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40자) · 십오 층
싫습니다
옥상 동아리 · 오세림
십오 층 비서는 나를 기억했다. 옥상연구회 대표. 그 사람은 상무 일정을 봤다. 열한 시에 십 분이 빈다고 했다. 열 시 오십 분부터 나는 임원실 앞 복도에 서 있었다. 카펫. 발소리가 안 났다. 발소리가 안 나니까 내가 거기 서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서 있었다. 복도 끝 창으로 십일월 십삼일 하늘이 보였다.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은 회색. 의자 색이었다. 열 시 오십구 분에 문이 열렸다. 상무가 나왔다. 나를 보고 멈췄다.
“대리. 불렀나?”
“아니요.”
“그럼?”
“왔습니다.”
상무는 나를 이 초쯤 봤다. 그 사람은 불려 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고 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 없는 눈으로 나를 봤다.
“십 분이야. 들어와.”
소파가 깊었다. 이번에는 나는 소파 끝에 앉았다. 몸이 뒤로 안 가게. 그 자리는 불편했다. 불편한 자리에 앉으면 말이 나온다. 몸이 앞으로 가니까. 탁자에 지난번 조감도가 없었다. 대신 보완 도면. 유리벽에 빨간 선으로 줄인 자국. 그 사람도 지우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지우는 자리가 다를 뿐.
“어제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뭐가?”
“옥상에요. 여덟 시에. 스물여섯 명이 앉았습니다. 상무님은 셋을 세셨는데, 지금 스물여섯입니다.”
“그래서.”
“두 평은 싫습니다.”
말이 나왔다. 열두 문장 중 첫 번째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어제 발령 얘기였다. 그런데 이게 먼저 나왔다. 싫습니다. 나는 서른넷 동안 그 말을 누구한테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아, 로 했다. 아, 다음에 열두 문장을 만들고 지웠다. 이번에는 안 지웠다. 상무가 나를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 배 차장과 같은 눈. 십오 층 사람들은 다 그 눈을 갖고 있었다.
“싫다고.”
“네. 카드 셋도 싫습니다. 셋으로 하는 것도 싫습니다. 상무님이 지켜 주신다는 것도 싫습니다.”
“대리가 뭘 싫어하든 착공은 삼십일이야.”
“압니다.”
“그럼 뭐 하러 왔어.”
“이유를 들으러요.”
“무슨 이유.”
“삼 년 전에 잠그셨던 이유요. 잠갔어야 하는 데였다고 하셨잖아요. 도영 과장님한테 들었습니다. 보고서 세 번 돌려보내신 거요. 창고에서 봤습니다. 상무님 글씨 세 번.”
상무가 일어섰다. 창 쪽으로 갔다. 창을 등지고 앉던 사람이 창을 보고 섰다. 구로디지털단지. 우리보다 높은 건물 셋, 낮은 건물 스물몇. 그 사람 등이 보였다. 김 과장님 등처럼 굽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오른쪽. 도면을 말던 손 쪽.
“사 점 일.”
“네?”
“파손률. 사 점 일. 그 숫자 나는 지금도 외워. 삼 이하로 못 맞추면 계약이 날아가는 거였어. 회사 매출 십팔 퍼센트. 그래서 돌려보냈어. 숫자 고치라고 안 했어. 근거 보완하라고 했어. 근거를 보완하면 숫자가 내려올 줄 알았어. 파손 기준을 다시 잡으면. 그런 게 있어. 살짝 찌그러진 건 파손이 아니라고 하면 삼 점 사까지 내려와. 나는 그걸 기대한 거야. 세 번.”
“그 말씀을 하셨습니까? 박 대리한테요.”
“안 했어. 하면 조작이잖아. 안 하고 알아서 하길 기다렸어. 세 번.”
창밖이 더 흐려졌다. 유리에 첫 빗방울이 하나 붙었다. 상무가 돌아섰다.
“네 번째는 안 왔어. 대신 옥상에 갔지. 여덟 시 십 분. 나는 그때 이 방에 있었어. 한 층 아래. 소리를 들었냐고 사람들이 묻는데, 안 들었어. 이 창은 안 열려. 그래서 잠갔어. 옥상을. 빈 옥상이 사람을 부른다고 생각했어. 이 년 동안 아무도 안 올라갔어. 아무도 안 떨어졌고. 그런데 김 과장이 소방법 들고 와서 열었어. 열고 나서 매일 올라가더라. 셋이. 나는 그게 싫었어. 열린 옥상에 매일 사람이 있는 거. 언제 하나가 난간으로 갈지 모르는 거. 그래서 유리로 막는 거야. 유리벽은 백이십오가 아니야. 이백사십이야. 아무도 못 넘어. 조명 들어오고 소파 있고 사람 있고. 빈 옥상이 아니야. 그게 내 이유야. 회사 가치는 결재 문서에 쓴 이유고.”
그 사람은 앉았다. 자기 자리에. 창을 등지고. 십 분이 지났다. 비서가 문을 안 두드렸다.
그 사람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맨 아래 칸. 서류 봉투 하나. 창고에 있던 것과 같은 봉투였다. 겉에 줄이 세 개. 그 사람도 하나 갖고 있었다. 봉투를 탁자에 놓았다. 열지는 않았다.
“이건 내 거야. 도 과장 건 창고에 있고. 김 과장은 없어. 그 친구는 종이를 안 남겨. 대신 난간을 올렸지.”
“왜 갖고 계세요?”
“몰라. 버리면 없어지니까.”
봉투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삼 년 동안 서랍에서 꺼냈다 넣었다 한 자국. 나는 그것을 봤다. 그 사람이 나를 보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의 이유를 들었다.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유가 있어서 더 나빴다. 없으면 그냥 나쁜 사람인데, 있으면 그 이유가 우리 것과 부딪친다. 그 사람은 유리로 막아서 아무도 안 떨어지게 하려는 사람이고, 김 과장님은 열어서 옆에 앉는 사람이었다. 둘 다 은수 때문이었다. 둘 다 은수 옆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상무님.”
“말해.”
“유리벽 안에 사람이 있으면, 유리벽 밖에 있는 사람은 누가 봅니까?”
“밖엔 두 평이야. 셋이야.”
“셋이 서로를 보면 됩니까? 도영 과장님이 그러셨습니다. 셋이면 셋이 다 보인다고. 그래서 삼 년 동안 셋이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안 옵니다. 스물셋을 못 본다고. 상무님 유리벽은 그 사람 눈이랑 같은 겁니다. 셋까지. 그 밖은 안 보는 겁니다.”
“그럼 스물여섯은 누가 봐.”
“스물여섯이요.”
“…”
“어제 준희 과장님이 그러셨습니다. 스물둘을 스물두 명이 나눠 보면 한 사람이 한 사람만 보면 된다고. 영업이라 사람 세는 게 일이라고. 그게 웃긴 말인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유리벽은 못 봅니다. 앉은 사람은 봅니다. 강 부장님이 그날 거기 계셨습니다. 열 명 중 하나였습니다. 서 계셨습니다. 지금은 앉으십니다. 담배도 안 피우시고요.”
상무가 나를 오래 봤다. 그 사람 눈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손가락이 탁자를 안 쳤다. 지난번에는 두 번 쳤다.
“대리. 말 잘하네.”
“아,”
“회의에서 말 안 한다며. 게시판에서 봤어. 칠 년.”
“여기는 회의가 아니라서요.”
“그럼 회의에서 해 봐.”
“네?”
“이십사일 경영회의. 안건 올려 줄게. 옥상 유휴 공간 활용 계획 재검토. 대표이사, 본부장 넷, 팀장 서른둘. 거기서 지금 나한테 한 말 그대로 해. 김 과장은 인천이니까 못 오고. 대리 혼자. 그 자리에서 대표이사가 착공 그대로 가라고 하면 협의는 끝난 거야. 27조 협의. 그다음엔 두 평도 없어. 셋도 없어. 카드도 없어. 어때.”
십오 층 사람들은 두 종이를 같은 날 준비한다. 그 사람은 내가 오기 전부터 이 안건을 갖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알고도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아, 가 아니고?”
“하겠습니다.”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십일 분이었다. 상무가 손을 들어 비서를 물렸다. 그리고 나한테 한마디를 더 했다. 일어서면서.
“대리. 그 옥상, 나도 올라가 봤어. 잠그기 전날. 여덟 시에. 아무도 없더라. 의자도 없고. 그래서 잠근 거야.”
“지금은 있습니다.”
“알아. 그게 문제야.”
복도. 카펫. 발소리가 안 났다. 그런데 나는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갔다. 십오 층에서 삼 층까지 열두 층. 계단참마다 문장이 하나씩 생겼다. 지우지 않았다. 삼 층에 도착했을 때 열둘이었다. 경영회의에서 할 말. 열두 문장. 처음으로 열두 개가 다 남았다.
총무팀. 형광등. 김 과장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인수인계로 창고에 갔다고 김 주임이 말했다. 주임은 사옥 담당 대행 첫날이었다. 책상 위에 코팅기와 사규 개정본 세 권. 세 권 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노란 것, 파란 것, 분홍 것. 색마다 뜻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대리님, 저 사옥 담당이래요.”
“네.”
“착공 승인서에 제 도장이 들어가요. 사옥 담당 확인 칸이요.”
“…그래요?”
“근데 규정에 사옥 담당 확인 칸 도장 찍는 기한이 없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 세 권 다 읽었어요.”
주임은 코팅기를 켰다. 예열되는 소리. 뜨거운 냄새. 형광등 아래 삼 층에 그 냄새가 퍼졌다.
“그렇다고 안 찍을 건 아니에요. 저는 총무팀이니까요. 근데 천천히 찍을 수는 있어요. 천천히 찍는 건 규정 위반이 아니에요.”
“그건 김 과장님이 가르쳐 주신 거예요?”
“아니요. 코팅기가요. 코팅은 천천히 넣어야 안 우는 거거든요.”
나는 웃었다. 삼 층에서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주임도 웃었다. 코팅기에서 종이가 나왔다. 뭘 코팅했는지 봤다. 경영회의 안건 상정 공문. 아직 게시판에도 안 뜬 것. 배 차장이 십 분 전에 보냈다고 했다. 십오 층 사람들은 빠르다. 삼 층 사람들은 그것을 코팅한다.
여덟 시. 옥상. 스물여섯. 비가 왔다. 가늘게. 타일이 젖어서 검게 변했다. 젖은 타일은 마른 타일보다 차갑다. 신발 밑창으로 그 차이가 올라왔다. 우산을 쓴 사람이 열둘, 안 쓴 사람이 열넷. 태오는 젖혀진 의자에서 우산을 얼굴에 덮고 잤다. 아무도 안 내려갔다. 태오의 우산 위에서 빗방울이 튀는 소리가 실외기 소리 사이로 들렸다. 비 오는 날 옥상에 앉는 게 규정 위반인지 아닌지 김 주임한테 물어본 사람이 있었는데, 규정에 없다고 했다. 없는 규정은 위반이 아니다. 나는 우산을 안 썼다. 머리가 젖었다. 젖은 머리로 앉아 있으니 열두 문장이 안 지워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열두 문장을 젖지 않게 하려면 머리에 두는 게 나았다. 종이에 안 적었다. 적으면 지우게 되니까.
강 부장이 우산을 소원 쪽으로 기울였다. 자기 머리가 젖었다. 소원은 그것을 알고 우산을 도로 밀었다.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서로한테 밀다가 결국 둘 다 젖었다. 준희 과장이 벽돌 위에서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삼십 분 침묵 실기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김 과장님이 여덟 시 이십 분에 올라왔다. 첫날. 인천에서. 우산도 없이.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 사람이 자기 의자에 앉았다. 십 분. 아무 말도 안 했다. 여덟 시 삼십 분에 스물여섯이 동시에 일어섰다. 아무도 신호를 안 줬는데. 그 사람 십 분이 끝나는 것을 스물여섯이 다 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