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8자) · 벽에 붙인 표
변경 이력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나는 서른두 장과 내 노트를 합쳐서 한 장의 표로 만들었다. 제목을 뭐라고 붙일지 이틀 고민했다. 3번 창구 변경 이력은 이제 안 맞았다. 그건 내 것만 있을 때 이름이다.
출력은 에이 삼 두 장으로 나눠서 했다. 센터 프린터는 에이 삼을 뽑을 때 꼭 한 번 종이를 씹는다. 두 번 씹혔다. 한 장에 다 넣으려니 글씨가 팔 포인트가 됐다. 팔 포인트를 벽에 붙이면 아무도 안 읽는다. 그건 붙이는 게 아니라 숨기는 거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적었다. 3번 창구 접수 안내 변경 이력, 이천이십오 년 이월부터 현재까지. 기록, 민원인 한 명, 담당자 한 명.
그 위에 큰 글씨로 세 줄.
이 창구의 안내는 자주 바뀝니다. 아래는 지난 이 년간의 변경 이력입니다. 오늘 안내가 어제와 다르면,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고 주임이 출력물을 들고 봤다. 커피를 든 채로.
“기록, 민원인 한 명. 이거 그 어르신이지.”
“네.”
“민원인 이름은 안 넣었네.”
“개인정보요. 제십오조.”
“미소 씨는 법 조항으로 배려도 하는구나.”
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3번 창구 옆 벽. 안내 화면 바로 아래. 표 두 장을 나란히 붙였다. 테이프 여덟 조각. 황 여사님이 청소하다 와서 보고 말했다. 「삐뚤어.」 한 장을 떼서 다시 붙여 줬다. 수평이 맞았다.
아홉 시. 화면이 깜빡였다. 오늘은 사본 불가, 원본만, 조합 합의서 사본 제출자는 예외. 그 아래 표가 있었다. 어제까지 이 년 동안 무엇이 몇 번 뒤집혔는지. 파랑, 빨강, 노랑. 화면과 표가 한 벽에 나란히 있으니까 화면이 조금 우스워 보였다.
아홉 시 십 분, 첫 민원인이 표 앞에서 멈췄다. 삼십 대 여자. 서류를 내면서 벽을 봤다.
“이거 뭐예요?”
“변경 이력이요.”
“이게 다 바뀐 거예요?”
“네.”
여자가 표를 좀 더 봤다.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 작년에 여기서 두 번 반려당했는데요. 여기 있네요. 작년 팔월. 인감증명서 필요하다고 하셨다가, 다음 주에 갔더니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여자가 웃었다.
“그때 제가 미쳤나 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목이 좀 막혔다. 창구 아래에서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안 미치셨어요.”
“그러네요.”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 표를 찍었다. 두 장 다. 찰칵 소리가 두 번 났다. 찍고 나서 한 장 더. 화면이랑 같이 나오게.
열한 시까지 열네 명이 표 앞에서 멈췄다. 일곱 명이 사진을 찍었다. 한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꺼내 자기 날짜를 찾았다. 못 찾았다. 할아버지는 삼 년 전에 반려당했다고 했다. 표는 이 년 치였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내 건 어디 있어.」 나는 대답했다. 「제 앞에 계셨던 분들 기록이 없어서요.」 할아버지가 볼펜을 달라고 했다. 표 맨 아래 여백에 자기가 쓸 줄을 적었다. 이천이십삼 년 오월, 세대주 확인서 필요, 다음 주 불요. 삐뚤빼뚤한 글씨. 적고 나서 흐뭇한 얼굴로 갔다.
열한 시 반,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빨랐다. 번호표 기계 옆 화분의 잎이 그 발소리에 흔들렸다. 동장이었다. 비서가 뒤따라왔다. 동장은 3번 창구 앞에 서서 표를 봤다. 위에서 아래까지. 할아버지가 적은 여백까지. 웃지 않았다. 눈이 그대로 있었다.
“이거 누가 붙였나.”
나는 일어섰다.
“제가 붙였습니다.”
“허가받았어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십사조, 민원실에 민원 처리 기준표를 게시해야 합니다. 이건 처리 기준이 이 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 주는 표입니다. 게시 의무의 연장입니다.”
동장이 나를 봤다. 삼 초. 그리고 손을 뻗어 표 한 장을 뗐다. 테이프 넉 조각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종이가 찢어지지는 않았다. 황 여사님이 붙인 테이프는 잘 떨어지게 붙어 있었다.
“이건 민원 처리 기준표가 아니라 개인 기록이에요. 공무원 개인 기록을 민원실 벽에 붙이는 건 안 돼요.”
그는 두 번째 장도 뗐다. 두 장을 반으로 접었다. 비서한테 줬다.
“미소 씨, 오후에 동장실로.”
그가 계단을 올라갔다. 대기 의자에서 누가 말했다. 「아, 사진 찍어 둘걸.」 아까 표를 찍은 여자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저 찍었어요. 올릴게요.」 무엇을 어디에 올리겠다는 건지 나는 묻지 않았다.
점심시간, 나는 표를 다시 뽑았다. 에이 삼 두 장. 황 여사님이 청소 창고에서 코팅기를 들고 나왔다. 먼지를 입으로 후 불면서. 명절 때 경로당 안내문 만들 때 쓰는 거라고 했다. 코팅했다. 두 장 다. 반짝반짝했다. 고 주임이 1번 창구에서 대형 스테이플러를 가져왔다. 증명서 묶는 거. 코팅 종이 네 귀퉁이를 게시판용 코르크 판에 박았다. 탕, 탕, 탕, 탕. 도장 소리보다 컸다.
“미소 씨, 이거 떼려면 스테이플러 리무버 있어야 돼. 우리 센터에 하나 있어. 내 서랍에.”
고 주임은 서랍을 잠갔다. 열쇠를 커피 컵에 넣었다. 믹스커피 안으로. 퐁 소리가 났다. 커피가 조금 튀었다.
“이제 없어. 이 커피 다 마실 때까지는.”
한 시 반, 윤 팀장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가 코팅된 표 앞에서 멈췄다. 오래 서 있었다. 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속도였다. 파랑, 빨강, 노랑. 마지막 줄 근처에서 멈췄다. 지난주 목요일. 반려. 처리자, 윤기섭. 표에 그 줄만 처리자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넣었다.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윤 팀장이 내 창구 쪽을 봤다. 나는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미소 씨. 이 줄은 왜 이름을 넣었어요. 다른 줄은 안 넣고.”
“다른 줄은 처리자가 담당 창구 이름으로 떴잖아요. 전임자들 이름. 그분들이 누른 게 아니니까 뺐어요. 그 줄은 팀장님이 직접 누르셨으니까 넣었어요.”
윤 팀장은 코팅된 종이를 손끝으로 만졌다. 매끄러워서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코팅은 누가 했어요.”
“황 여사님이요.”
그는 한참 있다가 작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웃는 게 아니라 뭔가를 포기하는 소리 같았다.
“이거 떼려면 스테이플러 리무버가 있어야겠네.”
“고 주임님 커피 안에 있대요.”
윤 팀장은 대답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갔다. 서류철을 책상 위에 놓았다. 안고 다니지 않고.
두 시 사십 분, 문달수 씨가 왔다. 전입신고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했다. 표를 보러 왔다고. 누가 연립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고. 그는 코팅된 표 앞에 섰다. 돋보기를 꺼냈다. 노랑 줄을 한 줄씩 따라갔다. 서른두 줄. 자기 줄. 그리고 맨 위 세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오늘 안내가 어제와 다르면,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닙니다.”
그는 돋보기를 내렸다. 한참 표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 대기 의자에 앉았다. 번호표도 안 뽑고. 앉아서 표를 봤다. 멀리서.
“아가씨. 이거 첫 장 적을 때 그 아가씨한테 보여 주고 싶소. 울던 아가씨. 어제 오신 분 잘못이 아니라고.”
“은지 씨요. 구청에 계세요.”
“구청이오.”
“저도 곧 구청 가요. 문서고.”
문달수 씨가 나를 봤다. 돋보기를 쥔 손이 멈췄다.
“또 좋은 데로 보내는구먼.”
오후 세 시, 동장실. 동장은 이번에는 차를 권하지 않았다. 난초 화분의 잎 하나가 누렇게 떠 있었다.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역광이라 얼굴이 잘 안 보였다.
“미소 씨, 두 번 붙였다며. 코팅해서.”
“네.”
“민원인이 벌써 인터넷에 올렸어요. 지역 카페에. 도담동 주민센터 3번 창구 미스터리. 댓글이 이백 개예요. 구청에서 전화 왔어요. 이게 뭐냐고.”
동장은 책상 위 액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조합 창립총회 사진.
나는 그 카페 글을 점심에 봤다. 제목은 도담동 주민센터 3번 창구 미스터리. 댓글 이백 개 가운데 절반이 자기도 반려당했다는 이야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이런 거였다. 3번 창구 오늘의 운세 해 주세요. 내일은 인감이 행운의 서류입니다. 저 창구 담당자 편람 외운 사람이래요, 제일 호. 누가 제일 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미소 씨가 뭘 하는지 알아요. 성원연립 세입자들한테 가서 모임도 했다며. 근무 시간 외에. 조합이 공식 민원 넣었어요. 공무원 정치적 중립 위반, 특정 이해관계 개입. 나는 미소 씨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보호요?”
“신규는 원래 첫 일 년이 제일 중요해요. 여기서 찍히면 삼십 년 가요.”
“동장님. 3번 창구 담당은 육 년 동안 일곱 명이 바뀌었어요. 아무도 일 년을 못 넘겼어요. 다 이상하다고 한 번씩 말했고요. 그 일곱 명도 보호하셨어요?”
동장이 책상 위 액자를 뒤집었다. 사진이 바닥을 향했다. 뒤집힌 액자 뒷면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한 번도 뒤집어 본 적 없는 액자였다.
“미소 씨. 다음 주에 인사 발령 있어요. 시월 정기. 미소 씨 이름 올라가 있어요. 구청 문서고. 좋은 데예요. 조용하고.”
“발령일이 언제예요.”
동장이 대답하기 전에 나는 알았다. 그의 입꼬리가 먼저 대답했다.
“시월 십육일.”
공람공고일 다음 날이었다.
동장실을 나와서 1번 창구로 갔다. 고 주임은 도장을 찍고 있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고 주임이 말했다.
“시월 십육일이지.”
“어떻게 아세요.”
“일곱 명 다 그 비슷한 날짜였어. 뭔가 끝나는 날 다음 날. 그 사람들은 뭐가 끝나는지 몰랐지.”
고 주임은 도장을 인주에 찍고, 서류에 찍지 않았다. 도장을 든 채로 한참 있었다.
“미소 씨. 나 그 로그 열어 볼게. 오늘 밤에.”
“주임님, 육급 심사요.”
“알아. 근데 미소 씨 가면 3번 창구에 여덟 번째가 와. 그 사람도 편람 외워 올 거야. 아니면 안 외워 올 거고. 어느 쪽이든 또 울 거야. 나는 육 년 동안 우는 사람 일곱 명 봤어. 여덟 번째는 싫어.”
황 여사님이 밀대를 밀고 지나가다 멈췄다. 코팅된 표를 봤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사탕을 두 개 꺼내 고 주임과 내 책상에 하나씩 놓았다.
“고 주임, 그 로그라는 거 볼 때 나도 불러. 나 밤에 청소하니까 망봐 줄게. 팔 년 동안 밤에 이 건물에 누가 오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야.”
고 주임이 황 여사님을 봤다.
“여사님은 밤에 누가 와요?”
“팀장님. 매일 밤 열한 시. 불 다 꺼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어. 팔 년 동안 그런 사람 처음 봐. 처음엔 일 열심히 하는 줄 알았지. 근데 모니터가 파래. 매일 밤 파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