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93자)

같이 낸 사람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길창호는 버스 멀미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차는 멀쩡히 몰았다. 2월 셋째 주 목요일 아침, 길창호의 낡은 은색 승용차 뒷자리에 세인과 다예가 나란히 앉았다. 차 안에는 방향제가 세 개나 걸려 있었다. 레몬, 소나무, 바닐라가 서로 싸우는 냄새였다.

“방향제 왜 세 개예요?” 다예가 물었다.

“하나 다 되면 새로 걸고, 옛날 거 버리기 아까워서 놔뒀다.” 길창호가 백미러로 둘을 보았다. “말 돌리지 마라. 오늘 내 하는 말 잘 들어라.”

고속도로에 오르자 길창호는 십 분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와이퍼가 눈 섞인 비를 쓸어 내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면서 입을 열었다.

“장혜련이 그제 내한테 전화했다.”

세인은 앞좌석 머리받침을 보았다. 길창호의 뒷머리에 흰 머리가 몇 가닥 섞여 있었다.

“세인이 무릎 이야기 하더라. 고2 때 기록. 내가 뺐다고.” 길창호의 경상도 억양이 진해졌다. “맞다. 내가 뺐다. 그때 그거 올라가면 니는 대표 후보 명단에 이름도 못 올렸다. 연골 꿰맨 고등학생을 누가 뽑노? 그래서 뺐다. 후회 안 한다. 근데 오늘은 니들이 이의 취하하는 게 맞다.”

“왜요?” 세인이 말했다.

“왜긴 왜고.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관중 휴대폰 영상은 규정상 증거가 안 된다. 니들이 내도 위원회는 판정 유지한다. 그라고 나면 장혜련은 니들을 협회에 대드는 애들로 찍는다. 그 뒤로 니들 동시타는 다 저쪽으로 간다.”

“지금도 다 저쪽으로 가요.” 다예가 말했다.

길창호가 백미러로 다예를 보았다. 다예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길창호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와이퍼가 두 번 오갔다.

“다예 니는 왜 끼었노? 니 경기도 아닌데.”

“1차 때는 제 경기였어요. 그때 세인이가 관중석에서 소리 질렀잖아요. 코치님이 팔 끌어 앉히시고.”

길창호가 그 장면을 떠올리는지 입을 다물었다. 차가 안성 나들목을 지났다. 세인은 창밖을 보다가 길창호에게 말했다.

“코치님은 오늘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저희가 할게요.”

“그게 내가 할 소리다.” 길창호가 말했다. 그러고는 라디오를 켰다. 트로트가 나왔다. 길창호는 그걸 끄지 않고 따라 흥얼거렸다. 음이 반쯤 틀렸고, 다예가 웃음을 참느라 세인의 팔을 꼬집었다.

*

협회 회의실은 서울의 한 오래된 빌딩 7층에 있었다. 긴 타원형 탁자에 흰 종이컵과 생수병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역대 협회장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창이 북쪽으로 나 있어서 방 안이 낮인데도 형광등 빛으로 파랬다.

공정위원회 위원은 다섯이었다. 가운데 위원장은 일흔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고, 보청기를 낀 쪽 귀를 자꾸 손으로 눌렀다. 탁자 한쪽에 세인과 다예, 길창호가 앉았다. 맞은편에 장혜련과 임창도 심판이 앉았다. 임창도는 회색 양복 차림이었고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장혜련은 태블릿을 탁자에 반듯하게 내려놓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위원장이 서류를 넘겼다. “2차 선발전 결승, 14대 14에서의 동시타. 문세인 선수 쪽 이의. 첨부 영상 하나. 서다예 선수 공동 제출.” 위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둘이 같은 방 쓴다고요?”

“네.” 둘이 같이 대답했다.

“사이가 좋은가 봐요.” 위원장이 말하자 위원 둘이 웃었다. 장혜련은 웃지 않았다.

다예가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벽 화면에 그날 영상이 떴다. 세인의 팔이 천천히 펴지는 장면이 회의실 벽 가득 커졌다. 세인의 팔이 끝까지 뻗은 뒤에야 차도희의 팔꿈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원 하나가 안경을 벗고 눈을 가늘게 떴다. 위원장도 보청기를 누르던 손을 내렸다.

영상이 끝나자 장혜련이 손을 들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세요.”

“영상 자체는 잘 찍었네요. 그런데 몇 가지만 짚을게요.” 장혜련이 태블릿을 켰다. “첫째, 규정상 관중 촬영물은 판정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각도에 따라 팔이 먼저 펴진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둘째,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같은 대회 출전 선수이고, 피해를 주장하는 선수와 같은 방을 씁니다. 셋째, 두 선수는 선발전에서 같은 자리를 다투는 사이인데, 이의 제기는 같이 냈어요. 둘이 같이 내서 셋째 선수를 끌어내리는 모양이 됩니다. 저는 이게 더 걱정스러워요.”

“담합이라는 말씀이세요?” 세인이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문세인 선수가 하셨죠.” 장혜련이 세인을 보았다. 목소리는 끝까지 정중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영상이 경기 중에 관중석에서 찍혔다는 건, 서다예 선수가 자기 경기를 마치고 몸 관리도 안 한 채 뛰어 올라갔다는 거예요. 준결승 직후에요. 발목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다예의 손이 탁자 밑에서 세인의 손목을 잡았다. 세인은 그 손이 차갑다는 걸 느꼈다. 다예가 웃으며 말했다.

“쥐 났었어요. 다 나았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장혜련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었다.

임창도가 그때 처음 입을 열었다. “저는 제 눈으로 본 대로 판정했습니다. 정면에서 보면 차도희 선수가 먼저 칼을 들어 올렸어요.” 임창도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컵이 떨려서 물이 조금 흘렀다. 세인은 그 물 자국을 보았다. 눈으로 본 대로 판정한 사람의 손이 저렇게 떨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위원장이 세인 쪽을 보았다. “문세인 선수, 더 할 말 있어요?”

세인이 입을 여는 순간 옆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길창호가 일어나 있었다.

“코치님.” 세인이 낮게 불렀다. 길창호는 듣지 않았다.

“대표팀 사브르 코치 길창호입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길창호가 탁자 위에 두 손을 짚었다. 억양을 누르려고 애쓰는 게 들렸다. “임 심판님, 저하고 이십 년 압니다. 좋은 심판입니다. 근데 올해 여자 사브르 선발전 동시타 열한 개 가운데 아홉 개가 한 선수 쪽으로 갔습니다. 제가 다 셌습니다. 그 아홉 개 중에 일곱 개를 임 심판님이 봤습니다. 이게 우연이면 저는 오늘부터 로또 사겠습니다.”

위원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기침으로 덮었다. 장혜련이 길창호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길 코치님.” 장혜련이 말했다. “코치님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쪽 선수 편을 드실 입장이 아니시죠. 대표팀 코치시잖아요. 모든 선수의 코치요. 차도희 선수도요.”

“압니다.”

“그리고 코치님이 문세인 선수와 각별한 사이라는 것도 위원회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가르치셨다고요. 그때 일까지 제가 여기서 다 말씀드려야 할까요?”

길창호의 손이 탁자 위에서 굳었다. 세인은 길창호의 손등에 핏줄이 서는 것을 보았다. 장혜련은 무릎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했다.

“그건 됐고요.” 위원장이 손을 저었다. “정리합시다.”

결정은 십오 분 뒤에 나왔다. 회의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세인은 자판기 커피를 세 잔 뽑았다. 길창호는 받지 않았다. 다예가 두 잔을 받아 하나를 길창호 손에 억지로 쥐여 주었다.

다시 들어갔을 때 위원장이 종이를 읽었다.

“판정은 유지합니다. 관중 촬영물은 판정을 뒤집는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다만 위원회는 이 영상을 참고했고, 남은 여자 사브르 선발전에서 임창도 심판을 배정하지 않기로 합니다.” 임창도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선발위원회 요청에 따라,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길창호 코치는 남은 선발전 기간 동안 코칭박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서다예 선수는 경기 중 무단 촬영으로 주의 한 번.”

세인이 일어났다. “코치님은 왜요? 이의는 저희가 냈는데요.”

“문세인 선수.” 장혜련이 먼저 말했다. “같이 내면 같이 책임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길 코치님은 오늘 같이 내셨어요. 일어나서.”

*

선수촌 식당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 일곱 시였다. 소문이 먼저 와 있었다. 둘이 쟁반을 들고 줄을 서자 앞에 선 대표 후보 오세미가 돌아보았다. 스물셋, 이번 선발전 넷째였다.

“들었어. 룸메이트끼리 이의 냈다며. 좋냐? 코치님까지 날리고.”

“코치님 날린 건 우리 아니야.” 다예가 말했다.

“그럼 누구?”

다예가 대답하지 않았다. 오세미가 코웃음을 치고 돌아섰다. 줄 뒤에서 남자 사브르 선수 하나가 “담합 커플” 하고 중얼거렸다. 웃는 소리가 몇 개 따라왔다. 세인은 쟁반을 쥔 손가락이 하얘지는 걸 보았다. 다예가 세인의 쟁반 끝을 자기 쟁반으로 툭 쳤다.

“커플이래. 칭찬이야.”

“담합은?”

“그건 욕이고.” 다예가 말했다. “반반이면 이득이지.”

반찬 칸 끝에서 염정자가 집게를 들고 있었다. 세인이 쟁반을 내밀자 염정자는 계란말이 두 개를 놓고, 잠깐 멈췄다가 하나를 더 놓았다. 다예의 쟁반에도 세 개를 놓았다. 뒤에 선 선수들이 그걸 보고 웅성거렸다. 선수촌 식당에서 계란말이 셋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모, 이거.” 다예가 말했다.

“오늘은 공짜여. 장사하지 말고 먹어.” 염정자가 집게를 딸깍 쥐었다. “둘이 오늘 밥을 반도 안 먹을 얼굴이라 미리 주는 겨. 남기면 다음 주 거 깎는다.”

둘은 계란말이 셋을 다 먹었다. 세인은 셋째를 씹다가 목이 메어 물을 마셨다. 다예는 세인이 물 마시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김치를 먹었다. 염정자 말대로 요새 둘이 안 먹던 김치였다.

*

밤 열 시, 412호. 길창호에게 사과 문자를 보낼까 망설이던 세인의 휴대폰에 협회 공지가 먼저 떴다. 다예의 휴대폰도 동시에 울렸다. 둘이 같은 화면을 보았다.

「여자 사브르 3차 선발전 일정 변경. 3월 4일 목요일에서 2월 22일 월요일로 앞당김. 4월 국제대회 출전 선수 등록 마감에 맞추기 위함. 선발위원회.」

열흘이 사라졌다. 세인은 날짜를 셌다. 나흘 뒤였다. 다예가 아래 칸에 앉아 자기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2차 선발전 날 계단을 뛰어 올라간 뒤로 발목은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다. 세인은 위 칸 사다리 둘째 칸에 왼발을 올린 채 멈춰 있었다. 오른 무릎이 서울 회의실에서부터 계속 뻐근했다.

“열흘이면 네 발목 가라앉았을 텐데.” 세인이 말했다.

“열흘이면 네 무릎도 쉬었겠지.” 다예가 말했다. “둘 다 아는 거네. 그 사람.”

세인은 사다리를 내려왔다. 위 칸에 올라가는 대신 바닥에 앉아 아래 칸 침대 옆에 등을 기댔다. 다예의 무릎이 세인의 어깨 옆에 있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라디에이터 소리를 들었다. 딱, 그리고 한참 뒤에 또 딱.

“코치님한테 뭐라고 하지?” 세인이 물었다.

“나흘 동안 이기는 거 말고 할 말이 있어?” 다예가 세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얹었다가 금방 뗐다. “그리고 방향제 하나 사 드리자. 네 번째 거.”

세인이 웃었다. 웃다가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화면 불빛이 장판 위에서 혼자 꺼질 때까지 둘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다예의 무릎이 세인의 어깨에 닿아 있었고, 세인은 다예의 발목이 나흘 뒤 피스트 위에서 얼마나 버틸지를 셌다. 자기 무릎도 같이 셌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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