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53자)

지붕 위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사당 지붕의 기와는 마흔 해 묵은 것이었다⁠. 성한 기와를 밟으면 발바닥 밑에서 단단한 소리가 났고⁠, 금 간 기와를 밟으면 소리가 반 박자 늦게 왔다⁠. 목령은 이 소리를 지붕 위에서 배우지 않았다⁠. 처마 밑 대야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로 배웠다⁠. 비가 오는 밤마다 대야 셋에 물방울이 떨어졌고⁠, 목령은 누워서 물방울이 어느 기와 밑에서 떨어지는지 귀로 따라갔다⁠.

아침 햇살이 솔숲 위로 올라올 즈음 목령은 지붕 위에 쪼그려 앉아 깨진 기와를 걷어 내고 있었다⁠. 새 기와는 다섯 장뿐이었다⁠. 바구니에 떨어진 엽전으로 객잔 주방장을 졸라 산 것이었다⁠. 사부는 마당에서 사다리를 붙잡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왼쪽으로 두 장⁠. 아니⁠, 한 장 반⁠.⁠”

“⁠기와는 반 장이 없소⁠.⁠”

“⁠그러니까 잘 깔라는 말이다⁠.⁠” 사부가 사다리를 흔들어 보았다⁠. “⁠이 사다리도 나만큼 늙었다⁠. 내려올 때 조심해라⁠.⁠”

솔숲 고갯길에서 숨소리가 올라왔다⁠. 거칠고 긴 숨이었다⁠. 목령은 기와를 든 채 고개를 들었다⁠.

산문 앞에 흰 비단옷이 서 있었다⁠. 금실 무늬 깃이 땀에 젖어 늘어져 있었고⁠, 허리까지 오는 은백색 머리 끝에 솔잎이 몇 개 붙어 있었다⁠. 백리현이 먹 그림 접부채를 펴서 얼굴에 부쳤다⁠. 부채질이 숨을 따라가지 못했다⁠.

“⁠청송문은⁠.⁠” 리현이 숨을 골랐다⁠. “⁠산이 너무 높네⁠.⁠”

“⁠내려가는 길은 금방이오⁠.⁠”

사부가 사다리를 놓고 리현에게 다가갔다⁠. 리현은 부채를 접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사부는 리현을 한참 보더니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내밀었다⁠.

“⁠일 위가 땀을 흘리니 사람 같구나⁠. 마셔라⁠.⁠”

*

리현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용건을 말했다⁠. 지붕을 올려다보며 말했고⁠, 목소리는 마당이 다 들릴 만큼 컸다⁠. 사부가 들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어젯밤 갈대밭에 참새 이야기꾼이 있었다고 우리 애들이 그러더군⁠. 오늘 저녁 추천 탁자에서 내 부채 이야기를 한다지⁠.⁠” 리현이 부채를 손바닥에 탁 쳤다⁠. “⁠막아 주게⁠.⁠”

“⁠사저 입은 사저 것이오⁠.⁠”

“⁠자네 말이면 듣네⁠. 사저 아닌가⁠.⁠”

목령은 기와를 지붕 위에 내려놓았다⁠.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발밑에서 성한 기와 소리가 났다⁠.

“⁠올라오시오⁠.⁠”

리현이 사다리를 보았다⁠. 사부가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리현은 사다리 디딤목을 둘씩 건너 올랐다⁠. 지붕 위에 발을 올리는 동작이 고양이처럼 가벼웠다⁠. 기와 위에 서자 리현의 몸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목령은 리현의 발을 보았다⁠. 손목이 백 번밖에 못 받는 사람의 발이 아니었다⁠.

“⁠내기하오⁠. 먼저 기와를 깨는 사람이 지는 거요⁠. 칼도 부채도 쓰고⁠.⁠” 목령이 철검을 뽑았다⁠. “⁠공자가 이기면 사저를 막겠소⁠.⁠”

“⁠자네가 이기면⁠?⁠”

“⁠한가위까지 날마다 올라와서 이 지붕을 고치시오⁠. 공자 손으로⁠.⁠”

리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접었다⁠.

“⁠은선공자가 청송문 지붕을 고친다⁠. 이야기꾼들이 들으면 좋아하겠군⁠. 받겠네⁠.⁠”

*

리현이 먼저 움직였다⁠. 부채 끝으로 목령의 칼끝을 툭 치고⁠, 친 반동으로 옆으로 흘렀다⁠. 흐르는 발이 기와 사이 골을 정확히 밟았다⁠. 목령은 칼을 짧게 내질렀다⁠. 리현은 부채를 펴서 받고 손목을 꺾어 흘렸다⁠. 어젯밤 마당에서 이백 번 되풀이하던 막기였다⁠. 쇠살과 철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솔숲으로 퍼졌다⁠.

목령은 세게 치지 않았다⁠. 리현의 손목이 백 번밖에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았고⁠, 약한 손목을 쳐서 이기고 싶지 않았다⁠. 대신 리현을 몰았다⁠. 칼끝으로 리현의 왼 어깨를 겨누어 한 걸음⁠, 오른 무릎을 겨누어 또 한 걸음⁠. 리현의 발이 물러날 때마다 목령은 귀를 기울였다⁠. 성한 소리⁠, 성한 소리⁠, 반 박자 늦은 소리⁠.

리현의 오른발이 처마 쪽 금 간 기와 바로 앞에 닿았다⁠. 다음 걸음이면 깨질 자리였다⁠. 리현은 금 간 기와를 밟지 않았다⁠. 발끝으로 기와 모서리를 살짝 짚더니 체중을 싣지 않고 넘어갔다⁠. 기와가 낮게 울기만 했다⁠.

목령은 놀라서 칼이 반 박자 늦었다⁠. 리현이 늦은 반 박자를 놓치지 않고 부채로 목령의 손목을 쳤다⁠. 아프지는 않았다⁠. 따끔했다⁠.

“⁠발로 듣는 건 자네만 하는 줄 알았나⁠?⁠” 리현이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객잔 지붕에서 다섯 해를 걸었네⁠. 이야기꾼들이 붓 들고 앉는 바로 그 지붕 말이야⁠. 꽃잎을 높이 날리려면 높은 데 서야 하거든⁠.⁠”

목령은 칼을 고쳐 쥐었다⁠. 이번에는 몰지 않았다⁠. 리현의 발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 않고⁠, 리현의 숨을 들었다⁠. 숨이 길어지면 발이 느려졌다⁠. 마흔 합 무렵 리현의 숨이 처음으로 끊겼다⁠. 목령은 칼 대신 왼 어깨를 밀어 넣어 리현의 가슴을 짧게 밀었다⁠. 리현이 한 걸음 물러났고⁠, 물러난 발밑에서 소리가 반 박자 늦게 왔다⁠. 와작⁠. 기와가 깨졌다⁠. 리현의 발목이 서까래 사이로 빠졌다⁠.

마당에서 사부가 손뼉을 한 번 쳤다⁠.

“⁠기와 한 장 반 깨졌다⁠. 은선공자 몫이다⁠.⁠”

*

리현은 발목을 빼내고 깨진 기와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목령은 리현 옆에 앉았다⁠. 둘 다 숨이 차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산 아래로 고을 지붕들이 내려다보였고⁠, 지붕들 너머로 장강이 넓게 빛났다⁠.

“⁠이긴 사람이 고르는 거지⁠.⁠” 리현이 기와 조각을 내려놓았다⁠. “⁠내일부터 지붕 고치러 오겠네⁠. 사저는 이야기를 할 테고⁠.⁠”

“⁠사저는 내가 막겠소⁠.⁠”

리현이 고개를 돌렸다⁠.

“⁠내기와는 상관없소⁠. 이겼으니 내가 고르는 거요⁠.⁠” 목령은 칼집에 철검을 넣었다⁠. “⁠그 손목은 공자 거고⁠, 애들 밥이오⁠. 남의 밥으로 오르고 싶지 않소⁠.⁠”

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깨진 기와 자리에 새 기와 한 장을 끼워 넣었다⁠. 서툴렀다⁠. 기와가 비뚤게 들어갔다⁠. 사부가 마당에서 혀를 찼다⁠.

“⁠일 위가 기와는 꼴찌로구나⁠.⁠”

*

리현이 절뚝이며 고갯길을 내려간 뒤⁠, 사부가 사다리 밑에서 목령을 불렀다⁠. 목령이 내려오자 사부는 깨진 기와 조각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저 아이 발은 좋다⁠.⁠” 사부가 기와 조각을 뒤집었다⁠. 안쪽이 이끼로 푸르스름했다⁠. “⁠손목이 늦을 뿐이지⁠. 처마 끝 금 간 기와를 짚고 넘어가는 거 봤냐⁠? 나는 젊어서도 그렇게는 못 했다⁠.⁠”

“⁠그래도 이겼소⁠.⁠”

“⁠지붕을 알아서 이긴 거다⁠. 네가 마흔 해 들은 지붕이니까⁠.⁠” 사부가 기와 조각을 목령의 손에 쥐여 주었다⁠. “⁠모르는 지붕이었으면 졌다⁠. 한가위 비무대는 네가 모르는 지붕이야⁠.⁠”

목령은 손바닥의 기와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이끼가 축축했다⁠.

“⁠스무 해요⁠. 마흔 해가 아니라⁠.⁠”

“⁠네가 들은 건 스무 해고⁠, 내가 너한테 일러 준 게 마흔 해다⁠.⁠” 사부가 지팡이를 짚고 부엌으로 갔다⁠. “⁠점심은 먹고 가라⁠.⁠”

*

목령은 점심도 거르고 고갯길을 뛰어 내려갔다⁠. 해 질 녘 추천 탁자 전에 참새를 붙잡아야 했다⁠. 참새는 고갯길 중턱 바위에 앉아 찻잔 하나를 손바닥에 굴리며 이야기를 입속으로 맞춰 보고 있었다⁠. 목령을 보자 찻잔을 품에 넣었다⁠.

“⁠막으러 왔구나⁠. 얼굴에 다 써 있어⁠.⁠”

“⁠하지 마⁠.⁠”

“⁠진짜만 하라며⁠. 이건 진짜야⁠.⁠” 참새가 일어났다⁠. “⁠명주실도 진짜고⁠, 손목도 진짜고⁠, 맨 부채도 진짜야⁠. 네가 정한 조건 그대로야⁠.⁠”

“⁠진짜인데 우리 이야기가 아니야⁠. 공자 거야⁠.⁠”

“⁠이야기에 우리 거 남의 거가 어딨어⁠? 입에 오르면 다 듣는 사람 거지⁠.⁠” 참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막내야⁠, 오늘 이거 안 하면 나 추천 탁자에서 밀려나⁠. 방주가 새 맛 없으면 사흘을 안 기다려⁠.⁠”

“⁠하면 나 비무 안 나가⁠.⁠”

참새가 말을 멈췄다⁠. 고갯길 아래에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올라왔다⁠.

“⁠공자 손목 이야기를 사저 입으로 하면⁠, 한가위에 나는 안 내려가⁠.⁠” 목령은 참새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 사저 이야기도 끝이야⁠. 비무 없는 막내 이야기는 아무도 안 들어⁠.⁠”

참새가 입술을 깨물었다⁠. 앞니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참새는 품에서 찻잔을 꺼내 바위에 내려놓고 고갯길을 내려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바위 위의 찻잔에 솔잎 하나가 떨어졌다⁠.

*

참새는 오후 내내 대청 뒤 부엌 앞 평상에서 기다렸다⁠. 해가 기울 무렵 방주가 찻주전자를 들고 부엌으로 내려왔다⁠. 방주는 평상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차를 따라 한 모금 머금었다⁠. 오래 굴리지 않고 바로 삼켰다⁠.

“⁠오늘 맛은⁠?⁠”

“⁠없어요⁠.⁠” 참새가 말했다⁠. “⁠부채 이야기는 못 해요⁠.⁠”

“⁠막내가 막았구나⁠.⁠” 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막내 말 들으면 막내 이야기꾼이고⁠, 내 말 들으면 내 이야기꾼이지⁠. 너는 오늘 막내 이야기꾼이었고⁠.⁠”

“⁠내일은 다른 걸 가져올게요⁠.⁠”

“⁠내일 일은 내일 보고⁠.⁠” 방주가 찻잔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잔에 차가 반쯤 남아 있었다⁠. “⁠오늘은 측간 앞 탁자에 앉아라⁠. 새 맛 없는 입은 좀 쉬어야지⁠. 그 자리도 손님은 지나다닌다⁠.⁠”

방주가 계단을 올라갔다⁠. 참새는 평상 위의 찻잔을 보았다⁠. 남은 차가 식어 가며 위에 얇은 막이 앉았다⁠. 참새는 찻잔을 들어 남은 차를 마셨다⁠. 썼다⁠.

*

해 질 녘⁠, 추천 탁자에 참새가 없었다⁠.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늙은 이야기꾼이 앉아 있었다⁠. 방주가 오늘 오후에 바꿨다고⁠, 대청 문간의 손님들이 수군거렸다⁠. 참새는 대청 가장 안쪽⁠, 측간 가는 길목의 탁자에 혼자 앉아 찻잔을 씻고 있었다⁠.

늙은 이야기꾼이 찻잔을 들었다⁠. 대청이 따라 들었다⁠.

“⁠오늘 아침⁠, 청송문 사당 지붕 위에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지붕⁠,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였지요⁠. 고갯길 나무꾼이 똑똑히 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마흔 번을 부딪쳤고⁠, 마흔 번째에 공자가 막내의 품으로 쓰러졌습니다⁠. 기와가 깨지는 소리가 산을 울렸습니다⁠.⁠”

손님들이 찻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공자가 기와를 한 장 얹으며 말했지요⁠. ‘⁠내일 또 오겠소⁠.⁠’⁠”

대청이 무너졌다⁠. 손님들이 차를 삼키다 사레가 들렸고⁠, 이 층 난간의 먹 부채 패가 비명을 질렀다⁠. 소매 걷은 짐꾼들은 탁자를 쳤다⁠. 그러다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먹 부채를 든 아가씨 하나와 소매 걷은 짐꾼 하나가 동시에 「⁠청송문⁠」과 「⁠은선문⁠」 바구니에 엽전을 한 닢씩 나눠 던졌다⁠. 옆 사람이 따라 했고⁠, 옆의 옆 사람도 따라 했다⁠. 누가 외쳤다⁠. 둘이 엮여라⁠! 대청 한구석에서 새로운 패가 생겼다⁠. 새 패는 부채를 펴 들고 소매를 걷었다⁠.

대청 문간에 서 있던 목령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지붕 위 이야기꾼들이 붓을 휘갈기는 소리가 처마를 타고 내려왔다⁠.

“⁠나무꾼이 어디 있었다는 거요⁠?⁠” 목령이 옆에 있던 점원에게 물었다⁠.

“⁠나무꾼이야 늘 어딘가 있지⁠.⁠” 점원이 사다리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나무 방에 새 글씨가 올라갔다⁠. 「⁠오 위 청송문 단목령⁠」 방 기둥의 쪽지에는 벌써 다른 고을에서 온 말이 붙어 있었다⁠. 「⁠무림맹 사자 앞에서 한가위 혼례 비무 — 이기는 사람이 지붕을 얻는다⁠」

목령은 측간 길목의 탁자를 보았다⁠. 참새가 찻잔을 다 씻고 행주로 닦고 있었다⁠. 참새는 목령을 보지 않았다⁠. 행주를 쥔 손이 찻잔을 한 바퀴 돌릴 때마다 조금씩 빨라졌다⁠.

점원이 사다리를 접어 들고 돌아와 목령의 귀에 대고 말했다⁠.

“⁠방주 어른이 삼 층으로 올라오래⁠. 차 한잔하자고⁠.⁠”

목령은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삼 층에서 찻물 따르는 소리가 났다⁠. 길고 가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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