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5자)
인형극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방주는 목령을 바로 올려 보내지 않았다. 점원이 내려와 방주 어른이 손님을 맞는 중이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깐은 차 한 주전자가 식을 만큼 길었다. 목령은 대청을 둘러보다가 측간 길목의 탁자로 갔다. 다른 자리에는 앉을 데가 없었다.
참새가 찻잔을 씻다 말고 목령을 보았다.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측간 문이 열릴 때마다 냄새가 탁자까지 밀려왔고, 지나가는 손님들이 참새를 힐끔 보았다. 이틀 전까지 추천 탁자에 앉던 얼굴이었다.
“올라가?” 참새가 먼저 물었다.
“부르니까.”
참새가 행주를 내려놓았다. 목소리를 낮췄다.
“방주가 따라 주는 차, 마시지 마.”
“독이라도 탔소?”
“독보다 나빠. 맛이 없어.” 참새가 제 찻잔을 들어 보였다. “방주 차는 아무 맛도 안 나. 마시고 나면 입이 방주 차 맛에 익어. 그다음부터는 방주가 맛있다는 이야기가 맛있어지고.” 참새가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두 해 마셨어.”
목령은 참새의 손을 보았다. 손톱 끝의 먹물이 오늘은 행주에 다 씻겨 나가 있었다.
“오늘 미안하오.”
“미안하면 올라가서 내 자리나 돌려 달라고 해.” 참새가 다시 찻잔을 씻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가.”
*
삼 층으로 가는 계단은 이 층 복도를 지났다. 복도 끝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엽전이 마룻바닥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소리였고, 쏟아지고 나면 사내들이 다 같이 무어라 외쳤다.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목령은 걸음을 늦추었다.
방 안에 사내 스무 명쯤이 두 줄로 앉아 있었다. 다들 낯이 익었다. 이레 동안 대청 맨 앞줄에서 남보다 먼저 엽전을 던지던 얼굴들이었다. 사내들 앞에 놓인 대바구니에는 「은선문」, 「청송문」, 「철팔」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맨 앞에서 늙은 사내 하나가 회초리로 바닥을 쳤다. 서당 훈장 같은 목소리였다.
“청송문 막내가 이긴다. 셋 세면 던진다. 하나, 둘.”
사내들이 엽전을 한 줌씩 쥐었다.
“셋!”
엽전이 「청송문」 바구니로 쏟아졌다. 사내들이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배고프다!”
“틀렸다.” 훈장이 회초리로 바닥을 쳤다. “셋째 줄, 너는 소매를 너무 일찍 걷었어. 막내가 이기고 나서 걷는 거다. 손님들이 너희를 보고 걷게. 먼저 걷으면 바람잡이 티가 나.”
맨 끝에 앉은 사내가 머리를 긁었다. “공자가 이기면 뭘 외칩니까?”
“꽃이 졌으니 그대들도 지시오. 이건 다들 외우잖아.” 훈장이 엽전을 다시 바구니에서 쓸어 모았다. “공자 쪽 연습은 이제 그만해도 돼. 다섯 해를 했으니.”
맨 끝 사내가 또 손을 들었다. “둘이 엮이면요?” 훈장은 회초리를 든 채 한참 생각하더니, 두 바구니에 반씩 던지라고 했다. 사내들이 엽전을 반으로 나누다가 한 닢씩 남자 서로 눈치를 보았다. 훈장이 남은 엽전을 걷어 제 주머니에 넣었다.
목령은 문틈에서 몸을 뺐다. 계단을 오르는 발이 무거웠다. 이레 동안 제 바구니에 떨어진 엽전 소리가 귀에서 다시 울렸다. 맨 앞줄에서 먼저 떨어지던 엽전 소리였다.
*
같은 시각, 은선문 부엌에서는 원주가 아궁이 불을 다 죽인 뒤 등잔 하나를 켰다. 아이들은 잠들었고, 마당 빨랫줄에 나무 부채 서른 남짓이 나란히 매달려 말라 가고 있었다. 백리현은 문턱에 앉아 손목에 감은 천을 풀고 있었다. 오늘 아침 청송문 지붕에서 빠졌던 발목이 부어 있었다.
원주가 찬장 맨 위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리현 앞에 펼쳤다. 종이 끝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장강제일객잔」
“오늘 방주네 사람이 와서 이걸 다시 읽어 주고 갔다.” 원주의 목소리는 낮았다. “쌀 빚. 세 해 묵은 거. 한가위 지나면 갚으래.”
“세 해 동안 아무 말 없었잖습니까?”
“일 위한테는 말 안 하지. 일 위가 갚을 테니까.” 원주가 종이를 다시 접었다. 접힌 자리가 닳아 보풀이 일어 있었다. “일 위 아닌 사람한테는 말을 하는 거고.”
리현은 손목의 천을 끝까지 풀었다. 손목이 붉었다. 원주가 찬물 대야를 밀어 주었다. 리현은 손을 대야에 담그지 않고 원주를 보았다.
“방주가 저를 내리려는 겁니까?”
“나는 국 끓이는 사람이다. 그런 건 모른다.” 원주가 등잔 심지를 낮췄다. 부엌이 한 겹 어두워졌다. “다만 국은 안다. 솥에 물을 더 부을 때는, 고기가 떨어졌을 때야.”
리현은 대야에 손을 담갔다. 물이 차가웠다. 마당에서 마른 부채 하나가 바람에 빨랫줄에서 떨어져 달그락 소리를 냈다.
*
삼 층 방은 강을 향해 창이 넓게 나 있었다. 창가에 새장이 셋 있었고, 새장마다 전서구가 빽빽했다. 비둘기들이 구구 하고 울 때마다 방주는 고개를 반쯤 돌려 소리 난 새장을 보았다. 어느 고을 새장에서 소식이 들어왔는지 소리만 듣고 아는 사람 같았다.
방주는 찻상 앞에 앉아 차를 우리고 있었다. 첫 물을 버리고, 두 번째 물을 두 잔에 나눠 따랐다. 한 잔을 목령 앞으로 밀었다.
“앉아.”
목령은 앉았다. 찻잔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방주는 상관하지 않고 제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오래 굴리다 삼켰다.
“이 층 지나왔지? 문을 열어 두라고 했다.” 방주가 잔을 내려놓았다. “말로 하면 안 믿을까 봐.”
“철팔 표사는.”
“열 냥. 쌍도 사내는 다섯 냥. 쌍도는 원래 실력이 그 정도라 덜 줬지.” 방주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창잡이랑 무관 사범은 안 샀어. 둘은 진짜로 네가 이긴 거다. 만두도 진짜고. 서른 개를 먹을 줄은 나도 몰랐어. 그건 덤이었지.”
목령은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에 철팔 표사의 팔꿈치가 칼보다 먼저 접히던 감촉이 다시 올라왔다. 사흘 동안 마당에서 외치던 배고프다는 소리, 바구니에 떨어지던 엽전, 대청 문간에서 소매를 걷던 손님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어느 것이 산 것이고 어느 것이 제 것인지, 방주가 가려 준 말만으로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목령은 입 안이 말라 혀로 입천장을 쓸었다. 만두에 덴 자리가 아직 까끌했다.
“왜 그랬소?”
“열 위 안에 들라고 했잖아. 보름 안에. 칼로만 오르면 너는 한가위에 서른 위쯤에 있었을 거다. 그럼 비무가 없어. 비무가 없으면 내 장사가 없고.” 방주가 창밖을 보았다. 마당의 비무대가 등불 아래 하얗게 보였다. 비무대 다리에 붙은 종이에는 「지금 열 자」라고 적혀 있었다. “너는 오를 만한 애였어. 나는 계단을 조금 당겨 놓았을 뿐이야.”
“공자도 그렇소?”
방주가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길게 올라갔다.
“다섯 해 전 평상에서 백리현이 처음 이긴 날, 진 사람이 공자 손목을 꺾고 내려갔다. 그 사람은 내가 안 샀어. 공자가 진짜로 이긴 건 그날 하나야.” 방주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그 뒤 열두 번 무패 가운데 열 번은 내가 샀다. 공자는 반쯤 알고 반쯤 몰랐지.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반만 알거든.”
새장에서 비둘기 하나가 날개를 털었다. 깃털 하나가 찻상 위로 내려앉았다. 방주가 깃털을 집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너는 내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겠지.” 방주가 목령의 잔에 손을 뻗어, 식은 차를 버리고 새 차를 따랐다. “방이 생기기 전 강호가 어땠는지 아냐? 큰 문파 일곱이 다 가졌다. 시주도, 제자도, 호위 일감도. 청송문 같은 데는 백 년을 칼을 갈아도 이름 한 번 못 불렸어. 방이 생기고 나서야 사람들이 산 위에도 문파가 있다는 걸 알았다. 너희 사부가 젊어서 이 방이 있었으면 청송문은 지금쯤 기와가 새것이야.”
“사람들이 아는 건 만두 삼백 개요.”
“그래도 아는 거지.” 방주가 차를 마셨다. “사람들은 진짜를 원하지 않아. 진짜처럼 맛있는 걸 원하지. 나는 맛을 고르는 사람이다. 이야기꾼은 우리고, 바람잡이는 첫 모금을 마셔 주고, 손님은 따라 마신다. 그 엽전으로 객잔이 먹고, 이야기꾼이 먹고, 은선문 애들이 먹고, 이번 보름에는 너희 사부도 먹었다.”
목령은 사부가 주걱을 저을 때 떨리던 손목을 생각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던 사부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
“한가위 판돈 이야기를 해 주지.” 방주가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주전자가 비어 있었다. 방주는 화로에 주전자를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일곱 고을 객잔에서 비무에 돈을 건다. 내가 받지. 지금까지 받은 돈의 열에 일곱이 공자한테 걸렸어. 일 위니까. 다섯 해를 안 졌으니까.”
“그럼 공자가 이겨야 방주가 잃겠군.”
“아니. 공자가 이기면 나는 공자한테 건 사람들한테 돈을 줘야 해. 막내가 이기면 공자한테 건 돈이 다 내 거고.” 방주가 끓기 시작한 물을 주전자에 부었다. 김이 방주의 얼굴을 가렸다. “너는 이긴다.”
목령은 방주를 보았다. 김이 걷히자 방주의 얼굴은 아까와 똑같이 다정했다.
“그리고 판돈보다 큰 게 있다.” 방주가 새 차를 우렸다. “일 위가 떨어지는 이야기. 다섯 해 꽃잎을 날린 은선공자가 맨 끝 문파 막내한테 지는 이야기. 사람들은 오르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떨어지는 이야기는 더 좋아해. 오르막은 한 번 듣고 말지만 내리막은 몇 번이고 다시 듣지. 공자 이야기는 다섯 해째 단맛이야. 이제 쓴맛으로 한 번 더 팔고 끝낸다.”
“애들은.”
“은선문 애들 말이냐?” 방주가 차를 따랐다. 두 잔이었다. “시주 상인들은 일 위를 따라가겠지. 한가위 다음 날부터는 네 바구니로. 청송문에 애들 백 명 먹일 쌀이 들어갈 거다. 그 쌀로 누구를 먹일지는 네가 정해.”
“공자는 압니까?”
“단맛이 손님 입에서 물린 줄 아는 단맛은 없어.” 방주가 제 잔을 들었다. “알아도 상관없다. 공자는 질 수밖에 없어. 손목이 백 번밖에 못 받거든. 그건 내가 산 게 아니라 하늘이 준 거고.”
목령은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마루를 긁었다. 새장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퍼덕였다.
“그럼 지겠소.”
방주가 차를 마셨다. 삼키기 전에 오래 굴렸다.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져 봐. 청송문은 산문을 닫고, 네 사부는 내 쌀을 보름 먹은 빚이 남는다. 공자는 일 위로 남고, 나는 공자한테 건 사람들한테 돈을 주고, 한가위 이야기는 일 위가 막내를 이겼다는 싱거운 이야기가 되지.” 방주가 잔을 내려놓았다. “싱거운 이야기도 나는 판다. 값이 덜 나갈 뿐이지. 그런데 너는 못 진다.”
“왜요?”
“너는 비무대에 오르면 칼이 먼저 나가는 애니까. 대청에서 공자 부채를 찌를 때 봤다. 생각보다 칼이 먼저 갔어. 그런 애는 일부러 못 져. 지려고 마음먹어도 상대 손목이 늦는 걸 보면 칼이 저절로 들어가.” 방주가 목령 앞의 잔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새 차가 김을 올렸다. “그래서 너를 골랐다.”
목령은 잔을 보았다. 맑고 연한 빛이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참새의 말이 떠올랐다. 마시면 입이 방주 차 맛에 익는다고 했다.
목령은 잔을 들지 않았다. 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등 뒤에서 방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먼저 났다.
“막내야. 넌 이긴다.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