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48자) · 서식 제일호

시월 십사일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시월 십사일 수요일. 아침 일곱 시 반. 센터 쪽문 앞에 사람이 일곱 서 있었다. 한은지 씨와 전임자 여섯. 각자 다른 동, 다른 구청에서 온 사람들. 연가를 냈다고 했다. 누구는 가방에 도장을, 누구는 볼펜 한 묶음을, 누구는 김밥 스무 줄을 들고 왔다. 김밥을 든 사람이 그 스무 줄이 자기 첫 발령 날 선배가 사 준 거랑 같은 집이라고 했다. 선배는 그날 오후에 3번 창구에서 울었다고.

황 여사님이 쪽문을 열었다. 여덟 시간 일찍 출근한 얼굴로.

“몇 명이에요?”

“일곱이요. 저까지 여덟.”

“고 주임까지 아홉. 나까지 열.”

로비에 접이식 탁자 세 개를 폈다. 창고에 있던 것. 선거 때 쓰는 탁자라 다리에 제몇 회 지방선거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서식 제일호 전입신고서를 이백 장 출력해 두었다. 어젯밤에. 집 프린터로. 잉크가 모자라 마지막 서른 장은 글씨가 흐렸다. 한은지 씨가 흐린 서른 장을 골라서 자기 앞에 두었다. 자기가 쓰는 거라고.

여덟 시 반, 동장이 왔다. 정문으로. 로비의 탁자 세 개를 보고 멈췄다. 김밥 냄새가 났다. 동장은 탁자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서식 더미 앞에서 멈췄다.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미소 씨, 이게 뭐예요.”

“서식 제일호요. 전입신고서.”

“오늘은 전산 점검이라고 했죠.”

“전산 점검이면 수기로 받아요. 제일장 제칠절.”

“수기 접수도 불가라고 안내했죠. 화면에.”

“화면은 편람이 아니에요.”

동장은 서식을 탁자에 도로 내려놓았다. 반듯하게. 그리고 전임자들을 한 명씩 봤다. 한은지 씨에게서 눈이 멈췄다.

“은지 씨. 구청 소속이 왜 여기 있어요.”

“연가요, 동장님. 연가 쓴 날엔 아무 데나 있어도 되잖아요.”

동장은 대답하지 않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오 분 뒤, 내 단말기 화면에 알림이 떴다. 3번 창구 전입 업무 권한 일시 정지. 변경자 byun_ds. 예상했다. 수기 접수는 단말기가 필요 없다. 나는 모니터를 끄고 3번 창구 앞 의자를 로비 쪽으로 돌렸다.

아홉 시 정각. 화면이 깜빡였다.

[3번 창구 안내] 시월 십사일 전산 점검. 수기 접수 불가. 전입신고는 십오일부터.

그 화면 아래로 문이 열렸다. 문달수 씨가 먼저 들어왔다. 양복. 넥타이가 반듯했다. 혼자 맸다고 했다. 유튜브 보고. 그 뒤로 젊은 엄마. 아기를 앞으로 안고. 그 뒤로 돋보기 할아버지. 그 뒤로 열넷. 모두 성원연립이었다. 열일곱 명이 번호표를 하나씩 뽑았다. 번호표 기계가 열일곱 번 울었다.

문제는 결재였다. 수기 접수는 접수 즉시 팀장 확인 도장이 들어가야 효력이 생긴다. 제일장 제칠절 제이항. 우리 팀장은 업무 배제 중이었다. 도장을 찍을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받는 건 그냥 종이였다.

그때 고 주임이 1번 창구에서 일어났다. 서랍에서 도장을 꺼냈다. 자기 도장. 그리고 결재 규정 한 부를 탁자에 펼쳤다.

“행정민원팀 직무 대리 순서. 팀장 부재 시 팀 내 최선임 주무관이 대결. 팀 내 최선임, 칠 급 고명준. 육 년.”

그는 도장을 입김으로 한 번 불었다. 인주를 찍었다.

“육 년 동안 이 도장으로 뭘 덮기만 했어. 오늘은 여는 데 한번 써 보자.”

첫 번째는 문달수 씨였다. 한은지 씨가 서식을 문달수 씨 앞에 놓았다. 흐린 종이. 문달수 씨가 은지 씨를 봤다. 은지 씨가 볼펜 뚜껑을 열어서 건넸다. 문달수 씨는 성원연립 에이 동 백일 호라고 썼다. 손이 떨려서 백 자가 두 번 그어졌다. 은지 씨가 말했다. 「괜찮아요. 두 번 그어도 백이에요.」

나는 신분증을 대조했다. 고 주임이 도장을 찍었다. 수기 접수 제일호. 접수 시각 아홉 시 칠 분. 나는 접수증을 문달수 씨 손에 쥐여 드렸다. 문달수 씨는 접수증을 서른두 장 맨 위에 올렸다. 서른세 장이 됐다.

열 시가 되기 전에 열일곱 명이 끝났다. 전임자 여섯이 옆에서 한 명씩 붙어 앉았다. 칸 하나 틀리지 않게. 할아버지 하나가 세대주 칸에 자기 이름 대신 돌아가신 부인 이름을 썼다. 전임자 한 사람이 새 종이를 꺼내 주며 말했다. 「어르신, 이건 제가 가져가서 보관할게요. 버리지 않고요.」 할아버지는 새 종이에 자기 이름을 썼다.

열 시 반, 동장이 다시 내려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청원경찰 한 사람. 이 년 동안 로비 의자에서 졸던 사람. 오늘은 안 졸았다. 동장이 청원경찰에게 말했다. 무단 민원 접수 중이니 탁자 치우라고. 청원경찰은 탁자를 보고, 서식을 보고, 고 주임 도장을 봤다. 그리고 동장에게 말했다.

“동장님, 저는 치우는 사람이 아니고 지키는 사람이라서요. 싸움 나면 부르세요.”

그는 번호표 기계 옆 자기 의자로 돌아갔다. 앉았다. 안 졸았다.

동장은 탁자 앞에 섰다. 나를 내려다봤다.

“미소 씨. 지금 멈추면 문서고 건, 징계 건 다 없던 일이에요. 마지막으로 말해요.”

“동장님, 서식 제일호 한 장 더 있어요. 성원연립 거 아니고요.”

나는 서식 한 장을 내밀었다. 빈 종이. 동장은 그걸 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동장님도 이 동에 사시잖아요. 도담동 이 가. 전입신고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오늘도요.”

전임자 한 사람이 웃다가 입을 막았다. 동장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열한 시, 주 사무장이 왔다. 남자 둘을 데리고. 검은 점퍼 세 벌. 정문을 밀고 들어와서 곧장 탁자로 왔다. 번호표를 안 뽑았다. 청원경찰이 일어섰다.

“접수된 거 다 취소하세요. 조합이 이의 제기합니다. 무권한 접수. 오늘 전산 점검이라고 공문 났잖아요.”

“공문 번호 알려 주세요.”

“또 그 소리.”

주 사무장이 탁자 위 접수 서류 더미로 손을 뻗었다. 고 주임 도장이 찍힌 열일곱 장. 그 손을 황 여사님의 밀대가 막았다. 밀대 자루가 서류와 손 사이로 쑥 들어왔다. 주 사무장이 밀대를 잡아챘다. 황 여사님이 놓지 않았다. 둘이 밀대를 사이에 두고 당겼다.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탁자를 걷어찼다. 접이식 다리가 접혔다. 탁자가 기울었다. 서류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바닥에는 물이 있었다. 황 여사님이 아침에 닦아 둔. 아직 덜 마른.

젊은 엄마가 아기를 안은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서류를 한 장씩 주웠다. 물기가 번지기 전에. 한은지 씨가 옆에 엎드렸다. 문달수 씨도. 양복 무릎이 젖었다. 돋보기 할아버지도. 무릎이 안 좋은 사람들이 전부 바닥에 있었다.

청원경찰이 무전기를 들었다. 아니, 한은지 씨가 먼저 휴대폰을 들었다. 백십이. 도담동 행정복지센터 로비. 업무 방해. 기물 파손. 폭행 우려.

경찰은 칠 분 만에 왔다. 순찰차 두 대. 주 사무장은 경찰에게 여기가 불법 접수 현장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로비를 둘러봤다. 접힌 탁자, 젖은 서류, 바닥에 무릎 꿇은 노인들, 밀대를 끝까지 놓지 않은 청소 노동자. 그리고 벽의 화면. 수기 접수 불가.

“공무원이 민원 받는 걸 민간인이 막으면 그게 업무 방해예요, 선생님. 받는 게 불법인지는 저희가 판단하는 게 아니고요. 일단 같이 가시죠.”

주 사무장이 동장을 돌아봤다. 이 층 계단참에 선 동장을. 동장은 내려오지 않았다. 주 사무장은 한참 동장을 봤다. 그리고 순찰차에 탔다. 끝까지 동장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게 그 사람의 계산이었는지 의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젖은 서류는 열일곱 장 전부 살았다. 한 장만 도장이 번졌다. 고 주임이 그 옆에 도장을 한 번 더 찍었다. 두 번 찍어도 도장이었다.

열두 시, 접힌 탁자 다리를 고 주임이 펴서 세웠다. 한쪽 다리가 휘어서 탁자가 기울었다. 황 여사님이 밑에 번호표 뭉치를 괴었다. 수평이 맞았다. 그 위에 김밥 스무 줄을 폈다. 전임자 여섯, 은지 씨, 고 주임, 황 여사님, 나. 그리고 문달수 씨. 젊은 엄마. 돋보기 할아버지. 청원경찰까지 와서 한 줄을 집어 갔다. 지키는 사람도 먹어야 한다고.

전임자들이 김밥을 먹으면서 서로 자기가 받은 화면을 말했다. 누구는 원본만이었고 누구는 사본만이었다. 한 사람은 첫날 화면에 세대주 동의서 필수가 떠서 세대주를 찾아 연립을 세 번 돌았다고 했다. 세대주가 본인이었다. 다들 웃었다. 웃다가 한 사람이 김밥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때 내가 편람을 잘못 외운 줄 알았어. 그래서 집에 가서 편람을 다시 외웠어. 두 번째 외울 때는 울면서 외웠어.”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한은지 씨가 그 사람 김밥 위에 단무지를 하나 올려 줬다. 그 사람이 웃었다.

돋보기 할아버지가 김밥을 씹다가 물었다. 편람이라는 게 뭐냐고. 나는 설명했다. 주민등록 사무를 어떻게 하라고 나라가 적어 둔 책.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그 책대로만 하면 되는 걸, 이 년 동안 왜 다들 딴 걸 봤어?”

전임자 여섯이 동시에 3번 화면을 봤다. 수기 접수 불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화면에 떠 있었으니까. 할아버지는 그 화면을 보고, 돋보기를 벗어서 김밥 은박지로 닦았다.

오후에는 사람이 계속 왔다. 소문이 연립을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경찰차가 두 대 왔대. 도장 찍어 준대. 합의서 쓴 사람도 받아 준대. 합의서를 쓴 다섯 명 중 넷이 왔다. 나는 그 넷의 전입신고도 받았다. 전입신고서에는 합의서 칸이 없다. 합의서는 조합과 세입자 사이의 일이고, 주소는 사람과 나라 사이의 일이다. 그걸 설명하니까 한 아주머니가 울었다. 오늘 운 사람 중에 창구 안쪽 사람은 없었다.

다섯 시 오십 분, 비 동 삼 층 아들이 할머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작업복 차림 그대로. 조합 사무실에 가서 백만 원을 돌려주고 왔다고 했다. 봉투째로. 합의서도 돌려받았다고. 할머니는 서식 앞에 앉아 자기 이름을 천천히 썼다. 이십 년 산 주소를 처음 쓰는 사람처럼.

여섯 시 정각. 스물아홉 번째 접수증. 서른 명 중 한 사람은 지난달에 이사를 나갔다. 스물아홉. 고 주임 도장 인주가 다 떨어졌다. 황 여사님이 청소 도구함에서 새 인주를 꺼내 왔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로비 문을 닫을 무렵, 윤 팀장이 들어왔다. 업무 배제 중인 사람이 정장 차림으로. 손에 공문 한 장. 구청 감사실 발신. 도담동 행정복지센터 특정 감사 착수. 감사 기간 동안 사이니지 관리 서버 및 관련 계정 보전 조치. 시행 오늘 오후 다섯 시.

“미소 주무관. 오늘 밤 열한 시에 아무도 못 써요. 동장님도.”

그날 밤 열한 시, 나는 집에서 누리집 미리 보기를 켰다. 예약 게시란이 비어 있었다. 회색 글씨로 한 줄만 떠 있었다. 감사 보전 조치로 게시 권한이 정지되었습니다. 이 년 만에 처음으로, 밤 열한 시에 아무도 3번 창구에 말을 걸지 않았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시월 십사일 ·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