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9자) · byun_ds
첫 번째 전임자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새솔구청 본관 사 층 민원여권과. 천장이 높고 창구가 넓었다. 도담동 센터의 세 배. 창구 여덟 개 가운데 여섯 번째. 명패에 한은지. 스물여덟. 작년 이월 도담동 3번 창구에 신규로 발령받았다가 석 달 만에 구청으로 온 사람. 첫 번째 전임자.
토요일 근무 날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아침 여덟 시, 버스 정류장에서 문달수 씨를 만났다. 양복이 커 보였다. 어깨가 반 뼘씩 남았다.
“결혼할 때 맞춘 거요. 사십삼 년 됐소. 집사람이 좀 먹었다고 해서 한 번 줄였는데, 그 뒤로 내가 줄었소.”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웃었다. 넥타이는 집사람이 매 주던 거라 혼자 매니 매듭이 옆으로 갔다고 했다. 나는 버스에서 그 넥타이를 다시 매 드렸다. 편람에는 없지만 유튜브에는 있는 방법으로. 반듯해졌다. 문달수 씨가 버스 창에 비친 자기 넥타이를 한참 봤다. 구청 민원실은 토요일 오전에 연다. 나는 번호표를 뽑았다. 이백십삼 번. 옆에 문달수 씨가 앉아 있었다. 회색 점퍼 대신 양복을 입고 왔다. 넥타이는 삐뚤었다. 무릎 위에 서른두 장 가운데 첫 장을 올려놓고.
“떨리오.”
그의 무릎이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첫 장을 쥔 손도.
“왜요.”
“소리 지른 사람 앞에 다시 서는 거요. 일 년 반 만에.”
이백십삼 번. 딩동 소리. 여섯 번째 창구. 한은지 씨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고, 옆의 문달수 씨를 봤다.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문달수 씨를 알아봤다. 일 년 반이 지났는데.
“어르신.”
문달수 씨가 창구 앞에 섰다. 앉지 않았다. 도담동에서는 늘 앉던 사람이. 첫 장을 창구 유리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작년 이월 첫 화요일이오. 원본 가져오라 해서 두 달 뒤에 원본 들고 갔더니 사본만 받는다고 하셨지. 내가 유리를 쳤소. 소리를 질렀소. 아가씨가 울었소.”
한은지 씨가 첫 장을 읽었다. 괄호 안 한 줄. 담당 아가씨가 울었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
“그날 사과를 못 했소. 다음에 가니까 아가씨가 없었소. 새 아가씨가 있었지. 그 뒤로 서른한 번 갔소. 갈 때마다 사과할 사람이 없었소.”
문달수 씨가 허리를 숙였다. 오래.
“미안하오. 아가씨 잘못이 아니었소.”
한은지 씨가 입을 막았다. 창구 위 명패가 조금 흔들렸다. 창구 뒤에서 옆 창구 직원이 이쪽을 봤다. 한은지 씨는 손을 내리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어르신, 저도 사과드려야 돼요. 저 그날 팀장님한테 갔어요. 이 화면 왜 바뀌냐고. 팀장님이 동장님 지시라고 했어요. 성원연립 건은 무조건 반려. 그 말 듣고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어르신한테도. 석 달 뒤에 전보 났을 때 좋다고 왔어요. 그게 제일 부끄러워요.”
나는 창구 앞에 섰다.
“은지 씨. 그 지시, 말로 하셨어요?”
한은지 씨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제대로.
“도담동 3번 창구 지금 담당이세요?”
“네. 미소예요. 다음 달 십육일까지요.”
“십육일.”
한은지 씨가 그 날짜를 따라 말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한참 스크롤을 올렸다. 일 년 반 치. 멈췄다. 화면을 창구 유리에 댔다.
메신저. 발신 윤기섭 팀장. 작년 이월 삼일 오후 여섯 시 십이 분.
은지 씨, 성원연립 전입 건은 동장님 지시로 전부 반려입니다. 사유는 화면 안내대로 적으세요. 민원인이 물으면 규정이라고만 하세요. 이 메시지는 읽고 지우세요.
한은지 씨는 지우지 않았다.
“왜 안 지우셨어요.”
“그 석 달 동안 매일 밤 탕비실에서 울었어요.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사탕을 줬어요. 앞치마 주머니에서. 매일 하나씩. 석 달이면 구십 개쯤이에요. 저 이 뒤로 사탕 못 먹어요. 먹으면 그 탕비실 생각나서.”
황 여사님. 나는 그 사탕 맛을 안다. 딸기 맛, 가끔 박하.
“왜 안 지우셨냐면요, 지우라는 말이 무서워서요. 지우라고 하는 건 남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남겼어요. 근데 남겨 놓고 일 년 반 동안 아무한테도 안 보여 줬어요. 그러니까 지운 거랑 똑같았어요.”
“보여 주실 수 있어요? 캡처로.”
한은지 씨가 망설였다. 옆 창구를 봤다. 뒤쪽 팀장 자리를 봤다.
“제 이름 나가요?”
“처음에는 안 나가게 할게요. 필요할 때 여쭤볼게요.”
그녀가 캡처를 보냈다. 내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한 장 더 왔다. 이름 여섯 개와 전화번호. 3번 창구 전임자들.
“저 다음부터 미소 씨 전까지. 다 구청이나 시청에 있어요. 제가 오늘 저녁에 단톡방 만들게요. 방 이름은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미소 씨 표 제목이요. 카페에서 봤어요.” 일 년 반 동안 지워지지 않은 한 줄이 도착했다.
그때 민원실 입구에서 목소리가 났다. 익숙한 목소리. 크고 둥근.
“어이, 은지 씨 아닌가.”
동장이었다. 토요일 구청 동장 회의가 있었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민원실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동장은 여섯 번째 창구 앞에 선 나를 보고, 문달수 씨를 보고, 한은지 씨를 봤다. 눈이 안 없어졌다.
“미소 씨가 여기 웬일이에요. 토요일에.”
“개인 민원이요.”
“개인 민원을 전임자 창구에서요.”
동장은 한은지 씨 창구 앞으로 왔다. 유리에 손을 짚지 않았다. 주 사무장과 달랐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은지 씨, 잘 지내죠. 구청 와서 얼굴 폈네. 내년에 칠급 심사죠. 은지 씨는 잘 될 거예요. 조용히 잘하니까.”
한은지 씨가 동장을 봤다. 휴대폰이 아직 손에 있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동장님. 조용히 잘한 건 아니에요. 조용하기만 했어요.”
동장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에요.”
“오늘은 그냥 민원 처리 중이에요. 이백십삼 번이요. 순서 기다려 주세요, 동장님. 번호표 뽑으시고.”
옆 창구 직원이 웃음을 참았다. 뒤쪽 팀장 자리의 구청 팀장이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못 들은 척하는 데 익숙한 고개였다. 동장은 한참 서 있다가 번호표 기계를 봤다. 뽑지 않았다. 나를 봤다.
“미소 씨, 월요일에 봅시다.”
그가 갔다. 구두 소리가 민원실 끝까지 울렸다. 한은지 씨가 창구 아래로 손을 내려 떨었다. 한참. 그리고 문달수 씨에게 말했다.
“어르신, 앉으세요. 여기도 의자 있어요.”
문달수 씨가 앉았다. 구청 민원실 의자에. 처음으로.
동장이 가고 나서 한은지 씨가 창구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 오전, 민원실이 한가해서. 문달수 씨 옆 의자에 앉았다.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은지 씨가 말했다. 「어르신, 그때 유리 치신 거요. 저 사실 조금 시원했어요. 제가 치고 싶었던 거라서.」 문달수 씨가 웃었다. 넥타이가 흔들렸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달수 씨가 첫 장을 다시 꺼냈다. 볼펜으로 괄호 안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흔들리는 버스라 글씨가 삐뚤었다.
일 년 반 뒤. 사과했다. 아가씨도 사과했다. 둘 다 잘못이 아니었다.
“이제 이 장은 다 됐소.”
그는 첫 장을 봉투에 넣었다. 나머지 서른한 장 앞에.
일요일 저녁, 단톡방이 생겼다.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여덟 명. 한은지 씨가 초대한 전임자 여섯과 나, 그리고 은지 씨. 처음 한 시간은 아무도 말을 안 했다. 그러다 누가 사진 한 장을 올렸다. 3번 창구 안내 화면. 날짜가 찍힌. 그리고 또 한 장. 또 한 장.
— 저 퇴근길에 매일 찍었어요. 억울해서. 넉 달 치요.
— 저는 녹음했어요. 팀장님이 성원연립은 무조건 반려라고 한 거. 회식 때요.
—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대신 편람 외웠어요. 미소 씨 소문 듣고 부끄러워서 지금이라도.
— 몇 개 외우셨어요?
— 서른 개요.
— 저는 두 개요. 제일 호하고 제이 호.
누가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다음부터 사진과 녹음과 메모가 쏟아졌다. 밤 열한 시까지. 일곱 명이 육 년 동안 각자 서랍에 넣어 둔 것들이었다. 따로따로 넣어 뒀으니까 따로따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방에 모이니까 무거웠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센터 출입문 앞에 고 주임이 서 있었다. 커피 두 잔. 하나를 내게 줬다. 믹스 두 봉. 달았다.
“미소 씨, 금요일 밤에 열어 봤어. 로그.”
“어땠어요.”
고 주임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내밀었다. 사진 한 장. 사이니지 관리 프로그램 예약 이력 화면. 날짜, 시각, 계정, 게시 문구.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매일 밤 스물세 시 전후. 계정 칸이 전부 같았다. yoon_ks.
“일 년 반 치 전부. 오백이십육 줄. 한 줄도 안 빠졌어.”
금요일 밤 열 시 반, 고 주임은 전산실 단말기 앞에 앉았다고 했다. 황 여사님이 전산실 문 앞에서 밀대를 들고 섰다. 망보기. 열 시 오십 분에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황 여사님이 밀대를 탁탁 두 번 바닥에 쳤다. 약속한 신호였다. 고 주임은 로그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던 손을 멈추고 단말기 전원을 껐다.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쉰 살 넘은 몸으로. 발소리가 전산실 문 앞을 지나갔다. 윤 팀장이었다. 황 여사님이 말했다고 한다. 「팀장님, 오늘도 늦으시네.」 윤 팀장이 대답했다. 「여사님도요.」 그리고 사무실로 갔다. 열한 시에 파란 불이 켜졌다. 고 주임은 책상 밑에서 삼십 분을 있다가 나왔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황 여사님이 끌어 줬다고.
“나 그날 책상 밑에서 생각했어. 육 년 동안 책상 앞에 있었는데 책상 밑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고.”
고 주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눈 밑이 거뭇했다. 금요일 밤 이후로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근데 미소 씨. 하나 더 있어. 작년 이월 이일 밤, 딱 한 줄만 계정이 달라. 제일 첫 줄.”
“누구요.”
“byun_ds.”
변대식. 동장. 한은지 씨가 메신저를 받기 전날 밤이었다. 처음 한 줄은 동장이 직접 예약했다. 그다음 날부터 윤 팀장이 이어받았다. 오백이십오 번.
나는 커피를 들고 3번 창구에 앉았다. 여덟 시 오십구 분. 휴대폰 동영상을 켜지 않았다. 이제 찍을 필요가 없었다. 누가 트는지 알았으니까. 아홉 시 정각, 화면이 깜빡였다. 원본만, 조합 합의서 제출자 예외. 나는 노트를 폈다. 마흔 번째 줄에 그 문구를 적고, 옆에 괄호를 쳤다. 예약, yoon_ks, 어젯밤 스물세 시 이 분. 괄호 안에 이름을 적은 건 처음이었다. 이 년 동안 이 줄들에는 괄호가 없었다. 괄호가 생기니까 줄이 사람 모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