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40자)

풀린 널

소문 순위로 줄 세우는 강호 · 한빛결

비무대는 아침 사이에 서른 자가 되었다⁠. 목수 열두 명이 밤새 기둥을 덧대고 널을 올렸다⁠. 꼭대기에 오르는 사다리는 둘이었고⁠, 사다리 하나에 디딤목이 마흔 개였다⁠. 비무대 다리에 붙은 종이는 「⁠한가위 — 서른 자⁠」로 바뀌었고⁠, 누가 종이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덧붙여 놓았다⁠. 「⁠이 이상은 못 올림 · 목수 일동⁠」

방주는 비무대 아래에서 찻주전자를 들고 목수들을 지켜보았다⁠. 목령이 다가가자 방주는 찻잔 하나를 더 꺼냈다⁠. 목령은 받지 않았다⁠.

“⁠문 닫는 조건을 거두시오⁠.⁠”

방주가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오래 굴렸다⁠.

“⁠이유는⁠?⁠”

“⁠은선문에 애들이 백이오⁠. 공자가 지면 쌀이 끊기고⁠, 산문까지 닫히면 애들이 갈 데가 없소⁠.⁠”

“⁠네가 이기면 쌀이 너한테 간다⁠. 애들은 네가 먹여⁠.⁠”

“⁠청송문 산문은 사부가 이미 닫기로 했소⁠. 방주와 도장 찍은 대로⁠.⁠”

“⁠그렇지⁠.⁠” 방주가 차를 삼켰다⁠.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 너는 잃을 게 없고⁠, 공자는 잃을 게 많다⁠. 그 차이가 이야기다⁠. 손님들은 잃을 게 많은 사람이 칼을 드는 걸 보러 와⁠.⁠” 방주가 비무대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문이 걸리지 않은 비무는 놀이야⁠. 무림맹 사자 앞에서 놀이를 하자고⁠?⁠”

“⁠사자는 진짜를 보러 왔소⁠.⁠”

“⁠나는 진짜를 판다⁠.⁠” 방주가 찻잔을 목령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도 목령은 받지 않았다⁠. 방주는 상관하지 않고 잔을 비무대 기둥 받침 위에 올려 두었다⁠. “⁠막내야⁠, 진짜는 원래 아파⁠. 아프지 않으면 아무도 진짜인 줄 몰라⁠. 내일 누가 아플지 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 둘이다⁠.⁠”

방주는 목수들에게로 걸어갔다⁠. 기둥 받침 위의 찻잔에서 김이 가늘게 올랐다⁠. 목령은 찻잔을 보다가 비무대 기둥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새 소나무 기둥이 아침 햇살에 따뜻했다⁠.

*

한가위 전날의 장터는 아침부터 미어졌다⁠. 일곱 고을에서 배가 들어왔고⁠, 배마다 구경꾼이 내렸다⁠. 나루터 계단에 짐 대신 사람이 쌓였다⁠. 목령은 소매를 내려 팔뚝의 매듭을 덮고 장터를 지나갔다⁠. 덮어도 소용이 없었다⁠. 장터 사람 절반이 소매를 걷고 있었다⁠.

떡집 앞에는 「⁠배고프다 떡 — 한 입에 셋⁠」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만두 가게는 「⁠서른 개 먹으면 공짜⁠」를 「⁠삼백 개 먹으면 공짜⁠」로 고쳐 붙였다⁠. 그림쟁이의 좌판에는 서른 자 비무대 그림이 새로 나와 있었다⁠. 그림 속 비무대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 있었다⁠.

먹 부채를 든 아가씨들과 소매 걷은 짐꾼들이 국숫집 앞 평상에 섞여 앉아 있었다⁠. 사흘 전까지 만두를 던지던 사람들이었다⁠. 엮어라 패는 부채도 들고 소매도 걷었다⁠. 바구니가 엎어진 날부터 세 패는 같은 평상에 앉기 시작했다⁠. 앞줄에서 먼저 던지던 사내들에게 똑같이 속은 사람들이었다⁠.

장터 끝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층 복도 끝 방의 훈장 같은 늙은 사내였다⁠. 사내는 길모퉁이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손님 셋을 앞에 두고 엽전 던지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엽전은 손목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고⁠, 손님이 다 던지고 난 다음에 던져야 티가 안 난다고⁠. 돗자리 앞의 종이에는 「⁠한가위 응원 교습 · 한 번에 두 닢⁠」이라고 적혀 있었다⁠.

목령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늙은 사내가 목령을 알아보고 회초리로 얼굴을 가렸다⁠.

*

참새는 일곱 고을 어느 객잔에서도 추천 탁자에 앉을 수 없었다⁠. 대청에 들어가는 것도 막혔다⁠. 그래서 참새는 마당으로 갔다⁠. 마당에는 목수들이 있었다⁠.

참새는 나루터 찻집에서 큰 주전자로 보리차를 받아 와 목수들에게 한 잔씩 돌렸다⁠. 목수들은 땀을 닦으며 받았다⁠. 참새는 잔을 건넬 때마다 한 모금 이야기를 하나씩 얹었다⁠. 서른 자 꼭대기에 오른 첫 목수 이야기⁠, 망치를 떨어뜨렸는데 비둘기가 물어다 준 이야기⁠.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목수들끼리 한 말을 들어 두었다가 짧게 해 준 것이었다⁠. 목수들이 웃었다⁠. 처음으로 엽전 대신 웃음이 참새 앞에 떨어졌다⁠.

맨 막내 목수가 참새 곁에 쪼그려 앉아 잔을 비웠다⁠. 스물 남짓한 얼굴이었다⁠. 막내 목수가 투덜거렸다⁠.

“⁠누님⁠, 목수가 못을 빼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 줄 알아요⁠?⁠”

참새가 주전자를 든 채 고개를 기울였다⁠.

“⁠어젯밤에 방주 어른네 사람이 와서요⁠, 동쪽 끝에서 세 번째 널⁠, 못을 다 빼고 쐐기만 박으래요⁠. 위에서 보면 멀쩡하고⁠, 사람이 세게 디디면 반 뼘쯤 꺼지게⁠.⁠” 막내 목수가 침을 퉤 뱉었다⁠. “⁠표시하라고 해서 널 귀퉁이에 먹 점 하나 찍어 놨어요⁠. 목수 이십 년 한 우리 대목 어른은 못 들은 척하더라고요⁠. 은자를 받았거든⁠.⁠”

참새는 주전자를 내려놓지 않았다⁠. 손이 떨려서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그 얘기 나 말고 누구한테 했어⁠?⁠”

“⁠누님한테 처음 했어요⁠. 누님은 이제 객잔에 못 들어가니까⁠, 이야기해도 아무 데도 안 퍼지잖아요⁠.⁠”

참새는 웃었다⁠. 앞니 사이로 바람이 샜다⁠. 오랜만에 나는 소리였다⁠.

*

목령은 해가 기울 무렵 참새의 말을 들었다⁠. 둘은 나루터 계단에 앉아 있었다⁠. 참새는 무림맹 사자에게 가자고 했다⁠. 사자는 나루터 국숫집에 묵고 있었고⁠, 국숫집은 방주의 객잔이 아니었다⁠.

“⁠사자한테 말하면 내일 아침에 널을 고칠 거야⁠. 방주는 망신을 당하고⁠.⁠”

“⁠그럼 방주는 다른 널을 풀겠지⁠.⁠” 목령이 말했다⁠. “⁠오늘 밤에⁠.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참새가 입을 다물었다⁠.

“⁠아는 널 하나가 모르는 널 하나보다 낫소⁠.⁠” 목령은 계단 아래 강물을 보았다⁠. 강물이 계단을 핥고 물러났다⁠. “⁠동쪽 끝에서 세 번째⁠. 먹 점⁠. 그거면 되오⁠.⁠”

“⁠막내야⁠. 공자가 그 널로 너를 몰면⁠.⁠”

“⁠그럼 공자도 아는 거지⁠.⁠” 목령이 일어났다⁠. “⁠공자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내가 물어볼 거요⁠.⁠”

*

해가 지기 전에 목령은 산에 올라갔다⁠. 사부는 사당 마당에 장대 하나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 장대 끝에 쇠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감 딸 때 쓰는 장대였다⁠.

“⁠올라가라⁠.⁠” 사부가 장대로 지붕을 가리켰다⁠. “⁠눈 감고⁠.⁠”

목령은 지붕에 올라 눈을 감았다⁠. 사부가 마당에서 장대를 뻗었다⁠. 장대 끝 갈고리가 기와를 하나 걸어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다른 데서 또 하나⁠. 사부는 무릎이 나빠 지붕에 오를 수 없었지만 장대는 지붕 끝까지 닿았다⁠.

“⁠어느 기와를 들었는지는 나만 안다⁠.⁠” 사부가 말했다⁠. “⁠이제 걸어 봐라⁠. 마흔 해 들은 지붕이 아니다⁠. 오늘 내가 새로 만든 지붕이다⁠.⁠”

목령은 눈을 감은 채 걸었다⁠. 세 걸음 만에 들린 기와를 밟았다⁠. 기와가 미끄러지며 발이 빠졌다⁠. 목령은 넘어지기 전에 다른 발로 옆 기와를 짚었다⁠. 짚은 기와가 버텼다⁠.

“⁠빠졌다⁠.⁠” 사부가 말했다⁠. “⁠빠지는 건 괜찮다⁠. 빠질 때 다른 발이 어디 있느냐가 문제지⁠. 다시⁠.⁠”

목령은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발을 디딜 때 체중을 한 번에 싣지 않았다⁠. 발끝으로 먼저 짚고⁠, 짚은 데가 버티면 그다음에 실었다⁠. 리현이 금 간 기와를 넘을 때 하던 걸음이었다⁠. 들린 기와에 발끝이 닿자 기와가 낮게 울었다⁠. 목령은 체중을 싣지 않고 넘어갔다⁠.

“⁠그거다⁠.⁠” 사부가 장대를 거두었다⁠. “⁠공자 걸음이로구나⁠.⁠”

“⁠공자한테 배웠소⁠.⁠”

“⁠배울 만한 데서 배웠다⁠.⁠” 사부가 장대를 사당 벽에 기댔다⁠. 장대 끝 갈고리가 리현이 끼운 새 기와 다섯 장 앞에서 멈춰 있었다⁠. 사부는 새 기와 다섯 장은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목령이 눈을 뜨고 물었다⁠.

“⁠왜 그 다섯 장은 안 들었소⁠?⁠”

“⁠아깝잖냐⁠.⁠” 사부가 부엌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일 위가 하루 종일 끼운 건데⁠.⁠”

*

은선문 마당에서는 해 질 녘 아이들이 무명천을 펼쳐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천 위에 숯으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내일 비무대 아래에서 들 깃발이었다⁠. 앞니 빠진 아이가 숯을 쥐고 「⁠공자님 이겨라⁠」를 쓰다가⁠, 옆 아이가 팔꿈치로 찌르자 글씨 옆에 작게 「⁠누나도⁠」를 덧붙였다⁠.

백리현은 부엌 문턱에서 깃발을 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원주가 국 사발 하나를 리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오늘 국에는 고기가 몇 점 떠 있었다⁠. 쌀 상인 하나가 비무가 열린다는 소식에 반 가마니를 다시 내려놓고 간 덕이었다⁠.

“⁠둘 다 이기라는 깃발이 어디 있냐⁠?⁠” 원주가 말했다⁠.

“⁠애들 눈에는 둘 다 이길 수 있나 봅니다⁠.⁠”

“⁠애들 눈이 맞을 때도 있지⁠.⁠” 원주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다 먹고 가라⁠. 그 종이는 품에서 꺼내 놓고⁠. 국물 튄다⁠.⁠”

리현은 품에 손을 넣었다가 빼지 않았다⁠. 국을 다 먹을 때까지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는 품에 있었다⁠.

*

밤이 깊어 마당의 구경꾼들이 다 돌아간 뒤⁠, 목령은 서른 자 비무대에 올랐다⁠. 디딤목 마흔 개를 오르는 동안 강바람이 점점 세졌다⁠. 꼭대기에 닿자 고을이 발밑에 다 펼쳐졌다⁠. 객잔 삼 층 지붕이 무릎 아래에 있었다⁠. 솔숲 꼭대기의 청송문 사당이 처음으로 보였다⁠. 부엌 불빛 하나가 깜박였다⁠.

비무대 위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백리현이 동쪽 끝에 쪼그려 앉아 널 한 장을 손바닥으로 쓸고 있었다⁠. 달빛에 은백색 머리가 희게 보였다⁠. 먹 그림 접부채는 허리띠에 꽂혀 있었다⁠.

“⁠늦었군⁠.⁠” 리현이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아까부터 있었네⁠.⁠”

목령은 맨발로 널을 밟으며 걸어갔다⁠. 동쪽 끝에서 세 번째 널 앞에서 멈췄다⁠. 널 귀퉁이에 먹 점 하나가 있었다⁠. 리현의 손바닥이 먹 점 위에 놓여 있었다⁠.

“⁠알고 있었소⁠?⁠”

“⁠어젯밤 방주가 말해 줬네⁠. 서른 자 높이에 널이 몇 장인데 그중 한 장쯤 말을 안 들어도 누가 알겠냐고⁠.⁠” 리현이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붉은 도장이 달빛에 검게 보였다⁠. “⁠이기면 이걸 태워 주겠다더군⁠. 은선문 쌀 빚⁠.⁠”

“⁠받았소⁠?⁠”

“⁠받았네⁠.⁠” 리현이 종이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하나 말해 두러 왔네⁠.⁠”

리현이 일어났다⁠. 동쪽 끝에서 세 번째 널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보았다⁠. 강바람이 리현의 머리를 허리께에서 날렸다⁠.

“⁠내일 나는 이 널로 자네를 몰 거네⁠.⁠”

목령은 리현의 얼굴을 보았다⁠. 웃음이 없었다⁠. 산문 앞에서 본 얼굴이었다⁠.

“⁠왜 말해 주오⁠?⁠”

“⁠자네가 모르고 밟으면 방주가 이긴 거고⁠, 알고 밟으면 비무지⁠.⁠” 리현이 부채를 허리띠에서 뽑아 손바닥에 쥐었다⁠. 펴지는 않았다⁠. “⁠나는 방주가 이기는 걸 보려고 다섯 해를 꽃잎을 날린 게 아니네⁠. 애들이 먹는 걸 보려고 날렸지⁠. 내일도 애들이 먹는 걸 보려고 자네를 이 널로 몰 거고⁠.⁠”

목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맨발 밑의 널이 송진 냄새를 풍겼다⁠.

“⁠그럼 나도 하나 말해 두겠소⁠.⁠” 목령이 말했다⁠. “⁠나는 공자 손목이 백 번이라는 걸 알고 칠 거요⁠. 백 번이 넘어가게⁠. 봐주지 않고⁠.⁠”

리현이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얼굴에 붙어 있지 않고 입에서 나왔다⁠.

“⁠고맙네⁠.⁠” 리현이 사다리로 걸어갔다⁠. 디딤목에 발을 올리다가 돌아보았다⁠. “⁠그 널⁠, 고치지 말게⁠. 나도 안 고치겠네⁠. 둘 다 아는 널은 그냥 비무대의 일부야⁠.⁠”

리현이 사다리를 내려갔다⁠. 목령은 혼자 남아 동쪽 끝에서 세 번째 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으로 먹 점을 덮었다⁠. 널은 아직 리현의 손바닥 온기를 품고 있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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