁠”

“⁠그럼 됐네⁠.⁠”

“⁠아들이 다음 주 화요일에 면접인데⁠, 하루만 할머니 곁에 있어 달래요⁠. 안 간다고 했어요⁠.⁠”

말춘이 예약 달력을 덮었다⁠.

“⁠숙경 씨⁠.⁠”

“⁠네⁠.⁠”

“⁠잘했소⁠. 근데 잘한 사람 얼굴이 왜 그래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잘한 일과 마음 편한 일은 서로 다른 동네에 살았다⁠.

주말 내내 나는 예약 전화를 받고 아침상을 차리고 손님 방을 배정했다⁠. 호주 청년이 이불을 안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내 허리가 저절로 움찔했다⁠. 몸이 아직 이불 무게를 기억했다⁠. 일요일 밤에는 바닷가를 걸었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면 뒤꿈치가 덜 아팠다⁠. 파도 끝이 발등에 닿을 때마다 화요일이 하루씩 가까워졌다⁠.

*

화요일 새벽 다섯 시⁠, 나는 면도를 했다⁠. 진태루⁠, 서른두 살⁠. 세 번째 최종 면접 날이었다⁠. 정장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맸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넥타이를 맨 채로 할머니 기저귀를 갈 생각이었다⁠. 면접은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장을 입은 이유는 나도 몰랐다⁠. 입어 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눈을 떴다⁠. 돋보기를 쓰고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니 그러고 어디 가냐⁠?⁠”

“⁠안 가요⁠.⁠”

“⁠그럼 왜 넥타이를 맸어⁠.⁠”

“⁠그냥요⁠.⁠”

할머니가 효자손을 들어 내 넥타이를 툭 쳤다⁠.

“⁠가라⁠.⁠”

“⁠할머니 혼자 못 둬요⁠.⁠”

“⁠나 혼자 있는 거 열다섯 해 동안 니 에미가 하루도 안 해 봤다⁠. 오늘 내가 해 볼란다⁠.⁠”

“⁠할머니⁠.⁠”

“⁠세 시간이면 선생이 와⁠. 그동안 내가 죽냐⁠? 아흔 해를 살았는데 세 시간을 못 살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효자손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뻗어 내 넥타이 매듭을 고쳐 주었다⁠. 손이 떨렸는데 매듭은 똑바로 잡혔다⁠. 할아버지가 출근할 때마다 해 주던 손이라고 했다⁠.

여섯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숙모 얼굴이 떴다⁠. 숙모는 학원 차 도우미 조끼 대신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숙모가 왜요⁠?⁠”

“⁠문 열어⁠.⁠”

숙모가 신발을 벗고 들어와 장바구니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장바구니 안에 기저귀 한 봉지와 물티슈와 흰죽 재료가 들어 있었다⁠.

“⁠엄마가 연락했어요⁠?⁠”

“⁠아무한테도 연락 안 받았어⁠. 니 엄마한테도⁠, 니 삼촌한테도⁠.⁠”

“⁠그럼⁠.⁠”

“⁠내가 정했어⁠. 학원에 오늘 하루 쉰다고 했어⁠. 원장님이 잘리고 싶냐고 그래서 잘려도 된다고 했어⁠. 잘리면 우리 엄마 간병비를 어떻게 하냐고 원장님이 그러길래⁠, 그건 내가 내일 생각한다고 했어⁠.⁠”

숙모는 앞치마 끈을 다시 묶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숙모를 보고 돋보기를 벗었다⁠.

“⁠수옥이냐⁠?⁠”

“⁠네⁠, 어머님⁠. 오늘 제가 있을게요⁠.⁠”

“⁠니 두배한테 말했냐⁠?⁠”

“⁠아니요⁠. 그 사람은 오늘 현장이에요⁠.⁠”

“⁠니가 여기 있는 거 알면 두배가 화낼 텐데⁠.⁠”

“⁠화내라고 하세요⁠. 어머님이 저희 엄마 안부 물어봐 주셨잖아요⁠. 열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안 물어보시다가⁠.⁠”

할머니가 웃었다⁠. 숙모도 웃었다⁠. 숙모가 손목 안쪽에 죽 그릇을 대 보았다⁠. 나는 넥타이를 한 번 더 만지고⁠,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마흔두 칸을 처음으로 셌다⁠. 엄마가 왜 세었는지 알았다⁠. 세면 덜 무서웠다⁠.

*

면접 대기실에는 나까지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다들 스물다섯⁠, 여섯쯤 되어 보였다⁠. 옆자리 지원자가 내 이력서 사진을 흘끗 보더니 물었다⁠.

“⁠형은 몇 살이에요⁠?⁠”

“⁠서른둘⁠.⁠”

“⁠와⁠.⁠”

와⁠, 다음에 아무 말도 없었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맞은편 지원자가 자기 휴대전화로 면접 예상 질문을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공백기에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외우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열어 보니 숙모가 사진을 한 장 보내 놓았다⁠. 할머니가 침대에서 죽 그릇을 비우고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왼손은 굳어서 오른손 엄지였다⁠. 사진 밑에 음성 메시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들었다⁠.

“⁠태루야⁠, 면접관이 웃기는 질문 하면 웃지 말고 니가 웃겨라⁠. 그리고 넥타이 만지지 마라⁠. 내가 고쳐 놨다⁠.⁠”

나는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옆자리 지원자가 내 이어폰에서 새어 나온 사투리를 듣고 웃음을 참았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세종의 국토물길공사 본사 면접장에는 면접관이 다섯 명 앉아 있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이 내 서류를 넘기다가 멈췄다⁠.

“⁠진태루 씨⁠, 공백기가 깁니다⁠. 졸업하고 일곱 해⁠. 특히 최근 석 달은 서류에 아무것도 없네요⁠. 무엇을 하셨습니까⁠?⁠”

면접 학원에서는 이 질문에 자기 계발을 했다고 대답하라고 가르쳤다⁠. 어학 점수⁠, 자격증⁠, 봉사 활동⁠. 나는 입을 열었다가 할머니가 가르쳐 준 말을 떠올렸다⁠.

“⁠할머니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면접관 다섯 명의 얼굴이 동시에 멈췄다⁠. 맨 끝 젊은 면접관이 펜을 떨어뜨렸다⁠.

“⁠어머니가 열다섯 해 동안 할머니를 돌보시다가 허리가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석 주 전부터 제가 돌봤습니다⁠. 할머니는 아흔이시고⁠, 왼편이 굳으셨고⁠, 머리는 저보다 맑으십니다⁠.⁠”

“⁠거기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가운데 면접관이 물었다⁠. 웃음기 없는 목소리였다⁠.

“⁠죽은 손등에 대 보고 뜨겁지 않아도 손목 안쪽에 한 번 더 대 봐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저한테 미지근한 것이 할머니한테는 뜨겁습니다⁠. 물길도 같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보기에 괜찮은 물이 아래 사는 사람한테는 넘칩니다⁠. 아래 사는 사람의 손목에 대 봐야 합니다⁠.⁠”

말하고 나니 정말 그랬다⁠. 면접관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하나는 무언가를 적었다⁠. 가운데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 공사에 들어오면 지방 근무가 많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가르쳐 준 말 중에 이 질문의 답은 없었다⁠. 면접장 창밖으로 세종 호수공원의 물이 회색으로 반짝였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에 할머니한테 여쭤보겠습니다⁠.⁠”

젊은 면접관이 웃음을 참았다⁠. 가운데 면접관은 웃지 않고 서류를 덮었다⁠.

“⁠할머니께 안부 전해 주세요⁠.⁠”

*

밤 아홉 시⁠, 화곡동 빌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삼 층에서 큰 소리가 났다⁠. 삼촌 목소리였다⁠.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어머님 돌봐 드리러 왔어요⁠.⁠”

“⁠누가 오라 그랬어⁠? 누나가 시켰어⁠?⁠”

“⁠아무도 안 시켰어요⁠. 내가 정했어요⁠.⁠”

거실에서 삼촌과 숙모가 마주 서 있었다⁠. 삼촌 손에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에 법무법인 이름이 찍혀 있었다⁠. 나는 정장 차림으로 현관에 서서 둘을 보았다⁠. 삼촌이 나를 돌아보았다⁠.

“⁠면접은⁠?⁠”

“⁠봤어요⁠.⁠”

“⁠잘 봤냐⁠?⁠”

“⁠모르겠어요⁠.⁠”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맨 위 종이에 「⁠소송 위임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제목 아래에 「⁠증여 계약 해제 및 소유권 이전 등기 말소 청구⁠」라는 글자가 보였다⁠.

“⁠태루야⁠, 잘 들어⁠. 변호사랑 상담했어⁠. 할머니가 원고가 되고 니 엄마가 피고가 되는 거야⁠. 집을 할머니한테 돌려놓는 거야⁠. 할머니 집이 되면 할머니 시설비를 그 집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게 할머니 쓴 대로 하는 거야⁠. 시설로 간다⁠. 할머니 손으로 쓰셨어⁠.⁠”

“⁠삼촌⁠.⁠”

“⁠니 엄마 혼내려는 거 아니야⁠. 정리하는 거야⁠.⁠”

나는 정장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 넥타이를 풀었다⁠. 할머니가 아침에 고쳐 준 매듭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삼촌⁠, 할머니 이용하지 마세요⁠.⁠”

삼촌이 나를 보았다⁠.

“⁠엄마 데려오는 데 할머니 쓰지 마세요⁠. 요양병원 구급차 불러서 할머니 볼모 잡고⁠, 기관에 신고해서 할머니 옮기려고 하고⁠, 이번엔 할머니 이름으로 엄마한테 소송 걸고⁠. 할머니가 삼촌 도구예요⁠?⁠”

“⁠너는 누구 편이야⁠. 니 엄마 편이야⁠, 할머니 편이야⁠?⁠”

“⁠제 편이요⁠.⁠”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석 주 동안 새벽 세 시마다 일어나면서 목소리가 굵어졌다⁠.

“⁠엄마는 안 데려와요⁠. 엄마가 오고 싶을 때 와요⁠. 할머니는 제가 돌봐요⁠. 면접 붙으면 붙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같이 정해요⁠. 할머니랑⁠. 삼촌이 정하지 마세요⁠.⁠”

삼촌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할머니 방에서 종이 울렸다⁠. 띵⁠, 띵⁠, 띵⁠, 띵⁠. 네 번이었다⁠. 네 번은 정한 적이 없는 소리였다⁠. 우리 셋이 동시에 방문을 보았다⁠.

“⁠두배야⁠, 그 종이 가져와라⁠.⁠”

할머니 목소리였다⁠. 삼촌이 위임장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숙모와 나도 따라 들어갔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어디다 쓰면 되냐⁠?⁠”

“⁠엄마⁠.⁠”

내가 먼저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보지 않고 삼촌에게 손을 내밀었다⁠.

“⁠펜⁠.⁠”

삼촌이 볼펜을 쥐여 드렸다⁠. 할머니는 위임장을 무릎 위 쟁반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이름을 썼다⁠. 마⁠, 봉⁠, 실⁠. 한 글자 쓸 때마다 숨을 골랐다⁠. 획이 떨렸지만 열다섯 해 전 편지지의 글씨와 같은 글씨였다⁠. 다 쓰고 나서 할머니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왜요⁠?⁠”

“⁠니 에미가 이걸 받으면 오겄지⁠.⁠”

할머니는 한마디만 하고 돌아누웠다⁠. 숙모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삼촌은 위임장을 받아 들고 한참 할머니 등을 보았다⁠. 이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

목요일 오전⁠, 물빛민박 마당에 집배원 오토바이가 멈췄다⁠. 집배원이 등기 우편이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수령 서명을 하고 흰 봉투를 받았다⁠. 봉투 겉에 「⁠내용증명⁠」 도장이 찍혀 있었다⁠. 보내는 사람 칸에 법무법인 이름과 함께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봉실⁠.

나는 마당에 선 채로 봉투를 뜯었다⁠. 「⁠통지인 마봉실은 피통지인 조숙경에게⁠, 2012년 3월 부양을 조건으로 한 화곡동 주택 증여 계약을 피통지인의 부양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해제함을 통지합니다⁠.⁠」

종이를 쥔 손보다 발이 먼저 떨렸다⁠. 마당 흙이 슬리퍼 밑에서 미끄러웠다⁠. 빨랫줄에서 이불을 걷던 말춘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무슨 편지요⁠?⁠”

“⁠엄마가 보냈어요⁠.⁠”

“⁠어머님이 편지를 다 쓰시네⁠.⁠”

“⁠엄마가 저한테 소송을 거신대요⁠.⁠”

말춘이 이불을 내려놓았다⁠. 젖은 이불이 평상 위에서 무겁게 주저앉았다⁠. 이 층 계단에서 이불을 안고 내려오던 호주 청년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보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는 끄덕여지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종이를 다시 접어 봉투에 넣고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를 꺼내 서울 가는 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돌아오는 표를 사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돌아오는 표를 살 손이 떨려서였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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