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03자) · 조합 사무장
유리 너머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목요일 오후 두 시 사십 분. 창밖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문달수 씨가 왔다. 우산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남자 하나가 따라 들어왔다. 오십 대 초반. 검은 점퍼, 금색 배지. 배지에 성원연립 재건축정비사업조합. 머리를 짧게 깎았고, 손목에 굵은 시계. 목소리가 크다는 걸 들어가자마자 알았다. 대기 번호 기계에 대고 말했으니까.
“번호표 뽑아야 돼요? 나 조합에서 왔는데.”
번호표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번호표를 뽑지 않고 3번 창구로 곧장 왔다. 문달수 씨 옆에 섰다. 문달수 씨가 의자에 앉자 그 뒤에 섰다.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
“조합 사무장 주명수입니다. 이 어르신 전입 건 때문에 왔어요.”
나는 안내 화면을 봤다. 오늘은 사본 가능, 조합 발급 거주확인서 필수.
“어르신, 거주확인서 받아 오셨어요?”
문달수 씨가 고개를 저었다. 주 사무장이 대신 대답했다.
“못 떼 드려요. 조합은 이 어르신이 에이 동 백일 호에 거주한다고 확인해 드릴 수 없어요. 그 집 원래 소유자가 조합에 신탁했거든요. 조합 허락 없이 들어가 사는 거예요. 불법 점유예요.”
“집주인이 들어가 살라고 했소. 누수 나서.”
“그 집주인은 이제 권리가 없어요, 어르신. 조합이 권리자예요.”
주 사무장은 그 말을 문달수 씨가 아니라 나를 보고 했다. 창구 유리 너머로 몸을 숙였다. 향수 냄새가 났다. 담배를 향수로 덮은 냄새.
“그러니까 담당자님이 반려해 주시면 돼요. 안내문대로. 거주확인서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편람을 떠올렸다. 제이장 제삼절, 전입신고. 제오조 제이항. 신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의심될 때는 담당 공무원이 현장 사실 조사를 할 수 있다. 조사는 공무원이 한다. 조합이 하지 않는다. 거주확인서라는 서식은 편람 백열두 개 가운데 없다.
“사무장님, 거주 여부는 저희가 확인합니다. 조합 확인서는 법정 서류가 아닙니다.”
“아니, 안내문에 적혀 있잖아요.”
“안내문이 편람과 다릅니다. 저는 편람대로 하겠습니다. 어르신, 제가 내일 오전에 에이 동 백일 호로 사실 조사 나가겠습니다. 계시면 됩니다.”
주 사무장이 창구 유리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유리가 떨렸다. 유리에 손바닥 자국이 기름지게 남았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던 민원인 몇이 이쪽을 봤다.
“담당자님, 신규라며. 동장님이랑 제가 어떤 사이인지 알아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형님 동생 해요.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담당자님 내일 사실 조사 못 나가요.”
1번 창구에서 고 주임이 일어섰다. 도장을 든 채로. 고 주임이 창구 밖으로 나오는 건 처음 봤다. 그는 3번 창구 앞으로 걸어와서 주 사무장 옆에 섰다. 도장을 손바닥에 톡톡 치면서.
“사무장님, 번호표 안 뽑으셨죠. 여기는 번호표 순서예요. 지금 삼십칠 번 차례인데, 사무장님은 번호가 없으시네요. 번호가 없으면 민원인이 아니에요. 민원인이 아니면 창구 유리 치시면 안 돼요. 그건 그냥 유리 치는 사람이에요.”
주 사무장이 고 주임을 봤다. 위아래로.
“당신은 뭐야.”
“1번 창구요. 증명서. 도장 찍는 사람. 육 년째.”
고 주임은 도장을 한 번 허공에 찍는 시늉을 했다. 쾅 소리까지 입으로 냈다. 대기 의자에서 누가 웃음을 참았다. 참다가 못 참았다.
그때 황 여사님이 밀대를 밀고 왔다. 3번 창구 앞 바닥. 주 사무장 구두 바로 앞. 밀대가 구두 코에 닿았다. 물기가 번졌다.
“아이고, 죄송해요. 여기가 제 구역이라.”
주 사무장이 한 발 물러섰다. 구두 코에 물 자국이 났다. 반짝이던 구두였다. 그는 황 여사님을 노려봤다. 황 여사님은 밀대를 계속 밀었다. 주 사무장이 물러선 자리까지. 또 한 발. 또 한 발. 주 사무장이 번호표 기계 앞까지 밀려났다.
“여기도 닦아야 돼요?”
주 사무장이 물었다. 황 여사님이 대답했다.
“다 닦아야 돼요. 팔 년째.”
그러고는 창구 유리의 손바닥 자국까지 걸레로 닦았다. 두 번. 자국이 없어질 때까지.
그때 사무실 안쪽에서 윤 팀장이 나왔다. 서류철을 안고. 상황을 한 번 둘러봤다. 주 사무장, 고 주임, 황 여사님, 문달수 씨, 그리고 나. 그는 내 창구로 와서 모니터를 봤다. 내가 방금 입력한 전입신고서. 접수 대기. 사실 조사 예정 체크.
“미소 씨, 안내문 봤죠.”
“편람 제이장 제삼절 제오조 제이항, 사실 조사는 공무원이 합니다.”
“안내문이 우선이에요.”
“안내문의 근거가 뭔가요, 팀장님.”
윤 팀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키보드로 손을 뻗었다. 지난번처럼. 나는 키보드를 끌어당겨 내 쪽에 붙였다. 두 손을 그 위에 올렸다.
“반려하시려면 팀장님 계정으로 하세요. 처리자 이름이 제 이름으로 남는 반려는 이제 안 하겠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대기 의자까지. 번호표 기계만 삐 소리를 냈다. 삼십팔 번. 윤 팀장이 나를 봤다. 삼 초. 오 초.
그는 자기 자리로 걸어가 자기 컴퓨터에 앉았다. 로그인했다. 삼십 초쯤 뒤, 내 모니터의 접수 대기 화면이 바뀌었다. 반려. 사유, 조합 거주확인서 미제출. 처리자 칸. 윤기섭.
처음이었다. 일 년 반 동안 삼백열두 번 반려된 성원연립 서류 가운데, 처리자 칸에 윤기섭이라는 이름이 찍힌 건.
주 사무장이 웃었다. 번호표 기계 앞에서. 젖은 구두 코로 바닥을 톡톡 치면서.
“거 봐요. 체계가 있다니까.”
그는 문달수 씨를 손짓으로 불렀다. 문달수 씨가 일어섰다.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었다. 주 사무장이 센터 문 앞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문달수 씨 가슴에 밀어 넣었다. 누런 봉투. 겉봉에 인쇄된 글씨가 보였다. 내용증명. 부동산 명도 청구.
“어르신, 이번 달 안에 비워 주세요. 안 그러면 소송 들어가요. 소송비는 어르신 부담이고요. 전입신고 같은 거 괜히 하시지 말고.”
문달수 씨는 봉투를 받아 들고 한참 서 있었다. 누런 봉투가 회색 점퍼 위에서 유난히 누랬다. 그리고 창구 쪽을 돌아봤다. 나를.
“아가씨는 사실 조사 나온다고 했소. 그것도 적어 둘게.”
그가 나갔다. 주 사무장이 따라 나갔다. 자동문이 두 사람 뒤에서 느리게 닫혔다.
고 주임이 1번 창구로 돌아가며 내 창구 앞에서 멈췄다. 도장을 주머니에 넣으며 낮게 말했다.
“미소 씨. 방금 팀장님 계정으로 반려 찍힌 거, 그거 캡처해 둬. 그게 처음이야. 팀장님이 자기 이름으로 찍은 거.”
“알아요. 찍었어요.”
“그리고 나 방금 번호표 얘기한 거, 그것도 적어 둬. 나 육 년 만에 창구 밖으로 나온 거.”
그는 자기 창구로 돌아가 도장을 찍었다.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오후 다섯 시, 탕비실. 황 여사님이 고 주임 커피를 대신 타 주고 있었다. 믹스 두 봉. 고 주임이 늘 그렇게 먹는 걸 황 여사님은 안다.
“고 주임, 아까 멋있더라. 번호표.”
“여사님이 더 멋있었어요. 밀대로 사람 밀어내는 거 처음 봤어요.”
“밀대는 원래 그러라고 있는 거야. 더러운 거 밀어내라고.”
고 주임이 커피를 받다가 웃었다. 사레들렸다. 오늘만 두 번째였다. 황 여사님이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근데 고 주임, 육 년 동안 왜 안 나왔어. 창구 밖으로.”
고 주임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커피를 저었다. 여섯 바퀴.
“번호표가 없어서요. 제가 나갈 차례가 아닌 줄 알았어요.”
그날 퇴근 전, 나는 사실 조사 출장 신청서를 올렸다. 서식 제팔십칠호. 내일 오전 열 시, 성원연립 에이 동 백일 호. 결재란 첫 칸, 팀장. 윤기섭.
퇴근하고 나는 성원연립 에이 동으로 갔다. 공무원증을 목에서 빼서 가방에 넣었다. 출장이 아니라 그냥 방문이었다. 백일 호 문을 두드리자 문달수 씨가 열었다. 러닝셔츠 차림. 나를 보고 놀라서 점퍼를 찾아 입었다.
“사실 조사요?”
“아니요. 결재가 아직이에요. 안 날 것 같아서 그냥 왔어요.”
집 안은 작았다. 방 하나, 부엌 하나. 창문에 누렇게 바랜 뽁뽁이가 붙어 있었다. 벽에 달력, 달력 옆에 액자 하나. 한복 입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액자 앞에 작은 컵에 물이 떠 있었다. 냉장고 문에 우편물이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전부 비 동 이백삼 호 주소. 전기 요금 고지서, 건강보험료, 구청 소식지. 이 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받는 우편은 전부 옛 주소로 오고 있었다. 집배원이 알아서 이 집으로 가져다준다고 했다.
“집배원 양반은 알아요. 내가 여기 산다는 거. 동네 사람도 다 알고. 모르는 건 서류뿐이오.”
나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대신 노트에 적었다. 방 하나, 부엌 하나, 달력 이천이십육 년, 벽 액자 한 점, 냉장고 우편물 여덟 통, 신발장 남자 신발 세 켤레, 주방 수저 한 벌. 사실 조사서 서식 제팔십팔호의 칸 순서대로. 결재 안 난 조사서였다. 효력은 없었다. 규정을 넘은 건 나였다. 근무 시간 밖, 결재 없이, 공무원이 민원인 집에 들어간 것. 편람에 이 경우를 막는 조항은 없었다. 권하는 조항도 없었다. 적어 두는 것만은 누가 막을 수 없었다.
문달수 씨가 부엌에서 보리차를 따라 왔다. 컵이 하나뿐이라 자기는 액자 앞 물컵을 들었다. 그 물을 마시려다 말고 도로 액자 앞에 놓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밥그릇을 하나 가져와 거기에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아가씨 이거 적어서 뭐 하오.”
“모르겠어요. 서른세 번째 줄이요.”
그가 웃었다.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다가 액자 쪽을 한 번 봤다. 누가 웃는 걸 들었을까 봐 확인하는 것처럼.
밤 열한 시, 휴대폰 알림이 떴다. 전자 결재. 반려. 사유 란에 한 줄. 사실 조사 불요.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덟 시 오십 분에 창구에 앉았다. 휴대폰 동영상을 켜고 화면을 향해 세웠다. 여덟 시 오십오 분, 윤 팀장이 출근했다. 평소보다 이십 분 빨랐다. 내 창구 앞을 지나가다 휴대폰을 봤다. 걸음이 한 박자 멈췄다가 다시 갔다.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지 않았다. 아홉 시가 될 때까지 서류철만 넘겼다. 한 장도 읽지 않는 속도로.
그리고 아홉 시, 3번 창구 화면이 깜빡였다. 조합 거주확인서 불요. 대신 명도 분쟁 중인 건물은 전입신고 보류.
명도 분쟁. 어제 오후 주 사무장이 센터 문 앞에서 문달수 씨 가슴에 밀어 넣은 그 봉투가, 오늘 아침 화면에 규칙이 되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