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08자) · 수기 접수 불가
결재란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목요일 오전 아홉 시 오 분. 동장은 3번 화면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안내 사항이 없습니다.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대기 의자의 민원인들이 동장 등을 보다가 화면을 봤다. 아무 일도 없다는 문장 앞에 동장이 서 있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 한 아주머니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오늘 뭐 없대요?」 「없대요.」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동장은 대답 없이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아홉 시 십 분, 고 주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 봉투를 들고. 구청 감사실은 등기로 보내도 되고 누리집으로 올려도 됐다. 그는 둘 다 안 하고 직접 가겠다고 했다. 반차를 냈다. 사유 칸에 개인 용무라고 썼다가 지우고, 감사실 제보라고 다시 썼다. 윤 팀장 책상 위에 올렸다. 윤 팀장이 반차 신청서를 한참 봤다. 그리고 결재란에 서명했다. 사유 칸은 그대로 두고.
“고 주임. 버스 말고 택시 타요. 영수증 가져오고.”
“출장비 안 나와요, 팀장님. 반차라서.”
“내가 줄게요.”
고 주임은 웃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그리고 나갔다. 황 여사님이 출입문을 밀어 줬다. 밀대 손잡이로.
열한 시, 윤 팀장 모니터에 창이 하나 떴다. 옆에서 보였다. 사이니지 관리 프로그램 권한 변경 알림. yoon_ks, 예약 게시 권한 해제. 변경자 byun_ds. 윤 팀장은 알림을 닫지 않았다. 확인 버튼도 안 눌렀다. 창을 그대로 띄워 둔 채로 다음 결재 서류를 넘겼다.
오후 두 시, 동장실에서 나를 불렀다. 윤 팀장도 같이. 동장은 소파에 앉지 않고 책상 뒤에 섰다. 난초 화분 옆에 문서 한 장. 결재판에 끼운 것.
「전산 점검에 따른 전입신고 업무 일시 중단 알림」. 시행일 시월 십사일. 기안자 칸에 윤기섭. 검토 칸 비어 있음. 결재 칸 비어 있음.
“윤 팀장. 기안자 이름은 내가 넣어 놨어요. 서명만 해요.”
윤 팀장은 결재판을 받지 않았다. 동장이 결재판을 책상 모서리로 밀었다. 윤 팀장 쪽으로. 반 뼘.
“팀장님, 서명 안 하셔도 돼요.”
내가 말했다. 동장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눈이 그대로였다.
“미소 씨. 조합이 넣은 민원 알죠. 정치적 중립 위반. 근무 시간 외에 이해관계인 모임 참석. 오늘 아침에 구청 인사팀이 공문으로 물어왔어요. 징계 의결 요구할 건지. 나는 아직 답을 안 했어요.”
그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인사 발령 통지서. 구청 문서고, 시월 십육일 자.
“이것도 아직 결재 전이에요. 구청이랑 얘기하면 없던 일로 할 수 있어요. 미소 씨가 원래 가고 싶었던 데가 어디였더라. 구청 민원여권과였나. 편람 외운 사람한테 딱이죠.”
그리고 그가 조건을 말했다. 벽에 붙은 표 떼기. 십사일은 전산 점검. 성원연립 세입자 모임에는 안 가기. 그것뿐이라고 했다. 미소 씨 경력에 아무 일도 없게. 그 말을 할 때 동장은 웃었다. 눈이 없어졌다.
나는 편람 제일장 제칠절을 외웠다. 소리 내어. 전산 장애 시 민원 처리. 수기 접수 후 복구 시 입력. 접수일은 수기 접수일. 전산 점검을 이유로 접수 자체를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음. 조항 번호까지 다 말하는 데 사십 초가 걸렸다. 동장은 사십 초 동안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다 외웠어요?”
“서식 백열두 개요. 동장님 거 빼고.”
그때 윤 팀장이 결재판을 집었다. 동장 얼굴이 풀렸다. 윤 팀장은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검토 칸도 결재 칸도 아닌, 기안자 칸 자기 이름 위에 줄을 두 번 그었다. 그 옆에 적었다. 본인 기안 아님.
“동장님. 오늘 오후 다섯 시에 구청 감사실 가요. 진술하러. 고 주임이 아침에 냈어요. 동장님 이월 이일 메시지, 제 휴대폰에 있어요. 안 지웠어요.”
동장의 눈이 돌아왔다. 처음으로 크게.
“윤 팀장, 큰애 내년에 대학 간다며.”
“네. 그래서요. 애한테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매일 밤 제일 덜 나쁜 거 고르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싫어서요.”
동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전화기를 들었다. 인사팀 내선. 수화기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행정민원팀장 윤기섭, 금일 자로 업무 배제 요청합니다. 사유는 복무 관리 소홀. 그리고 삼 번 창구 주무관 건은, 징계 의결 요구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작았다. 오히려 그게 무서웠다.
저녁 일곱 시, 고 주임한테서 사진이 한 장 왔다. 구청 일 층 로비. 감사실 안내판 앞 벤치. 윤 팀장이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서 손에 감고. 옆에 고 주임 신발 코가 찍혀 있었다. 사진 밑에 한 줄.
「두 시간 같이 기다렸어. 감사관이 퇴근을 안 해. 우리 진술 다 듣겠대.」
여덟 시 반에 한 장이 더 왔다. 윤 팀장 뒷모습. 감사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고 주임은 그 사진에는 아무 말도 달지 않았다.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무슨 말을 써도 가벼웠다. 그래서 편람 번호를 보냈다. 제일장 제칠절 제이항. 고 주임이 바로 답했다. 「알아. 팀장님도 외우고 들어갔어.」
밤 열 시, 고 주임이 센터 앞에 택시를 세웠다. 나는 쪽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황 여사님도. 고 주임은 택시에서 내려 영수증을 흔들었다. 윤 팀장이 준 돈으로 탔다고. 영수증에 이만 삼천 원.
“팀장님이 세 시간 진술했어. 이월 이일 메시지부터 오백이십오 줄 하나하나. 날짜 불러 가면서. 감사관이 받아 적다가 볼펜을 두 번 갈았어. 나와서 팀장님이 나한테 그러더라. 매일 밤 쓴 거라 다 기억난대. 뭘 지웠는지까지.”
황 여사님이 고 주임 등을 두 번 두드렸다. 밀대 칠 때처럼. 탁탁.
그날 저녁 여섯 시에 3번 창구 옆 벽의 표가 없어졌다. 테이프 자국 여덟 개만 남았다. 황 여사님이 테이프 자국을 걸레로 닦다가 멈췄다. 닦지 않았다. 여덟 개를 그대로 두었다. 자국이 있어야 뭐가 있었는지 안다고.
금요일 아침 성원연립 세 동 현관에 에이 사 용지가 붙었다. 조합 명의. 「시월 십사일은 전산 점검으로 전입신고가 불가합니다. 기한 내 권리 확보를 원하시는 분은 조합 사무실에서 합의서를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합의 시 이사비 백만 원 즉시 지급.」 날짜 옆에 동 행정복지센터 확인이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금요일 오후 세 시, 주 사무장이 3번 창구에 왔다. 번호표를 뽑지 않고 바로. 창구 유리에 그 종이를 붙였다. 테이프도 없이, 손바닥으로 눌러서. 동 행정복지센터 확인.
“주무관님, 이거 확인해 드린 거 맞죠? 동장님이 그러시던데.”
“확인한 적 없어요. 이 센터 누구도 문서로 확인해 준 적 없어요. 문서 번호 가져오시면 제가 대장에서 찾아볼게요.”
“문서 번호 같은 소리 하시네. 주무관님 다음 주에 구청 가신다며. 문서고. 거기서 문서 번호 실컷 찾으시겠네.”
그는 웃으며 유리를 두 번 두드렸다. 대기 의자 쪽을 돌아보며 크게 말했다.
“여러분, 성원연립 분들 계시면 들으세요. 십사일엔 전산이 멈춥니다. 여기 주무관님이 뭐라고 하든 전산이 멈춰요. 멈춘 전산에 이름 넣는 방법은 없어요.”
대기 의자에서 누가 손을 들었다. 일흔 넘은 할아버지. 돋보기를 쓴. 지난주에 벽 표 앞에서 자기 날짜를 못 찾았던 사람.
“전산 멈추면 종이에 쓰면 되지. 우리 때는 다 종이였어. 종이에 쓴 거는 안 멈춰.”
대기 의자 몇 군데서 웃음이 났다. 주 사무장이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벗어서 닦았다. 주 사무장은 종이를 유리에 붙인 채로 나갔다. 나는 그 종이를 떼지 않았다. 그 옆에 편람 제일장 제칠절을 출력해서 나란히 붙였다. 테이프 네 조각으로. 둘 중 뭐가 맞는지는 읽는 사람이 정하면 됐다.
토요일 오후 경로당에 다시 모였다. 스물두 명이 약속했던 자리에 열일곱이 왔다. 다섯이 합의서를 썼다고 했다. 비 동 삼 층 할머니는 아들이 대신 썼다고 했다. 젊은 엄마는 왔다. 아기를 업고. 합의서를 안 썼다고, 그 말부터 했다.
“센터에서 받아 준다는 게 확실해요? 그날 가서 또 반려되면 우린 끝이에요. 백만 원도 없고, 이주비도 없고.”
나는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수기 접수에는 팀장 결재가 필요하고, 우리 팀장은 어제 업무에서 배제됐다. 그 말을 그대로 했다. 방이 조용해졌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때 문달수 씨가 서른두 장을 방석 위에 펼쳤다. 한 장씩. 그리고 자기 휴대폰을 꺼내 단톡방을 보여 줬다.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참여자가 열한 명으로 늘어 있었다. 한은지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십사일에 우리 여섯 명 연가 냈어요. 전부 주민등록 담당 해 본 사람들이에요. 수기 서식 제일호, 우리가 옆에서 같이 써 드릴게요. 한 분도 틀리지 않게.」
젊은 엄마가 그 화면을 오래 봤다. 그리고 아기를 고쳐 업었다.
“열일곱 명. 다시 적어요.”
일요일 낮에는 문달수 씨와 비 동 삼 층에 올라갔다. 아들이 대신 합의서를 썼다는 할머니 집. 문을 연 건 아들이었다. 마흔쯤. 작업복 차림. 일요일에도 일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어머니 대신 쓴 거 맞아요. 백만 원 받으면 이번 달 월세 돼요. 주무관님이 이주비 준다고 해도, 그건 몇 달 뒤잖아요. 우리는 이번 달이 급해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편람에는 이번 달 월세 조항이 없다. 문달수 씨가 대신 말했다. 자기도 합의서를 쓰려고 했었다고. 저녁에 쓰려고 봉투에 넣고 다녔다고. 그러다 찢었다고.
“이보게. 합의서는 돈을 받고 쓰는 게 아니오. 내 날짜를 팔고 쓰는 거지. 자네 어머니가 여기 산 날짜. 이십 년이오.”
아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 대신 방 안을 돌아봤다. 할머니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들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조합 사무실에 가서 돈 안 받았으면 취소되냐고 물어보겠다고. 받았으면 돌려주겠다고. 대답이 아니라 숙제 같은 말이었다. 나는 그 숙제를 노트에 적었다. 비 동 삼 층, 월요일까지.
일요일 밤 열한 시. 나는 집에서 센터 누리집의 사이니지 미리 보기를 켰다. 주민들 보라고 만든 기능인데, 아무도 안 봤다. 나는 이틀째 봤다. 열한 시 정각, 다음 날 예약이 올라왔다. 월요일 거. 게시자 byun_ds.
[3번 창구 안내] 시월 십사일 전산 점검. 수기 접수 불가. 전입신고는 십오일부터.
수기 접수 불가. 편람에 없는 말이 또 하나 생겼다. 이번엔 동장이 직접 썼다. 숨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노트를 폈다. 마흔다섯 번째 줄. 괄호 안에 byun_ds. 그리고 오 분쯤 그 괄호를 봤다. 드디어 싸울 상대 이름이 화면에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