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83자)

사부의 쌀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은선공자가 청송문 지붕을 고친다는 소문은 리현이 고갯길을 다 오르기도 전에 산 위에 먼저 와 있었다⁠. 솔숲 여기저기에서 나무를 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무꾼치고는 손에 든 것이 도끼가 아니라 붓이었다⁠. 그림쟁이 하나는 아예 산문 앞 바위에 좌판을 펴고 앉아 있었다⁠.

리현은 흰 비단옷 소매를 걷고 사다리를 올랐다⁠. 소매를 걷자 금실 무늬가 접혀 들어가 안 보였고⁠, 손목에 감은 천이 드러났다⁠. 목령이 지붕 위에서 기와 한 장을 내밀었다⁠.

“⁠어제 비뚤게 끼운 거⁠, 빼고 다시 끼우시오⁠.⁠”

“⁠비뚤어야 빗물이 덜 고이지 않나⁠?⁠”

“⁠비뚤면 빗물이 사부 이마로 떨어지오⁠.⁠”

마당에서 사부가 이마를 문질렀다⁠. 지난밤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리현이 웃으며 비뚤어진 기와를 뽑아냈다⁠. 솔숲에서 붓 놀리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바위 위의 그림쟁이는 리현의 걷은 소매를 몇 번이나 고쳐 그렸다⁠.

리현은 기와 한 장 끼우는 데 한참을 들였다⁠. 손목이 기와 무게를 오래 못 버텨서⁠, 한 장을 끼우면 한 번 쉬었다⁠. 목령은 재촉하지 않았다⁠. 리현이 쉴 때마다 목령은 다음 기와를 리현의 손이 닿는 자리에 놓아 두었다⁠. 그림쟁이가 기와를 건네는 손과 받는 손을 그렸고⁠, 솔숲의 붓들이 받아 적었다⁠.

해가 사당 지붕 한가운데로 왔을 때 사부가 사다리 밑에서 목령을 불렀다⁠.

“⁠막내야⁠, 내려와라⁠. 할 말이 있다⁠.⁠”

“⁠공자 혼자 두면 기와가 또 비뚤어지오⁠.⁠”

“⁠비뚤어지면 내 이마가 또 맞으면 그만이다⁠.⁠” 사부가 지팡이로 사다리를 툭 쳤다⁠. “⁠내려와⁠.⁠”

*

사당 안은 서늘했다⁠. 위패 셋 앞에 향 한 대가 꺼져 있었다⁠. 사부는 바둑판을 밀어 두고 목령을 마주 보고 앉았다⁠. 지붕에서 리현이 기와를 끼우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방주가 너를 삼 층으로 불렀다지⁠.⁠” 사부가 먼저 말했다⁠. “⁠다람쥐들이 그러더라⁠.⁠”

“⁠다람쥐들이 많이도 아오⁠.⁠”

“⁠다람쥐가 아니라 방주네 사람이 쌀을 지고 올 때마다 한마디씩 흘리고 간다⁠.⁠” 사부가 웃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들었냐⁠?⁠”

목령은 다 말했다⁠. 열 냥과 다섯 냥⁠, 이 층의 바람잡이들⁠, 판돈과 떨어지는 이야기⁠. 사부는 듣는 내내 손가락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나쁜 무릎이었다⁠. 목령이 말을 마치자 사부는 무릎에서 손을 뗐다⁠.

“⁠나도 할 말이 있다⁠.⁠”

사부가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방주의 쌀가마니에 찍혀 있던 것과 같은 붉은 도장이 종이 끝에 있었다⁠.

“⁠쌀이 올라온 날⁠, 쌀가마니 속에 이게 들어 있었다⁠. 방주가 쓴 거다⁠.⁠” 사부가 종이를 펴지 않고 무릎 위에 놓았다⁠. “⁠한가위 비무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청송문은 산문을 닫는다⁠. 너는 장강 표국 호위로 들어간다⁠. 다달이 은자가 나온다⁠. 나는 장강제일객잔 뒷방에서 산다⁠. 끼니는 객잔 부엌에서 대고⁠.⁠”

목령은 종이를 보았다⁠. 사부의 무릎 위에서 종이 끝이 조금 들려 있었다⁠.

“⁠받으셨소⁠?⁠”

“⁠받았다⁠. 도장도 찍었다⁠.⁠”

목령의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붕에서 기와 한 장이 끼워지는 소리가 났다⁠. 딱⁠. 리현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기와 틈으로 새어 들었다⁠.

“⁠그럼 나는⁠.⁠” 목령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뭘 하러 올랐소⁠? 만두를 먹고⁠, 배고프다를 외치고⁠, 산 팔을 꺾고⁠.⁠”

“⁠네가 오른 건 네 거다⁠. 사당은 내 거고⁠.⁠” 사부가 위패를 돌아보았다⁠. “⁠내 것은 내가 닫는다⁠.⁠”

“⁠이기면 시주가 들어온다고 방주가 그랬소⁠. 애들 백 명 먹일 쌀이⁠.⁠”

“⁠방주 쌀이지⁠.⁠” 사부가 말했다⁠. “⁠방주 쌀로 연 문은 방주가 닫으라면 닫아야 하는 문이다⁠. 내가 보름 먹어 보니 알겠더라⁠. 방주 쌀은 맛이 없어⁠. 아무 맛도 안 나⁠.⁠”

목령은 참새의 말을 떠올렸다⁠. 방주 차는 아무 맛도 안 난다고 했다⁠.

“⁠사조께서 세운 문이오⁠.⁠”

“⁠사조께서 세운 문이 너를 먹였냐⁠?⁠” 사부의 목소리는 낮았고 느렸다⁠. 중요한 말일수록 농담처럼 하던 사부가 오늘은 농담을 하지 않았다⁠. “⁠문파는 사람 살리려고 있는 거다⁠. 사람이 문파 살리려고 있는 게 아니야⁠. 너는 스무 해를 이 산에서 칡뿌리를 먹었다⁠. 쌀독이 빈 걸 나한테 숨기고⁠, 장작을 팔아 보리를 사 오고⁠, 네 밥그릇을 덜어 내 그릇에 얹었지⁠. 나는 다 알았다⁠.⁠”

목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쌀독 이야기를 사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부가 종이를 접어 품에 도로 넣었다⁠. “⁠두 해 전 겨울⁠, 참새가 산을 내려가던 밤에 쌀독의 마지막 쌀을 덜어 갔다⁠. 한 됫박⁠. 나는 그것도 알았다⁠.⁠”

“⁠사저가⁠?⁠”

“⁠나는 문간에서 봤다⁠. 부르지 않았다⁠.⁠” 사부가 바둑통에서 흑돌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굴렸다⁠. “⁠그 쌀로 참새가 산 아래서 살았으면 된 거다⁠. 이 산에 남았으면 둘 다 그 겨울에 굶었어⁠. 그래서 안 불렀다⁠. 너한테도 안 말했다⁠. 네가 참새를 미워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길까 봐⁠.⁠”

목령은 사당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 틈에 오래된 쌀알 하나가 끼어 있었다⁠. 언제 떨어진 것인지 몰랐다⁠. 목령은 쌀알을 손톱으로 파냈다⁠. 쌀알이 누렇게 굳어 있었다⁠.

목령은 쌀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보았다⁠. 손바닥의 굳은살 위에서 쌀알이 작고 가벼웠다⁠.

“⁠그럼 지면 어쩌오⁠?⁠”

“⁠지면 지는 거다⁠. 산문은 어차피 닫히니⁠, 지는 사람도 잃을 것이 없다⁠.⁠” 사부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잃을 것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바둑도 그래⁠.⁠”

“⁠비무는 나가라⁠.⁠” 사부가 흑돌을 바둑판 귀퉁이에 놓았다⁠. “⁠이기든 지든 산문은 닫힌다⁠. 그러니 한가위에는 문 걱정 말고 칼만 생각해라⁠. 네 칼로 오른 것은 네 칼로 끝내⁠.⁠”

*

목령이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을 리현이 지붕 위에서 보았다⁠. 목령은 사다리 밑을 지나며 리현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리현은 기와 한 장을 손에 든 채 사당 안을 내려다보았다⁠. 문이 열려 있었다⁠. 사부가 혼자 바둑판 앞에 앉아 흑돌 하나를 오래 들고 있었다⁠.

“⁠어르신⁠.⁠” 리현이 지붕에서 불렀다⁠. “⁠기와가 다섯 장 남았습니다⁠. 오늘 다 끼울까요⁠?⁠”

사부가 고개를 들었다⁠.

“⁠끼워라⁠. 다 끼우고 가라⁠.⁠” 사부가 흑돌을 놓았다⁠. “⁠닫는 집이라도 비는 안 새야지⁠.⁠”

리현은 기와를 끼웠다⁠. 이번에는 비뚤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기와를 끼우고 사다리를 내려왔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사부가 부엌 문턱에 앉아 물 한 바가지를 내밀었다⁠. 리현은 물을 마시고 바가지를 돌려주며 손목의 천을 고쳐 감았다⁠. 사부가 리현의 손목을 보았다⁠.

“⁠백 번이냐⁠?⁠”

리현의 손이 멈췄다⁠. 사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붕 위에서 네 발을 봤다⁠. 금 간 기와를 짚고 넘어가는 발⁠. 그 발이면 손목을 백 번까지 안 써도 된다⁠.⁠” 사부가 바가지의 남은 물을 마당에 뿌렸다⁠. “⁠칼은 손목으로 받는 게 아니다⁠. 받을 자리에 안 있으면 안 받아도 되지⁠.⁠”

“⁠어르신 제자와 붙을 사람한테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됩니까⁠?⁠”

“⁠우리 막내도 다 아는 말이다⁠. 둘 다 알고 붙어야 비무지⁠.⁠” 사부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내려가라⁠. 해 지면 고갯길에 붓 든 나무꾼들이 넘어진다⁠.⁠”

리현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산문을 나서다 돌아보았다⁠. 사당 지붕의 새 기와 다섯 장이 노을을 받아 다른 기와보다 붉었다⁠.

*

고갯길 중턱에서 목령은 쌀가마니를 지고 올라오는 사내 둘과 마주쳤다⁠. 방주네 사람들이었다⁠. 가마니 옆구리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내들은 땀에 젖어 숨을 몰아쉬었다⁠.

“⁠두 번째 섬이오⁠.⁠” 앞의 사내가 말했다⁠. “⁠방주 어른이 한가위 지나서도 넉넉하라고⁠.⁠”

“⁠도로 가져가시오⁠.⁠”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뒤의 사내가 가마니를 고쳐 지며 하소연했다⁠.

“⁠아가씨⁠, 여기까지 지고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내려놓고 가야겠소⁠. 도로 지고 내려가면 우리 허리가 두 번 나가⁠.⁠”

목령은 대답 대신 앞의 사내 등에서 가마니를 받아 제 어깨에 올렸다⁠. 한 섬이 어깨를 눌렀다⁠. 표사에게 베인 팔뚝이 욱신거렸다⁠. 목령은 가마니를 진 채 고갯길을 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빈손으로 뒤를 따라오며 번갈아 말렸다⁠. 아가씨⁠, 그거 우리가 질게⁠. 아가씨⁠, 그러면 우리가 방주 어른한테 혼나⁠.

고갯길 바위 앞에서 목령은 잠깐 멈췄다⁠. 사흘 전 참새가 두고 간 찻잔이 바위 위에 그대로 있었다⁠. 솔잎이 몇 개 더 떨어져 있었다⁠. 목령은 가마니를 진 채 허리를 굽혀 찻잔을 집었다⁠. 솔잎을 털고 품에 넣었다⁠.

장강제일객잔 계산대 앞에 쌀가마니가 쿵 내려앉았다⁠. 주방장이 국자를 든 채 입을 벌렸다⁠. 대청 문간의 손님들이 웅성거렸고⁠, 지붕 위에서 붓 하나가 급하게 움직였다⁠. 내일 아침 쪽지에는 막내가 쌀 한 섬을 이로 물고 산을 내려왔다고 적힐 것이었다⁠.

*

참새는 측간 앞 탁자에 앉아 방주의 쪽지를 찻잔 밑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등불이 하나씩 켜졌다⁠. 추천 탁자는 비어 있었다⁠. 방주가 참새의 자리로 비워 둔 것이었다⁠. 대청의 손님들이 비어 있는 추천 탁자를 힐끔힐끔 보았다⁠.

목령이 탁자 앞에 왔다⁠. 팔뚝에 표국 매듭이 굵게 감겨 있었다⁠. 목령은 앉지 않고 탁자 위에 찻잔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가 조금 나간 흰 찻잔이었다⁠. 고갯길 바위에서 주워 온 찻잔이었다⁠. 솔잎을 털어 낸 자리에 송진이 조금 묻어 있었다⁠.

“⁠사부가 알았대⁠.⁠” 목령이 말했다⁠. “⁠두 해 전 쌀⁠. 문간에서 봤대⁠.⁠”

참새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췄다⁠.

“⁠사저가 그 쌀로 살았으면 됐대⁠. 부르지 않았대⁠.⁠” 목령은 참새를 보았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해 달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 전하러 왔어⁠.⁠”

목령은 돌아서서 대청을 나갔다⁠. 참새는 목령의 등을 보다가 찻잔을 보았다⁠. 찻잔 밑에서 쪽지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

등불이 다 켜지자 참새는 일어났다⁠. 찻잔 하나와 쪽지를 들고 대청을 가로질렀다⁠. 측간 길목에서 추천 탁자까지는 서른 걸음이었다⁠. 걸음마다 손님들이 고개를 돌렸다⁠. 맨 앞줄의 바람잡이 사내들이 서로 눈짓을 하며 엽전을 한 줌씩 쥐었다⁠.

참새는 추천 탁자에 앉았다⁠. 계단 중간에 방주가 찻주전자를 들고 서 있었다⁠. 방주가 참새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참새는 쪽지를 탁자 위에 펼쳤다⁠. 서당 글씨가 등불 아래 또박또박 보였다⁠. 「⁠은선공자의 꽃잎은 명주실로 날린 가짜⁠」

참새는 쪽지를 들어 등잔 불꽃에 댔다⁠. 종이 귀퉁이가 오그라들며 타올랐다⁠. 대청이 술렁였다⁠. 방주의 찻주전자가 계단 난간 위에서 멈췄다⁠. 참새는 타는 쪽지를 빈 찻잔에 떨어뜨렸다⁠. 쪽지는 찻잔 안에서 다 타고 재가 되었다⁠. 재 냄새가 탁자에 번졌다⁠.

참새는 다른 찻잔을 들었다⁠. 손님들이 영문을 모른 채 따라 들었다⁠. 참새의 목소리가 반 음 낮아졌다⁠.

“⁠여러분⁠, 오늘은 맨 앞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맨 앞줄 사내들이 엽전을 쥔 채 굳었다⁠. 훈장 같은 늙은 사내가 회초리 대신 젓가락을 쥐고 있다가 떨어뜨렸다⁠.

“⁠이레 동안 이 대청에서 가장 먼저 엽전을 던진 손님들입니다⁠. 이 층 복도 끝 방에서 날마다 엽전 던지는 연습을 하는 손님들이지요⁠. 셋 세면 던지고⁠, 이긴 다음에 소매를 걷습니다⁠. 먼저 걷으면 티가 나니까요⁠.⁠” 참새가 찻잔을 입에 댔다⁠. 마시지 않았다⁠. “⁠방의 순위는 산 것입니다⁠.⁠”

손님들은 찻물을 머금은 채 삼키지 못했다⁠. 삼 층 창가의 새장에서 비둘기들이 일제히 구구 울었다⁠. 지붕 위 이야기꾼들의 붓이 동시에 멈췄다가 동시에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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