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03자) · 십일월 삼십일

놓고 내려간다

옥상 동아리 · 오세림

십일월 이십칠일 금요일 여덟 시 삼십 분. 마흔일곱이 일어섰다. 나는 안 일어섰다.

의자를 들고 내려가는 게 매일 하던 것이었다. 들고 내려갔다가 다음 날 들고 올라오는 것. 그런데 오늘은 반출 기한이었다. 오늘 들고 내려가면 그것은 반출이 된다. 김 주임이 올린 공지에 그렇게 돼 있었다. 각자 반출. 내려가는 것과 반출하는 것이 같은 동작인데 뜻이 달랐다. 나는 그 동작을 안 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있었다. 등받이에 금 간 의자에.

“대리님?”

하늘이었다. 자기 폐기 의자를 반쯤 들고.

“아,”

“안 내려가세요?”

“의자는 두고 갈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의자를 안 들었다. 놓았다. 타일 위에. 그 자리에. 작년 삼월에 처음 놓았던 자리에. 놓고 나서 두 걸음 물러났다. 의자가 거기 있었다. 나 없이. 그건 작년 삼월에 이미 한 번 한 일이었다. 놓고 내려간 것. 그때는 아무도 안 봤는데 오늘은 마흔여섯이 봤다.

하늘이 의자를 내려놓았다. 정민이. 소원이. 회계팀 둘이. 소리가 났다. 의자 다리가 타일에 닿는 소리 마흔여섯 번. 하나씩. 동시가 아니었다. 강 부장의 낚시 의자는 소리가 안 났다. 천이라서. 준희 과장은 원래 벽돌이라 놓을 것이 없었다. 그 사람은 벽돌을 한 번 발로 툭 찼다. 놓는 시늉이었다. 김 과장님이 자기 의자를 놓았다. 도영 과장님이 세 번째 의자를 놓았다. 셋이 다시 셋이었다. 그 둘레에 마흔넷.

“이거 반출 안 한 거예요, 주임님?”

“네. 반출 안 한 거예요. 근데 규정에 반출 안 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착공일 폐기라고만 돼 있어요. 착공일은 월요일이에요. 월요일 전에는 아무것도 안 일어나요?”

“월요일에는요?”

“월요일에 일어나죠.”

마흔일곱이 의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소리가 안 났다. 마흔일곱 명이 열여섯 층을 내려가는데 발소리밖에 안 났다. 그게 이상했다. 의자 소리 없는 계단이. 나는 마지막에 철문을 닫았다. 닫기 전에 봤다. 의자 마흔일곱. 벽돌 둘. 아무도 없는 옥상에 의자만. 상무가 삼 년 전에 올라가서 봤다는 옥상은 의자도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의자가 있었다. 사람이 없는데 의자가 있는 옥상이 어떤 건지 나는 그날 처음 봤다. 빈 옥상이 아니었다. 사람이 올 자리였다.

토요일, 일요일. 나는 회사에 안 갔다. 갈 수 없었다. 주말에는 십육 층 철문이 잠긴다. 그것은 소방법 위반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잠기니까. 나는 집에서 이틀 동안 의자를 생각했다. 마흔일곱 개가 비를 맞는지 안 맞는지. 일요일에 비가 안 왔다. 일기예보에 다음 주 월요일 첫눈이라고 나왔다. 십이월 칠일.

월요일. 십일월 삼십일. 착공일. 나는 일곱 시에 회사에 왔다. 십오 층 임원실은 여덟 시 반에 연다. 상무는 일곱 시 반에 왔다. 그 사람은 일찍 오는 사람이었다. 나는 십육 층 계단참에 있었다. 소화기 옆에. 김 주임이 일곱 시 이십 분에 왔다. 코팅기를 안 들고. 대신 비품 대장 세 권. 강 부장이 일곱 시 삼십오 분에 왔다. 담뱃갑을 쥐고. 안 피우고. 오 사장이 일곱 시 사십 분에 인부 넷과 자재를 들고 올라왔다. 알루미늄 프레임. 안전 펜스. 공구 상자. 계단으로. 엘리베이터에 안 들어가서.

철문이 열렸다. 오 사장이 먼저 봤다. 의자 마흔일곱.

“이게 뭡니까?”

“의자요.”

“이거 치워야 저희가 자재를 놓는데요.”

“네.”

“누가 치웁니까?”

그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상무가 일곱 시 오십 분에 올라왔다. 배 차장과. 상무는 철문에서 멈췄다. 세는 눈. 그 사람은 셌다. 마흔일곱. 세는 데 십 초 걸렸다. 그리고 나를 봤다.

“대리. 대리가 시킨 거지.”

“아니요.”

“그럼.”

“제가 먼저 놓고 내려갔습니다. 시키지 않았습니다. 마흔여섯은 각자 놓았습니다.”

“놓았다.”

“네. 반출을 안 한 게 아니라 놓은 겁니다.”

상무가 오 사장한테 손짓했다. 치우라는 손짓. 오 사장이 인부한테 손짓했다. 인부 하나가 제일 가까운 의자를 들었다. 하늘 것이었다. 폐기 스티커가 붙은 회색 의자. 인부가 스티커를 봤다. 손을 뗐다.

“사장님, 이거 폐기 스티커 붙었는데요.”

오 사장이 와서 봤다. 그 사람 얼굴이 바뀌었다. 상무 쪽으로 돌아섰다.

“상무님, 이건 저희가 못 만집니다.”

“왜?”

“폐기물 표시 붙은 사무용 가구는 사업장 폐기물이에요. 폐기물 처리 자격 있는 업체만 반출합니다. 저희는 인테리어라 자격이 없습니다. 만졌다가 걸리면 저희 면허가 나갑니다.”

“그럼 폐기 업체 불러.”

“오늘은 못 옵니다. 예약이 일주일이에요. 십이월에는 다 밀려요.”

상무가 배 차장을 봤다. 배 차장이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론가 전화했다. 통화가 짧았다.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 주 월요일. 십이월 칠일.

“그럼 폐기 스티커 안 붙은 것만 치워.”

인부들이 봤다. 마흔일곱 가운데 폐기 스티커가 붙은 것이 열둘이었다. 나머지 서른다섯은 사무용 의자, 캠핑 의자, 접이식 의자, 스툴, 낚시 의자. 인부 하나가 한지우의 바퀴 의자를 잡았다. 그때 강 부장이 말했다.

“그거 회사 비품입니다.”

“네?”

“바퀴 달린 거. 사무용 의자. 회사 자산이에요. 자산 반출은 자재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자재팀장입니다. 오늘 자재팀 반출 확인 없습니다.”

강 부장은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두 손이 비었다. 그 사람은 두 손을 비운 채로 서 있었다.

“그럼 캠핑 의자는요? 그건 개인 거 아닙니까?”

“개인 것은 개인이 반출합니다. 회사가 못 만집니다. 그건 배 차장님이 잘 아실 겁니다. 개인 물품 무단 처분은 27조가 아니라 인사 규정 30조라.”

배 차장이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사람은 규정을 만든 사람이었고, 만든 규정에 세 번째로 걸리고 있었다.

상무가 김 주임을 봤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사옥 담당 대행.

“김 주임. 착공 승인서 사옥 담당 확인 도장.”

“아직 안 찍었습니다.”

“왜?”

“천천히 찍고 있습니다. 기한이 없어서요.”

“지금 찍어.”

“도장을 삼 층에 두고 왔습니다.”

상무는 옥상을 봤다. 마흔일곱 개 의자. 벽돌 둘. 실외기 여섯 대. 물탱크. 백이십오 난간. 코팅된 종이 둘. 그 사람은 오래 봤다. 세는 눈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뭘 보는지 몰랐다. 그 사람은 십일월 아침 바람 속에서 옥상을 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한테.

“대리. 십이월 칠일 아침 아홉 시. 폐기 업체 옵니다. 그때까지 개인이 안 가져가면 회사가 폐기합니다. 자재팀 확인은 내가 받을 거고. 비용은 옥상연구회 앞으로 청구합니다. 그리고 대리. 회사 시설 무단 점유. 서면 경고. 인사 규정 22조. 배 차장, 오늘 자로.”

“네.”

“착공은 칠일 아홉 시로 미룹니다. 일주일. 오 사장, 자재 계단참에 두고 가세요.”

그 사람은 내려갔다. 배 차장이 따라 내려갔다. 오 사장은 자재를 계단참에 쌓았다. 소화기 옆에. 알루미늄 프레임이 소화기를 가렸다. 김 과장님이 있었으면 뭐라고 했을 것이다. 소화기 앞은 비워 두는 겁니다. 김 주임이 대신 말했다. 인부들이 프레임을 조금 옮겼다.

계단참에 셋이 남았다. 김 주임, 강 부장, 나. 김 주임이 비품 대장 세 권을 고쳐 안았다.

“저 내일 대행 해제될 거예요. 배 차장님이 직접 하신대요. 아까 계단에서 들었어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오늘 밤에 도장 찍을 데가 하나 있어요. 삼 층에요. 해제되기 전에요.”

“착공 승인서요?”

“아니요. 그건 계속 천천히요.”

주임은 그 말만 하고 내려갔다. 강 부장이 담뱃갑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두 번째였다. 그 사람은 요즘 담배를 꺼냈다 넣는 걸로 피운다.

서면 경고. 칠 년 동안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것. 나는 그것을 오후에 받았다. 배 차장이 직접 가져왔다. 삼 층이 아니라 우리 팀으로. 윤 팀장이 그것을 먼저 받았다. 팀장 확인 칸이 있었다. 그 사람은 종이를 읽었다. 오래. 그리고 볼펜을 들었다. 확인 칸에 서명하지 않았다. 여백에 뭔가 썼다. 「팀장 의견 — 해당 직원의 옥상 착석은 등록 동아리 활동으로 사규 27조에 따른 정당한 활동임. 무단 점유 아님.」 그리고 서명했다. 확인 칸이 아니라 의견 칸에. 배 차장이 그것을 봤다. 규정에 팀장 의견 칸이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이 제일 잘 알았다. 있었다. 아무도 안 쓰던 칸이었다.

“예린 씨. 회색 표 말고 파란 표.”

팀장이 나한테 종이를 넘기면서 말했다. 뜻을 알았다.

여덟 시. 옥상. 의자 마흔일곱이 그대로 있었다. 아침에 놓인 자리 그대로. 마흔일곱이 올라왔다. 의자 없이. 손이 빈 채로 계단을 올라온 사람들. 다들 자기 의자를 찾아 앉았다. 찾는 데 시간이 안 걸렸다. 자기 자리는 자기가 안다. 계단참에 쌓인 알루미늄 프레임을 지나서. 안전 펜스가 철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공사 중 출입 금지. 아무도 안 읽었다. 다들 읽었다.

소원이 봉지를 들고 다녔다. 핫팩. 마흔일곱 개. 회계팀 비품비로 샀다고 했다. 회계팀이라서 그런 게 된다고. 하나씩 나눠 줬다. 받은 사람은 흔들었다. 마흔일곱 번 흔드는 소리. 시끄러웠다. 손이 따뜻해지는 데 삼 분. 발은 그대로였다. 핫팩은 발에 안 붙는다.

도영 과장님이 세 번째 의자에 앉았다. 종이컵을 무릎에. 김 과장님이 여덟 시 이십 분에 올라왔다. 인천에서. 계단참 프레임을 보고 소화기를 보고, 프레임이 소화기를 안 가린 것을 보고, 올라와서 앉았다.

아무도 오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다 알았다. 게시판에 다 났다. 서면 경고까지. 배 차장은 그것도 올렸다. 규정이라서. 그 밑에 댓글이 이백이었다. 나는 안 읽었다.

여덟 시 삼십일 분.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나는 받았다.

“대리. 차승호야.”

“네.”

“몇 명이야.”

“마흔일곱입니다.”

“…의자는.”

“마흔일곱입니다.”

“…”

“상무님?”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무릎에 놓았다. 종이컵처럼. 마흔일곱이 나를 봤다. 아무도 누구냐고 안 물었다. 물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서. 나는 그 규칙이 오늘은 싫지 않았다.

발이 시렸다. 십일월 마지막 날. 타일에서 올라오는 것은 이제 온기가 아니라 냉기였다. 그런데 마흔일곱이 앉아 있었다. 일주일. 첫눈까지.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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