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2자) · 소방 점검

철문 앞

옥상 동아리 · 오세림

소방 점검은 십일월 십이일 목요일 두 시였다. 나는 그것을 김 주임한테 들었다. 주임은 그것을 배 차장한테 들었고, 배 차장은 상무한테 들었고, 상무는 소방서에 직접 전화를 했다. 정기 점검이 아니었다. 상무가 부른 점검이었다. 스카이 라운지 도면을 소방서에 보여 주고, 카드 출입이 되는지 확답을 받으려고. 소방서가 된다고 하면 김 과장님이 첫날 옥상에서 한 말이 없어진다.

“대리님도 오세요. 두 시에 철문 앞.”

“제가 왜요?”

“등록 동아리 대표는 활동 장소 점검에 입회할 수 있어요. 27조 4항이요.”

“그것도 삼월에 신설된 거예요?”

“아니요. 그건 원래 있었어요. 아무도 안 써서 그렇지.”

한 시 반에 삼 층에 들렀다. 김 과장님은 오른쪽 모니터에 도면을 띄워 놓고 있었다. 상무 도면이 아니었다. 옥상 평면도에 그 사람이 직접 선을 그은 것. 유리벽 자리에 빗금, 그 밖에 숫자. 사십. 그 옆에 다른 숫자. 오십. 그 사람은 그 화면을 끄지 않고 일어섰다. 각 잡힌 가방을 들었다. 가방 안에 클리어파일이 몇 개인지 나는 세지 않았다.

“과장님, 뭐 준비하신 거예요?”

“아무것도요. 점검은 소방서가 합니다. 저는 문만 엽니다.”

“그럼 저 숫자는요?”

“제가 아는 겁니다. 아는 걸 말하는 건 준비가 아닙니다.”

김 주임이 뒤따라오면서 코팅된 종이를 하나 들고 있었다. 27조 4항. 오늘 아침에 코팅했다고 했다. 대리님 입회 근거라고. 아무도 안 물어볼 텐데 왜 코팅했느냐고 물으니, 안 물어보면 안 보여 주면 된다고 했다. 그 사람 논리는 늘 그 자리에서 끝난다.

두 시. 십육 층 계단참. 철문 앞에 여덟 명이 섰다. 소방서에서 둘. 이 소방위와 젊은 소방교. 상무. 배 차장. 공사 업체 오 사장. 도면 통. 김 과장님. 김 주임. 그리고 나. 계단참은 여덟 명이 서기에 좁았다. 철문이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라 문을 열려면 셋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계단참 벽에 소화기가 하나 걸려 있었다. 점검표에 지난달 날짜. 김 과장님 글씨였다.

이 소방위는 쉰쯤 됐고 말이 느렸다. 도면을 받아 들고 계단참 벽에 대고 봤다. 오래. 그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상무도. 상무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데 소방위 앞에서는 기다렸다. 승인은 그 사람이 주니까. 계단참 형광등이 소방위 뒤통수에 떨어졌다. 머리가 반쯤 셌다.

“카드 출입 자체는 됩니다.”

소방위가 말했다. 상무 어깨가 내려갔다. 아주 조금.

“화재 수신기 연동해서 신호 들어오면 잠금 해제되는 거, 요즘 다 그렇게 합니다. 시험 성적서 있는 제품이면 됩니다.”

“그럼 됐네요.”

“그런데 이 유리벽이요.”

소방위가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라운지 벽.

“이게 옥상 면적의 얼마를 먹습니까?”

오 사장이 답했다. 육십 퍼센트요. 소방위가 고개를 저었다.

“옥상이 피난층이면 대피 공간을 비워 둬야 됩니다. 유리벽 안쪽이 평소에 잠겨 있으면 그 안쪽은 대피 공간이 아니에요. 남는 게 사십이면 기준에 못 미칩니다. 이 건물 연면적으로 계산하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줄이시든지요. 라운지를. 아니면 유리벽 안쪽도 상시 개방을 하시든지.”

상무는 도면을 봤다. 라운지를 줄이면 라운지가 아니다. 상시 개방을 하면 라운지가 아니다. 그 사람 얼굴에서 첫날 옥상에서 봤던 여유가 사라지는 데 이 초 걸렸다. 지난번과 같은 이 초.

“보완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문 한 번 열어 보죠. 열리는지.”

문은 열렸다. 소방교가 밀었다. 경첩이 한 번 울었다. 작년 봄에 다시 연 뒤로 하루에 몇 번씩 열리는 문인데 소리는 아직 새것 같지 않았다. 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계단참에 선 여덟 명 얼굴에 옥상 바람이 닿았다. 십일월 바람. 낮인데 차가웠다. 소방위가 옥상으로 나갔다. 우리도 나갔다. 의자 셋이 있었다. 세 번째 의자는 비어 있었다. 일주일째. 철문 안쪽에 코팅된 종이 둘. 활동내용과 명단. 소방위가 그것을 읽었다. 천천히. 그 사람은 뭐든 천천히 읽는 사람이었다.

“이게 여기서 하는 겁니까?”

“네.”

내가 답했다. 상무 앞에서.

“앉아 있는 거요.”

“네.”

“몇 명이나요?”

“어제 스물넷이었습니다.”

소방위가 난간 쪽으로 갔다. 손을 얹었다. 김 과장님처럼 뼘을 재지는 않았다. 그냥 얹었다. 그리고 김 과장님을 봤다.

“이거 작년에 올린 거죠. 기억납니다. 규정 넘겨서 올리는 데는 여기밖에 없었어요.”

“네.”

“이유는 그때도 안 물었으니까 지금도 안 묻겠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도면을 상무한테 돌려줬다. 상무는 도면을 말았다. 천천히. 소방위보다 천천히. 그 사람이 뭘 천천히 하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김 과장.”

“네.”

“자네가 소방서에 미리 전화했나?”

“아닙니다.”

“대피 공간 기준 얘기, 자네가 알고 있었지.”

“네. 첫날 말씀드리려다 카드 얘기에 끊겼습니다.”

“끊긴 게 아니라 아껴 둔 거지.”

“…네.”

상무가 웃었다. 첫날 웃음과 달랐다. 여유가 아니라 계산이 끝난 웃음이었다.

“자네 총무팀 사옥 담당이지. 사옥 담당이 사옥 공사를 막으면 담당을 바꿔야지. 그게 순리야.”

배 차장이 종이를 꺼냈다. 이미 준비된 종이. 상무는 소방위가 뭐라고 하든 이 종이를 꺼낼 생각이었다.

“인사 발령. 총무팀 김상현 과장, 십일월 십육일부로 인천 물류센터 검수 지원 파견. 삼 개월. 사옥 관리 업무는 총무팀 김 주임 대행.”

김 주임이 자기 이름을 듣고 코팅기 냄새 같은 얼굴을 했다. 뜨겁고 납작한 얼굴. 인천 물류센터. 여기서 한 시간 사십 분. 저녁 여덟 시에 여기 못 온다. 삼 개월이면 십일월 삼십일이 그 안에 있다. 착공일이. 상무는 소방서가 뭐라고 하든 착공일에 김 과장님이 이 옥상에 없게 만들었다. 소방서 점검을 부른 건 승인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이 종이를 꺼낼 자리를 만들려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둘 다였다. 그 사람은 두 종이를 같은 날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김 과장님처럼. 반대편에서.

김 과장님이 종이를 받았다. 읽었다. 각 잡힌 가방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규정대로 난 발령입니다. 파견은 인사 규정 12조입니다. 제가 막을 조항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규정을 아는 사람이었고, 규정이 맞을 때 입을 다무는 사람이었다. 자기한테 온 것도 같았다. 나는 열두 문장을 만들었다. 이건 보복이잖아요. 소방위님 앞에서 이러시는 거예요. 인천은 너무 멀어요. 하나도 안 나왔다. 소방위가 우리를 봤다. 그 사람은 회사 일에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마디 했다.

“보완 도면은 대피 공간 사십 퍼센트 넘게 해서 올리세요. 의자 놓을 자리 남기시고.”

의자 놓을 자리. 소방위는 그 말을 하고 소방교와 내려갔다. 상무도 내려갔다. 배 차장, 오 사장. 계단참에 넷이 남았다. 김 과장님, 김 주임, 나, 그리고 열린 철문.

“과장님.”

“네.”

“여덟 시에 못 오시는 거예요?”

“인천에서 여섯 시에 끝나면 일곱 시 사십 분에 구로 도착입니다. 여덟 시 이십 분에 올라올 수 있습니다.”

“매일요?”

“매일요. 십 분은 앉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계산을 이미 하고 있었다. 발령 종이를 읽으면서. 나는 그 사람이 종이를 읽는 동안 뭘 셌는지 그제야 알았다. 삼 개월이 아니라 십 분을 센 것이었다.

여덟 시. 스물넷이 스물여섯이 됐다. 민정 대리가 게시판에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스물두 명이 스물두 명을 보는 사진. 태오가 넘어간 채 자는 게 앞에 찍혀 있었다. 댓글이 육십이었다. 새로 온 둘은 개발팀이었다. 태오 옆에 앉았다. 캠핑 의자 둘. 태오가 잠결에 옆을 보고 다시 잤다.

세 번째 의자는 비어 있었다. 김 과장님이 그 옆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스물다섯 명한테. 발령. 인천. 여덟 시 이십 분. 스물다섯이 들었다. 강 부장이 담배를 안 꺼냈다. 그 사람은 지난주부터 여기서 담배를 안 피운다. 대신 담뱃갑을 손에 쥐고 있었다. 쥐고만.

“그럼 과장님 오실 때까지 우리가 앉아 있으면 되네요.”

하늘이었다. 손을 들고.

“여덟 시 이십 분까지요. 그러면 과장님이 올라오셨을 때 자리가 있잖아요.”

김 과장님이 하늘을 봤다. 오래. 그 사람이 그렇게 오래 누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

그 사람 대답이었다. 스무 마디 하는 사람 대답 같았다.

준희 과장이 벽돌 위에서 말했다. 그 사람은 아직도 벽돌이었다.

“인천이면 우리 영업 2팀 거래처 있는 데네. 김 과장, 거기 검수장 옆에 국밥집 있어. 여섯 시에 끝나면 거기서 먹고 오면 일곱 시 사십 분 안 돼. 먹지 말고 와.”

“먹지 않겠습니다.”

“아니, 먹긴 먹어. 차에서 먹어. 김밥.”

“…네.”

“그리고 여덟 시 이십 분에 올라오면 계단 열여섯 층이야. 엘리베이터 타. 규정에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는 거 없지?”

“없습니다.”

“거 봐. 있는 규정만 지키는 사람이 없는 규정까지 지키더라.”

스물다섯이 웃었다. 소리 없이. 옥상에서 소리 없이 웃는 것은 말이 아니니까 된다. 그건 면접 날 계획(안)에 없었는데 이제는 다들 안다. 강 부장이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소원이 접이식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세 번째 의자 쪽으로. 빈 의자 옆에 가까이. 아무도 그 의자에 안 앉았지만 그 의자 옆에는 앉았다.

여덟 시 반이 지나도 아무도 안 내려갔다. 사십 분. 발이 시렸다. 타일에 온기가 없어진 지 삼 주. 십일월 옥상은 앉아 있으면 발부터 식는다. 그런데 스물여섯이 앉아 있었다. 의자 소리도 안 났다. 실외기만. 조용한 게 아니었다. 시끄러운 자리에 스물여섯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건 다른 거였다.

나는 상무를 생각했다. 그 사람은 지금 십오 층에 있을 것이다. 우리 발 아래 한 층. 카펫 위에. 창을 등지고. 그 사람은 여기서 스물여섯이 앉아 있는 것을 모른다. 세는 눈으로 우리 셋을 셌던 사람이 지금은 몇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불려 가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발이 시린데 일어나기 싫은 것이 어떤 것인지도 같이.

열두 문장이 생겼다. 나는 하나도 지우지 않았다. 내일 십오 층에 간다. 부르지 않았는데 간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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