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25자)
서다예 자료 있지?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계란말이 하나의 값은 하룻밤이었다. 평가전 다음 날 아침 세인은 식당에서 계란말이 하나를 서다예의 접시로 옮겼고, 서다예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 메모장에 「아래 칸 사용권 1박, 문세인」이라고 적어 세인에게 보여 주었다. 염정자가 지나가다 그걸 보고 혀를 찼다.
“계약서까지 쓰네. 나라 대표 할 사람들이 계란 하나로.”
그날 밤 세인은 아래 칸에서 잤다. 아래 칸 매트리스는 두툼했고 천장이 멀었다. 대신 베개에서 파스 냄새가 났다. 박하와 고무를 섞은 듯한 냄새가 베갯잇에 깊이 배어 있었고, 세인은 베개를 뒤집었다가 뒤집은 쪽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서 그냥 베고 잤다. 위 칸에서 서다예는 십 분 만에 잠들었고, 자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세인이 귀를 기울이자 한 마디가 또렷이 들렸다.
“이모, 하나만 더.”
세인은 이불을 입에 물고 웃었다. 웃다가 침대가 흔들릴까 봐 숨을 참았다.
*
이틀 뒤 오전 연습에서 세인은 차도희와 짝이 되었다. 길창호가 짝을 정했고, 정하면서 세인에게만 들리게 “키 큰 애한테 들어가는 연습 해라” 하고 말했다.
차도희는 연습에서도 빨랐다. 세인이 들어가려고 무게를 앞으로 싣는 순간 차도희의 칼끝이 이미 세인의 손목 앞에 와 있었다. 열 번 붙어 세인이 네 번을 땄다. 다섯 번째 땄을 때 차도희가 마스크를 벗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고, 남색 도운건설 트레이닝복 소매로 그걸 훔쳤다.
“들어오는 각도를 바꾸셨네요.”
“팔이 길어서 정면으로는 안 돼요.” 세인도 마스크를 벗었다. “아래로 들어가야지.”
“아래로 오면 제가 손목을 내려야 하는데, 그러면 어깨가 아파요.”
“진짜 아파요? 1인실 사유?”
차도희가 세인을 보았다. 놀란 얼굴이 금방 지쳐 보이는 얼굴로 바뀌었다. 차도희는 대답 대신 칼날을 수건으로 닦았다. 칼날에 묻은 손때가 수건에 회색으로 번졌다.
“위원님이 세인 선수 부를 거예요.”
세인이 차도희를 보았다. 차도희는 계속 칼날만 닦았다.
“저도 불려 갔었어요. 1월 2일에요. 입촌하기 전에.”
“뭐 때문에요?”
“그건.” 차도희가 수건을 접었다. 말끝이 흐려졌다. “세인 선수가 직접 들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 죄송해요 버릇이라면서요.”
“이번 건 진짜예요.” 차도희가 마스크를 다시 썼다.
점심은 제육볶음이었다. 서다예는 세인 맞은편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식탁에 엎어 놓고 젓가락으로 세인의 계란말이를 가리켰다.
“2차 협상.”
“안 해. 어제 너 위에서 잠꼬대했어.”
“내가? 뭐라고?”
“이모, 하나만 더.”
서다예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젓가락이 쟁반 위에서 한 바퀴 굴렀고, 옆 식탁의 사격 선수 둘이 돌아보았다. 서다예는 귀까지 빨개진 채 젓가락을 주웠다.
“거짓말.”
“녹음할 걸 그랬다.”
“다음엔 녹음해. 그거 내 응원가로 쓰게.” 서다예가 제육을 크게 한 입 넣었다. 씹다가 엎어 놓은 휴대폰을 힐끗 보았다. “나 이따 본관 의무실 가.”
“발목?”
“장 위원님이 문자를 또 보냈어. 「쥐 난 것도 기록은 남겨야 합니다」래.” 서다예가 장혜련의 또박또박한 말투를 흉내 냈다. 흉내가 너무 비슷해서 세인은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가서 쥐 났다고 하고 파스 한 장 받아 올 거야.”
“그걸로 끝날까?”
“안 끝나면 쥐를 두 마리로 늘리지 뭐.” 서다예는 웃었지만 휴대폰을 다시 뒤집어 보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가는 길에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에서 온 문자였다. 「문세인 선수, 오후 두 시 본관 3층 선발위원실로 오세요. 장혜련」.
*
본관 3층 복도는 숙소동보다 따뜻했다. 바닥에 회색 카펫이 깔려 있어서 운동화 소리가 나지 않았고, 벽에는 역대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펜싱 쪽 액자 가운데 하나에 스물두 살의 장혜련이 있었다. 마스크를 옆구리에 끼고 웃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장혜련은 지금보다 눈이 덜 차가웠다.
선발위원실은 넓지 않았다. 창가에 책상 하나, 그 앞에 소파 둘과 낮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 귤이 한 접시 놓여 있었는데, 하나도 까지 않은 귤이 너무 반듯하게 쌓여 있어서 먹으라는 귤 같지 않았다. 장혜련이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귤 드세요.”
“괜찮습니다.”
“그래요.” 장혜련이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태블릿을 무릎에 올리고 화면을 켰다. “그제 평가전 잘 봤어요. 다시 말하지만 영리했어요. 국제무대에서는 그런 머리가 필요해요. 유럽 선수들은 상대 몸을 먼저 읽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 물어보려고요.” 장혜련이 태블릿을 돌려 세인 쪽으로 보여 주었다. 표가 하나 떠 있었다. 대표 후보 일곱 명의 이름과 칸이 있었고, 서다예 이름 옆 의무 기록 칸이 비어 있었다. “서다예 선수 자료 있지?”
세인은 표를 보지 않고 장혜련을 보았다.
“무슨 자료요?”
“발목이요.” 장혜련이 태블릿을 거두었다. “그날 걸음을 봤어요. 세인 선수도 봤잖아요. 아니, 세인 선수는 그걸로 이겼잖아요. 그런데 의무실에는 아무 기록이 없어요. 서다예 선수가 안 간 거죠. 선발 기준에 건강 항목이 있다는 건 아시죠? 4월에 국제대회가 있어요. 아픈 선수를 해외에 보냈다가 경기 도중에 쓰러지면 그건 협회 책임이에요.”
“그럼 위원님이 서다예 선수한테 의무실 가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가라고 했죠. 쥐가 났다더라고요.” 장혜련이 웃었다. “같은 방 쓰는 사람 말은 다르잖아요. 언제부터 아팠는지, 밤에 뭘 하는지, 테이프를 몇 겹 감는지. 그런 걸 알려 주면 돼요. 세인 선수는 사실만 말하면 돼요. 판단은 제가 하고요.”
세인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방 안이 너무 따뜻했다. 귤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없어요.”
“없어요?”
“자료 없어요. 같은 방 쓴 지 나흘이에요. 저 위 칸에서 자서 아래 잘 안 보여요.”
장혜련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고 건조한 웃음이었다. “농담도 하네요. 좋아요.” 장혜련이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갔다. 서랍을 열고 클리어파일 하나를 꺼내 와서 탁자 위 귤 접시 옆에 놓았다. 파일 안에 종이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첫 장 맨 위에 대구의 한 정형외과 이름이 찍혀 있었다.
세인은 그 병원 이름을 알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오른쪽 무릎 연골을 꿰맨 곳이었다.
“문세인 선수도 자료가 있더라고요.” 장혜련이 다시 앉았다. 목소리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고2 때 수술. 반월상 연골이라는 무릎 안쪽 물렁뼈를 꿰맸고요. 그런데 대표팀 의무 기록에는 이게 없어요. 고교연맹에서 대표팀으로 기록 넘어올 때 이 한 장만 빠졌어요. 누가 뺐는지도 알아요. 그때 세인 선수 고등학교 코치가 누구였죠?”
세인은 숨을 쉬는 법을 잠깐 잊었다. 파일 위의 병원 이름이 눈 안에서 커졌다.
“길 코치님은 상관없어요.”
“상관있죠. 기록 누락은 징계 사유예요. 대표팀 코치가요.” 장혜련이 다리를 바꾸어 꼬았다. “세인 선수, 저는 세인 선수를 떨어뜨리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서다예 선수 자료를 주면, 저는 이 종이를 잊어요. 서다예 선수가 의무 심사에서 빠지면 자리가 하나 비고, 세인 선수는 그 자리에 제일 가까워요. 작년 1점도 갚고요.”
“위원님이 미는 사람은 차도희 선수잖아요.”
말이 먼저 나갔다. 세인도 그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장혜련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가 풀렸다.
“차도희 선수가 그래요?”
“아뇨. 1인실이 그래요.”
장혜련이 책상 위 전화기를 보았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장혜련은 받지 않고 화면만 보았다. 세인이 앉은 자리에서도 화면의 글자가 보였다. 「도운 박 이사님」. 진동이 세 번 울리고 끊겼다. 장혜련이 전화기를 엎어 놓았다.
“세인 선수.” 장혜련이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서 누가 누구를 미는지는 선수가 정할 일이 아니에요. 선수는 이기면 돼요. 이기는 데 필요한 걸 제가 주겠다는 거고요. 생각할 시간 드릴게요. 1차 선발전이 1월 마지막 주예요.”
“생각 안 해도 돼요.” 세인이 일어났다. 무릎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시큰거렸다. 세인은 그걸 얼굴에 내지 않으려고 이를 물었다. “자료 없어요. 앞으로도 없어요.”
“그럼 저는 이 종이를 기억하죠.” 장혜련이 클리어파일을 집어 무릎 위에 올렸다. “귤 하나 가져가세요. 서다예 선수 갖다 주든가.”
세인은 귤을 집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왔다.
*
복도의 카펫이 발소리를 다 먹었다. 세인은 대표 선수 액자들 앞을 지나며 오른쪽 무릎에 손을 댔다. 무릎은 아직 멀쩡했다. 수술한 지 세 해가 지났고 그동안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종이 한 장이 무릎보다 무거웠다.
길창호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길창호가 어떤 얼굴로 그 말을 들을지 알았다. 고2 여름, 병원 대기실에서 길창호는 세인의 엄마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애가 대표 될 놈인데 이걸로 꺾이면 안 된다고, 기록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날 길창호의 경상도 억양은 평소보다 훨씬 진했다. 세인은 그 목소리가 자기를 지켜 준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이제 그 목소리가 장혜련의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세인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국가대표 선수촌 본관 3층 공기는 따뜻하고 건조해서, 내쉰 숨이 목 안을 긁었다.
한 층 아래가 의무실이었다. 계단참까지 소독약 냄새가 올라와 있었고, 누가 문을 여닫을 때마다 물리치료기의 낮은 전자음이 따라 올라왔다가 끊겼다. 세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서다예가 지금쯤 쥐 났다는 말을 몇 번째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세인이 떠올릴 수 있는 서다예의 얼굴은 얼음 봉지를 내려놓던 얼굴 하나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가다가 세인은 멈췄다.
복도 끝, 계단 옆에 음료 자판기가 있었다. 자판기의 하얀 불빛 앞에 누가 서 있었다. 짧은 머리 한쪽이 뻗쳐 있었고, 손에 캔 커피 하나를 들고 있었다. 캔을 따지 않은 채였다. 서다예였다.
서다예는 세인이 나온 문을 보고 있었다. 「선발위원실」 문패가 붙은 그 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세인을 보았다. 웃지 않았다. 그 얼굴은 그제 밤 얼음 봉지를 내려놓던 얼굴과 같았다.
세인은 무슨 말이든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장 위원이 네 발목을 물었다고 할지, 나는 말 안 했다고 할지, 그 대신 내 무릎이 잡혔다고 할지.
그사이에 서다예가 캔 커피를 자판기 옆 휴지통 위에 올려놓았다. 따지도 않은 캔이 휴지통 뚜껑 위에서 똑바로 섰다. 서다예는 계단 문을 밀고 내려갔다. 왼발을 끌지 않으려고 애쓰는 발소리가 계단을 따라 멀어졌다.
세인은 그 캔 앞으로 걸어갔다. 손을 대 보니 아직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