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07자) · 노랑 줄
반려 대장
규칙이 매일 바뀌는 민원실 · 오세림
반려 대장은 창구 뒤 서고에 있다. 서고라고 부르지만 창고다. 형광등 하나, 철제 선반 여섯 칸, 겨울에 쓰는 석유난로 하나. 전산에도 있지만, 반려 사유 원문은 종이 대장에 손으로 적는 게 우리 센터 관행이다. 누가 만든 관행인지는 모른다. 관행은 대개 그렇다.
화요일 저녁, 나는 서고에서 작년 이월부터 올해 구월까지 3번 창구 반려 대장을 꺼냈다. 파란 표지 바인더 여섯 권. 등에 네임펜 글씨. 한 권에 석 달. 먼지가 앉아 있었다. 누가 다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한 서류에는 먼지가 먼저 앉는다.
문달수라는 이름을 찾았다. 서른한 번 나왔다. 작년 이월 첫째 주 화요일부터. 처음 넉 달은 두 달에 한 번. 그다음부터는 매달. 올해 봄부터는 두 주에 한 번.
반려 사유를 다 옮겨 적었다. 원본 미지참. 사본 불가. 원본 지참 불요, 사본만 접수. 임대인 연락처 누락. 임대인 연락처 불필요, 확정일자 누락. 확정일자 불요, 세대주 확인서 누락. 세대주가 본인인 경우 확인서 불요, 임대인 동의서 누락. 임대인 동의서 불요, 주민등록초본 삼 개월 이내 발급분 필요.
반려 사유가 서로를 뒤집고 있었다. 한 번 반려하고, 다음번에는 그 반려 사유를 무효로 만드는 규칙이 생긴다. 그 규칙에 맞춰 오면 또 다른 게 필요해진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봤다. 문달수 씨만이 아니었다.
반려된 주소를 옮겨 적다 보니 같은 주소가 계속 나왔다. 도담동 성원연립. 에이 동, 비 동, 씨 동. 다른 이름, 같은 연립. 스물아홉 명. 다 합치면 서른 명. 서른 명이 지난 일 년 반 동안 삼백열두 번 반려됐다. 같은 기간 3번 창구 전체 반려는 삼백사십 번. 반려 열 번 가운데 아홉 번이 성원연립이었다.
그리고 서른 명 다 같은 모양이었다. 같은 연립 안에서 호수만 옮긴 사람들. 비 동에서 에이 동으로, 씨 동에서 비 동으로.
나는 표를 만들었다. 가로가 날짜, 세로가 요구 서류. 색은 두 개. 필요하다고 한 날은 파랑, 필요 없다고 한 날은 빨강. 첫날은 엑셀로 했다가 망했다. 가로가 화면을 넘어갔다. 둘째 날에 가로세로를 바꿨다. 셋째 날에 성원연립 서른 명만 따로 뽑아 색을 하나 더 칠했다. 노랑.
표를 만드는 사흘 동안 나는 형광펜 세 자루를 다 썼다. 파랑, 빨강, 노랑. 노랑이 제일 빨리 닳았다. 문구점 아저씨가 세 번째로 노랑을 사러 온 나를 보고 물었다. 「학생, 시험 기간이야?」 「공무원이에요.」 「공무원도 형광펜 써?」 「반려할 때요.」 아저씨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노랑 두 자루를 한 자루 값에 줬다.
표가 완성되니까 줄무늬가 나왔다. 파랑 빨강 파랑 빨강. 어떤 서류도 두 번 연속으로 같은 취급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노랑 줄은 전부 반려였다.
고 주임이 지나가다 모니터를 봤다. 커피를 든 채로. 십 초쯤.
“이거 뭐야.”
“3번 창구 반려 사유예요. 노랑이 성원연립이고요.”
고 주임이 커피를 마시다 사레들렸다. 기침을 하는 동안 커피가 모니터 쪽으로 튀었다. 나는 모니터를 닦았다. 표는 무사했다.
“미소 씨. 성원연립이면.”
“아세요?”
“재건축 하잖아. 조합 생겼어. 작년에. 동장님이 조합 창립 총회에 축사하러 가셨어.”
고 주임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커피 스틱을 컵 안에서 여섯 바퀴 돌렸다. 일곱 번째는 돌리지 않았다.
“미소 씨, 나 방금 아무 말도 안 했다.”
“하셨어요.”
“안 했다고 해 줘. 나 내년에 육급 심사야.”
청소하시는 황 여사님이 밀대를 밀고 지나가다 멈췄다.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내 책상에 놓았다.
“노랑이 예쁘네. 개나리 같아.”
“반려예요, 전부.”
“반려도 예쁘게 칠하면 예쁘지.”
황 여사님은 그 말을 하고 밀대를 밀고 갔다. 가다가 돌아봤다. 「근데 노랑 사람들은 안 예쁘겠다.」
다음 날 오전 열 시, 내선 전화가 울렸다. 동장실. 비서가 말했다. 미소 주무관님 동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십니다.
동장실은 이 층 끝이었다. 복도 끝이라 창이 두 개였다. 문이 열려 있었다. 동장 변대식. 쉰 후반. 배가 조금 나왔고, 웃을 때 눈이 없어지는 사람. 책상 위에 명패와 난초 화분, 그리고 액자 하나. 사진 속에 동장이 다른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었다. 뒤에 현수막. 성원연립 재건축정비사업조합 창립총회.
“미소 씨, 앉아요. 앉아. 차 한잔할래요?”
“괜찮습니다.”
“신규죠. 팔월 발령. 편람 다 외웠다며. 대단해. 우리 센터 보배야.”
동장은 웃었다. 눈이 없어졌다.
“근데 미소 씨. 어제 서고에서 반려 대장 여섯 권 꺼냈다며. 다른 사람 민원 기록을 담당 업무 외로 조회하는 거, 그거 개인정보 보호법이에요. 알죠?”
“3번 창구 담당자가 3번 창구 반려 기록을 보는 건 담당 업무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십오조 제일항 제삼호, 공공기관 소관 업무 수행.”
동장의 웃음이 조금 멈췄다. 눈이 다시 나왔다.
“아, 법 조항도 외웠구나.”
“서식도요. 백열두 개.”
동장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조금 컸다.
“미소 씨. 성원연립이 요즘 예민해요. 재건축이라. 세입자분들이 이것저것 서류 많이 들고 오시죠. 그분들 사정은 딱하지만 조합 사정도 있어요. 우리 센터는 중립이에요. 안내문대로만 하면 돼요. 안내문은 팀장이 관리하고, 팀장은 나한테 보고해요. 체계가 있어요.”
“안내문이 매일 바뀌는 것도 체계인가요?”
동장이 나를 봤다. 오래. 그리고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눈이 안 없어졌다.
“미소 씨, 경위서 한 장 써 줘요. 반려 대장 조회 경위. 형식적인 거예요. 기록은 남겨야 하니까.”
그는 서랍에서 경위서 양식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서식 번호가 없는 양식이었다. 편람 백열두 개 서식 가운데 이런 건 없었다.
“동장님, 이 양식 서식 번호가 없는데요.”
“우리 센터 자체 양식이에요.”
“자체 양식은 편람 제일장 제이절에 따라 구청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동장이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눈이 완전히 없어졌다.
“재밌네, 미소 씨. 진짜 재밌어.”
그 웃음이 제일 무서웠다.
“기록은 제가 남기고 있습니다. 매일. 3번 창구 변경 이력.”
동장실을 나오는데 복도에서 윤 팀장과 마주쳤다. 서류철을 안고. 그는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동장실 쪽을 봤다. 다시 나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서류철을 조금 더 세게 안았다.
그날 오후 나는 새솔시 누리집에서 고시 공고를 뒤졌다. 성원연립 재건축정비구역 지정 절차. 공람공고 예정일 이천이십육 년 시월 십오일. 그 아래 작은 글씨. 공람공고일 현재 해당 구역 안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세입자는 주거이전비 보상 대상. 거주 사실은 주민등록 전입일로 확인.
전입일로 확인. 서른 명이 같은 연립 안에서 호수만 옮겼다. 옮긴 호수로 전입신고가 안 되면, 새 호수에 산 날짜가 기록에 없다. 옛 호수는 철거 대상에서 빠진 동이라면. 나는 성원연립 배치도를 찾았다. 에이 동, 비 동, 씨 동. 재건축 구역 경계선이 비 동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비 동 절반과 씨 동은 이번 사업에서 빠진다. 에이 동과 비 동 앞쪽 절반만 들어간다.
문달수 씨는 비 동 이백삼 호에서 에이 동 백일 호로 옮겼다. 구역 밖에서 구역 안으로. 새 호수로 전입이 안 되면, 기록상 그는 구역 밖 사람이다. 이주비를 한 푼도 못 받는다.
나는 달력을 봤다. 오늘은 구월 칠일. 공람공고일까지 서른여덟 날.
퇴근길에 성원연립에 갔다. 도담동 끝,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끼어 있는 삼 층짜리 연립 세 동. 벽돌이 누렇게 바랬다. 비 동 외벽에 물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이 년 전 누수 자국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에이 동 앞 화단 옆 벤치에 문달수 씨가 앉아 있었다. 서류 봉투를 무릎에 놓고. 나를 보고 일어서려다 도로 앉았다.
“아가씨가 여기 웬일이오.”
“지나가다가요.”
“여기는 지나가는 데가 아니오. 막다른 길이오.”
그는 벤치 옆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앉았다. 벤치 나무가 눅눅했다.
“비 동 이백삼 호에서 삼십 년 살았소. 집사람하고. 이 년 전 여름에 윗집 배관이 터져서 천장이 내려앉았소. 집사람이 그때 거실에 있었지. 머리를 다쳤소. 반년 누워 있다가 갔소. 집주인이 에이 동 백일 호가 비었으니 거기로 옮기라고 해서 옮겼소. 같은 연립이니까 서류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해서.”
그는 비 동 외벽의 물 자국을 봤다. 해가 지면서 물 자국이 더 짙어 보였다.
“그 나중이 서른두 번이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편람에는 이런 경우를 위한 조항이 없었다. 동일 건물군 내 호수 이전 시 전입신고. 조항은 있었다. 사정은 없었다. 밤 열 시 오십 분, 노트를 사무실에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센터에 다시 갔다. 당직실 옆 쪽문.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한 자리만 빼고. 행정민원팀장 자리. 모니터 불빛이 윤 팀장 안경에 비쳤다.
나는 내 자리로 가서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소리가 컸다. 윤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마우스를 급하게 움직였다. 모니터 화면이 바뀌었다. 바뀌기 전에 파란 바탕이 잠깐 보였다. 3번 창구 화면과 같은 파란 바탕.
“미소 씨.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노트요. 팀장님은요.”
“결산이요. 월말이라.”
구월 칠일은 월말이 아니었다. 윤 팀장도 그걸 알았다. 그는 안경을 벗어 닦았다. 오래.
“미소 씨. 동장님이 경위서 쓰라고 하셨죠. 쓰세요. 형식이에요. 형식을 안 지키면 내용이 다쳐요.”
“팀장님 내용은 괜찮으세요?”
그는 안경을 다시 쓰지 않았다. 안경 없는 얼굴이 생각보다 늙어 보였다.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노트를 들고 나왔다. 쪽문을 닫기 전에 돌아봤다. 윤 팀장이 다시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시계는 열 시 오십칠 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3번 창구 화면이 깜빡였다. 사본 가능, 대신 조합 발급 거주확인서 필수.
조합 발급. 그 단어가 처음으로 화면에 떴다. 세입자가 조합한테 가서, 자기가 여기 산다는 확인서를 받아 오라는 뜻이었다. 이주비를 줘야 하는 쪽한테. 나는 그 문구를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처음으로 빨강도 파랑도 아닌 색을 칠했다. 검정. 볼펜으로, 꾹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