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94자)

얼음 봉지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렸을 때 세인은 집에 있는 줄 알았다. 집 침대에서 하던 대로 벌떡 일어났고, 이마가 천장에 부딪쳐 퉁 소리가 났다. 아래 칸에서 이불이 크게 들썩였다.

“머리 조심하라 했지.”

“알람 끄라고.”

“네 알람이잖아.” 서다예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웃었다. 웃음소리가 베개에 눌려 끅끅거렸다. “와, 소리 좋다. 수박 고르는 소리 났어.”

세인은 이마를 문지르며 사다리를 내려갔다. 사다리 칸은 다섯 개였고, 셋째 칸이 맨발에 닿을 때마다 차갑게 삐걱댔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펜싱장 지붕에 쌓인 눈이 가로등 빛을 받아 회색으로 떠 있었다. 아래 칸 옆을 지나가다가 세인은 침대 발치를 보았다. 서다예의 왼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고, 발목이 오른쪽보다 조금 부어 있었다. 세인은 시선을 떼고 세면대로 갔다. 수돗물이 손가락을 아프게 할 만큼 찼다.

*

일곱 시의 선수촌 식당은 미역국 냄새로 꽉 차 있었다. 수영 선수들이 쟁반에 밥을 산처럼 쌓아 지나갔고, 역도 선수 하나는 삶은 달걀을 열 개째 까고 있었다. 반찬 칸 맨 끝에 계란말이가 있었다. 그 앞에 조리원 염정자가 집게를 들고 서 있었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흰 위생모를 눌러 썼고, 계란말이를 한 사람 앞에 두 개씩만 놓았다.

“두 개유. 더는 없슈.”

“이모, 하나만 더요.” 서다예가 쟁반을 내밀었다.

“어제도 하나만 더라더니. 그럼 그제는 누구 거 먹었댜?”

서다예는 웃으며 물러났다. 세인은 계란말이 두 개를 받고 멸치볶음을 수북하게 담았다. 둘은 같은 방이라는 이유로 같은 식탁에 앉았다. 선수촌 식당은 방 단위로 앉는 버릇이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서다예가 세인의 쟁반을 오래 보았다.

“거래하자.”

“싫어.”

“들어나 봐. 네 계란말이 하나에 내 멸치볶음 다.”

“나 멸치 많아.”

“그럼 계란말이 하나에 아래 칸 하루.”

세인의 젓가락이 멈췄다. 서다예가 그걸 보고 눈을 반짝였다. “오, 흔들렸어.”

“하루는 너무 싸. 계란말이 두 개에 사흘.”

“둘 다 주면 너는 뭐 먹는데?”

“멸치.”

“멸치 많다며.” 서다예가 미역국을 한 숟갈 떴다. “계란말이 하나에 하루, 대신 오늘 평가전 끝나고부터.”

“왜 끝나고부터인데?”

“오늘 누가 이길지 모르잖아. 지면 기분 나빠서 아래 칸에서도 못 잘걸.”

옆을 지나가던 염정자가 쟁반을 들고 멈췄다. 둘의 계란말이를 번갈아 보더니 집게를 딸깍 쥐었다.

“둘이 계란말이로 침대 사고팔 거면 그거 내가 도로 걷어 간다? 반찬은 먹으라고 주는 거여. 장사하라고 주는 게 아니고.”

둘은 동시에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염정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서다예가 볼이 불룩한 채 세인을 보며 웃었고, 세인은 웃음이 새는 걸 막으려고 미역국 그릇을 얼굴 앞에 들었다.

식당을 나와 계단을 내려갈 때 서다예가 난간을 잡았다. 계단 네 개를 내려가는 동안 오른발이 먼저 내려가고 왼발이 따라왔다. 한 번도 왼발이 먼저 가지 않았다.

*

오전 열 시, 펜싱장. 첫 평가전은 선발전 점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피스트 옆 테이블에 장혜련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대표 후보 일곱 명이 한 번씩 서로 붙는 다섯 점짜리 리그를 먼저 치르고, 위의 둘이 오후에 열다섯 점짜리 결승을 하는 순서였다.

리그 첫 판에서 세인은 차도희를 만났다. 차도희의 칼은 빨랐다. 키가 세인보다 한 뼘 컸고, 팔이 길어서 세인이 들어가기도 전에 칼끝이 먼저 와 있었다. 세인은 5대 3으로 졌다. 마스크를 벗고 악수할 때 차도희가 작게 말했다.

“죄송해요.”

“뭐가요?”

“아, 그냥.” 차도희가 손을 빼고 고개를 숙였다. “버릇이에요.”

리그가 끝났을 때 세인과 서다예가 오 승 일 패로 위에 섰다. 차도희는 서다예에게 지고 다른 후보에게 한 판을 더 내줘 셋째였다. 장혜련이 노트북에 무언가를 쳐 넣고 차도희 쪽을 한 번 보았다.

*

오후 세 시, 결승. 피스트 하나에만 불이 들어왔고 나머지 다섯 후보와 남자 사브르 선수 몇이 의자를 끌어다 둘러앉았다. 심판은 협회에서 보낸 젊은 남자 심판이었다. 세인은 마스크를 쓰기 전에 손바닥으로 오른쪽 무릎을 한 번 쓸었다. 길창호가 그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시작하자마자 서다예가 두 점을 따 갔다. 첫 점은 세인의 공격을 막고 되받아 벤 것이었고, 둘째는 서다예가 세인이 들어갈 자리에 칼을 먼저 놓아 두고 땄다. 0대 2. 세인은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서다예는 세인의 버릇을 알았다. 그러니 세인도 서다예의 버릇을 써야 했다.

세인이 아는 버릇은 하나였다. 아침 계단에서 본 것, 어젯밤 자정에 들은 것.

세 번째 점부터 세인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밀었다. 한 걸음 나가 칼을 보이고, 서다예가 물러서면 또 한 걸음 나갔다. 서다예가 물러설 때마다 왼발이 뒤로 가 바닥을 디뎠다. 피스트 끝으로 몰릴수록 서다예는 더 크게 물러서야 했고, 그때마다 왼발이 체중을 받았다. 다섯 번째 물러섬에서 왼발이 반 박자 늦었다. 세인의 칼이 서다예의 옆구리를 베었다.

1대 2, 3대 3, 5대 4. 세인은 같은 짓을 했다. 밀고, 밀고, 기다렸다. 관중석에서 누군가 “문세인 오늘 왜 저래, 안 들어가네” 하고 중얼거렸다. 8대 6에서 심판이 일 분 휴식을 불렀다. 사브르는 한쪽이 여덟 점에 닿으면 한 번 쉰다.

세인은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길창호가 옆에 쭈그려 앉아 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세인 귀에만 들리게 말했다.

“니 지금 뭐 하는지 안다.”

세인은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땀 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섞여 숨에 들어왔다.

“규칙에 걸리는 거 아니에요.”

“안 걸린다. 내도 선수 때 그랬다.” 길창호가 세인의 무릎 위에 손을 잠깐 올렸다가 뗐다. “근데 이거는 알고 해라. 니가 남의 다리 노리면, 남도 니 다리 본다.”

“삼십 초.” 심판이 말했다.

피스트 건너편에서 서다예는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왼발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했다. 세인과 눈이 마주치자 서다예는 마스크를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은 그 끄덕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 해 보라는 것인지, 다 안다는 것인지.

후반은 길었다. 서다예가 세인의 수를 읽고 물러서지 않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와 맞부딪쳤고, 동시에 불이 켜질 때마다 심판이 손을 들었다. 두 번은 서다예, 한 번은 세인. 12대 12. 세인은 다시 밀었다. 서다예가 버텼다. 버티다가 13대 12에서 한 번 더 물러섰고,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무릎이 안쪽으로 살짝 꺾였다. 세인의 칼이 들어갔다. 14대 12.

마지막 점은 서다예가 먼저 공격했다. 세인은 막았다. 막고 되받아 서다예의 마스크를 베었다. 초록 불 하나. 15대 13.

세인이 마스크를 벗었을 때 펜싱장 안 공기가 얼굴에 차갑게 닿았다. 박수가 조금 나왔다. 서다예가 마스크를 벗고 피스트 가운데로 걸어왔다. 왼발을 끌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음이었다. 서다예가 손을 내밀었다. 작년 결승 때와 같은 손이었다.

세인은 이번에는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뜨겁고 축축했다.

“잘했어.” 서다예가 말했다. 웃고 있었다.

세인은 그 웃음을 오래 볼 수가 없어서 먼저 손을 놓았다.

테이블 쪽에서 장혜련이 일어났다. 노트북을 닫고 피스트로 걸어와 세인 앞에 섰다. 주위에 선수들이 다 있었다.

“문세인 선수, 오늘 영리했어요.” 장혜련이 또박또박 말했다. “상대를 잘 보더라고요. 같은 방이라 그런가?”

웃는 사람이 몇 있었다. 세인은 웃지 않았다. “평가전이잖아요. 점수에도 안 들어가는데요.”

“들어가요. 제 머릿속에는.” 장혜련이 서다예 쪽을 돌아보았다. “서다예 선수는 의무실 한번 들르세요. 걸음이 좀 이상하네요.”

“괜찮아요.” 서다예가 바로 말했다. “쥐 났어요.”

“그래요?” 장혜련이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세인은 그 손가락 움직임을 보았다. 무엇을 적었는지 몰라도 손가락이 꽤 오래 움직였다.

*

밤 열 시, 412호. 세인이 샤워를 하고 나오자 서다예가 아래 칸에 앉아 있었다. 왼발을 베개 두 개 위에 올렸고, 발목 위에 비닐봉지가 얹혀 있었다. 식당 제빙기에서 퍼 온 얼음이 봉지 안에서 녹아 물이 고였다. 봉지 겉에 맺힌 물방울이 발목을 타고 흘러 수건에 번졌다. 방 안에서 얼음 녹는 소리가 작게 났다.

세인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다가 멈췄다. 둘 다 말이 없었다. 라디에이터가 딱 울렸다.

“봤지?” 서다예가 먼저 말했다. “왼쪽.”

세인은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다. 생각하는 동안 대답이 늦었고, 늦은 대답이 이미 대답이었다.

“봤어.”

“언제부터?”

“어제. 연습 경기 3대 3에서.” 세인이 수건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밤에 테이프 뜯는 소리.”

“아, 들렸구나.” 서다예가 얼음 봉지 위치를 조금 옮겼다. 얼음이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거렸다. “조용히 뜯는다고 뜯었는데.”

“그거 언제부터 그래?”

“고3. 계단에서 굴렀어. 펜싱 하다 다친 것도 아니고, 학원 계단.” 서다예가 웃었다. “멋없지?”

세인은 말없이 사다리 첫 칸에 발을 올렸다가 내렸다.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래 칸에 앉을 수도 없었다. 결국 책상 의자를 끌어와 침대 앞에 앉았다. 서다예의 발목이 세인의 무릎에서 한 뼘 떨어져 있었다. 얼음 봉지에서 냉기가 세인의 정강이까지 왔다.

“잘했어.” 서다예가 말했다. 아까 피스트에서 한 말과 같은 말이었는데 소리가 달랐다. “진짜로. 나라도 그랬어. 작년에 나도 네 거 봤거든.”

“내 거 뭐?”

“너 지면 그다음 점에 무조건 들어오는 거. 참을 줄 몰라.” 서다예가 손가락으로 세인을 가리켰다. “그래서 작년에 14대 14에서 기다렸어.”

세인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작년의 1점이 세인이 생각한 것과 다른 모양으로 돌아왔다. 서다예가 기다렸고, 세인은 참지 못했다. 열 달 동안 돌려 본 장면 속에 그런 건 없었다.

“그럼 나 오늘 갚은 거야?”

“글쎄. 오늘 건 평가전이잖아.” 서다예가 얼음 봉지를 들어 물을 털었다. 물이 수건에 떨어졌다. “그리고 너 오늘 이겨서 빚 하나 생겼어.”

“무슨 빚?”

“내 발목.” 서다예가 웃으며 봉지를 다시 올렸다. “농담이야. 근데 하나만.”

“뭔데?”

서다예가 세인을 보았다. 웃음기가 빠진 얼굴이었다. 세인은 서다예의 그런 얼굴을 처음 보았다.

“장 위원님한테는 말하지 마. 발목.”

세인이 대답하기 전에 서다예가 얼음 봉지를 내려놓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세인은 의자에 앉은 채로 한동안 있었다. 서다예의 발목 위에 남은 얼음물이 수건에 스미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세인은 사다리를 올라가 이마를 천장에 대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누웠다.

장혜련이 태블릿에 오래 적던 손가락이 떠올랐다. 말하지 말라는 부탁은 이미 조금 늦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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