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74자)

은선문 밥솥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은선문 고아원은 고을 동쪽 둑 바로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담은 목령의 가슴께까지밖에 안 왔고⁠, 담 위로 마당이 다 보였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줄을 맞춰 나무 부채를 펴고 접었다⁠. 서른 남짓한 부채가 한꺼번에 펴지면 처마에 소나기 듣는 소리가 났다⁠. 맨 앞에서 박자를 세는 아이는 앞니 두 개가 빠져 있어서⁠, 하나 둘 셋이 하나 두 쉐로 들렸다⁠.

목령은 대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아침에 참새가 한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일 위의 부엌을 보면 일 위가 보인다고 했다⁠. 이야기꾼 버릇이라고 흘려들으려 했는데⁠, 발이 먼저 둑길로 내려와 있었다⁠.

앞니 빠진 아이가 박자를 세다 말고 목령을 보았다⁠. 목령의 허리를 보았다⁠. 철검의 이 빠진 자리를 보았다⁠.

“⁠누나 검도 이 빠졌네⁠!⁠” 아이가 제 입을 벌려 보였다⁠. “⁠나도⁠!⁠”

마당의 부채가 한꺼번에 멈췄다⁠. 아이들이 담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청송문 누나다⁠!⁠”

“⁠만두 삼백 개 누나⁠!⁠”

“⁠누나⁠, 쇠 먹어서 검 이가 빠졌다는 거 진짜예요⁠?⁠”

“⁠콧김으로 표사 아저씨 날렸어요⁠?⁠”

목령은 대답할 틈을 찾지 못했다⁠. 아이 하나가 담 위로 손을 뻗어 목령의 걷어붙인 소매를 만졌고⁠, 다른 아이가 팔뚝에 감은 천을 만졌다⁠. 앞니 빠진 아이가 목령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공자님한테 청혼했어요⁠? 공자님은 우리 거예요⁠.⁠”

“⁠청혼 안 했다⁠.⁠”

“⁠그럼 왜 왔어요⁠?⁠”

목령은 다시 말을 잃었다⁠. 부엌 문이 열리고 국자를 든 사람이 나왔다⁠. 쉰 남짓한 여자였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틀어 올렸고⁠, 앞치마 끝에 무 껍질이 붙어 있었다⁠. 원주는 목령을 위아래로 한 번 보더니 아이들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연습 마저 해라⁠. 해 지기 전에 객잔 가야지⁠.⁠”

아이들이 담에서 흩어졌다⁠. 원주가 국자로 부엌을 가리켰다⁠.

“⁠들어와⁠. 마당에 서 있으면 애들이 연습을 안 해⁠.⁠”

*

부엌은 크고 낮았다⁠. 아궁이가 셋이었고 가운데 큰솥에서 국이 끓었다⁠. 선반에는 엎어 둔 밥그릇이 층층이 있었다⁠. 원주는 목령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국을 한 국자 떠서 사발에 담아 내밀었다⁠.

“⁠먹어 봐⁠.⁠”

목령은 사발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무 맛이 났고⁠, 소금 맛이 났고⁠, 다른 맛은 나지 않았다⁠. 국물이 너무 맑아서 사발 바닥의 금 간 자리가 들여다보였다⁠.

“⁠시주 상인이 다섯이야⁠. 쌀 상인 둘⁠, 소금 상인 하나⁠, 기름 상인 하나⁠, 장작 상인 하나⁠.⁠” 원주가 큰솥을 저었다⁠. “⁠다섯 다 공자를 보고 대는 거야⁠. 은선문 이름 보고 대는 상인은 없어⁠. 공자가 내려가면 다섯 다 다른 바구니로 가⁠.⁠”

“⁠그럼 애들은 왜 객잔에 가오⁠?⁠”

“⁠엽전 받으러⁠. 공자 이야기 끝나면 애들이 부채춤을 춰⁠. 손님들이 공자 바구니에 던지고 남은 엽전을 애들한테 던지지⁠. 그걸로 저녁 국에 고기를 넣어⁠.⁠” 원주가 솥뚜껑을 덮었다⁠. “⁠오늘은 고기 없는 날이고⁠.⁠”

목령은 사발을 내려놓았다⁠. 국이 반쯤 남아 있었다⁠. 원주가 사발을 들어 남은 국을 큰솥에 도로 부었다⁠.

“⁠네가 한가위에 이기면⁠.⁠” 원주는 목령을 보지 않고 선반을 보았다⁠. “⁠지라는 말은 안 해⁠. 비무는 비무지⁠. 이기면 그날 저녁에 여기 와서 그릇 좀 세어 줘⁠. 백 개 가운데 몇 개가 비는지⁠.⁠”

“⁠왜 내가 세야 하오⁠?⁠”

“⁠내가 세면 우니까⁠.⁠” 원주가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탁 쳤다⁠. “⁠나는 애들 앞에서 안 울어⁠.⁠”

부엌 문이 열렸다⁠. 강바람이 들어오고⁠, 흰 비단 자락이 들어왔다⁠.

*

백리현은 부엌 문턱에서 목령을 보더니 먹 그림 접부채를 펴서 얼굴을 반쯤 가렸다⁠. 부채 위로 눈이 웃고 있었다⁠.

“⁠청혼 답을 들으러 오셨나⁠?⁠”

“⁠아니오⁠.⁠”

“⁠아니라니 다행이네⁠. 우리 애들이 공자는 저희 거라고 한바탕 할 참이었거든⁠.⁠” 리현이 부채를 접었다⁠. 허리까지 오는 은백색 머리를 위에서 조금 묶은 끈이 강바람에 풀려 있었다⁠. 리현은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원주에게 물었다⁠. “⁠밥은 됐습니까⁠?⁠”

“⁠다 됐다⁠.⁠”

점심은 마당에서 먹었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밥을 받았고⁠, 원주가 그릇마다 국을 한 국자씩 부었다⁠. 리현은 줄 맨 끝에서 기다렸다⁠. 리현의 차례가 왔을 때 큰솥 바닥에는 국이 반 국자 남아 있었고⁠, 밥은 주걱 끝에 붙은 것이 다였다⁠. 리현은 남은 것을 받아서 앞니 빠진 아이 그릇에 반을 덜어 주었다⁠.

밥을 먹던 아이 몇이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였다⁠. 앞니 빠진 아이가 신호를 하자 다 같이 그릇을 높이 들고 외쳤다⁠. “⁠배고프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넘어가게 웃었다⁠. 객잔에서 배운 청송문 놀이라고 했다⁠. 목령은 귀까지 달아올랐고⁠, 원주는 국자로 솥을 두드려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원주의 입꼬리가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목령은 원주가 억지로 쥐여 준 그릇을 들고 마당 구석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리현이 옆 돌에 와서 앉았다⁠. 흰 비단옷 금실 무늬에 국물이 한 방울 튀어 있었다⁠.

“⁠객잔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지⁠?⁠” 리현이 말했다⁠.

“⁠싱겁소⁠.⁠”

“⁠싱거운 걸 맛있게 먹는 법을 애들이 알아⁠. 나도 여기서 배웠고⁠.⁠” 리현이 밥을 한 숟갈 떠서 오래 씹었다⁠. “⁠나도 저 줄에 서던 애였네⁠. 원주가 내 그릇에 처음으로 국을 부어 준 날이 내 생일이야⁠. 진짜 생일은 모르거든⁠.⁠”

목령은 밥을 씹다가 멈췄다⁠. 리현은 목령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일어났다⁠.

“⁠해 지기 전에 애들 데리고 객잔 가야 하네⁠. 같이 가겠나⁠? 방주 손님 의자가 비어 있을 텐데⁠.⁠”

“⁠안 가오⁠.⁠”

“⁠그럼 둑길로 가게⁠. 해 지면 둑길이 시원해⁠.⁠”

*

장강제일객잔 대청에 등불이 켜지자 은선문 아이들이 줄을 맞춰 들어왔다⁠. 백리현은 추천 탁자 옆에 앉아 아이들이 자리 잡는 것을 보았다⁠. 추천 탁자의 이야기꾼이 은선공자 이야기를 끝내고 찻잔을 내려놓자⁠, 아이들이 일제히 나무 부채를 펴고 춤을 시작했다⁠. 손님들이 웃으며 엽전을 던졌다⁠. 오늘은 엽전이 「⁠은선문⁠」 바구니보다 아이들 발치에 더 많이 떨어졌다⁠.

리현은 대청 문 너머 마당의 나무 방을 보았다⁠. 사다리 위의 점원이 막 「⁠칠 위 청송문 단목령⁠」을 써 넣고 있었다⁠. 지붕 위의 이야기꾼들이 붓을 입에 물고 막 쓴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리현이 고개를 돌리자 삼 층 난간에서 방주가 찻잔을 든 채 아이들의 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춤이 끝나고 아이들이 엽전을 주워 원주의 자루에 담는 동안 방주가 계단을 내려와 리현 옆에 앉았다⁠. 방주는 차를 따르고 한 모금 머금었다가 삼켰다⁠.

“⁠애들 춤에 엽전이 더 떨어지네⁠.⁠” 방주가 말했다⁠. “⁠요새 손님들 입이 그래⁠. 꽃잎 이야기는 다 아는 맛이라고⁠.⁠”

“⁠애들 춤도 꽃잎 이야기 덕에 보는 겁니다⁠.⁠”

“⁠그렇지⁠. 아직은⁠.⁠” 방주가 잔을 내려놓았다⁠. “⁠청송문 막내가 오늘 너희 집에 갔다며⁠. 무슨 맛이 나더냐⁠?⁠”

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줄을 맞춰 대청을 나갔다⁠. 앞니 빠진 아이가 문턱에서 돌아보며 리현에게 엽전 한 닢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국에 고기가 들어갈 것이었다⁠. 리현은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손목에 감은 천은 비단 소매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

목령은 둑길로 가지 않았다⁠. 해가 지는 동안 고을 장터를 돌며 장작 값을 물었고⁠, 사부가 부탁한 바늘을 샀고⁠, 그러고 나서야 둑길에 올랐다⁠. 초승달이 강 위에 떠 있었다⁠. 은선문 담 앞을 지날 때 담 너머에서 쇳소리가 났다⁠.

목령은 걸음을 멈췄다⁠. 쇳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같은 소리가 같은 간격으로 났다⁠. 목령은 담에 손을 얹고 마당을 넘겨다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리현이 혼자 있었다⁠. 흰 비단옷을 벗어 빨랫줄에 걸쳐 두고 얇은 무명 속옷 차림이었다⁠. 손에 든 것은 쇠살만 남은 맨 부채였다⁠. 먹 그림 비단도 명주실도 없었다⁠. 리현은 말뚝 하나를 앞에 두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부채를 비스듬히 세워 말뚝을 쳐 오는 상상의 칼을 받고⁠, 손목을 꺾어 흘리고⁠, 반 보 물러났다⁠. 청송문에서도 첫해에 배우는 막기였다⁠.

동작은 바르고 정확했다⁠. 목령은 숨을 죽이고 동작을 따라 셌다⁠. 백을 넘기면서 손목이 늦기 시작했다⁠. 백오십 무렵에는 부채가 받는 자리보다 반 치 늦게 나갔고⁠, 이백 근처에서는 손목을 꺾을 때마다 리현의 어깨가 따라 들썩였다⁠. 리현은 멈추지 않았다⁠. 손목이 아예 꺾이지 않자 그제야 부채를 내리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감쌌다⁠. 감싼 손 사이로 무명천을 꺼내 손목에 칭칭 감았다⁠.

목령은 제 팔뚝에 감은 천을 내려다보았다⁠. 산에서 장작을 팰 때 감기 시작한 천이었다⁠.

“⁠구경 값은 내고 가야지⁠.⁠”

리현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목령은 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언제 알았소⁠?⁠”

“⁠둑길로 안 가고 장터를 돈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네⁠. 우리 애들 귀가 밝아⁠. 객잔에서 돌아오면서 다 일러바치더군⁠.⁠” 리현이 천을 다 감고 매듭을 이로 물어 당겼다⁠. “⁠장작 값은 얼마라던가⁠?⁠”

“⁠손목은 언제부터 그렇소⁠?⁠”

리현이 웃었다⁠. 목령을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달빛에 은백색 머리가 희게 빛났다⁠.

“⁠다섯 해 전 평상에서 사람을 이긴 날⁠, 진 사람이 내 손목을 꺾고 내려갔네⁠. 그 뒤로 이 손목은 칼을 백 번까지만 받아⁠.⁠” 리현이 맨 부채를 들어 보였다⁠. “⁠한가위에 자네 칼은 백 번 넘게 올 테지⁠.⁠”

“⁠왜 나한테 말하오⁠?⁠”

“⁠자네는 이야기꾼이 아니니까⁠.⁠” 리현이 빨랫줄에서 비단옷을 걷었다⁠. “⁠그리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걸세⁠. 일 위의 손목이 백 번밖에 못 버틴다는 이야기보다⁠, 일 위의 꽃잎이 서른 장 난다는 이야기가 더 맛있거든⁠.⁠”

리현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문틈으로 원주의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목 또 감았냐고 묻는 소리였다⁠.

*

둑길을 다 내려와 갈대밭 앞에 이르렀을 때⁠, 갈대 사이에서 참새가 나왔다⁠. 머리카락에 갈대꽃이 붙어 있었다⁠. 참새는 숨이 차 있었고 눈이 반짝였다⁠. 갈대꽃 하나가 입술에 붙자 참새는 퉤 하고 뱉었다⁠. 뱉고 나서도 웃음이 입가에서 안 떨어졌다⁠.

“⁠들었어⁠.⁠” 참새가 목령의 소매를 잡았다⁠. “⁠막내야⁠, 다 들었어⁠. 백 번밖에 못 받는 손목⁠. 쇠살만 남은 맨 부채⁠. 그리고 낮에 나루터에서 부채 수리하는 영감한테 들었는데⁠, 공자 부채 살 사이에 명주실이 감겨 있대⁠. 소매 속 주머니랑 이어져서 손목을 틀면 꽃잎이 줄 맞춰 나가는 거래⁠.⁠”

“⁠따라왔소⁠?⁠”

“⁠이야기꾼은 따라가는 게 일이야⁠.⁠” 참새가 목령의 소매를 놓지 않았다⁠. “⁠너 오늘 칠 위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방주 의자에 한 번 앉았더니 그렇게 됐어⁠. 그리고 오늘 저녁 대청에서 들은 말인데⁠, 한가위 비무에 무림맹에서 사자를 보낸대⁠. 일곱 고을이 다 보는 비무가 아니라 강호가 다 보는 비무가 되는 거야⁠.⁠”

목령은 소매를 빼냈다⁠. 갈대가 바람에 한쪽으로 쓸렸다⁠.

“⁠사저⁠.⁠”

“⁠내일 추천 탁자에서 할게⁠. 「⁠은선공자 부채에는 실이 달렸다⁠」 지어낸 거 하나도 없어⁠. 네 조건대로 진짜만⁠.⁠” 참새의 목소리가 반 음 낮아졌다⁠.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였다⁠. “⁠이걸로 넌 일 위 얼굴 앞까지 가⁠. 비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반은 이기는 거야⁠.⁠”

목령은 은선문 담을 돌아보았다⁠. 둑 위로 부엌 굴뚝 하나가 보였다⁠. 저녁밥 지은 연기는 벌써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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