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04자) · 3번 창구

아홉 시 정각

삼백열두 번 반려당한 사람들 · 오세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이 분.

“선생님, 이거 지난주에 접수하신 거랑 같은 서류인데요.”

“네.”

“오늘은 안 됩니다.”

민원인이 나를 봤다. 사십 대 남자. 이삿짐 센터 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사 당일에 전입신고를 하러 온 사람의 얼굴은 늘 급하다.

“왜요?”

나는 창구 옆 안내 화면을 봤다. 삼십이 인치 모니터. 파란 바탕에 흰 글씨. 모서리에 새솔시 로고. 로고 속 소나무가 웃고 있었다.

[3번 창구 안내] 전입신고 시 임대차계약서 원본을 지참하십시오. 사본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계약서 원본이 필요하세요.”

“지난주에는 사본으로 됐는데요? 제 동생이 지난주에 여기서 했어요.”

“지난주에는 사본이었습니다.”

민원인은 아주 합리적인 얼굴로 물었다.

“법이 지난주에 바뀌었어요?”

“아니요.”

“그럼 왜요?”

민원인 뒤로 이삿짐 트럭 기사가 창밖에서 경적을 울렸다. 짧게 두 번. 민원인이 창밖을 보고, 나를 보고, 다시 창밖을 봤다. 「형님, 계약서 원본 어딨어요!」 창밖에서 대답이 왔다. 「장롱 서랍! 장롱은 지금 트럭 맨 안쪽!」 민원인이 이마를 짚었다. 장롱을 꺼내려면 트럭 짐을 다 내려야 한다. 그는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내일 올게요. 장롱 먼저 들어가면.」

나는 이 질문에 삼 주째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발령 삼 주 차. 새솔시 도담동 행정복지센터 3번 창구, 전입·전출 담당. 첫 주에 나는 이것을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다. 둘째 주에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셋째 주인 지금은 노트에 적는다.

3번 창구 안내 화면은 매일 아침 아홉 시 정각에 바뀐다. 1번, 2번 창구 화면은 안 바뀐다. 3번만. 나는 첫 주 금요일부터 적기 시작했다. 스프링 노트 첫 장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3번 창구 변경 이력.

구월 첫째 주 월요일, 계약서 원본만. 화요일, 원본 또는 사본, 대신 임대인 연락처 필수. 수요일, 사본만, 임대인 연락처 불필요, 대신 확정일자 필수. 목요일, 확정일자 불필요, 세대주 확인서 필수. 금요일, 세대주 확인서 불필요, 원본만.

규칙은 매일 하나가 풀리고 하나가 걸린다. 걸리는 개수는 늘 같다. 나는 그걸 발견하고 삼십 분 동안 앉아 있었다. 그 삼십 분 동안 번호표가 열두 장 넘어갔다. 1번 창구 고 주임이 내 몫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나는 규정집을 외운다. 발령받기 전 두 달 동안 주민등록 사무편람을 통째로 외웠다. 서식 백열두 개, 번호까지. 동기들은 그걸 보고 나를 서식 번호로 불렀다. 제일 호 미소. 편람에 따르면 전입신고에 임대차계약서는 원래 필요 없다. 확정일자를 같이 받으려는 사람만 가져온다. 세대주 확인서는 세대 합가일 때만. 3번 창구 안내 화면이 요구하는 서류의 절반은 법에 없는 서류였다.

점심시간에 고 주임이 커피를 타면서 물었다. 믹스 두 봉을 한 컵에. 고 주임은 뭐든 두 배로 한다.

“미소 씨, 뭐 적어?”

“3번 화면이요.”

고 주임의 손이 멈췄다. 커피 스틱이 컵에 반쯤 잠긴 채로.

“그거 적지 마.”

“왜요?”

“적으면 억울해져.”

“이미 억울해요.”

고 주임은 여기서 육 년 일했다. 1번 창구. 증명서 발급. 도장 찍는 소리가 센터에서 제일 크다. 도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일 오래 있는 사람이다. 커피를 두 배로 타고, 말은 반만 한다.

“육 년 동안 3번 창구 담당이 몇 명 바뀌었는지 알아?”

“몰라요.”

“일곱.”

“육 년에 일곱이요?”

“아무도 일 년을 못 넘겼어. 다들 그 화면 이상하다고 한 번씩 말했거든. 말하고 나면 두세 달 뒤에 전보 나. 좋은 데로. 구청 본관, 시청. 다들 좋아하면서 갔어.”

그는 커피를 저었다. 여섯 바퀴.

“그러니까 적지 마. 미소 씨도 좋은 데 가게 될 거야.”

오후 두 시 사십 분, 그분이 왔다.

일흔 넘은 남자였다. 회색 점퍼, 서류 봉투. 3번 창구에 와서 앉았다. 다른 민원인은 서서 말하는데 이 사람은 늘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나는 이 사람을 삼 주 동안 네 번 봤다. 네 번 다 반려했다. 화면이 시키는 대로.

“전입신고 하러 왔소.”

그는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임대차계약서 사본. 주소 새솔시 도담동 성원연립 에이 동 백일 호. 세입자 문삼수. 그리고 종이 한 장이 더. 주민등록초본. 현 주소 성원연립 비 동 이백삼 호.

같은 연립 안에서 호수만 옮긴 것이었다.

나는 화면을 봤다. 오늘은 원본만. 사본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편람을 떠올렸다. 제이장 제삼절, 전입신고. 신고서 한 장과 신분증. 그것뿐이다. 계약서는 필요 없다. 원본이든 사본이든.

“어르신, 계약서는 안 주셔도 됩니다.”

문삼수 씨가 나를 봤다. 눈이 커졌다.

“안 줘도 되오?”

“원래 필요 없는 서류예요. 신분증만 주세요.”

그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신분증 사진 속 얼굴은 스무 살쯤 젊었다. 모서리가 닳아 코팅이 일어나 있었다. 나는 전입신고서를 전산에 입력했다. 접수 버튼을 눌렀다. 초록 불. 접수 완료.

문삼수 씨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서른두 번째요.”

“네?”

“서른두 번째 만에.”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미소 씨, 잠깐.”

행정민원팀장 윤기섭. 쉰 초반. 안경, 넥타이 핀. 늘 서류철을 가슴에 안고 다닌다. 그가 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접수 완료 화면을.

“안내문 봤어요? 오늘 원본 지참이에요.”

“편람상 전입신고에는 계약서가 필요 없습니다. 제이장 제삼절.”

윤 팀장이 나를 봤다. 삼 초쯤.

“편람은 편람이고, 우리 센터 안내는 안내예요. 안내문대로 해요. 민원인한테 혼선 주면 안 돼요.”

그는 내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접수 내역을 띄웠다. 반려 처리 버튼을 눌렀다. 사유 칸에 입력했다. 원본 미지참.

초록 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문삼수 씨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방금 됐다지 않았소.”

“어르신,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신규라서 착오가 있었습니다. 원본 가져오세요.”

윤 팀장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서류철을 안고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빨랐다.

문삼수 씨는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계약서 사본을 봉투에 도로 넣었다. 천천히. 접는 선을 맞춰서.

“원본은 조합이 갖고 있소. 집주인이 조합에 넘겼거든. 조합이 안 주오.”

그는 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섰다.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었다. 서른한 번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갔다. 나가면서 말했다. 나를 보지 않고.

“아가씨는 됐다고 했소. 그건 적어 둘게.”

나는 빨간 불이 뜬 화면을 봤다. 창구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빨간 불빛을 받아 이상하게 붉었다. 반려 사유, 원본 미지참. 처리자, 미소. 내 이름이었다. 윤 팀장이 누른 반려에 내 이름이 찍혀 있었다.

윤 팀장은 탕비실에 있었다. 나는 따라 들어갔다. 탕비실 문을 닫았다.

“팀장님. 방금 반려, 처리자가 제 이름으로 떴습니다.”

“시스템이 그래요. 담당 창구 이름으로 뜨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요.”

“반려 사유가 원본 미지참인데, 편람상 원본은 필요 없는 서류입니다. 필요 없는 서류가 없어서 반려됐다고 제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윤 팀장이 종이컵에 정수기 물을 받았다. 반쯤. 멈췄다. 다시 받았다. 넘치기 직전까지.

“미소 씨. 편람 외운 거 알아요. 동기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며. 제일 호. 근데 여기는 시험장이 아니에요. 우리 센터에는 우리 센터 사정이 있어요. 신규는 사정을 배우는 거예요. 규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사정이 뭔데요.”

윤 팀장은 물을 마시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 물이 조금 넘쳤다.

“배우면 알게 돼요. 급하게 알려고 하면 탈 납니다.”

그는 나갔다. 넘친 물이 탕비실 조리대에 작게 고였다. 나는 휴지로 닦았다. 편람에는 없는 사정이 조리대에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여섯 시 반, 창구에 남아 노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왔다. 황 여사님. 예순쯤. 앞치마 주머니에 사탕이 늘 불룩하다. 밀대를 세우고 내 노트를 들여다봤다. 사탕 하나를 노트 위에 놓아 주며.

“3번 그거지?”

“아세요?”

“여기 팔 년 했어. 전에 있던 아가씨들도 다 그거 적었어. 적다가 울고, 울다가 가고.”

황 여사님은 3번 창구 안내 화면을 밀대 손잡이로 톡 쳤다.

“근데 이거 종이가 아니잖아. 텔레비전이잖아. 텔레비전은 누가 틀어야 나오지.”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가 공무원 된 게 아직도 신기하다. 매일 전화해서 묻는다. 오늘 뭐 했어. 나는 대답했다. 반려했어. 엄마가 물었다. 반려가 뭐야. 서류 돌려보내는 거. 엄마가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또 와야 되네?」 「응.」 「몇 번이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른두 번이라고 그 사람이 말했으니까. 엄마가 한참 조용하다가 말했다. 「너 어렸을 때 받아쓰기 틀린 거 선생님이 다시 써 오라고 하면, 너 그거 서른 번 썼어. 선생님이 한 번만 쓰라고 했는데.」 나는 웃었다. 그리고 편람을 다시 폈다. 제이장 제삼절. 서른 번 읽었다.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오십구 분에 창구에 앉아 휴대폰 동영상을 켰다. 화면을 찍었다. 여덟 시 오십구 분 오십구 초. 원본만. 아홉 시 정각. 화면이 한 번 깜빡였다. 사본만, 대신 임대인 동의서 필수.

깜빡였다. 누가 틀었다.

영상을 고 주임한테 보여 줬다. 고 주임은 커피를 타다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두 번 돌려 봤다. 세 번째에 커피 스틱을 컵에 떨어뜨렸다.

“미소 씨. 나 삼 년 전에 CCTV 봤어. 이거 궁금해서. 여덟 시 오십구 분까지 아무도 안 와. 아홉 시에 화면이 바뀌어 있어. 그거 보고 소름 돋아서 덮었어. 귀신인 줄 알았지.”

“깜빡이는 건 안 보셨어요?”

“CCTV가 일 초에 한 장씩 찍혀. 깜빡이는 건 안 찍혀.”

고 주임은 떨어뜨린 커피 스틱을 건졌다. 손가락이 뜨거웠는지 흔들었다.

“귀신이 아니면 사람이네. 사람이 밤에 예약해 둔 거네. 사이니지. 그 화면 관리 프로그램에 예약 게시 기능 있어.”

“누가 예약하는데요.”

고 주임은 대답하지 않았다. 컵을 저었다. 여섯 바퀴. 그리고 한 바퀴 더.

“그거 알면 미소 씨 좋은 데 가.”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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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림작가2026.10.09· 1화

    작가 오세림입니다. 어제 통과된 서류가 오늘은 반려되는 창구, 그 앞에 선 사람과 창구 안의 사람 모두 지쳐 있습니다. 1화의 아홉 시 정각에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 계셨나요?

  • 달밤에책2026.05.26· 1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오세림작가2026.05.27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

아홉 시 정각 · 삼백열두 번 반려당한 사람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