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6자) · 경영회의
열두 문장
옥상 동아리 · 오세림
경영회의는 화요일 열 시, 십오 층 대회의실이다. 나는 칠 년 동안 그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대리는 안 들어간다. 팀장이 들어간다. 우리 팀장은 매주 화요일 아홉 시 오십 분에 파일을 들고 올라갔다가 열두 시에 얼굴이 좀 상해서 내려온다. 그 얼굴을 칠 년 봤다. 오늘은 내가 그 파일을 들고 있었다. 열두 장. 한 장에 한 문장. 십일월 이십사일.
대회의실은 길었다. 탁자가 하나인데 스물몇 명이 앉는 탁자였다. 원목. 오래된 것. 모서리가 손때로 반질반질했다. 상석에 대표이사. 한 대표. 예순. 나는 그 사람을 창립기념식 무대에서만 봤다. 양옆에 본부장 넷. 그 뒤로 팀장 서른둘. 벽에 붙어 앉는 의자. 팀장들은 벽에 붙어 앉는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윤 팀장이 거기 있었다. 나를 봤다. 얼굴 반이 아니라 다.
안건 셋 중 마지막이었다. 앞의 둘은 사십 분 걸렸다. 물류센터 자동화 투자, 사분기 매출 전망. 나는 그동안 벽에 붙어 앉아 있었다. 팀장들 사이에. 양옆 팀장이 나를 한 번씩 봤다. 대리가 왜 여기 있는지 묻는 눈이었다. 안 물었다. 회의실이라서. 발이 안 시렸다. 카펫이라서. 그런데 손이 시렸다. 파일을 쥔 손이. 열두 장은 무겁지 않았다. 무거운 것은 종이가 아니었다.
“세 번째 안건. 본관 옥상 유휴 공간 활용 계획 재검토. 경영지원실.”
대표가 안경을 고쳐 썼다.
“옥상연구회. 그게 뭐 하는 데지?”
“앉는 데입니다.”
상무가 답했다. 대표가 상무를 봤다. 상무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우스워지고, 안 하면 우스운 채로 넘어간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았다. 본부장 하나가 웃었다. 팀장 몇이 따라 웃었다. 윤 팀장은 안 웃었다. 그 사람은 사 분 동안 앉아 본 사람이었다.
상무가 일어섰다. 도면이 화면에 떴다. 스카이 라운지. 보완된 도면. 유리벽이 줄어 있었다. 육십에서 사십오로. 대피 공간 오십오. 의자 놓을 자리는 남아 있었다. 소방위가 말한 대로. 상무는 오 분 말했다. 회사 가치. 거래처 접대. 사옥 자산 가치 상승. 그리고 마지막에.
“등록 동아리 협의 절차에 따라, 옥상연구회 대표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운영기획팀 예린 대리.”
내 이름이 그 방에서 불렸다. 서른여덟 명이 나를 봤다. 나는 일어섰다. 벽에서 떨어졌다. 탁자 끝으로 갔다. 서는 자리가 없어서 대표 반대편 끝에 섰다. 파일을 탁자에 놓았다. 열두 장. 원목이 손에 닿았다. 따뜻했다. 오래된 나무는 쇠와 달라서 손을 대면 손 온도가 된다.
숨을 들이켰다. 칠 년 동안 회의에서 숨을 들이켤 때마다 누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아무도 안 했다. 안건이니까. 내 차례니까. 처음이었다. 숨을 들이켠 다음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옥상연구회 대표 예린입니다. 열두 문장 하겠습니다.”
첫 장.
“어제 여덟 시에 본관 옥상에 마흔일곱 명이 앉았습니다.”
마흔일곱. 어제 숫자였다. 경영회의 안건이 게시판에 올라간 게 지난 금요일이었고, 그 뒤로 매일 다섯씩 늘었다. 회계팀 전원. 영업 2팀 전원. 개발팀 절반. 홍보팀은 민정 대리가 다 데려왔다. 사진 때문에. 마흔일곱 개 의자가 실외기 사이에 놓이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본부장 하나가 옆 사람한테 뭐라고 했다. 마흔일곱이라는 숫자를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둘째 장.
“그 마흔일곱 명은 삼십 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합니다.”
셋째.
“그런데 매일 옵니다. 십월 십이일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늘었습니다.”
넷째.
“삼 년 전 십일월 오일에 이 옥상에서 품질팀 박은수 대리가 떨어졌습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대표가 나를 봤다. 그 이름을 이 방에서 들은 것은 삼 년 만일 것이다. 상무는 나를 안 봤다. 도면을 봤다. 도영 과장님이 그 이름을 창고에서 말할 때와 같은 온도가 이 방에 왔다. 바람이 없는데 추운 것.
다섯째.
“그날 옥상에 열 명이 있었고, 열 명 다 서 있었습니다.”
여섯째.
“앉은 사람은 옆을 봅니다. 서 있는 사람은 자기 담배를 봅니다.”
일곱째.
“상무님은 유리벽으로 옥상을 채우려고 하십니다. 빈 옥상이 사람을 부른다고요.”
여덟째.
“빈 옥상이 부르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안 앉은 옥상이 부릅니다.”
아홉째.
“유리벽은 이백사십이라 아무도 못 넘습니다. 유리벽 밖 대피 공간은 백이십오입니다.”
열째.
“유리벽 안에 앉은 임원은 유리벽 밖 대피 공간을 안 봅니다. 그 사람 것이 아니니까요.”
열한째.
“마흔일곱이 마흔일곱을 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만 보면 됩니다.”
열두째. 나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한 문장이 아니라 여덟 글자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
“옥상연구회는 앉습니다.”
파일을 덮었다. 종이 열두 장이 원목 위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앉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에서 대표를 봤다. 십 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삼십 분 침묵 실기 같았다. 서른여덟 명이 다 4번 항목 예였다.
상무가 일어섰다.
“대리 말이 다 맞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이기는 사람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 맞다고 하고 나서 뒤집는 사람.
“그래서 유리벽을 줄였습니다. 대피 공간 오십오 퍼센트. 마흔일곱 명이 앉을 자리가 남습니다. 소방 기준으로는 백이십 명까지요. 대리 말대로 앉으면 됩니다. 라운지 밖에서. 회사는 임원 접대 공간을 얻고, 옥상연구회는 자리를 지킵니다. 둘 다 됩니다. 협의는 이걸로 된 겁니다. 대표님.”
대표가 나를 봤다.
“대리. 라운지가 줄었는데 왜 반대하나.”
열두 문장은 끝났다. 열셋째가 필요했다. 준비 안 한 것.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무도 안 말했다. 그래서 내가 했다.
“유리벽이 서면, 유리벽 안이 옥상이 되고 밖은 남는 자리가 됩니다. 남는 자리에 앉는 사람은 남는 사람이 됩니다. 삼 년 전에 박 대리가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세 번 돌려받은 사람요. 저희는 남는 자리에 앉기 싫습니다. 옥상에 앉고 싶습니다.”
“싫다.”
“네. 싫습니다.”
대표가 상무를 봤다. 상무를 오래 봤다. 그 사람 눈이 뭘 세는지 나는 몰랐다. 매출 십팔 퍼센트인지, 마흔일곱인지, 삼 년인지.
“착공은 삼십일 그대로 간다.”
대표가 말했다.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다른 조용함이었다.
“보완 도면대로. 대피 공간 오십오. 옥상연구회 협의는 오늘로 완료된 걸로 한다. 이십칠일까지 옥상 개인 물품은 각자 치울 것. 의자 포함. 총무팀이 공지해.”
윤 팀장이 벽에서 나를 봤다. 그 사람 얼굴이 좀 상해 있었다. 매주 화요일 열두 시 얼굴. 그 얼굴이 오늘은 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표가 덧붙였다.
“마흔일곱 명. 그 숫자 경영지원실이 확인해. 사실이면 나한테 보고하고.”
회의가 끝났다. 서른여덟 명이 일어섰다. 의자 서른여덟 개가 카펫 위에서 소리 없이 밀렸다. 옥상이었으면 시끄러웠을 것이다. 나는 그 소리가 없는 게 이상했다. 나는 파일을 들었다. 열두 장. 다 썼다. 처음으로 열두 문장을 다 하고 졌다. 하고 지는 것과 안 하고 지는 것이 다른지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달랐다. 손이 안 시렸다. 원목 온도가 손에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 윤 팀장이 나를 잡았다. 팔꿈치를.
“예린 씨.”
“아,”
“열두 개 다 했네.”
“…네.”
“그 보고서. 사분기 계획서. 파란 표로 도로 내. 예린 씨가 처음 낸 걸로. 내가 두 번 돌려보낸 거 취소야.”
“왜요?”
“회색이 더 안 보여서. 그거 오늘 알았어.”
그 사람은 먼저 갔다. 얼굴 반이 아니라 등이 보였다. 등이 좀 굽어 있었다. 김 과장님만큼은 아니고.
세 시. 게시판.
[공지] 본관 옥상 개인 물품 반출 안내 — 11월 27일(금)까지 각자 반출. 미반출 물품은 착공일 폐기. (총무팀 사옥 담당 대행 김 주임)
댓글이 백열둘이었다. 나는 안 읽었다. 하늘이 읽어 주겠다고 했다. 안 된다고 했다. 하늘은 하나만 읽었다.
“배 차장님이요. 「경영지원실 확인 결과 11월 23일 20시 본관 옥상 착석 인원 47명. 대표이사 보고 완료.」 이거 배 차장님이 직접 올라와서 세셨대요. 어제요. 우리 몰랐죠?”
몰랐다. 어제 철문 옆에 서 있던 사람을 나는 못 봤다. 마흔일곱을 보느라. 마흔일곱 가운데 하나가 세는 사람이었다. 아니, 마흔일곱 밖에서 하나가 셌다. 서서. 철문 옆에서. 아무도 안 봤다. 마흔일곱이 마흔일곱을 보느라.
여덟 시. 옥상. 마흔일곱. 세 번째 의자에 사람이 있었다. 도영 과장님. 십구 일 만이었다. 그 사람은 앉아 있었다. 종이컵을 무릎에 올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스물셋은 못 봤는데, 마흔일곱은 됩니다.”
“왜요?”
“마흔일곱이 마흔일곱을 본다면서요. 게시판에 났습니다. 경영회의 발언 요지. 배 차장이 올렸습니다. 그 사람 규정에 그런 게 있답니다.”
“그럼 스물셋은요?”
“스물셋은 셋이 스물을 보는 거였습니다. 마흔일곱은 마흔일곱이 마흔일곱을 보는 거고요. 대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셈이 틀렸던 겁니다. 삼 년 동안.”
김 과장님이 여덟 시 이십 분에 올라왔다. 인천에서. 김밥 냄새가 났다. 차에서 먹고 온 것이다. 자기 의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앉았다. 셋이 다시 셋이었다. 그 셋 둘레에 마흔넷이 있었다. 착공까지 엿새. 의자를 치우라는 공지가 김 주임 이름으로 떠 있었다. 댓글이 백열둘인 공지. 김 주임은 그 공지를 올리고 옥상에 올라와서 앉아 있었다. 자기가 올린 공지 아래에. 그 사람은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 공지는 올렸고, 앉는 것은 규정에 없다.
하늘이 손을 들었다.
“주임님, 벽돌은 개인 물품이에요?”
김 주임이 준희 과장의 벽돌을 봤다. 오래.
“물탱크 밑에 있던 거면 사옥 비품이에요. 반출 대상 아니에요.”
“그럼 과장님은 의자 없이 앉으시면 되겠네요.”
“원래 그랬어.”
준희 과장이 벽돌 위에서 말했다. 그 사람이 왜 다섯 주 동안 의자를 안 가져왔는지 그때 알았다. 벽돌은 안 치워도 되니까. 그 사람은 첫날부터 그것까지 셌던 것이다. 영업이라서.
아무도 의자를 안 치웠다. 여덟 시 반에 마흔일곱이 의자를 들고 내려갔다. 매일 하던 대로. 내려갔다가 내일 다시 들고 올라오는 것. 그것이 반출인지 아닌지 김 주임한테 아무도 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