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29자)

위 칸 싫어

선발전 라이벌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 진해솔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 선수촌은 1월 4일 아침에도 영하 11도였다. 주차장에서 숙소동까지 걷는 오 분 동안 문세인의 캐리어 바퀴는 얼어붙은 보도블록 이음매마다 덜컥 걸렸고, 등에 멘 칼 가방은 걸음마다 엉덩이를 때렸다. 가방 안에는 베기와 찌르기로 점수를 내는 펜싱 종목 사브르의 칼 세 자루와 마스크 하나, 칼이 닿으면 불이 켜지게 하는 은색 전도 조끼 두 벌, 그리고 엄마가 몰래 찔러 넣은 조미김 열두 봉지가 들어 있었다.

숙소동 로비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세인은 사람들 어깨 너머로 종이 한 장을 올려다보았다. 여자 사브르 대표 후보 일곱 명의 방 배정이었고, 세인의 이름 옆에 412호가 적혀 있었다. 그 옆 칸의 이름을 읽는 데는 일 초도 안 걸렸다.

서다예.

“코치님.”

세인이 돌아보지도 않고 불렀다. 뒤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대표팀 사브르 코치 길창호가 컵을 입에서 뗐다. 마흔여섯에 배가 조금 나왔고, 세인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친 사람이었다.

“와.”

“이거 누가 짰어요?”

“내 아이다.” 길창호가 컵으로 게시판 아래쪽을 가리켰다. 작은 글씨로 협회 선발위원회라고 적혀 있었다. “내한테 따지지 마라. 내도 아침에 봤다.”

“바꿔 주세요.”

“내가 바꿀 수 있으면 니를 1인실에 넣었지. 거 봐라, 1인실은 저기 한 명이다.”

게시판 맨 아래 줄, 혼자 1인실에 배정된 이름은 차도희였다. 세인이 고개를 돌리자 로비 소파에 앉은 차도희가 보였다. 후원 기업 도운건설의 남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고, 등에 회사 이름이 흰 글씨로 크게 박혀 있었다. 차도희는 세인과 눈이 마주치자 반쯤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가,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로 앉았다.

“재활 사유래.” 길창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어깨가 안 좋다 카데. 내가 보기엔 멀쩡하더라만.”

“그럼 저도 재활 사유 할게요.”

“니는 어디가 아픈데?”

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쪽 무릎이 영하 11도의 바람을 맞으며 시큰거리고 있었지만, 그건 길창호 앞에서 꺼낼 말이 아니었다. 길창호도 더 묻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

장혜련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린 줄은 세인이 말을 걸고 나서야 알았다.

협회 선발위원 장혜련은 쉰둘이었고, 1990년대에 국가대표 사브르 선수였다는 것을 선수촌 사람이라면 다 알았다. 회색 코트 단추를 목까지 채웠고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세인이 다가가자 장혜련이 먼저 웃었다. 입은 웃고 눈은 태블릿을 보았다.

“문세인 선수, 방 배정 보셨죠?”

“네. 바꿔 주실 수 있어요?”

“이유를 들어 볼까요?”

“서다예 선수랑 저는 같은 자리를 놓고 싸워요. 석 달을 한 방에서 지내면 둘 다 잠을 못 자요.”

“잠은 자야죠.” 장혜련이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선발 기간에는 경쟁하는 선수끼리 붙여요. 제가 정한 방식이에요. 서로 보고 배우라고요. 상대를 제일 가까이서 볼 기회잖아요. 세인 선수한테는 특히 좋을 텐데요. 작년에 1점 차였죠?”

1점이라는 말이 세인의 귀에 박혔다. 작년 3월 선발전 결승, 14대 14에서 서다예의 칼과 세인의 칼이 동시에 닿았다. 양쪽 불이 다 켜졌고 심판은 서다예 쪽으로 손을 들었다. 세인은 그 장면을 지난 열 달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서 다시 돌렸다.

“그래서 바꿔 주실 수 없다는 거죠?”

“바꾸고 싶으면 이기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장혜련이 먼저 탔다. “방도, 자리도. 4층 누르시면 돼요.”

문이 닫힐 때까지 장혜련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세인은 엘리베이터를 보내고 계단으로 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오른쪽 무릎이 계단 마흔여덟 개를 하나하나 셌다.

*

412호 문을 열자 라디에이터 냄새가 먼저 나왔다. 오래된 쇠가 데워지면서 나는 먼지 탄 냄새였고, 방은 사람 둘이 칼 가방을 펼치면 바닥이 안 보일 만큼 좁았다. 창가 쪽에 책상 둘, 문 쪽 벽에 붙은 이층 침대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아래 칸에 서다예가 누워 있었다.

양말 바람이었다. 왼발 양말이 반쯤 벗겨져 발목에 감긴 흰 테이프 끝이 보였다. 서다예는 휴대폰을 얼굴 위에 들고 있다가 세인을 보고 휴대폰을 가슴에 내렸다.

“어, 왔다.”

“거기 내 자리야.”

“이름 적혀 있어?”

세인은 침대 기둥을 보았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서다예가 휴대폰으로 다시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다. “먼저 온 사람이 아래. 선수촌 국룰이야.”

“그런 국룰 없어.”

“지금 생겼어. 나 열 시에 왔어. 문세인 선수는 열한 시 이 분.”

“시간까지 쟀어?”

“문 여는 소리 나길래 봤지.” 서다예가 일어나 앉았다. 짧게 자른 머리가 베개에 눌려 한쪽만 뻗쳐 있었다. 작년 결승 때 마스크를 벗던 얼굴이 그대로였다. 땀에 젖은 채 세인 쪽으로 손을 내밀던 얼굴이었고, 세인은 그 손을 안 잡았다. 서다예도 그날 일을 기억하는지 오늘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가위바위보 해.” 세인이 말했다.

“싫어. 나 가위바위보 약해.”

“그럼 사다리 타기.”

“그건 운이잖아. 선수가 운으로 정하면 되나?” 서다예가 침대 난간에 팔을 걸었다. “칼로 정하자. 오늘 저녁 개인 훈련 시간에 다섯 점짜리 한 판. 이기는 사람이 아래 칸, 한 달.”

세인은 대답 대신 칼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퍼 여는 소리가 대답이었다.

*

저녁 일곱 시의 펜싱장은 낮보다 추웠다. 천장이 높아 난방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펜싱 경기를 치르는 길이 14미터, 폭 2미터 남짓의 좁은 바닥인 피스트 여섯 개 가운데 불이 켜진 것은 하나뿐이었다. 길창호가 판정기 옆 의자에 앉아 팔짱을 꼈다.

“내가 심판 보나?”

“네.” 둘이 동시에 말했다. 길창호가 한숨을 쉬었다.

“아래 칸 걸었다꼬? 국가대표 후보 둘이 침대 갖고 칼싸움을 하나. 내가 협회에 뭐라 보고하노?”

“보고 안 하시면 되잖아요.”

“그래, 안 한다.” 길창호가 휘슬을 입에 물었다. “앙 가르드.”

준비 자세를 잡으라는 프랑스어 구령이었다. 세인은 마스크를 내렸다. 철망 안쪽으로 세상이 촘촘한 격자로 쪼개졌고, 자기 숨이 마스크 안에 고여 뺨에 되돌아왔다. 4미터 앞에서 서다예가 칼을 들었다. 철망 너머라 표정은 안 보였다. 서다예가 오른발 뒤꿈치를 두 번 바닥에 찍는 것만 보였다. 작년 결승에서도 그랬다.

“프레? 알레.”

준비됐느냐, 시작. 세인이 먼저 나갔다. 사브르는 빠르다. 두 걸음 만에 거리가 사라졌고, 칼과 칼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천장까지 튀어 올라갔다. 세인의 칼끝이 서다예의 어깨를 스쳤고 초록 불이 켜졌다.

“1대 0.”

두 번째는 서다예가 가져갔다. 세인이 들어가는 순간 한 발 물러나 세인의 칼을 막고, 막은 손목을 그대로 꺾어 세인의 마스크 옆을 베었다. 칼이 마스크를 때리는 소리가 세인의 귀 바로 옆에서 났다. 셋째는 세인, 넷째는 서다예였다. 2대 2, 3대 3. 피스트 고무 바닥에 스텝 소리가 짧게 끊겼다가 이어졌다. 체육관 바닥 냄새와 마스크 안 땀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3대 3에서 세인은 무언가를 보았다. 서다예가 뒤로 크게 물러설 때, 뒷발인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반 박자 늦었다. 늦는 게 아니라 조심하고 있었다. 발을 바닥에 내려놓기 전에 한 번 망설이는 발이었다.

세인은 그 반 박자에 들어갔다. 서다예를 뒤로 밀고, 한 번 더 밀었다. 서다예가 물러섰고 왼발이 바닥을 찾는 사이 세인의 칼이 팔을 베었다.

“4대 3.”

마지막 한 점. 세인은 같은 수를 한 번 더 쓰려고 했다. 크게 밀어 넣고, 왼발이 망설이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서다예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앞으로 나왔다. 둘의 칼이 동시에 상대 몸에 닿았고 판정기의 빨간 불과 초록 불이 동시에 켜졌다.

길창호가 휘슬을 불고 잠깐 말이 없었다. 사브르에서 양쪽 불이 함께 켜지면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지 심판이 정한다. 세인은 마스크 안에서 숨을 참았다. 작년 결승의 그 장면이 똑같이 돌아오고 있었다.

길창호가 손을 들었다. 서다예 쪽이었다.

“5대 4. 세인이 니가 준비 동작에서 칼을 한 번 뺐다. 다예가 먼저 나왔다.”

세인이 마스크를 벗었다.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서다예도 마스크를 벗었는데, 웃고 있지 않았다. 숨을 고르면서 세인을 보다가 짧게 말했다.

“한 달이다.”

“알아.”

“위 칸 천장 낮아. 머리 조심해.”

세인은 마스크를 옆구리에 끼고 대답 없이 피스트를 내려왔다. 2층 관람석 난간 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회색 코트였다. 장혜련이 난간에 기대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세인과 눈이 마주치자 장혜련은 태블릿을 든 손을 살짝 흔들었다. 수고했다는 인사 같기도 했고 다 봤다는 신호 같기도 했다.

*

위 칸에서 천장까지는 40센티미터였다. 세인이 줄자로 잰 것은 아니었다. 누운 채 팔을 위로 뻗으면 팔꿈치가 다 펴지기도 전에 손바닥이 천장에 닿았다. 천장 벽지에는 누가 붙였다 뗀 야광 별 스티커 자국이 다섯 개 남아 있었다.

“불 끈다.” 아래 칸에서 서다예가 말했다.

“끄든가.”

방이 어두워지자 라디에이터 소리가 커졌다. 딱, 하고 쇠가 늘어나는 소리가 사이를 두고 났다. 세인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위 칸 매트리스는 아래 칸보다 얇았고, 세인이 돌아누울 때마다 침대 전체가 삐걱거렸다.

“문세인.”

“왜?”

“아까 3대 3에서 들어온 거, 좋았어.”

세인은 천장의 별 자국을 보았다. 대답할 말을 고르는 동안 라디에이터가 두 번 울렸다.

“근데 왜 마지막엔 안 물러났어?”

“네가 같은 걸 또 할 것 같아서.”

“어떻게 알았는데?”

“작년에도 그랬거든. 하나 먹히면 그거 또 해.” 아래 칸에서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잘 자. 위 칸 선수.”

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마지막 점을 다시 돌렸다. 길창호의 손이 올라가던 각도, 서다예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오던 오른발. 같은 것을 또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어서 더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아래 칸에서 소리가 났다. 찌익, 하고 무언가를 천천히 떼어 내는 소리였다.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세인은 숨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테이프였다. 서다예가 어둠 속에서 발목에 감았던 테이프를 뜯고 있었다. 다 뜯고 나서 아래 칸이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다 아주 작게, 이를 악물고 내쉬는 숨이 한 번 올라왔다.

세인은 손을 뻗어 천장을 짚었다. 차가운 벽지에 손바닥을 댄 채로 오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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