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270자)

새벽 다섯 시 재활실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서다예가 계란말이를 하나 더 달라고 조른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입촌하고 나흘째 되던 밤이었다. 발목이 너무 쑤셔서 잠이 안 왔다. 다예는 세인이 깨지 않게 사다리 옆을 살금살금 지나 복도로 나갔다. 숙소동 1층 재활실은 밤 열 시에 잠겼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데 손전등 불빛이 다가왔다. 야간 시설관리 반장이었다. 예순을 넘긴 남자였고, 손전등과 열쇠 꾸러미를 한 손에 쥐고 있었다.

“여기서 뭐 혀?”

말씨가 어디서 많이 들은 말씨였다. 반장의 성은 박이었고, 박 반장의 아내가 선수촌 식당 조리원 염정자라는 것을 다예는 그 밤에 알았다. 박 반장은 다예의 발목을 내려다보더니 열쇠를 하나 골랐다.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내가 순찰 도는 시간이여. 그동안 문 열려 있는 건 내가 깜빡한 겨. 알겄지?”

“감사합니다. 뭘 드리면.”

“우리 집사람 계란말이를 내가 집에서 못 얻어먹어.” 박 반장이 손전등으로 자기 배를 비췄다. “콜레스테롤 높다고 안 해 줘. 근데 식당에선 하루 두 개씩 나온다며?”

그날부터 다예는 아침마다 계란말이를 하나 더 받으려고 염정자에게 매달렸다. 못 받으면 자기 것 하나를 휴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새벽 세 시 반, 재활실 문 손잡이에 그 휴지를 걸어 두면 아침에는 휴지가 없어져 있었다. 세인이 자기 계란말이를 두고 협상을 할 때마다 다예는 속으로 박 반장의 콜레스테롤을 걱정했다.

그 새벽 재활실을 이제 세인의 무릎에 쓰고 있었다.

*

새벽 세 시 사십 분의 재활실은 고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형광등은 켜지 않았다. 창가 쪽 스탠드 하나만 켜면 바깥에서 불빛이 안 보였다. 바닥에는 파란 매트가 깔려 있었고, 벽을 따라 고무 밴드와 짐볼과 무게 원판이 정리되어 있었다. 라디에이터가 꺼져 있어서 처음 십 분은 손이 곱았다.

세인이 매트 위에 누웠다. 다예는 세인의 오른 다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보조기 벨크로를 하나씩 뜯었다. 찌익, 찌익. 1월 밤에 세인이 위 칸에서 들었다던 그 소리를 이번에는 다예가 세인의 다리에서 냈다.

“오늘 몇 도까지 할 거야?”

“어제 105도였으니까 110도.” 다예가 세인의 발목을 잡고 뒤꿈치를 매트 위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무릎이 접혔다. “아프면 말해. 참지 말고.”

“안 아파.”

“거짓말하면 다시 100도부터야.”

세인이 입을 다물었다. 다예는 세인의 정강이 밑에 손바닥을 받치고 조금 더 밀었다. 세인의 허벅지 근육이 손 아래서 단단하게 굳었다가 풀렸다. 피부가 따뜻했다. 재활실의 찬 공기 속에서 세인의 다리만 따뜻했다. 다예는 그 온도를 손바닥으로 기억했다. 세인의 숨이 한 번 길어졌다.

“거기.”

“여기가 110도.” 다예가 손을 멈췄다. “십 초 버텨.”

“열.” 세인이 세었다. “아홉. 너 이거 어디서 배웠어?”

“내 발목한테. 고3 때 혼자 했어. 유튜브 보고.”

“여덟. 유튜브 보고 국가대표 됐어?”

“일곱. 됐잖아.”

세인이 웃다가 셋을 건너뛰고 둘을 셌다. 다예는 처음부터 다시 세게 했다.

다예의 하루는 그렇게 둘로 쪼개졌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세인을 깨우고, 재활실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박 반장의 순찰이 끝나기 전 다섯 시 반에 방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을 더 자고 일곱 시에 식당에 갔다. 오전 훈련, 오후 훈련. 저녁을 먹고 아홉 시 반에 불을 껐다. 세인이 물으면 다예는 매번 같은 핑계를 댔다.

오후 훈련에서 다예의 칼이 느려졌다. 사흘째 되는 날 길창호가 연습 경기를 멈추고 다예를 불렀다.

“니 요새 왜 이렇노? 손목이 반 박자 늦다.”

“발목 때문에요.”

“발목이 손목을 늦게 하나?” 길창호가 다예의 눈 밑을 들여다보았다. 거무스름했다. 길창호는 한참 다예를 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니 새벽에 어디 가노?”

다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길창호가 콧김을 내쉬었다.

“최종전 3월 24일이다. 니도 나가는 거다. 니가 세인이 무릎 붙들고 있는 동안 차도희는 하루 여섯 시간 칼 잡는다.”

“알아요.”

“알면 됐다.” 길창호가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내는 모르는 거다. 세인이한테도 내 안다고 하지 마라.”

그 주 금요일 아침, 염정자가 다예의 쟁반에 계란말이를 놓다가 집게를 멈췄다. 다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서 선수.”

“네, 이모.”

“우리 영감이 요새 아침마다 입에서 계란 냄새가 나.” 염정자가 집게 끝을 딱딱 맞부딪쳤다. “집에서는 안 해 주는디. 이상허지?”

다예의 등에 식은땀이 났다. 옆에서 세인이 멸치를 집다 말고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지으려고 했는데, 얼굴이 말을 안 들었다.

“세상에 이상한 일이 많네요.”

“그려. 많지.” 염정자가 집게를 내려놓았다. 계란말이 둘을 놓고, 셋째를 집어 따로 비닐 랩에 쌌다. 그걸 다예 쟁반 구석에 올려놓았다. “이건 우리 영감 몫이여. 휴지에 싸지 말어. 휴지 보푸라기 붙어서 그 양반이 그거 떼느라 아침마다 십 분씩 걸린대.”

세인이 멸치를 떨어뜨렸다. 다예는 랩에 싼 계란말이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숙여도 귀가 빨개지는 건 숨길 수 없었다.

*

열이틀째 새벽, 세인의 무릎이 125도까지 접혔다. 다예가 손을 떼자 세인이 스스로 무릎을 접어 보였다. 매트 위에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동안 보조기 없이 맨살인 무릎이 스탠드 불빛 아래 반짝였다. 땀이었다.

“됐다.” 세인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 이제 런지 할 수 있어.”

“아직 안 돼. 내일부터 반 런지.”

“반은 런지가 아니잖아.”

“그럼 런지 반찬.” 다예가 수건을 세인 얼굴에 던졌다. “계란말이는 최종전 끝나고.”

세인이 수건을 걷어 내고 다예를 보았다. 다예는 그 눈을 피해 원판을 정리하는 척했다. 세인이 매트에서 일어나 앉아 다예의 손목을 잡았다.

“너 왜 이렇게까지 해?”

다예는 원판을 내려놓았다. 대답은 여러 개 있었다. 세인이 장 위원 앞에서 다예의 발목을 내려놓고 자기 무릎을 잡혔으니까. 세인이 청주 체육관에서 발목을 노리지 않고 이겼으니까. 세인이 들것 위에서 가서 이기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다예가 열한 달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작년 3월 결승, 14대 14. 다예와 세인의 칼이 동시에 닿았을 때 다예는 알았다. 세인의 팔이 먼저 펴졌다. 다예는 그걸 기다리다가 반 박자 늦게 나갔고, 늦게 나간 걸 자기 팔이 알았다. 그런데 심판의 손이 다예 쪽으로 올라갔다. 그날 심판은 임창도였다. 결승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장혜련이 다예를 찾아왔다. 축하한다고 했다. 도운건설에서 다예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고, 서류는 다음 주에 보내겠다고 했다. 다예는 그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해 4월에 거절했고, 그 뒤로 장혜련은 다예에게 다시 웃지 않았다. 대신 차도희가 도운건설 점퍼를 입었다.

세인은 작년의 1점을 갚았다고 생각했다. 청주 체육관에서 15대 14로. 그런데 갚을 빚은 세인 쪽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예 쪽에 있었다.

“너 무릎 다 나으면 말할게.” 다예가 말했다.

“지금 말해.”

“지금은 125도잖아. 다 나으면 135도.”

“너 각도로 다 미루지 마.” 세인이 손목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예의 맥이 뛰는 자리에 닿아 있었다. 다예는 자기 맥이 빨라지는 걸 세인이 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인은 뭐든 셌다.

그때 세인이 손을 놓았다. “화장실.”

세인이 매트에서 일어나 재활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반 런지도 아닌 그냥 걸음이었는데, 오른 다리가 바닥을 디딜 때마다 다예는 숨을 참았다. 안쪽 냉각 치료기 옆에 칸막이 커튼이 있었고 그 너머가 탈의실과 화장실이었다. 커튼이 흔들리다가 멈췄다.

*

다섯 시 칠 분, 재활실 문이 열렸다.

다예는 박 반장인 줄 알았다. 순찰이 일찍 끝났나 했다. 그런데 문간에 선 사람은 회색 코트가 아니라 검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장혜련이었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장혜련이 스탠드 불빛을 보고, 매트를 보고, 매트 옆에 벗어 놓은 보조기를 보았다.

“서다예 선수.”

“안녕하세요.”

“재활실 운영 시간은 아침 여덟 시부터예요.” 장혜련이 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재활실 안에 낮게 울렸다. “문은 누가 열어 줬어요?”

“열려 있었어요.”

“그 말 믿을게요. 박 반장님이 늘 깜빡하시더라고요. 1월부터.” 장혜련이 웃었다. 다예는 그 웃음에 등이 서늘해졌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보조기는 문세인 선수 거네요.”

“제 거예요.”

“서다예 선수는 발목이잖아요. 그건 무릎 보조기고요.” 장혜련이 매트 쪽으로 걸어왔다. 운동화 밑창이 매트를 밟는 소리가 났다. “같은 자리 다투는 선수 무릎을 새벽마다 펴 주고 있었어요? 자기 훈련 시간을 깎아서?”

“시설 쓰는 것도 위원님이 정하세요?”

다예가 일어났다. 무릎 꿇고 있던 다리가 저렸다. 다예는 장혜련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턱을 들었다. 장혜련이 다예보다 조금 작았다. 그걸 처음 알았다.

“정하죠. 선발 기간 동안 선수 관리 기준은 선발위원회가 정해요.” 장혜련이 보조기를 집어 들었다. 벨크로가 손끝에서 늘어졌다. “무단 시설 사용은 징계 사유예요. 둘 다요. 최종전 출전 자격까지 걸 수 있어요.”

“그럼 저만 하세요. 제가 데려왔어요.”

“서다예 선수.” 장혜련이 보조기를 내려놓았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1월 4일 엘리베이터 앞의 목소리도, 서울 회의실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다예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남 무릎 걱정할 때예요? 서다예 선수는 남한테 그럴 처지가 아니잖아요.”

“무슨 말씀이세요?”

“작년 결승 마지막 점.” 장혜련이 다예를 똑바로 보았다. “누가 준 건지, 서다예 선수는 알잖아요. 그 점 받고 우승했으면 그 값은 해야죠. 받은 사람이 받은 줄 모르는 척하는 거, 그게 제일 보기 싫어요.”

다예는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재활실의 찬 공기가 목구멍 안쪽까지 내려갔다.

“최종전 전까지 생각해 보세요. 그 1점을 어떻게 갚을지.” 장혜련이 돌아서서 문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고 한마디를 더 했다. “문세인 선수한테는 말 안 할게요. 그건 서다예 선수 몫이니까.”

문이 닫혔다. 다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스탠드 불빛이 매트 위의 보조기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냉각 치료기가 낮게 웅웅거렸다.

그 웅웅거리는 소리 사이로 커튼 고리가 쇠막대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예는 돌아보았다. 칸막이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앞에 세인이 서 있었다. 오른손으로 커튼 끝을 쥐고, 맨발로, 오른 무릎을 아주 조금 굽힌 채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다예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튼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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