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59자) · 이틀 연속
변경 없음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시월 십오일 목요일 아침 아홉 시. 새솔시 누리집에 공람공고가 올라왔다. 성원연립 재건축정비구역 지정 공람. 첨부 파일 세 개. 나는 3번 창구에서 그걸 열었다. 전산 권한은 아침에 돌아와 있었다. 감사실이 동장 계정의 변경을 전부 되돌리라고 했다고, 고 주임이 커피를 주면서 말했다. 믹스 두 봉. 오늘도 달았다.
첨부 파일 두 번째. 구역 내 거주 세대 현황. 기준일 시월 십오일. 나는 스크롤을 내렸다. 에이 동 백일 호. 문달수. 전입일 이천이십육 년 시월 십사일.
어제 날짜가 공문서에 박혀 있었다. 수기로 받은 종이가, 오늘 새벽 전산 복구와 함께 입력된 것이다. 고 주임이 밤 열두 시에 혼자 남아서 스물아홉 장을 다 쳤다고 했다. 도장이 번진 한 장은 두 번 쳤다고. 두 번 쳐도 한 번이었다.
스물아홉 줄을 다 셌다. 스물아홉. 나는 노트를 폈다. 마흔여덟 번째 줄. 시월 십오일. 화면 문구는 적지 않았다. 대신 그 줄에 스물아홉 명 이름을 적었다. 한 줄에 다 안 들어가서 네 줄을 썼다.
아홉 시 정각, 3번 화면이 깜빡였다. 게시 권한이 정지된 화면에는 기본 문구가 떴다. 기계를 설치할 때 업체가 넣어 둔 것. 이 년 동안 한 번도 뜬 적 없는 것.
[3번 창구 안내] 민원 업무는 주민등록 사무편람에 따라 처리합니다.
황 여사님이 밀대를 세우고 그 화면을 봤다. 한참 봤다. 그리고 말했다.
“처음부터 저거였으면 됐잖아.”
동장은 그날 출근하지 않았다. 병가라고 했다. 금요일에도, 그다음 월요일에도. 동장실 문은 잠겨 있었다. 난초 화분에 물을 줄 사람이 없어서 황 여사님이 열쇠를 받아 들어갔다. 나오면서 말했다. 난초가 원래 조화였다고. 이 년 동안 물을 준 사람이 자기 하나였다고. 팔 년째 덜 한 청소 목록에 그게 들어 있었다.
감사는 삼 주 걸렸다. 윤 팀장은 그 삼 주 동안 매일 구청에 갔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오백이십오 줄을 하나씩 다시 짚었다. 이 줄은 왜 썼는지, 이 날은 뭘 지웠는지. 감사관이 나중에 한은지 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진술 경력 이십 년에 자기 잘못을 이렇게 날짜별로 정리해 온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한은지 씨도 불려 갔다. 전임자 여섯도. 문달수 씨도 갔다. 서른세 장을 들고. 양복을 입고. 넥타이는 혼자 맸다고 했는데, 반듯했다.
십일월 둘째 주, 감사 결과가 나왔다. 구청 누리집 감사 결과 공개 게시판. 제목은 길었다. 도담동 행정복지센터 민원 안내 게시물 부당 운영 및 특정 민원 반복 반려에 관한 특정 감사 결과. 나는 그걸 3번 창구에서 읽었다. 대기 의자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었다.
동장 변대식. 직위 해제. 중징계 의결 요구. 재건축 조합장과 부당하게 연락하고, 소속 직원에게 편람에 없는 요건을 게시하도록 지시함. 조합과의 금전 거래 여부는 수사 기관에 의뢰. 행정민원팀장 윤기섭. 경징계 의결 요구. 지시에 따라 부당 게시를 반복함. 다만 자진 진술 및 증거 제출을 참작함. 성원연립 재건축 조합. 민원 창구 업무 방해 및 합의서 작성 강요 의혹, 수사 기관 통보. 제일 밑에 한 줄이 더 있었다.
해당 기간 3번 창구 담당 주무관 여섯 명에 대한 기존 근무 평정 중 반려 건수 관련 감점 사항을 전부 취소함.
그 줄을 한은지 씨가 캡처해서 단톡방에 올렸다.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열한 명. 한 시간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그러다 누가 올렸다. 김밥 사진. 그리고 또 한 장. 또 한 장. 이번에는 전부 김밥이었다. 각자 동네 김밥집. 그날 저녁 단톡방 이름이 바뀌었다. 한은지 씨가 바꿨다. 오늘 오신 분도 잘못이 아닙니다.
감사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저녁, 변대식 전 동장이 짐을 가지러 왔다. 여섯 시 넘어서. 직원들이 다 퇴근한 시간을 골라서. 나는 남아 있었다. 3번 창구에서 노트를 정리하느라. 이 층 계단에서 그가 상자를 안고 내려왔다. 명패, 액자, 조화 난초. 로비를 지나다 3번 창구 앞에서 멈췄다.
“미소 씨. 이긴 것 같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지방선거 스티커가 붙은 그 탁자.
“성원연립은 그래도 헐려요. 조합은 새 사무장 뽑을 거고, 재건축은 삼 년 늦어질 뿐이에요. 스물아홉 명은 이주비 받고 흩어지고, 여긴 아파트가 들어서요. 미소 씨가 바꾼 건 날짜 하나예요. 시월 십사일.”
“알아요.”
“알면서 왜 했어요. 두 달짜리 경력 걸고.”
나는 노트를 그에게 돌려 보여 줬다. 쉰 줄 가까운 문구. 괄호 안의 이름들. 제일 첫 줄. 이월 이일, byun_ds.
“동장님이 첫 줄을 쓰셨잖아요. 누가 마지막 줄을 써야 했어요. 헐리는 건 못 막아요. 근데 헐리기 전까지 여기 산 날짜는, 그분들 거예요. 동장님 것도 조합 것도 아니고.”
그는 노트를 오래 봤다. 자기 계정 이름을. 그러다 상자를 다시 안았다. 조화 난초 잎이 흔들렸다. 진짜 잎처럼.
“그 난초, 물 주면 안 돼요. 곰팡이 핍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쪽문으로 나갔다. 황 여사님이 이 년 동안 조화에 물을 준 걸 알았던 것이다. 알면서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끝까지 그런 사람이었다.
주 사무장은 업무 방해로 송치됐다. 조합 사무실에는 압수 수색이 들어갔다. 합의서 백열두 장이 나왔다고 했다. 서식 백열두 개하고 같은 숫자라서, 고 주임이 그 기사를 보고 한참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백열두 명이 백만 원에 날짜를 판 거였다.
내 문서고 발령은 없던 일이 됐다. 감사 기간 중 관련 직원 인사 이동 보류. 그리고 감사 결과가 나온 날, 구청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민원여권과에 자리가 났다고. 원하던 곳 아니냐고. 편람 외운 사람한테 딱이라고. 동장이 했던 말을 인사팀 주무관이 그대로 했다. 그 사람은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하루를 생각했다. 퇴근길에 성원연립 앞을 지나갔다. 에이 동 백일 호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비 동 외벽의 누수 자국 위로 누가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사다리에 작업복 차림 아들이 올라가 있었고, 밑에서 할머니가 페인트 통을 들고 있었다. 이사 가는 집이 벽을 칠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칠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까지 여기 사는 사람들이니까.
다음 날 아침 인사팀에 전화했다. 3번 창구에 남겠다고 했다. 인사팀 주무관이 이유를 물었다.
“편람은 어디서든 외울 수 있는데요, 저 화면은 여기밖에 없어서요.”
십일월 셋째 주, 새 동장이 왔다. 쉰 초반 여자. 첫 주 월요일에 3번 화면 앞에 섰다. 그 옆 벽의 테이프 자국 여덟 개를 봤다. 황 여사님이 안 닦은 것. 새 동장은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고 물었다. 여기 뭐가 있었냐고. 나는 서랍에서 코팅된 표를 꺼냈다. 동장이 떼어 간 것이 아니라, 내가 한 장 더 만들어 둔 것.
새 동장은 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파랑, 빨강, 노랑. 삼백열두 번. 오래 걸렸다. 다 읽고 나서 표를 테이프 자국 여덟 개에 정확히 맞춰 다시 붙였다. 자기 손으로. 그리고 그날 오후에 센터 운영 지침 하나를 결재했다.
민원 안내 게시물 변경 시 담당 팀장과 창구 주무관 공동 결재. 변경 전 문구와 변경 후 문구, 변경 사유를 같은 화면 하단에 함께 게시. 변경 이력은 창구 옆에 상시 비치.
제일 밑에 새 동장이 손으로 한 줄을 덧붙였다. 표 떼지 말 것.
윤 팀장은 감봉 일 개월을 받고 팀장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온 첫날 아침, 3번 창구에 와서 공동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새 안내 문구. 그 전 문구와 같은 문구였다. 민원 업무는 주민등록 사무편람에 따라 처리합니다. 변경 사유 칸에 윤 팀장이 이렇게 적어 놓았다. 변경 없음. 계속 이대로.
“바뀌는 게 없는데 결재를 왜 해요?”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누가 확인해야 하니까요. 매일 밤 열한 시에.”
그는 서류를 두고 가다가 돌아섰다. 큰애가 어제 물었다고 했다. 아빠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뉴스에 도담동이 나왔다고. 그래서 말해 줬다고. 아빠가 이 년 동안 틀린 걸 매일 썼는데, 이제 맞는 걸 매일 쓰기로 했다고. 큰애가 뭐라고 했냐고 내가 물었다. 윤 팀장은 안경을 벗어서 이번에는 닦았다. 그럼 이제 일찍 오겠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서류를 두고 갔다. 나는 창구 주무관 결재란에 내 이름을 적었다. 처음 적는 결재란이었다.
그 주 목요일, 문달수 씨가 왔다. 번호표를 뽑았다. 백사 번.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순서가 되자 창구 앞에 왔다. 서류는 없었다. 대신 보자기를 풀었다. 시루떡. 한 판이 통째로.
“이사 날 잡혔소. 이주비 나와서 새 동네 방 얻었소. 도담동 이 가. 그러니 여기서 또 전입신고 하러 올 거요. 이번엔 무슨 서류 가져오면 되오?”
“신고서랑 신분증이요.”
“그것뿐이오?”
“그것뿐이에요.”
문달수 씨는 떡을 창구 유리 위에 올려놓고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창구 옆 벽의 표를 봤다. 제일 밑 노랑 줄에 자기 날짜가 있었다. 그 날짜 옆에 누가 파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내가 친 건 아니었다. 황 여사님이었을까, 고 주임이었을까. 물어보지 않았다.
떡은 사무실에서 나눴다. 새 동장, 윤 팀장, 고 주임, 황 여사님, 청원경찰. 청원경찰이 두 조각을 가져갔다. 지키는 사람은 두 배로 먹어야 한다고. 고 주임이 떡을 먹다가 말했다. 육 년 동안 이 센터에서 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황 여사님이 대답했다. 팔 년 동안 한 번 있었다고. 자기가 사 왔다고.
금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구 분. 나는 3번 창구에 앉았다. 휴대폰 동영상은 켜지 않았다. 아홉 시 정각, 화면이 깜빡였다.
[3번 창구 안내] 민원 업무는 주민등록 사무편람에 따라 처리합니다.
어제와 같았다.
나는 노트를 폈다. 일흔네 번째 줄. 날짜를 적고 그 옆에 적었다. 변경 없음. 괄호 안에 결재자 두 사람 이름. 어제 줄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일흔세 줄 동안 괄호 안에 이름 둘이 든 줄이 나란히 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황 여사님이 밀대를 밀고 왔다. 화면을 보고, 내 노트를 봤다. 두 줄이 나란히 같은 걸 봤다.
“이틀 연속이네.”
“네, 이틀 연속이에요.”
“내일도 같으면 사흘이고.”
황 여사님은 밀대를 밀고 1번 창구 쪽으로 갔다. 번호표 기계가 울었다. 일 번. 나는 호출 버튼을 눌렀다. 3번 창구입니다. 오늘은 원본이든 사본이든 다 받습니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