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38자) · 제일 덜 나쁜 것
밤 열한 시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수요일 저녁 여섯 시 반. 센터 뒤 공영주차장. 고 주임은 자기 경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시동은 꺼져 있었다. 차 안에서 컵라면 냄새가 났다. 고 주임이 점심을 여기서 먹는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이게 뭔지 알아요?”
고 주임이 대시보드 위의 서류 봉투를 톡 쳤다. 구청 감사실 제보 양식. 제보자 성명 칸이 비어 있었다.
“익명으로 내면 로그 출처를 물어요. 서버 접근 기록 보면 누가 뽑았는지 나오거든요. 내 아이디로 뽑았으니까. 익명은 사흘이면 끝나요. 그럼 실명으로 내야 되는데.”
그는 볼펜 뚜껑을 뺐다 끼웠다. 세 번.
“나 칠 급 된 지 이 년이에요. 육 년 전에 CCTV 덮을 때, 그때 팀장이 나한테 그랬어요. 고 주임은 오래 갈 사람이야. 오래 가려면 덮을 줄 알아야 돼. 나 그 말 듣고 진짜 오래 갔어요. 육 년. 아무 일도 없이.”
“주임님.”
“근데 미소 씨, 오래 간 게 뭐가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아침 3번 화면 보면서 모른 척했어요. 그게 오래 가는 방법이었어요. 모른 척하는 거.”
그는 성명 칸에 볼펜을 댔다. 고. 한 글자 쓰고 멈췄다.
“내 이름 한 글자 쓰는 데 육 년 걸렸네.”
그때 창문을 누가 두드렸다. 황 여사님이었다. 한 손에 밀대, 한 손에 비닐봉지. 고 주임이 창문을 내렸다.
“뭐 해요, 둘이 차 안에서. 소문납니다.”
“서류 써요, 여사님.”
“그럼 다 써요. 이름 끝까지.”
황 여사님은 비닐봉지를 창문으로 밀어 넣었다. 삶은 달걀 네 개. 아직 따뜻했다.
“오늘 밤 늦게까지 있을 거잖아요. 윤 팀장이 요새 밤마다 사무실에 불 켜 놓고 있어요. 열한 시 다 되도록. 청소하면서 봤어요. 앉아서 화면만 보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치고.”
고 주임이 달걀 하나를 집었다. 운전대에 톡 쳐서 깼다. 껍질을 벗기면서 말했다.
“그럼 오늘 가죠. 서류 내기 전에. 사람 먼저 보고.”
그는 성명 칸에 나머지 두 글자를 썼다. 고명준. 볼펜 뚜껑을 끼웠다. 이번엔 한 번만.
수요일 밤 열 시 오십 분. 센터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한 자리만 빼고. 행정민원팀장 자리. 모니터가 파랬다.
나는 쪽문으로 들어갔다. 고 주임이 뒤따라왔다. 커피 없이. 황 여사님은 복도 끝에서 밀대를 세우고 섰다. 오늘 밤은 망을 볼 일이 없었다. 우리가 보러 온 사람이 이미 거기 있었으니까.
윤 팀장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사이니지 관리 프로그램. 예약 게시 화면. 내일 날짜. 문구 입력 칸이 비어 있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그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멈춰 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걸 몰랐다. 아니면 알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팀장님.”
그가 돌아봤다. 놀라지 않았다. 안경을 벗었다. 닦지 않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미소 씨. 고 주임도. 황 여사님까지. 올 줄 알았어요. 월요일부터 3번 화면 옆에 괄호가 생겼더라고요. 미소 씨 노트에. yoon_ks.”
“보셨어요?”
“창구 지나가면서요. 미소 씨는 노트를 안 숨기잖아요.”
고 주임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로그 사진. 오백이십육 줄. 윤 팀장은 그걸 보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까.
“고 주임이 전산 담당이었지. 육 년 동안 한 번도 안 열어 봐서 잊고 있었네.”
“저도 잊고 싶었어요, 팀장님.”
윤 팀장은 모니터 속 비어 있는 입력 칸을 봤다.
“내일 거 아직 안 썼어요. 한 시간째 이러고 있어요.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일 년 반 동안 매일 밤 썼는데, 쓸 게 떨어지더라고요. 원본, 사본, 확정일자, 세대주, 임대인, 조합. 이제 남은 게 없어요. 그래서 오늘은 뭘 지울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팀장님.”
“미소 씨가 편람 백열두 개 외웠다는 말 들었을 때, 나 무서웠어요. 편람에 없는 걸 매일 밤 만들고 있었으니까. 미소 씨는 매일 아침 그걸 편람이랑 맞춰 볼 거잖아요. 신규 아홉 급이 내 숙제를 매일 채점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는 웃었다. 탕비실에서 들었던 그 소리. 포기하는 소리.
“이유가 궁금하죠. 동장님 지시예요. 작년 이월에 동장님이 첫 줄을 직접 예약하시고 나한테 말했어요. 이 창구 안내는 윤 팀장이 챙겨. 성원연립 건은 사정이 있어. 그 사정이 뭔지는 안 물었어요. 물으면 알게 되니까. 우리 큰애가 내년에 대학 가요. 나 이번 심사 떨어지면 오 급은 없어요. 쉰셋이에요.”
“돈 받으셨어요?”
고 주임이 물었다. 윤 팀장이 고 주임을 봤다. 오래.
“안 받았어요. 그게 더 한심하죠. 돈도 안 받고 했어요. 시키니까.”
나는 노트를 폈다. 서른두 장과 합친 노트. 첫 장. 담당 아가씨가 울었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
“팀장님. 은지 씨한테 보낸 메시지 있죠. 성원연립 건은 무조건 반려. 읽고 지우세요.”
윤 팀장의 손이 책상 위에서 멈췄다.
“은지 씨가 안 지웠어요. 일 년 반 동안. 지우라는 말이 무서워서요.”
윤 팀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헤드라이트가 천장을 한 번 쓸고 갔다.
“미소 씨는 나한테 뭘 원해요.”
“내일 화면에 편람대로 쓰세요. 전입신고, 신고서와 신분증. 그것만.”
윤 팀장이 입력 칸을 봤다. 커서가 깜빡였다. 그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전, 입, 신. 세 글자를 쳤다. 멈췄다. 지웠다. 한 글자씩. 백스페이스 소리가 세 번 났다.
“못 해요.”
“팀장님.”
“내일 그걸 쓰면, 내일모레 동장님이 보시고, 그날로 내가 이 자리에서 빠져요. 그리고 동장님이 직접 써요. 더 나쁜 걸로. 지금 내가 쓰는 건, 그래도 내가 고른 거예요. 매일 밤 제일 덜 나쁜 걸 골랐어요. 원본이랑 사본 사이에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그 말에 고 주임이 웃었다. 소리 없이. 코로.
“팀장님, 그거 육 년 전에 제가 저한테 한 말이에요. 제일 덜 나쁜 거. CCTV 덮으면서.”
윤 팀장이 고 주임을 봤다. 둘이 한참 서로를 봤다. 같은 말을 한 사람끼리.
그때 복도 끝에서 황 여사님이 밀대를 바닥에 두 번 쳤다. 탁탁. 신호였다. 누가 온다는.
발소리가 났다. 구두. 무겁고 느렸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불이 켜졌다. 형광등 네 줄이 한꺼번에.
동장이었다. 점퍼 차림. 퇴근했다가 다시 온 얼굴. 손에 휴대폰.
“윤 팀장. 열한 시가 넘었는데 내일 거 안 올라왔다고 알림이 와서.”
알림. 동장은 매일 밤 예약이 올라왔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일 년 반 동안.
동장은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윤 팀장, 나, 고 주임, 문간의 황 여사님. 웃지 않았다. 눈이 그대로 있었다.
“이게 무슨 모임이에요.”
“야근이요.”
고 주임이 대답했다. 동장은 고 주임을 보지 않았다. 윤 팀장 모니터로 걸어갔다. 비어 있는 입력 칸을 봤다. 윤 팀장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았다. 그리고 자기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뭔가를 복사했다. 입력 칸에 붙여 넣었다.
[3번 창구 안내] 시월 십사일, 전산 점검으로 전입신고 업무를 중단합니다. 전입신고는 십오일 이후 가능합니다.
예약. 게시 일시, 시월 십사일 오전 아홉 시. 저장.
동장은 마우스를 놓고 나를 봤다.
“미소 씨, 이거 전산 점검이에요. 원래 잡혀 있던 거. 구청 전산망 업그레이드. 그날 하루는 전입신고 못 해요. 우리 센터만이 아니라 새솔시 전체가.”
“새솔시 전체 공문 번호 알려 주세요.”
동장은 대답하지 않고 사무실 불을 껐다. 형광등 네 줄이 한꺼번에 나갔다. 윤 팀장 모니터만 파랬다.
“다들 퇴근하세요. 초과근무 신청은 안 받습니다.”
그가 나갔다. 복도에서 황 여사님과 마주쳤는지 짧게 말소리가 났다. 여사님, 청소 다 하셨으면 가세요. 황 여사님 목소리. 아직 덜 했어요. 팔 년째 덜 했어요.
어두운 사무실에서 윤 팀장이 파란 모니터를 봤다. 동장이 붙여 넣은 문구. 시월 십사일. 공람공고 전날.
“미소 씨. 전산 점검 공문 없어요. 내가 전산 연락 담당이라 알아요. 새솔시 전체 점검은 다음 달 셋째 주예요. 십사일이 아니라.”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메신저를 열었다. 스크롤을 올렸다. 멈췄다. 화면을 나에게 돌렸다.
발신 변대식 동장. 이천이십오 년 이월 이일 밤 열한 시 사 분. 윤 팀장, 3번 안내 내가 오늘 하나 올려놨어. 앞으로 매일 챙겨. 성원 건은 공람까지만 버티면 돼. 조합장 부탁이야.
“지우라는 말은 없었어요. 동장님은 그런 말 안 해요. 그래서 나도 안 지웠어요. 일 년 반 동안 한 번도 안 열어 봤고요.”
그는 휴대폰을 내 손에 올려놓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 우리 사이에.
“십사일에 나는 결재를 해야 해요. 전산 점검 핑계로 전입 업무 중단. 팀장 결재란에 내 이름 들어가요. 미소 씨. 그날 미소 씨는 뭐 할 거예요.”
나는 편람을 떠올렸다. 제일장 제칠절. 전산 장애 시 민원 처리.
“수기로 받을 거예요. 서식 제일호, 종이로. 전산 장애 시 수기 접수 후 복구되면 입력. 접수일은 수기 접수일.”
윤 팀장이 나를 봤다. 파란 불빛 속에서.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신규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소 주무관. 그 수기 접수, 팀장 결재가 필요해요. 편람 제일장 제칠절 제이항.”
“알아요.”
“알면서 왜 해요.”
“팀장님이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제일 덜 나쁜 거 말고, 제일 나은 거.”
윤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껐다. 파란 불이 나갔다. 사무실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그가 말했다.
“동장님 메시지, 캡처해 가요. 지금. 불 꺼져 있을 때.”
우리는 휴대폰 손전등 빛으로 캡처를 했다. 고 주임이 찍고 내가 한 번 더 찍었다. 윤 팀장은 그동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자기 메시지가 두 번 찍히는 걸 안 보려고.
주차장까지 셋이 같이 걸었다. 황 여사님이 쪽문을 잠갔다. 윤 팀장은 자기 차 앞에서 멈췄다. 열쇠를 꺼내지 않았다.
“미소 주무관. 십사일 아침에 내 결재란, 비워 둘게요. 동장님 문서엔 서명 안 해요. 미소 씨 수기 접수에 할지는, 그날 아침에 정할게요. 지금 약속하면 또 제일 덜 나쁜 걸 약속할 것 같아서.”
그가 차에 탔다. 시동이 걸렸다. 차는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천천히. 누가 쫓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고 주임이 남은 달걀 두 개 중 하나를 내게 줬다.
“미소 씨. 감사실 서류,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내요. 그 메시지 캡처 붙여서. 실명으로.”
“주임님 이름으로요.”
“이미 썼어요. 세 글자.”
다음 날 아침 3번 화면에는 처음 보는 문구가 떠 있었다. 고 주임이 나중에 로그를 보고 알려 줬다. 스물세 시 오십일 분, yoon_ks.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나간 차가 한 바퀴를 더 돌아 다시 들어왔던 모양이다. 동장은 아침 아홉 시에 그걸 보고도 지우지 못했다. 이미 떠 있었으니까.
[3번 창구 안내] 오늘은 안내 사항이 없습니다.
황 여사님이 화면 앞에서 밀대를 멈추고 읽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나를 봤다.
“이런 날도 오네.”
나는 노트에 적었다. 시월 팔일. 변경 없음이 아니라, 없음. 괄호 안에 yoon_ks. 그리고 그 옆에 처음으로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